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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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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물이야기>폭포에 피뿌린 소리꾼 송홍록 이야기  
                         폭포에 피뿌린 소리꾼 송홍록 이야기
 
                                                                            안산중앙초등학교
                                                                            교 사   김 광 호
 
 "춘하추동 사시절을 허송 세월 옥중으서 망부사로..."
 "춘하추동 사-시절을..."
 "어허! 그게 아니야"
 사랑방에선 매일 소리 공부를 하는 소리꾼들이 모입니다.  홍록의 매부인 김성옥은 이 지방 운봉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름난 소리꾼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리를 배우기 위해 젊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속속 찾아들었습니다.
 "목으로만 소리를 해선 안되는거여. 가슴속으로부터 끌어올리는 소리라야만 되는거여. 알았는감?"
 어린 홍록은 사랑방에서 들려 오는 소리가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매부가 방안에서 소리를 가르치고 있으면 홍록은 사랑방 문앞을 기웃거리며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동풍이 눈을 녹이여 가지가지 꽃이 피고..."
 사랑방에선 문지방을 타고 흘러나오는 소리에  홍록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흥얼거리기 일쑤였습니
다. 손가락으로 탁탁 장단을 넣어가며 제법 잘 따라서 합니다.
 "동풍이 눈을 녹이여 가지가지 꽃이 피고..."
 사랑방 앞을 몇 시간이고 기웃거리다 가끔씩 서당 가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얘, 홍록아! 또 서당 늦겠다. 어서 가렴! 에이구 저 소리때문에 얘가 정신을..."
 "네 이놈 홍록아! 너 또 소리 듣느라고 늦었구나?  어서 이리와 종아리 걷지 못할까? 고얀놈!"
 서당 훈장님의 호된 꾸중과 회초리에도 홍록은 그 버릇을 쉽게 버리질 못했습니다. 아예 사랑방 대청
마루에 걸터 앉아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매부가 방 안에서 소리를 하고 있으면 그 소리를 기억해 두었다가 흥얼거리곤 했습니다. 홍록은 소리
를 하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고 흥이 났습니다. 가끔씩 동네 아이들을 정자 나무 아래에 모아 놓고 소
리를 흉내내기도 했습니다.
 "흠흠... 이별이야 이별이로고나. 천지만물..."
 애써 헛기침을 해가면 귀동냥해 들은 소리를 아이들 앞에서 의기양양하게 합니다.
 "그게 뭐야? 치!"
 "에이 재미 하나도 없다. 우리 다른 데로 가서 놀자"
 "잠깐 얘들아! 기다려. 조금만 더 들어봐 응?"
 하지만 아이들은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고 가버렸습니다. 홍록이 온 신경을 쓰며 불렀는데도 말입니다.
아이들은 홍록의 소리를 듣는 것이 시시하고 따분하였습니다.
 홍록은 기죽지 않고 계속해서 귀동냥으로 소리를 배웠습니다.
 '나도 소리를 열심히 배워서 매부처럼 훌륭한 소리꾼이 될거야'
 어느 날 뒷산에서 나무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꽃이 지고 잎이 피니 녹음방초 시절이라..."
 홍록은 여느때처럼 몰래 주워 들은 소리를 흥얼거렸습니다. 마침 바람을 쐬러 나온 김상옥은 그 소리
를 들었습니다.
 '어허! 홍록 저 녀석이 언제 저런 소리를...'
 "눈물 모아 물이 되며 깊고 다시 깊고..."
 제법 지게 작대기로 땅바닥을 탁탁 치며 장단을 맞추며 소리를 하는 것이 기특하기만 했습니다.
 '허 참! 저 어린 것이 귀동냥으로 하는 소리가 저 정도라면 음...!'
 김상옥은 그 날 저녁 홍록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네 이 녀석! 홍록아!"
 갑자기 홍록은 어깨를 움츠리며 매부를 흘깃 쳐다보았습니다.
 '아이고 몰래 소리를 엿들은 것이 들통났구나? 이제 불효령이 떨어질텐데'
 "너 나한테 소리 배워볼 생각 없느냐?"
 이젠 죽었구나 생각했는데 뜻밖의 말에 홍록은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뭐...뭐라고 하셨는지..."
 "네 이 녀석 소리하는 것 들으니까 꽤 쓸만하던데. 나한테 소리 배워보지 않겠느냐?"
 "정말요?"
