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린이: 天竺 (pcsos@thru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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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도서
2004/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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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물이야기 >시골 아낙네에서 명창이 된 억척 여인 이화중선  
               시골 아낙네에서 명창이 된 억척 여인 이화중선
                                                                                 
                                                                            안산중앙초등학교
                                                                            교 사   김 광 호

 "엄마! 나 배고파!"
 "이 놈의 계집애가?  니 방금 전에 밀가루 죽 먹었잖아"
 "그래도 배고픈 걸 어떻해? 잉잉..."
 "어휴!  자식 새끼까지 말썽이니"
 "여보! 저 어린 것이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러겠소"
 화중선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의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이구! 뼈 빠지게 이 놈의 농사 지어봤자 다 소용없어. 죽도록 고생하는 사람은 우리네 농민들이고,
편하게 누워서 배 두드리며 먹는 놈은 따로 있으니"
 "그러게 말이예요. 이 썩어빠진 세상이 언젠가 한번 발칵 뒤집혀야 하는건데 휴우..."
 "쉿!  아니 이 여편네가?  누가 들으면 어쩔려구 그래?"
 "들을려면 들으라지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다 바라는 것 아니겠어요?"
 화중선의 부모님은 변변한 논마지기 하나 없이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
었습니다. 굵은 돌덩이와  자갈이 박혀있는 산기슭 손바닥만한 땅을 몇  달동안 일궈 겨우 마련한 땅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세 식구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남의 집 농사를 지어
주고 삯으로 쌀 몇 섬을 얻기도 했고, 동네 일을 도와주고 받은 약간의 돈으로 겨우 살아갔습니다.
 "잉잉잉...  배고파! 밥 줘! 얼른 밥 달란 말이야 잉잉잉..."
 어린 화중선은 부모님이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오면 으례껏 울면서 밥 달라고 졸랐습니다.
 "우리 봉학이 배고팠지? 잔칫집에서 봉학이 줄려고 떡이랑 과일 얻어왔지"
 "아버지! 정말?"
 "그럼. 정말이지. 여보! 봉학이 배고플덴데 우선 떡이라도 내 주구려"
 "에구 힘들어! 저 년 밥술이나 먹는 집에서 양녀로 데려가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여보! 어린 것 앞에서 무슨 쓸데없는 말이요. 그러다간 천벌 받아요 천벌"
 "누가 그걸 모르나요. 답답하니까 그러죠. 답답해서..."
 아버지는 화중선을 번쩍 들어 안으며 엉덩이를 다독였습니다.
 화중선의 어렸을 때 이름은 이봉학이었습니다. 전설의 새 봉황과 학처럼 오래 살라고 그런 이름을 지
어주었는지도 모릅니다.

 "봉학아! 우리한테 아씨라고 불러라. 그럼 이 과자줄께"
 "이 사과 한 입 베어먹고 싶으면 나한테 큰 절 한 번 올려라"
 동네 아이들은 화중선을 볼 때마다 먹을 것을 들고 놀렸습니다. 밥 한 그릇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화
중선은 아이들의 그런 꾀임에 곧잘 넘어가곤 했습니다.
 "정말이야? 아씨라고 부르면 그 과자 줄거지?"
 "그래, 어서 아씨라고 불러봐"
 "아...아...씨이!"
 "호호호... 나보고 아씨래. 그럼 넌 지금부터 나를 아씨마님으로 모셔야 돼 알았지?"
 어린 화중선은 먹을 욕심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떼준 과자맛이 어찌나 좋던지
먹은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입맛을 다셨습니다.
 "더 먹고 싶어?"
 "으...응"
 "그럼 이번엔 내가 땅바닥에 과자를 던질테니까 주워먹어!"
 화중선은 이런 아이들의 놀림에도 화를  내거나 싸우질 않았습니다. 그랬다간 아이들한테 먹을 것 얻
어 먹긴 다 틀리기 때문이었습니다.
 일곱살이 되면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일하러  다녔습니다. 여린 손에 호미를 들고 거친 땅바닥을 파헤
치며 돌을 고르기도 했습니다. 때론 뙤약볕에서 하루종일 풀을 뽑기도 했습니다.

