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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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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현식님의 아름다운 글들입니다.  
1집 (1980.12.10)

1. 봄여름가을겨울
2. 어화둥둥 내사랑
3. 주저하지 말아요
4. 떠나가 버렸네
5. 운명 (베토벤, 경음악)
6. 당신의 모습
7.그대와 나
8. 나는 바람
9. 아베 마리아 (슈베르트, 경음악)
10. 아름다운 노래 (장미화, 건전가요)




 

2집 (1984. 9. 20)

1. 사랑했어요
2. 회상
3. 어둠 그 별빛
4. 떠나기 전에
5. 그대 외로워지면
6. 시장에 가면 (건전가요)
7. 바람인 줄 알았는데
8. 당신의 모습
9. 너를 기다리며
10. 아무말도 하지 말아요
11. 변덕쟁이




 

3집 (1986. 12. 5)

1. 빗속의 연가
2. 가리워진 길
3. 슬퍼하지 말아요
4. 비오는 어느 저녁
5. 우리 이제
6. 떠나가 버렸네
7. 비처럼 음악처럼
8. 그대와 단둘이서
9. 눈내리던 겨울밤
10. 쓸쓸한 오후
11. 우리 이제 (하모니카 연주곡)
12. 고향의 봄 (건전가요)




 

4집 (1988. 9. 30)

1. 언제나 그대 내 곁에
2. 여름밤의 꿈
3. 한밤중에
4. 이제는
5. 우리네 인생
6. 사랑할 수 없어
7. 그대 내 품에
8. 기다리겠소
9. 한국사람 (하모니카 연주곡)
10. 우리 처음 만난 날




 5집 (1990. 3. 15)

1. 향기 없는 꽃
2. 넋두리
3. 그 거리 그 벤치
4. 도시의 밤
5. 거울이 되어
6. 재회
7.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
8. 밤의 고독 속에서
9. 할렐루야 (복음성가)




 

6집 (1991. 2. 16)

1. 내 사랑 내 곁에
2. 나의 하루는
3. 겨울바다
4. 한국사람 (하모니카 연주곡)
5. 사랑했어요
6. 추억 만들기
7. 사랑 사랑 사랑
8. 내 사랑 내 곁에 (연주곡)
9. 이별의 종착역
10. 우리 이제 (하모니카 연주곡)




 

7집 Self Portrait (1996. 9. 2)

1. 김현식의 목소리
2. 다시 처음이라오
3. 사랑의 불씨
4. 이 바람 속에서
5. First of May
6. Rain
7. 다시 처음이라오
8. 사랑의 불씨
9. 이 바람 속에서
10. First of May
11. Rain




 

김현식 베스트 (1991.11)

봄여름가을겨울



 

김현식 in LIVE (1991.11)

1. 골목길



 

신촌블루스 2집 (1989. 1)

환상
골목길



 

신촌블루스 3집 (1990. 3)

이별의 종착역



 

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
O.S.T. (1990. 1)

비오는 날의 수채화
그 거리 그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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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의 연대기(年代記)  
1958년 1월 7일 서울 인현동에서 출생했다. 친가는 충남 홍성에서 조그만 사업과 농사를 함 께 하는 유지 집안이었고, 외가는 충남 옥천의 명문가였다. 위로 지금은 캐나다에 이민 가 있는 누나가 있고, 여섯 살 밑으로 역시 지금 캐나다에서 뮤직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있는 동생이 있다.

1965년 서울 혜화국민학교 입학. 3학년 때 옥천 외가에서 시작하는 갈포공장에 참여하려 아 버지가 식솔들과 함께 내려가 죽향국민학교로 전학했고, 1년 후 다시 서울 삼청국민학교로 전학한다. 동료 가수 전인권이 이때 삼청국민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나 물론 둘은 서로 몰랐다.

1971년 보성중학교에 입학. 중학교 시절, 초반의 성적은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했으나 아이스 하키, 기타 등의 과외 일에 몰두하면서 하락했다. 이 시절 그에게 기타와 60년대 미국 록큰 롤을 함께 가르쳐준 사람이 사촌형 양국정이다.