 홍록은 벌써부터 긴장되고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다음날부터 홍록은 다른 소리꾼들과 함께 사랑방에서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소리꾼들이
되돌아간 다음에도 홍록은 늦게까지 소리 공부를 했습니다.
 홍록의 집 옆을 지나는 사람들은 홍록이 연습하는 소리를 듣고 한마디씩 던졌습니다.
 "우리 마을에 소리 신동이 난거야"
 "어쩜 어린 것이 저렇게 곱고 맑은 소리가 날까?"
 
 매부한테서 십 년동안 소리 공부를 한 홍록은 이제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곤 홍록은 자신의 소리
를 알리기 위해 소리판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젊은 시절의 전부를 떠돌이 생활을 했던 것
입니다.
 어느 날 경상 감사의 생일 잔치에 초청을 받아 소리를 부르러 갔습니다. 잔치 전날 감영이 있는 대구
에 도착한 홍록은 고수인 동생 광록과 함께 감영근처의 숙소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여보슈 주인장!  내일이 경상 감사의 귀빠진 날이라고 그러지요?"
 "으응?  아니 손님께서 어떻게..."
 "허허허... 다 아는 수가 있지요. 실은 내가 바로 그 잔치에서 소리를 할 송홍록올시다. 흐흠"
 홍록은 자랑이라도 하듯 수염을 쓰다듬으며 헛기침을 해댔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음... 그런데 댁두 무사할지 모르겠군 ...쯔쯧"
 주인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혀를 찼습니다.
 "아니 주인장! 그게 무슨 말이요? 무사할지 모르겠다니요?"
 "손님도 참, 이 고을 코흘리개 아이도 다 아는 소문을 못 들었단 말입니까요?"
 "소문? 글쎄올시다... 못 들었는데요"
 "이런 깜깜 소식통이로구만. 이리 와 봐요"
 주인은 주위를 한번 조심스레 두리번거리고는 홍록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아 글쎄 이곳 감사의 수청을 드는 '맹렬'이라는 기생이 한 명 있는데, 절세의 미인인데다가 춤과
  노래 또한 대단히 뛰어납죠"
 "근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요?"
 홍록은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며 물었습니다.
 "그러니 감사의 사랑을 한 몸에 듬뿍 받고 있을 수 밖에요. 아무리 지위 높은 감사라지만 그 기생의
  말 한 마디면 감사도 꼼짝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요"
 "그래요? 그렇게 그 맹렬이란 기생이 대단하더란 말이요?"
 "그렇다마다요. 어느 광대나 명창의 소리도 그 맹렬이가 '됐다'하지 않으면 감사가 아예 인정하지도
  않습죠. 아 얼마전에도 하동땅에서 꽤 이름난 한 소리꾼이 불려왔다가 그 기생이 '소리 못쓰겠다'하
여 소리채 한 푼 못 받고 망신만 톡톡히 당하고 돌아갔는걸요?"
 "흥! 지까짓 기생따위가 건방지게 명창의 소리를 감히 평가할 수 있어? 이런 못된..."
 "그러니 손님도 무사할 지 모르겠다 이거지요."
 홍록은 그날 밤을 그 곳에서 묵고 이튿날 연회에 나갔습니다.
 과연 스물이 될까 말까한 기생 하나가 눈에 번쩍 뛸 만큼 아름다운 모습으로 감사곁에 앉아 있었습니
다.
 '음... 저 기생이 바로 맹렬임이 분명하렷다!'
 "자자... 이렇게 먼 곳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소. 우선 술부터 한 잔 주욱 들이킨 다음에 그대의
  소리를 들려주오"
 감사는 홍록에게 손수 술을 한 잔 따르며 소리를  청했습니다. 홍록은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 나서 수
염을 한번 쓸어내렸습니다. 흠흠 기침 몇 번으로 목청을 가다듬고 나서 하얀 도포의 소맷자락에서 부채
를 빼들었습니다. 잔치에 온 사람들은 침을 삼키며 홍록의 소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한순간 풍
악소리도 멈추고 주위가 조용해졌습니다. 이윽고 부채가 촥 펴지며 홍록의 입술에선 거침없이 '낙풍가'
가 토해져 나왔습니다.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가슴 속  깊이 응어리져 있는 한을 내뱉듯 소리가 시작되
자 주위 사람들은 넋을 잃고 소리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홍록은 오직 기생 맹렬이의 얼굴 표정에만
온 신경을 쏟으며 소리를 했습니다.