 눈물어린 소녀 시절을 보낸 화중선은  열일곱 살 나던 해 남원군 수지면 호곡리 홈실마을의 박씨 집
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서운하기도 했지만, 딸이 끼니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화중선은 날마다 밭갈고 논에 나가 김도 매었습니다. 또 베도 짜면서 억척스럽게 일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마음 놓고 밥술이나 먹게 된 것이 고마울 지경이었습니다.
 "이봐 소문 들었어? 우리 마을에 내일 협률사가 찾아온다던데"
 화중선은 마을 우물가에 물 길르러 갔다가 장에 갔다오는 옆집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협률사요? 그게 뭐하는 거래요?"
 "으이그 이런 무식하기는. 그 유명한 명창 송만갑이 이끄는 창극 공연단도 몰라?"
 "창극 공연단이요?"
 "그래. 내일 같이 구경가볼겨?"
 "요즘 농사 일이 한창 바쁜데 무슨 구경할 여유가 있나요?"
 "나참, 지금 일이 문젠가?  이런 기회는 두번 다시 오지 않을 건데도?"
 "한번 생각해 보구요"
 다음날 아침 홈실 마을은 온통 들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서로 모여 협률사
얘기로 수근거렸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논에서 피를 뽑던 화중선은 오랜만에 허리를 폈습니다.
 '휴우- 이렇게 바쁜데...일하러 나온 사람이 몇 보이질 않으니 창극 공연이 그렇게 대단한건가?'
 해가 더 높이 떠올랐을 때 일하던 몇몇 사람들마저  하던 일을 놓다시피 바삐 논을 빠져 나갔습니다.
화중선도 협률사 공연에 은근히 마음이 끌렸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나도 같이 따라 나설걸 그랬나? 이런 촌구석에서 살다보면 창극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수지면의  온 주민은 물론이고 인근 면의 사람들까지도 모였습니다. 처음 보는
국창과 여류 명창들이 꾸미는 화려한 무대를 구경하기 위해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삘릴리리...덩기덩 쿵덕쿵..."
 협률사 앞엔 사람들을 더 끌어모으기 위해 굿패들의 신바람나는 한판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어서들 구경오세요. 다시는 못 볼 좋은 기횝니다. 예예 어서들 들어오세요"
 알록달록한 오색의 색동저고리를 입은 한  여자가 굿패 주위를 돌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쪼들리던 살
림살이에 창극 구경은 엄두도 못내던  화중선도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창극 구경
을 했습니다.
 "추월은 만정허여 산호주렴으......"
 창극 무대는 갖가지 색의 천들이  치장되어 있었고, 수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
니다.
 "야! 아름답다. 저 소리하는 사람의 옷차려 입은 것 좀 봐"
 화중선의 두 눈은 더욱 또랑해지고 호두알만큼이나 커졌습니다.
 '마치 하늘 나라에 있는 선남선녀들이 땅에  내려와 노는 것 같구나. 야아-!'
 꿈 속 같은 무대의 모습 또한 놀라워서 화중선은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청천의 외기러기는 월하에 높이 떠서......"
 화중선은 특히 창극의 음악과 처음 듣는 판소리의 신기하고 묘한 가락에 이끌려 넋을 잃었습니다. 옆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무대위에 명창들이 부르는 판소리의 음률만이
들려올 뿐이었습니다. 간간이 어깨가 들썩이기도 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화중선은 무거운 발걸음을 터덜터덜 옮겼습니다. 화려했던 공연의 모습과 멋진 의상을
차려입은 명창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아! 나의 생활이 저 사람들과 비교하면...나의 인생이 왜 이렇게 보잘것 없는걸까?'
 꿈 속 같이 멋있는 생활을 할 것만 같은 명창들과 자꾸 비교하게 되고,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어느 새 해는 뉘엿뉘엿 산마루를  타고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풀벌레 소리들이 유난히도 크게 들렸습
니다.
 "아휴...휴우...휴..."