1974년 전기 경기고에 낙방하고 후기 명지고에 입학. 밴드부에서 음악을 배우다 2학년초 자퇴하고 종로 제일검정고시학원 등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상은 이때부터 기타를 메고 종로, 명동 등지의 통기타 업소를 드나들기 시작한다.

1976년 포크송 가수 이장희의 주선으로 김현식 1집 녹음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장희가 갑작 스런 부도사태 이후 미국으로 도피해버려 마스터 테이프까지 나온 상태에서 첫 번째 독집 출반이 무산된다.

1980년 서라벌레코드사에 의해 계획보다 2년 늦게 김현식 1집이 출반됐다. 아직은 앳된 목소리에 소울, 록, 트로트들이 융합된 김현식의 초기 음악세계를 보여주는 앨범이었으나 거의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김현식은 주로 밤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1982년 우연히 신촌의 한 의상실에 들어갔다가 만난 김경자 씨와 결혼한다. 동부이촌동 공 무원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리고 인근에 피자가게까지 열어, 직접 배달도 하는 등 결혼이 가져다준 행복에 빠져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1983년 그가 늘 '나의 분신' 이라고 부르던 아들 완제가 태어난다

1984년 10월 [사랑했어요]를 타이틀로 2집 앨범 출반. 다운타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다. 조원익이 리드하던 그룹 '동방의 빛' 리드싱어를 맡았고, 그룹 해체 후에는 정성조가 리드하던 '메신저스' 의 싱어도 맡으면서 서서히 밤무대 최고의 싱어로 부각되어간다.

1985년 김종진, 전태관, 고(故) 유재하와 함께 그룹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조직한다. '봄 여 름 가을 겨울'은 여러 가지 면에서 그가 리드하기 시작한 최초의 그룹이다. 그러나 누나, 어머니 등 가족들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고 부인 김경자 씨와도 별거에 들어가 개인적으로 는 가눌 길 없는 고독이 시작되던 때이다.

1986년 [비처럼 음악처럼]을 타이틀로 '봄여름 가을 겨울'과 함께 3집 출반. 2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가면서 음악대중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는다. 서서히 여기저기서 "김현식이 도대체 누구냐"는 말들이 나오면서 얼굴 없는 가수로 통하기 시작한다.

1987년 10윌 전인권, 허성욱 등과 함께 마약상용 혐의로 구속된다. 이때 복용한 마약이 그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다.

1988년 2월 63빌딩에서 삭발한 채 재기 콘서트.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찬 관중들은 그의 재 기를 열화 같은 박수로 성원해주었다. 스스로 자신에게 가장 기억되는 콘서트라고 말했다.

1989년 1윌 이정선, 엄인호, 한영애와 함께 '신촌불루스' 3집 앨범에 참여한다. [골목길] [환상] [바람인가 / 빗속에서] 등의 곡들에서 강한 재즈, 블루스 지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1989년 11월 강인원의 주도로 권인하, 신형원과 함께 영화음악앨범 {비오는 날의 수채화}에 참여한다. 이 가운데 싱글 [비오는 날의 수채화]가 각종 방송 차트에 오르면서 가끔씩 방송에 얼굴을 비친다. 그러나 마약에 이은 폭음으로 건강은 계속 악화돼 이때부터 병원을 주기적으로 드나든다.

1990년 3월 15일 [넋두리]를 타이틀로 한 5집 앨범과, '신촌블루스' 3집을 동시 출반한다. '신촌블루스' 3집에는 그가 부른 [이별의 종착역] 등이 있다. 건강이 악화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6집 녹음과 '신촌블루스' '비오는 날의 수채화' 팀과 전국 각지를 누비며 라이브콘서트를 연다. 이때는 어쩌면 다분히 술의 힘에 의해 그의 몸이 유지되던 때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1990년 11월 1일 하오 5시 20분 지병인 간경화로 자택에서 사망. 장례식장에는 많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참석해 요절한 가수의 명복을 빌었다.