 "야... 대단한 소리꾼이로구만"
 "그래, 가슴이 확 풀어지는 것 같은데..."
 "역시 명창은 다르군. 저 경쾌하면서도 가슴 설레이는 소리하며...야!..."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은데 이거..."
 감사와 손님들은 홍록의 소리에 감탄해서 한마디씩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단가 한 수가 다 끝나도록 맹렬이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흥미없
다는 태도임이 확실했습니다.
 소리가 끝나자 그녀는 감사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닥거렸습니다. 감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홍
록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네 이놈. 그걸 소리라고 하느냐?  썩 걷어치워라.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함부로 그런 소리를 가지고
  날뛰느냐? 이노옴"
 감사의 호통에 홍록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 하다가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소리를 하고 난 뒤
처음으로 당하는 망신이었기에 기분이 상했습니다. 더구나 하찮은  기생의 말 한 마디로 자신의 소리가
짓밟혀진 느낌을 받았기에 더욱 마음이 상했습니다. 홍록은 한 말도 못하고 붉어진 얼굴을 싸쥐고 자리
에서 물러나오려고 했습니다. 그 때 맹렬이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 그대의 소리가 명창이란 말을 들을만은 하나 내가 듣기엔 아직은 미숙한 대목이 적지 않소. 앞으로
목구멍에서 피를 세 동이는 더 토해내야 비로소 제일 가는 명창이란 소리를 들을 것이오"
 자존심이 크게 상한 홍록의 귀에 맹렬의 비웃음소리만 메아리쳤습니다.
 
 "쏴아아아... 쏴아악..."
 수리산 산골을 타고 내려오는 시냇물들이 이곳 운봉 비전리의 마을 뒷목을 향해 한참을 곤두박질치다
보면 어느새 거대한 물줄기를 이룹니다.
 산 이곳저곳에서 실핏줄처럼 얽혀진 작은 물줄기들이 수리산골에서 한데 어우러진 것입니다.
 수리산기슭 여기 저기엔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습니다.  가끔씩 싱그런 바람이 뻐꾹새 울음 소
리를 전해 주곤 합니다.
 물줄기는 한참동안 거세게 내닫다가 비전마을을 먼 발치에 두고 절벽으로 떨어집니다. 바위에 부딪힌
하얀 물방울들이 안개처럼 흩날리면서 한마리 힘찬 용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듯 합니다. 바로 폭
포의 물줄기입니다.
 "아...아...으...으...아..."
 "쏴아악...쏴...아...악..."
 꿈틀대는 폭포를 뒤로 하고 홍록은 목청을 한껏 돋우었습니다. 이 목청이 트여야만 기생 맹렬의 높은
콧대를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한 홍록은 벌써 열흘이 넘게 이곳 폭포 밑에 와서 소리연습을 하고 있는 것
입니다.
 맹렬의 비웃는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더욱더 소리를 크게 내질렀습니다.
 "야아...으...으...이...아..."
 홍록은 밤낮없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폭포의 거대한 소리는 홍록의 목소리를 심키기에 충분했
습니다.
 '안돼, 목청을 더 트이게 해야 해'
 소리를 내지른지도 한 달이 다 되었을 때는 목이 아주 잠겨버렸습니다. 소릴 낼려고 안감힘을 쓰지만
쉰 목소리조차 목구멍을 넘어서질 못했습니다.
 "허...어...쿨룩 쿠울룩..."
 기침 소리만 간신히 새어나올 뿐이었습니다. 소리를 낼려고  목에 힘을 주지만 답답하게도 소리는 나
오질 않았습니다. 홍록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몸부림을 했습니다.
 '이러면 안되는데...내 목이 ...왜 이러지?'
 홍록은 가슴에 멍이 들도록 답답한 가슴을 쳐댔습니다.  비통한 마음에 거친 볼위로 뜨거운 물방울들
이 흘러내렸습니다. 콧날이 시큰거리며 참을 수 없을 만큼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마음도 몰라주는 폭
포는 하염없이 뿌연 물보라를 일으켰습니다.
 '내가 이래선 안되지...안돼...정말로 안돼...난 꼭 해낼거야. 두고봐라 맹렬아'
 그렇게 석달이 흘러갔습니다. 그 날도 폭포를 마주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소리를 지를 수록 폭포의 물줄기가 더 큰 소리를 내며 쏟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아...으이...이...으윽...욱!"