 긴 한숨만 계속 나왔습니다.
 그날 밤 화중선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밤새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고민했습니다. 화중
선은 새벽녘에 창극단의 여류 명창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행복한 꿈을  꾸면서 잠이 들
었습니다.
 "며늘얘야! 무슨 일 있어? 너 어디 아픈게야? 얼굴빛이 안 좋구나"
 "아...아니예요. 어머님"
 여느 때와 다른 화중선의 표정을 알아차린 시어머니가  무슨 일이가 하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일을 차마 말씀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화중선은 사흘간이나 계속된 협률사 공연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저녁 구경을 갔습니다.
 "여보! 요즘 어찌된 일이오. 집안 꼴이 말이 아니잖소  또, 저녁마다 협률사 공연 갔다온 후에는 힘이
하나도 없으니..."
 "......"
 남편의 심한 꾸지람에도 화중선의 귀엔 그저 웽웽거리는 벌레의 소리로 밖에는 들리질 않았습니다.
 "아니! 내 말이 말같지 않소? 어찌 아무 대꾸도 없소. 에이 쯔쯧"
 '내가 소리를 배우겠노라 하면...아...아니야 말할  순 없어. 아아 언젠가  말해야 하는데...지금 말할까?
사람들이 알면 나보고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겠지? 휴...후우...'
 하지만 화중선은 선뜻 말할 용기가 나질 않았습니다. 아니 용기가 나지 않는게 아니라 두려웠던 것이
었습니다. 며칠동안 고민했지만 한숨만 나왔습니다. 도저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밤이면 더욱
더 미칠 것만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 난 이렇게 시골 아낙으로만 묻혀버릴 순 없어. 어쩌면  나의 길은 소리의 길일지도 몰라! 소리
를 배워야겠어!'

 화중선은 자그만한 보통이를 끼고 남원 읍내를 향해 걸었습니다. 새벽 기운이 꽤 쌀쌀했습니다. 바삐
걸어가는 발길 사이로 길섶 풀잎위에 맺힌 이슬이 신발 속으로 젖어들었습니다.  몸이 으스스 떨렸습니
다. 가문도, 체면도, 남편도 저버리고 마침내 아무도 모르게 집을 뛰쳐나오고 만 것이었습니다.
 '아! 막상 집을 뛰쳐 나오긴 했지만 소리를 누구한테 가서 배워야 하나? 내 신세가 처량하구먼'
 남원읍에 도착해서 이러저리 헤매다가 우물가에서  새벽녘에 정한수를 뜨러 온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
다.
 "저 말씀 좀 묻겠는데요, 여기에서 소리 좀 배울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되나요?"
 "소리? 소리라...글쎄...맞아! 저기 저 산등성이에 서낭당이 보이지?  그 뒤로 조금만 올라가면 집이
한 채 있지"
 "그래요? 그 곳에 소리를 잘 하시는 분이 살고 계신가요?"
 "암, 하는 일이 단골네(무당)니 소리라 하면 잘할 것 아니겠어?"
 "단골네요?"
 화중선은 흠짓 놀랐습니다. 자신이 찾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유명한 명창이지 무당이라곤 생각지도 못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화중선은 좀 꺼림직했지만  소리를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때문에  할머니가 일
러 준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서낭당 앞에 버티어 선 고목나무  허리엔 오색의 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한무더기 돌덩이
들이 나무 주위에 쌓여져 있었습니다.  또,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이 깃든 돌탑들이 수없이 쌓여져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서낭당을 뒤로하고 조금 올라가니 과연 할머니가  일러준 집이 한 채 눈에 띄였습니다. 대문 옆에 기
다란 대나무가 매어져 있었습니다. 대나무 끝엔 오색 천이 나불거리며 매달려 있었습니다.
 "여보세요...계십니까?"
 "게 뉘시오"
 방문이 덜컥 열리더니 과연 푸르스름한  옷을 걸친 무당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화중선은 방문 앞으
로 다가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 소리를 좀 배우러 왔는데요"
 "방금 소리라고 했나?"