1991년 2월 9일 63빌딩에서 김현식추모콘서트 열림. 김수철, 이정선, 전영록, 강인원, 조하문, 한영애, 김태화, '봄여름가을겨울' 최호섭, 권인하 등 30여 명의 가수들이 참가, 김현식의 노래를 불렀다.




유작시입니다.




하나  
깨닫는다는 것은 즐겁다.
즐겁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기기 때문에 두렵다.
두렵다!
두려움은 괴롭다.
괴롭기 때문에 아프다.

둘  
나는 언제나 나를 가둔다.
울타리 안에서, 처음엔 그 울타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넓은 즐 알았다.
그러나 그것도 울타리 안에 있다.
내가 스스로 쌓은 울타리 안에.

셋  
병원엘 자주 간다.
가면 갈수록 자주 가게 된다.
아픈 곳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그것이 병이다.
병원을 다닌 지 벌써 5년째나 된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넷  
잠을 자는 시간이 항상 틀리다.
꼭 그 시간에 자야 되는건지 모르지만
나는 늘 나를 한정된 곳에 두지 않는다.
아침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저녁에도 자고 새벽에도 잔다.
항상 잔다.

다섯  
마음이 가는 대로 얘기하고 싶다.
얘기할 사람이 없다.
진실성 결여.

여섯  
보이는 건 가지고 싶고 만지고 싶고
들리는 건 생소하고 의심쩍고..
언제나 벗어날지.. 나를 밝은 곳으로..
너무 늦지도 그리 이르지도 않은 바로 지금
우리 함께 올려드리는 우리의 찬양이
바른 성경의 가르침 속에서
'거룩한 삶'이 되기를 바라며,
고백적인 삶의 연장선상에서 드려지는
진솔한 경배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러한 찬양과 경배가
고통 속의 자연 만물까지 메아리쳐나가
이 땅이 새롭게 변혁되길 바라옵니다.

일곱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아름다운 꿈이 있었지
푸른 하늘 저 멀리멀리
나의 꿈을 그려보냈지
아주 작은 마음엔

여덟  
정말 잊혀질 수 있을까.
이 밤이 지나가면 또 다시 찾아오는
아침 햇살 아래,
또 그렇게 야윈 얼굴로 살며시 내다보는
나의 수줍은 마음.
무엇을 주저하는지 (하고 있는지)
세상은 나를 보고 손짓하며 부르는데...

아홉  
사랑하며 살고지고
노래하며 살고지고
얘기하며 살고지고
너도 나도 모두 같이 살고지고
에-헤 같이 살고지고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너와 나는 같은 하늘 아래
오랫동안 살아왔네-에.

열  
외로운 사람들을 위하여
외롭다고 생각하지 마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
쓸쓸할 때엔
내가 너의 마음을 위로할텐데
웃지 마-하
내가 너의 곁에 있어줄텐데
세상은 모두 그런거야
그러면서 한평생 살아가는거야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린 똑같이 외로운 사람들이야
우린 똑같이 외로운 사람들이야.

사랑 I  
누구나 다 같이
사랑한다고
절실한 그리움과
애타는 정열 속에
우리는 헤어지지 않아요
지구의 끝, 아니 우주의 끝까지
같이 갑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아니예요.
죽음도 우리를 갈라 놓지는 못해요.
아아, 누구나 다 같이 사랑한다고
너와 나 밖에 없다고
애틋한 절규가 오열처럼 터질 때
우리 둘의 포옹은 화석으로 변해도 되요
사랑은 영겁의 불길이기에.

사랑 II  
마디마디 얼킨 손가락
살며시 풀어지며
허리를 감싸안은 그대와 나
그대는 누구일까요
지금 나는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느껴지네요
사랑한다고 몇천 번을 되풀이해도
채워지지 않는 이 목마름은 무엇일까요
당신이 무엇이길래 내가 없어졌나요
당신이 무엇이길래.