 소리를 지르는 동안 목구멍이 자꾸 근질거리더니 마침내 검붉은 피가 목구멍을 타고 토해져 나왔습니
다. 홍록의 하얀 옷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습니다. 피는 도포위에  흐드러진 진달래꽃을 피워 놓았습니
다. 피는 쉬지 않고 토해져 나왔습니다.
 "으욱...욱...우욱..."
 검붉은 피는 바위를 적시고 그 틈새를 따라 흘렀습니다. 피는 물줄기 속으로 스며들어 떠내려 갔습니
다. 홍록은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목청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도 홍록은 몇번이나 더 죽을 고비
를 넘기며 검붉은 피를 토했습니다. 그 피가 거의 세 동이나 되었습니다.
 "아하....아으...아..."
 폭포를 마주하고 소릴 지르면 이젠 폭포보다 더 크고 우렁차게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는 십리
밖에까지 쩌렁쩌렁 울려 퍼질 정도였습니다.
 홍록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폭포를 향해 소리를  질렀습니다. 거센 폭포 줄기도 이젠 홍록의 소리속
에 묻혀버린 듯 했습니다. 2년동안 폭포 밑에서  소릴 내질렀던 홍록은 힘들었던 지난 날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콧등이 시큰해졌습니다. 이번에는 기쁨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래, 난 해낸거야. 참다운 소리를...'
 
 홍록은 또다시 대구 감영을 찾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초청되어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망신당한 나의 명예를 되찾고 말거야. 두고봐라'
 그는 감사 앞에 의젓이 절을 하였습니다.
 "소인은 2년 전 여기에서 소리를 했던 송홍록입니다. 오늘 제가 여기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부디 거절하지 말고 소인의 소리 한 대목을 들어 주십시오."
 "오호라...그래? 그럼 어디 한번 들어볼까?"
 감사의 옆에는 역시 맹렬이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수궁가 중에서 한 대목을 들려드리지요"
 홍록은 목청를 가다듬고 나서 부채를 펼쳐 들었습니다. 이윽고 입이 열렸습니다.
 "......용왕의 명을 받아 좌우 나졸 금군 모조리 일시에 내달아 토끼를 에워쌀 제......"
 자신만만한 홍록은 이젠 맹렬의 표정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발림(몸짓)과 너름새를 해가며 소리를 했
습니다. 홍록의 소리가 무르익어감에 따라 맹렬은 거의 넋을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홍록의 입술만 쳐다
보았습니다. 때론 최면에라도 걸린 듯이 홍록의 너름새대로 따라 몸을 간들거렸습니다.
 "좋다!...조오치!..."
 "얼씨구!...좋다!...의이!"
 감사도 흥이 났는지 연거푸 탄성과 추임새를 높였습니다. 홍록의 입에선 거침없이 소리가 터져나왔다.
 "......영문출사 도적잡듯 토끼 두 귀를 꽉 잡고, 네가 이 놈 토끼냐? 토끼 기가 막혀 벌벌 떨며 아이구
내가 토끼 아니오. 그럼 네가 무엇이냐? 개요. 개같으면 더욱 좋다. 삼복 더위 너를 잡아 약개장도 좋거
니와 네 간 내어 달여 먹고 껍질 깔게 되면 의혈.혈담 명약이지. 아이구 개 아니오......"
 시냇물이 흐르 듯이 거친 물결, 잔잔한 물결, 굽이치는 물결같은  소리들이 맹렬의 가슴에 흘러내렸습
니다.
 소리판이 끝나자마자 맹렬은 홍록을 찾아갔습니다.
 "나으리,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드디어 해내셨군요."
 "그래. 그 때 맹렬의 네 꾸지람이 이렇게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구나"
 "나으리, 제가 감히 소리에 대해 이렇다 할 재간도 없는데, 나으리를  충고한 것 송구스럽게 생각합니
다. 이 미천한 몸 받아들여주신다면..."
 그들은 그날 밤 백년회로를 약속하고 짐을 꾸려 운봉으로 떠났습니다.
 
 그 일로해서 홍록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그는 잠시도  쉴 틈이 없이 큰 놀이에 불려다니며 소
리를 하였습니다.
 홍록이 소리판에 불려가게 되면 항상 돌아올 날짜를 약속하고 떠났는데,  만약 하나라도 어기면 집안
엔 큰 소리가 오가기 일쑤였다.