 "예, 그러하온데"
 무당은 화중선의 위아래를 주욱  훑어보았습니다. 화중선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눈치를 살폈습니
다. 무당의 가느다란 두 눈이  매섭게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위로 치켜 올려져있는 눈썹꼬리 때문에 더
욱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나 한테서 소리를 배우겠단 말이지? 하지만 그럴려면 여기서 내 일을 거들어야 할텐데"
 "아무렴요, 기꺼이 그러구 말구요"
 화중선의 목소리는 이미 흥분되어 있었습니다.  뜻밖에 쉽게 허락해 주는 무당이 정말 고맙게 생각되
었습니다.
 그날부터 화중선은 궂은 일을 맡아하며, 밤에나 겨우 소리 몇 마디를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
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당의 소리 가르치는 횟수가 뜸해졌습니다.
 며칠뒤 읍내에 굿판이  벌어지자 무당은 서둘러 준비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화중선은 혼자서 마루에
앉아 몇 마디 배운 소리를 흥얼거렸습니다. 무당은 밤이 으슥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곤 급
히 화중선을 방 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얘야! 너 혹시 돈 벌고 싶지 않아?"
 "돈이요?"
 "그래, 돈말이야. 내가 허라는대로 잘 허면 돈은 많이 벌 수 있지. 나랑 내일 읍내에 나가보자구나"
 화중선은 몇번이고 망설였지만 결국 같이 읍내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 돈이 있어야지 소리도 잘 배울 수 있겠지. 아무렴!'
 다음 날 날이 밝자 무당은 화중선을 일찍 깨웠습니다.
 "얘야 어서 가서 몸 깨끗이 씻고 이 분 좀 발라라. 머리도 곱게 빗고, 옷도 단정하게 차려입으렴!"
 "누...누구 만나러 가는감요?"
 화중선이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습니다.
 "그래... 너에게 돈보따리를 안겨 줄 사람이란다."
 무당은 화중선의 손을 이끌고 바삐 남원 읍내를 향했습니다. 시장의 복잡한 사림들 틈을 헤집고 시장
안쪽으로 계속 들어갔습니다. 이윽고 시장터가 끝나는 모퉁이를 돌아서자 화중선은 놀랐습니다.
 "에구머니나, 여긴 술먹고 몸 파는 곳 아닌감요?"
 "그래, 여기선 잘만허면 팔자 하나는 고칠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한번 잘 해보라구! 나도 네 덕 좀 보
자구나"
 "제가 어찌 이런 곳에서...... 아이구 싫습니다."
 화중선은 가슴을 두 팔로 싸안으며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 당시 남원에는 장득주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장득주는 명창의 대열에는 못 끼어도 명창으
로부터 소리의 기본을 배웠고 열심히  혼자 소리공부를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리라면 남원 일대
에서는 일류라고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화중선은 소문을 듣고 장득주가 사는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거대한 대문은 꽉 잠겨있었습니다. 대문
틈에서 새어나오는 소리 몇 마디는 화중선의 가슴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무당에게서 배웠던 소
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장득주라는 분한테서 소리를 배웠으면 좋으련만...'
 대문을 이리 저리 기웃거리며 소리에 흠뻑 빠져 있을 즈음 갑자기 대문이 '삐걱'하고 열렸습니다.
 "여보시오. 댁은 뉘신데 남의 집 대문 앞에서 기웃거리는 거요?"
 덩치 큰 하인 한 명이 싸래기 빗자루를 어깨에 걸치며 물었습니다.
 "저...여기에 장득주라는 분이 살고 계시지요?"
 "그렇소만"
 "그 분을 한 번만 만나게 해 주십시오. 제발"
 "옛기 여보쇼! 그 분이 누구라고  감히 당신같은 아낙네를 함부로 만난단말이요? 괜히 헛고생하지 말
고 돌아가시는게 좋을 것이오"
 "여보시오. 제발... 전 꼭 소리를 배워야 한단 말이예요"
 "소리요? 푸하하하... 당신이 소리를 배우겠단말이지요? 하하하...."