사랑 III  
비가 옵니다
그대로 맞고 가지요
흠뻑 젖은 머리카락에서 어깨로
차가운 물방울이
손끝으로 떨어져오면 그 손으로
당신의 입술을 어루만지고 싶어요
야릇한 탄력이 전류처럼
손가락 끝에 떨리면
심장의 고동이 멎을 것만 같아
얼굴을 하늘에 대고
하염없이 빗줄기를 맞아봅니다.

사랑 IV  
아버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오직 당신 생각만으로
나를 때려도 사랑하기에 맞습니다
매를 드는 이유가 엉뚱하여도
또 하나의 사랑을 눈빛에 느껴
나는 조용히 매맞습니다
바다사람을 산사람이 모르고
산사람 바다사람 모르니
가보고 올라봐야지
틀림없이 사랑은 있는 것 같아
매를 드는 사랑도 사랑이려니
납득할 수 없는 매를
무릎꿇고 맞아드려요.

사랑 V  
사랑은 이별의 시작
이별은 아픔의 시작
아픈 마음에 남아 추억에 잠들게 해
만나면 사랑을 하고 때로는 미움으로
상처를 남기게 해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그런 사랑은
다시는 만나지 않으리
그런 아픈 만남은
소중히 간직했던 아름다운
내 사랑을
다시 만날 때까지.

너와 나  
나는 틀림없이 여기 있어요
그러나 너 없이는 소용없는 나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너는 그것을 몰랐겠지요
네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그것을 몰랐답니다.

먹을 것이 내 입에 들어가야만
나는 살 수 있어요
먹을 것이 네 입에 들어가야만
너도 살 수 있어요
이것은 너와 내가 따로라는 것
(혼자라는 것)
혼자 낳고 혼자 죽는다는 것
(같이는 못 죽는 것)
그러나 너 없이는 소용없는 나
너와 나는 틀림없이 여기 있어요

너와 나의 곳  
여보시오
술, 술, 술, 술 술을들어 이 술 한 잔
너와 나와 둘이서 마주 앉아서
속상하는 생각일랑 흘려버리고
오늘의 피로를 술로 씻으면
내일 있는 이 세상의 낙원이라오

여보시오
노, 노, 노, 노 노래를 노래부르세
너와 나와 둘이서 나란히 앉아
엉클어진 사연을 털어내 놓듯
우렁차고 힘차게 목청 울리면
어지러운 그림자 사라진다오.

여보시오
춤, 춤, 춤, 춤 춤을 춥시다
너와 나와 둘이서 손을 붙잡고
쌓이고 쌓인 가슴속 회포 풀면서
장단 맞춰 즐겁게 춤을 추면은
찌푸러진 하늘도 맑아진다오.

여보시오
다, 다, 다, 다 다른 곳에 무엇이 있어
너와 내가 있는 곳 이 곳이 그 곳
노여움과 기쁨이 서로 엉키고
슬픔과 즐거움이 오가는 곳
이곳이 바로 너와 나의 곳
(두 사람의 곳)

술  
너 술 마실 줄 아니?
너 여자가 왜 그렇게 술을 마셔?
남자는 술을 그렇게 마셔도 돼?
술이 뭐지?
마시면 취하는 거지.
취하면 좋아?
이 꼴 저 꼴이 전부 좋은 꼴 같아져.
그럼 술이 깨면 어떡해?
또 마시면 되지.
그럼 자꾸자꾸 마셔야 되니?
그럼 자꾸자꾸 마시지.
(술이) 맛있다고 마시는 사람
(술) 먹지 말라는 사람
그래도 술이 없어진 일이 없잖아.
이꼴 저꼴이 있으면
술도 꼭 있어야 하나봐.
흐렸다 개었다가
생각났다 잊으면
술을 마셔야 해.
너 술 마실 줄 알어?




평론입니다.




나의 고백  
나는 어린 시절 시골서 자랐다.
국민학교 5학년 때인가 서울 삼청국민학교로 전할을 올 때까지 지금 생각하면 시골 생활이 참 좋은 것 같다.
파아란 하늘. 아주 깜깜했던 밤. 별이 유난히도 많았던 밤. 아름답던 추억이다.
그 시절 추억이 지금도 음악에, 나의 음악 생활에 커다란 희망을 준다.