 어느 날 진주 병사의 초대를 받고 가게 되었습니다.
 "며칠 있다가 오실거예요?"
 맹렬은 홍록에게 다짐을 받기 위해 물었습니다.
 "사나흘 걸리겠지"
 "나흘 후엔 꼭 오시지요?"
 "그럼! 꼭 오지. 거기에서 살라구? 염려마시오"
 이렇게 하고 떠난 홍록이 급한 사정으로 나흘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질 못했습니다. 맹렬의 성격을 잘
아는 홍록은 다급한 김에 늦어지는 사유를 자세히 적어 사람을 사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서방님 오셨어요?"
 밖에서 사립문 기척 소리에 맹렬이 방문을 활짝 열고 뛰쳐나왔습니다.
 "여보시오. 혹시 여기에 맹렬이란 사람이 살고 있나요?"
 홍록이 아님을 알고 난 맹렬은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내가 맹렬인데 댁은 뉘시요?"
 "예. 저는 송홍록이란 어르신께서 보낸 심부름꾼입니다. 이 편지를 전해달라고 해서..."
 편지를 받아든 맹렬은 겉봉을 뜯지도 않고 심부름꾼에게 물었습니다.
 "그가 지금 출발했나요?"
 "그게...좀...사정이 급한신 것 같아서 아직..."
 "그래요?  이 편지는 뜯어볼 것도 없으니 송홍록에게 가서 내가 집을 떠나더라고 전해주시오"
 "예옛? 이 편지를 읽어보지도 않고...."
 맹렬은 보따리를 챙겨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흥! 기생들과 잘들 놀고 있겠군! 이 맹렬이를 혼자두고. 어디 두고 보자'
 맹렬은 홍록이 천하의 명기들이 판치는 진주에서 기생한테 빠져 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심부름꾼은 그 길로 급히 홍록에게 달려와서 사연을 전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홍록은 충격을 받아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일을 다 제쳐 놓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집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아! 이 일을 어찌할꼬? 휴우...'
 온갖 수소문 끝에 맹렬이 진주로 가서 그 곳에서 군대를 이끌고 있는 병사  이경하의 수청을 듣고 있
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홍록은 진주로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맹렬은 홍록이 자신을 찾아올 것을 알고 병사를 졸라 한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사또! 송구스럽지만 한가지 청이 있사옵니다."
 "청이라! 그게 무엇인고?"
 "조만간 이곳 병영으로 제 낭군 송홍록이 저를 찾으러 올 것입니다. 그러면..."
 맹렬은 병사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속닥였습니다.
 "그런 일 쯤이야. 알았으니 염려말아라"
 홍록은 병영으로 병사를 찾아갔습니다.
 " 맹렬이는 소인의 처올시다."
 "그래?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제가 데리고 갈까 합니다. 지금 맹렬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허! 이런 무례한 놈! 여기가 어딘줄 알고 사람을 내놓으라 마라 하느냐?"
 병사의 호통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습니다.
 "그게 아니오라......"
 "그래 좋다. 하지만 한가지 조건이 있다. 너는 본래 명창으로 이름이 나있으니 네가 소리를 해서 능히
나를 한차례 웃게 하고 다시 울게 하면 맹렬이를 데려가게 할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너의
목숨을 바쳐야 하느니라. 알았느나?"
 소리꾼의 신분으로서 병사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습니다. 거역한다면 목숨 부지하기가 어렵다는 것
을 안 홍록은 마지 못해 승락하였습니다.
 하지만 홍록이 소리를 두시간이나 내리 부르는 데도 병사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습니다. 바싹 애가 타
고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우스운 소리와 몸짓을 해보고 어릿광대 노릇을 다해다
보았지만 병사는 웃기는 커녕 얼굴엔 점점 화난 표정을 띠었습니다.
 다급해진 홍록은 소리를 하다말고 느닷없이 병사 앞으로 달려들었습니다. 병사와 얼굴을 바싹 맞대고
말했습니다.
 "아이고 아저씨!  어째서 웃지 않으시오. 날 그렇게 죽이고 싶소?"
 병사는 그 소리에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일단 웃기는데도 성공한 홍록은 병사를 울릴 일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홍록의 최대 장기인 슬프
게 우는 소리(귀곡성)가 시작되자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토끼가 용궁에 가서 배를 가르게  되는 대목에
가서는 어찌나 슬프게 소리를 했던지 소리를 듣던  모든 사람들이 눈물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병졸과 장
교들이 눈물을 이리저리 훔치는 가운데 병사도 돌아 앉더니 수건을 눈에 살짝 갖다대었습니다.