 "아니 왜 그렇게 웃으시오?"
 "당신같은 아낙이 어떻게 소리를 배우겠단 말이요.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 살림이나 하고 자식이나 키
우면 될 것을. 하하하......"
 하인은 화중선을 비웃으며 대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니, 이봐요! 이봐요!"
 화중선은 닫힌 대문을 주먹으로 '탕탕' 두드리며 하인을 불렀으나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여자라고 하인들까지 무시하는구만. 내 기필코 명창이 되고 말거야'
 화중선은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그럴수록 가슴에는 소리에 대한 열
정이 오기처럼 타올랐습니다.
 "장득주 어르신의 동생이 아마 총각이라지?"
 "그래... 나이는 찼는 모양인디 어떤 색시감이 나타날련지 원"
 "아 나이만 차면 뭘하나! 눈만 뜨면 술독에 빠져 사는 인간을 누가 거들떠나 보겠어?"
 "하긴...그래..."
 화중선은 빨래터에서 동네 아낙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고 귀가 번쩍 트였습니다.
 "아주머니! 장득주 어르신의 동생 성함이 무엇인지 아세요?"
 "엥? 아니 댁은 뉘신데 우리 이야기를 엿들은게요?"
 "죄송합니다. 일부러 엿들은 게 아니라 우연히 지나다가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 동생 이름을 알아서 뭐할려구 그래요?"
 "그게 그러니까 좀......"
 화중선이 말을 머뭇거리는 동안 한 아낙이 눈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습니다.
 "오호라- 그러니까 그 분 동생이 총각이란 말을 듣고 그러시는구나. 내 말이 맞죠?"
 "맞다. 맞아!"
 다른 아낙들이 빨래를 하다말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화중선은 얼굴이 금새 잘 익은 복숭아 빛을 띠었
습니다.
 "내가 소개시켜줄까? 내가 이래봐도 중매 하나는 끝내주니까 말이야"
 그 말에 화중선은 선뜻 대답을  못하고 고개만 숙였습니다. 화중선은 장득주의 동생과 혼인하는 것이
장득주에게서 소리를 배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화중선은 장득주의 동생 장혁주와 맞선을 보고 결국 혼인을 했습니다.
 장혁주도 술고래인 자기와 혼인하겠다는 여자가 나타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제 소리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겠구나'
 화중선은 소리를 배운다는 기대에 가슴이  한껏 부풀어 있었습니다.
 장득주는 자신이 소리를 할 때마다 화중선이 문밖에서 한창동안 기웃거리다 들어가는 것을 여러번 보
았습니다. 또 부엌에서 몰래 숨죽이며 소리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어느 날 밥상을 차려 들어온 화중선을 불러 넌지시 소리에 대해 물었습니다.
 "제수씨! 소리공부 좀 해 보실랍니까?"
 "소리요? 그...그럼요"
 화중선은 얼떨결에 체면도 잊은 채 대답했습니다.
 "그럼 내 손수 오늘부터 소리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아주버님!"
 장득주는 동생의 아내인지라 정성을 다해 가르쳤습니다.  그리곤 화중선의 타고난 재능을 알아차렸습
니다.
 '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음악성이 높고 배울려고 하는 열정이 남다르군. 열심히 하면 명창이 될
큰 재목감이야'
 장득주는 더욱 더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화중선은 장득주에게서 소리를 배운지 몇 년만에 <춘향가>,
<심청가>,<흥보가> 세 마당을 완전히 습득했습니다.
 장득주한테서 판소리의 기초를 어느 정도 터득한 셈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 정도면 내가 여기에서 배울 건 다 배운 것 같아. 그렇다면 이젠.....'
 "서방님! 전 이제 한양으로 올라가 소리 공부를 더 할까 합니다."
 "아니! 형님한테서 배우다 말고 갑자기 한양으로 가다니요"
 "제 꿈을 펼치기  위해선 더 큰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더 이상 우물안 개구리가 되기는 싫사옵니
다. 서방님! 죄송합니다. 끝까지 뫼시지 못해서요"
 "그럼 우리 사이는 어떻게......"