세월은 지나, 그럭저럭 나도 인생의 반을 어느 새 넘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30이 넘은 것이다.
언젠가 만난 음악생활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


나는 생각한다.
나의 광기, 내 몸속에 있는 그 어떤 광기가 음악으로 표출되는 것 같다.
음악, 음악은 내 인생이다. 그리고 내 전부다.
노래를 하다 못하면 쫓겨나고 그러면 또 더욱 열심히 노래하고... 그냥 음악이 좋아 무작정 좋아 시작했다.
고생도 많이 했다. 누구나 음악 10년 이상 한 사람이면 이런 과정을 겪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배가 고파야 노래가 더 잘되는 것 같다.
나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특히 방황, 좌절 여러 가지 좀 나쁜 경험이다.
처음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이젠 이쯤에서
나의 방황도 좌절도 끝을 내야 할 것 같아서이다.

나의 사랑은 언제나 실패였다.
첫사랑은 누구나 그러하듯 철이 없었고 생각해 보면 짜릿했다.
아마 어디에선가 그녀도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과거는 과거다. 지난 일은 세월에 잠겨 잊혀져 간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아픈 기억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 아픈 기억들을 좋은 음악으로, 깊은 마음으로 진실된 노래를 부르고 싶다.

좋은 세상, 좋은 음악, 좋은 사랑..
내가 바라고 절실히 원하는 것이다. 지금가지 세 장의 앨범을 냈다.
네 번째 앨범에서 나의 모든 음악생활의 전부를 보이려고 노력했다.
밝은 마음으로, 깊은 사랑으로 기대해 주기 바란다.

김현식 88. 9.10

- 김현식 4집 앨범에 부쳐 -  
김현식,
결코 많이 들어 본 가수는 아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는 '언더그라운드 씬'의 기수로서 군림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다시 말해 김현식은 훌륭한 가창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가수는 많지만 가창력을 지닌 가수가 없는 우리 나라 풍토아래 김현식은 기나긴 가뭄 끝에 쏟아지는 비처럼 마냥 싱그러움이 있고 그리고 다른 여느 가수에서는 좀처럼 느 끼지 못하는 진한 혼이 베어 있다. 흔히들 김현식을 가리켜 '대중적인 가수가 아니다'라고 하는데 대중적이라 함은 그의 음악이 우리의 현실에서 볼 때 약간은 어렵다는 말이다. 즉, 수준이 있는 음악성을 그에게서 느끼게 된다.

그는 '색깔이 있는 남자'다. 색깔이 있다는 말은 예술세계에서는 개성이 강하다는 뜻으로 연 결된다. 만약에 가수가 개성이 없다면 무슨 맛이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김현식이 지닌 매력은 매콤한 겨자처럼 톡 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게 일품 이다.

김현식은 또 '끼가 있는 사내'다. 그가 만약 끼가 없었다면 벌써 노래를 그만 두었을지도 모 른다. 남들처럼 야간업소에 서는 것도 아니므로 그의 주머니는 항상 비어 있고 춥지만 그에 게는 음악이라는 보약이 있기에 시금치를 먹은 뽀빠이처럼 항상 힘이 샘솟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그는 '멋을 아는 친구'다.
멋이란 사람을 돋보이게 하지만 자칫 잘못 멋을 부리면 오히려 안한것만 못하다. 이것을 멋에 대한 감각이라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김현식은 자신을 가꿀 줄 아는 센스가 있다. 다시 말해 멋을 안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멋이 넘쳐흐른다.

더러는 김현식을 '건방진 녀석'이라고 한다. 건방지다는 말을 잘못 해석하면 자만에 빠졌다 고 해석할 수 있겠으나 그는 자만이 아닌 건방짐이 있다. 만약 예술을 하는 예술인이 건방 짐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예술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대중에게 야합하다 보면 당분간은 생명을 연장시킬 수는 있겠지만 곧 식상한 대중들이 외면하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현식 의 건방짐은 대중을 이끌어가며 항상 새것을 추구하는 원동력이라 해석된다.