 "얼씨구! 오호! 정말 이게 인간의 소리란 말이냐! 정말 놀랍구나"
 소리가 끝나자 병사는 한바탕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허허허..."
 "아니! 사또 왜 그러십니까?"
 홍록이 갑작스런 사또의 웃음에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허허... 실은 이 맹렬이의 부탁을 받고 너를 시험해 본 것이다.허허허..."
 어리둥절해 하며 어쩔 줄을 몰랐던 홍록은 그제서야  긴장되었던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음... 역시 맹렬이가...'
 "네 이놈! 송홍록은 듣거라. 맹렬이를 화나게 만든 것 당장 곤장을 치고 싶지만 맹렬이의 얼굴을 봐서
참겠다. 다시는 이 맹렬이를 속상하게 하지 말렷다!"
 "아이구 네 그러믄입죠"
 홍록은 연신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홍록은 다시금 맹렬과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맹렬은 송홍록의 소리에 반해 같이 살기는 했지만 서로가 원체 고집들이  세고 자존심들이 강해서 부
부싸움이 잦았습니다.
 한번은 싸움끝에 맹렬이 보따리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나는 나 갈데로 갈테니 그리 알아요"
 "네 맘대로 하려무나"
 홍록은 마음 속으로는 말리고 붙잡고도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습니다.
 서로의 마음들은 매우 서글펐고, 겉으로는 서로 작별의 인사조차도 없었습니다. 맹렬은 한번 돌아보지
도 않고 대문을 나섰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홍록은 대문밖으로 나가는 맹렬이의 뒤통수에 대고 자신도 모르게 슬픈 마음을 노래로
써 외쳤습니다.
   "맹렬아, 맹렬아 잘 가거라  네가 가면
    정마저 가져가지 몸만 가고 정은 남으니
    쓸쓸한 빈 방안에 외로이 애를 태워 병이 안될쏘냐"
 마치 장님인 아버지를 떼어놓고 인당수로 몸을 팔러가는  심청이의 마음과도 같이, 그 소리가 너무도
슬프고 애달펐습니다. 목석같은 사람의 가슴도 녹일만큼 애처러웠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이웃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침내 맹렬이도 눈물을 쏟으며 가던 발걸음
을 돌렸습니다.
 "서방님!  흑흑..."
 너무도 사랑하는 맹렬과 이별할 것을 생각한  비통한 심정을 그래로 실어 부른  '단장곡'이 그것이었
다. 오늘날 판소리의 가락 중 가장 느린 장단인 '진양조'를 완성하게 된 것도 이 덕분이었습니다.
 홍록의 슬픈 노래는 당시 최고였습니다. 특히나 귀신이  우는 소리 같다는 '귀곡성'은 판소리의 슬픈
대목에서 신의 경지에까지 올라왔다라고 말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어느 날 홍록이 밤에 진주 촉석루에서 소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른 아이, 남정네 아낙네 할 것 없이 홍록의  소리를 듣기 위해 수천의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습니
다. 촉석루 주변에는 수천개의 햇불과 등이 환하게 빛났습니다. 달빛도 유난히 밝았습니다. 홍록의 주위
엔 수십 대의 촛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 ......일편단심 먹은 마음 일부종사 뜻을 두고 일부일 닦은 절개 일시인들 변하리까. 가망없고 무가내
요......구곡간장 흐르는 눈물이 구천의 사무차요 구성없는 호령소리가 무정속에 두렵네그려....."
 춘향이 신관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곤장을 맞는 '십장가'의 소리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격분해서 주
먹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저런...나쁜 놈의 사또..."
  춘향의 애절한 심정을 홍록은 가슴에이는 한스런  소리로 불렀습니다. 홍록의 소리에 울음이 섞여있
는 듯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 틈에선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낙들은 저
고리 고름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남정네들은 무명 소매 자락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춘향이가 변사
또에게 끌려가 사나운 매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절개를 굽히지 않은  대목에선 모두들 자신의 일
이라도 된 듯 목놓아 슬프게 울었습니다.
 "엉엉...흐흑흑..."
 비장하고 슬픈 소리는 더욱 깊어만 갔습니다.사람들의 울음소리도 더욱 커져  갔습니다. 밤 새 소리까
지도 유난히 크게 우는 듯 했습니다. 홍록의 애절한 소리는 밤하늘을 타고 울렸습니다.  