 화중선은 보따리를 챙겨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소리 공부를 위해선 다른 모든  것들은 그리 중요치
않았습니다.
 한양에 올라온 화중선은 명창 송만갑이 이끄는 창극단인 협률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화중선의 소리를 들은 송만갑도 그녀의 소리에 무릎을 치며 감탄했습니다.
 "소리란 본래 어려서부터 배워야만 명창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 법인데, 넌 스무살이 넘어서야 소리
를 배웠어도 이렇게 곱고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다니 참으로 놀랍구나"
 "넌 억지로 꾸며내지 않아도 감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소리가 나니 이건 분명 타고난 소리꾼이 틀림없
구나. 음..."
 화중선은 미인은 커녕 박색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특징이 없는 평범한 얼굴이었습니다. 하지만 목소
리만큼은 정말 아름답고 애절했습니다. 맑은 샘물이 솟아나오듯 온 몸을 울리며 퍼져 나오는 그녀의 청
아하고 감정이 어린 목소리는 듣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충분했습니다.
 화중선의 이같은 타고난 소리는 다른 명창들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그녀만의 특징이었습니다.
 "......오느냐 저 기럭아!  소중랑  북해상에 편지 전턴 기러기냐? 도화동을 가거들랑 불쌍하신 우리
부친 전에 편지 일장을 전하여 다오......"
 <심청가> 중에서 심황후가 그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우는  대목 일명 "추월가"는 화중선의 나이 스무

때 서울 경복궁에서 열린 명창대회에서 처음으로 불렀습니다.
 화중선이 한양에  올라와 그런 큰 무대에 서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가슴이 쿵쿵 방망이질을 해댔습
니다. 그 당시  판소리의 여왕이라고 불리던 배설향도 참가해서 긴장은 더욱 커졌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그리는 심청의 마음을 애끊는 가락으로 불러 모인 수 많은 사람들을 울렸습니다. 일
등으로 뽑힌 화중선은 당시 '소리의 왕'이라고 불리던  박기홍으로부터 '화중선'이란 예명을 받게 되었
습니다.
 박기홍은 화중선의 '추월가'를 듣고는 그만 무릎을 치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아하... 배설향이 여왕이라면 자네는 가히 꽃중의 선녈세"
 "지나친 칭찬의 말씀이옵니다. 죄송하옵니다. 감히 어르신 앞에서 소리한답시고 여기 서 있으니"
 "아니야, 자넨 충분히 가능성이 엿보여. 내 자네를 위해 이름을 하나 지어주겠네. '꽃중의 선녀'라는
뜻으로 '화중선'이라 함은 어떨까?"
 "화중선이요?...화...중...선... 예쁜 이름인데요?"
 "그래! 그럼 넌 지금부터 이봉학이란 이름 대신에 '이화중선'이란 이름을 사용하려무나"
 "이화중선...화중선..."

 명창이 되어서 서울의 창극 무대에  서기 위해 가정과 남편을 버리고 온갖 고생을 다했던 화중
선은 송만갑의 협률사에서 활동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화중선이 잠을 설치며 꿈꿔왔던
명창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습니다.
 '저 환호하는 박수 소리... 나를  바라보는 수천의 사람들의 아우성...나의 꿈은 이제 이루어진거야.
하지만 왜 이렇까? 가슴이 답답해져오는 것은'
 하지만 화려한 무대 속에 박수 갈채를 받는 화중선은 인기와는 반대로 외롭고 쓸쓸한 자신의 삶을 고
민하여 살았습니다.
 '내가 버린 남편...가정...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난했겠지? 하지만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었잖아'
 끝없는 고독과 싸우는 화중선의 모습은 애처로웠습니다. 동료 명창들은 화중선의 안타까운 모습에 혀
를 내둘렀습니다.
