No, 664
작자: 이생진
2013/9/24(화)
조회: 1205
내가 백석이 되어  
    
             내가 백석이 되어
    
                                        이생진 
    
    나는 갔다 
    
    백석이 되어 찔레꽃 꺾어 들고 갔다 
    간밤에 하얀 까치가 물어다 준 신발을 신고 갔다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는데 길을 몰라도 
    찾아갈 수 있다는 신비한 신발을 신고 갔다 
    
    성북동 언덕길을 지나 
    길상사 넓은 마당 느티나무 아래서 
    젊은 여인들은 날 알아채지 못하고 
    차를 마시며 부처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까치는 내가 온다고 반기며 자야에게 달려갔고 
    나는 극락전 마당 모래를 밟으며 갔다 
    눈오는 날 재로 뿌려달라던 흰 유언을 밟고 갔다 
    
    참나무 밑에서 달을 보던 자야가 나를 반겼다. 
    느티나무 밑은 대낮인데 
    참나무 밑은 우리 둘만의 밤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 
    죽어서 만나는 설움이 무슨 기쁨이냐고 울었다 
    한참 울다 보니 
    그것은 장발이 그려놓고 간 그녀의 스무 살 때 치마였다 
    나는 찔레꽃을 그녀의 치마에 내려놓고 울었다 
    죽어서도 눈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손수건으로 닦지 못하고 
    울었다 
    
    나는 말을 못했다 
    찾아오라던 그녀의 집을 죽은 뒤에 찾아와서도 
    말을 못했다 
    찔레꽃 향기처럼 속이 타 들어갔다는 말을 못했다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답변/관련 쓰기     이전글 다음글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