아무튼 김현식은 2년만에 와신상담 4집을 갖고 심판대에 섰다.
가수생활 10년을 기념하며 임한 이 음반은 과거 어느 앨범보다 더 원숙한 음악성과 보다 더 한 개성을 접하게 되는데 앨범을 턴테이블에 올려 논 순간 분명 당신은 김현식의 독특한 매 력에 빠져 들 것이다.

글 . 선성원 (가요평론가)

김현식 5집 - 한국대중음악의 독립선언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1980년의 어두운 사회를 위안할 때 슬며시 발표된 김현식의 데뷔 앨범을 주목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무려 5년 뒤 들국화가 화려하게 데뷔할 즈음 그의 두번째 앨범이 나왔을 때 그의 이름은 바로 80년대 대중음악계의 가장 중대한 사건인 이른바 `언더그라운드'의 동의어가 될 채비를 완료했다. 그리고 그가 지병으로 이승을 마감하고 유작이 된 여섯번째 앨범이 요절의 신드롬과 함께 밀리언 셀러의 폭풍을 몰고 왔을 때 80년대 중후반의 이 신화는 저물었다.

대부분의 그의 노래가 록의 정통주의적 흐름에서 벗어나 있을지는 몰라도 그는 적어도 세계에 대한 태도의 측면에서는 완벽한 로커(rocker)였다. 그는 방송과 음반회사의 전횡을 무시해 버렸으며 대중의 소녀적 취향에 대해 일고의 배려가 없었다.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저 60년대 우드스탁의 끝없는 자유를 동경했다.

김현식에 대한 최대의 아쉬움은 그가 탁월한 록 보컬리스트였던 사실에 반해 뛰어난 싱어송라이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데뷔 앨범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제외하면 그의 작곡 능력은 2류에 머물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록 음악가로서 치명적인 이러한 약점은 그의 탁월한 백 밴드 봄여름가을겨울과 송홍섭을 위시한 베테랑 세션들이 메꿔주었다.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앨범인 이 앨범에 이르러 그는 짧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자신의 삶의 내면을 일필휘지로 내보인다. 시계의 초침 소리가 임박한 임종을 암시하는 가운데 흐르는 짧은 독백과 한 호흡으로 제시되는 그 특유의 상승하는 주제선율, 그리고 박청귀의 일렉트릭 기타와 호응하며 포효하듯이 일어서는 후렴의 사자후- 그 자신에 의한 이 <넋두리> 한 곡만으로 그가 펼쳤던 날개가 얼마나 많은 이의 감관을 휘감았는지를 알아차리는 데 충분하다.

그는 두번째 앨범의 <어둠 그 별빛>이나 세번째 앨범의 <비처럼 음악처럼> 같은 대표적인 곡에서 드러나듯이 블루스에 기인한 슬로 템포의 록의 비경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그 여유로운 템포 속에서 그는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소리꾼의 힘과 기교를 아로새겼으며, 그로부터 기인하는 보컬의 카리스마는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게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김현식이 우리에게 각인됐던 그 시대는 랩을 제외한 서구의 모든 문법이 우리 대중음악의 골간을 장악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사조의 단순 수입상에 머물지 않고 그 자신만의, 어쩌면 나아가 우리의 숨결을 불어 넣고자 했다. 네번째 앨범의 <우리네 인생>이나 이 앨범의 <도시의 밤>과 같은 전형적인 로큰롤 곡에 면면히 흐르는, 무어라 규명할 수 없는 '향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그는 <향기 없는 꽃>을 통해 이렇게 읊조리는 것이 아닐까?
"겉이 화려할수록 진실 메말라 있고 / 겉이 화려할수록 향기 간 곳 없으니 / 향기 없는 꽃이여 / 그대의 진실은 은밀함에 있어 / 부러움 한 몸에 받을 수있다오..."

강 헌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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