 "......내가 만일 임을 못보고 옥중 원귀가 되거드면, 무덤 근처 있난 돌은 망부석이 될 것이요......생전사
후 이 원통을 알아줄 이가 뉘 있드란 말이냐. 아무도 모르게 울음을 운다."
 소리가 점점 절정으로 치달렸습니다. 얼마후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맑은 하늘에 먹구름
이 몰려들었습니다. 수없이 빛나던 별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달도 온데 간데 없어졌습니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바람은 차츰 거칠게 나뭇가지들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아이구 이게 뭔일이여?"
 "이건 분명 귀...귀곡성의 징조야!"
 "으으... 머리카락이 쭈삣하니 소름이 끼치는구만"
 "저어 저... 소린...귀...귀...신...이 우는 소리같아"  
 "맞아... 등골이 오싹하니 무서워지는군"
 소리를 들으러 같이 따라나선 아이들은 무서워서 덜덜 떨었습니다.
 "엄마! 무서워요."
 "얼른 집에 돌아가요 예! 나 무서워죽겠어"
 아버지의 바지 자락을 꽉 잡기도 하고, 엄마의 치맛폭에 얼굴을 파묻기도 했습니다. 또, 귀를 두 손으
로 꼬옥 막고 눈까지 꼬옥 감은 아이들도 보였습니다. 어떤 아이는 무서워서 울기까지 했습니다. 울음소
리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흑...으...으...흑...흑...으...이히...히...히..."
 먹구름이 끼인 하늘에서 갑자기 귀신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졌습니다. 홍록의 소리와 어우려져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마치 귀신과 홍록이 이야기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홍록이 진짜 귀신을 불러온게야"
 "그랬나봐요. 아이고 무서워라..."
 "귀곡성은 귀신이 직접 가르쳐 주었다고도 하던데!"
 "내가 알기로는 귀곡성을 내기 위해 매일 밤 공동 묘지에 찾아나섰다고 하지?"
 "그래 나도 들은 적 있네. 도깨비와 귀신 울음소리를 직접 찾아다니며 들었다고 하더구만!"  
 사람들은 무서워 몸을 떨며 쑥덕거렸습니다.
 
 홍록은 나이가 들어 여생을 보내기 위해 경치 좋은 함경남도 길주 지방에서 살았습니다.
 그때까지도 홍록은 이 지방 저 지방을 떠돌아다니며 소리를 듣기를 원하는 곳이면, 아무리 먼 곳이라
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사람들은 홍록이 소리를 한다는 소문을 들으면, 하던 일도 팽개쳐 놓고
소리를 들으러 몰려들었습니다.
 일단 한 번 모였다 하면 코흘리개 꼬마들에서 부터 지팡이를 겨우  의지한 노인들까지 마을의 정자나
무 둘레에 발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모였습니다.
 "역시, 소리꾼 중의 소리꾼이야"
 "암 그렇구말고...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저 소리하며"
 소리가 시작되면 수많은 사람들은 홍록의 소리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웃을 땐 배꼽을 쥐고 웃고, 울
땐 소매가 흥건해지도록 울었습니다. 또 격분해서 주먹을 부르르 떨게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송홍록의 판소리를 거친 바람이 크게 몰아쳐 고목이 부러지는 위세와  수천의 군사와 만 마
리의 말이 몰려와서 천지를 진동케하는 기세를 지녔다고 추켜 세웠습니다. 또한, 아홉 마리의 용이 폭포
에 날아와 가을에 눈발을 뿌리는 격조로 소리를 하다가도 언제 그랬더냐 싶게 따뜻한 봄바람에 온갖 꽃
이 만발하듯 소리의 조를 순식간에 바꾸는 타고난 명창이었다고 칭찬했습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사설이나 음악이 소박했던 판소리에 갖가지 장단과 가락을 짜넣어 판소리의 수준
을 크게 높여 놓은 것도 바로 홍록의 힘이  컸습니다. 즉흥적인 가락으로 판소리를 작곡하고 이것을 이
미 있는 가락과 조화시켜 홍록 자신만의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 낸 것이었습니다.
 판소리를 더욱 발전시킨 송홍록의 이런 창법을 이어받은 제자들에 의해 더욱더 갈고 닦여져 동편제라
는 큰 줄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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