 "쯔쯧... 저거 좀 봐. 화중선이 연습을 하다말고 넋나간 사람처럼 멀거니 앉아있잖아"
 "아무래도 이상해진 것 같아. 지난 번에는 별로 우습지도 않은 일에 배를 움켜 잡고 웃었잖아"
 "그래 맞아!  하찮은 일에도 열을 올리며 화를 내기도 했잖아! 거참! 모를 일이군"
 1935년 장안사, 연흥사와 같은 창극  전문 극장이 일제의 치밀한 감시와 탄압, 그리고 활동사진의 보
급으로 인한 경영난이 겹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연 창극 활동이 부진하게 되었습니
다. 협률사에서 더 이상 소리를 못할 걸 안 화중선은 대동가극단에 들어가 판소리와 창극을 계속했습니
다.
 대동가극단에는 강남중, 임방울 등의 명창과  박초선, 박초홍 등이 가담해 판소리 창극의 토막극, 남
도민요, 줄타기 등을 펼치며 지방을 돌아다니며 공연했습니다.
 1943년에는 일본의 한 레코드 회사에서 임방울과 이화중선의 레코드를 취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
기로 대동가극단의 단원  모두를 초청해서  일본 순회 공연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원들은
이것이 허울좋은 초청공연이란걸 알고 있었습니다.
 "초청공연이라구? 말도 안되는 소리! 전쟁 무기를 만드는 공장의 근로자들과 탄광에 징용되어 끌려가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을 위문공연하기 위한 것인지 누가 모를 줄 알고?"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잖아. 이건 초청이 아니라 위문단이란 이름의 반강제적인 공연이잖아"
 "출연료도 주지 않고 여비와 숙식비 정도로만 때우는 속셈을 모를 줄 알고?"
 "그게 다 나라잃은 설움 아니겠나? 휴..."
 그 당시 일제는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일반 시민들건 예술인이건  적당한 명목을 만들어  부려 먹고
있었습니다. 대동가극단 단원들은  억울함을 속으로 삼키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공연을 떠나게 되었습니
다.
 더구나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아서 목이 쉬도록 공연을 해야 간신히 먹고
살 수 있을 때였습니다.
 이화중선은 전국 각지와 일본 등지를  여행하며 맑고 청아한 애원성으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
았습니다. 하지만, 한없이 밀려드는 고독감과 잔병치레로 몸과 마음이 극도로 허약해져가기만 했습니다.
정처없이 떠도는 유랑 극단 생활에 지쳐버렸습니다.
 화중선은 본래 약한 체질인데다가 너무 무리하여 유랑 극단 생활을 하다보니 자연 이름 모를 병에 걸
렸습니다. 일본 규슈 지역의 순회 공연을 마친 일행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화중선의 건강상태가
최악의 상태로 나빠졌습니다.
 '아! 두렵다. 나의  몸을 파고 드는 피로와 질병들. 시간이 갈수록 몸의 힘이 없어지고,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어. 두려운 시간들의 연속이다. 이젠 늙고 병들어 소리도 못하게 될 날들이 점점 다가온다.
죽음의 시간들이 나의 곁에 바싹바싹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난 두려워...이 두려움에서 벗어
나고 싶은데'
 화중선은 자신의 건강이 회복되기 어려운  것을 알고는 큰 슬픔에 잠겨있었습니다. 동료 명창들이 힘
들어 하는 화중선을  위로하기도 했지만, 이미 깊은 병마와 싸워  지쳐버린 화중선에게 별로 큰 용기를
주질 못했습니다.
 화중선의 입에선 죽음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만 죽고 싶다. 난 견딜 수 없어. 이 답답한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규슈에서 세도 나이카이를 항해중이던 여객선에 가극단 일행은 지친 몸으로 올랐습니다. 모두들 배에
오르자마자 아무곳이나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끼이룩...끼...이...룩...끼룩..."
 '저 기러기... 눈이 부시도록 푸른 하늘 속에 가슴 터질 것 같은 자유스러움...'
 이화중선은 항해중인 배의 갑판에 올라 날아다니는 기러기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래...자유...저 자유로운 날개짓...'
 화중선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그리곤 제비꽃같은 미소가 입가에  번졌습니다. 화중선은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느 순간엔가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화중선의 몸이 힘없이 나풀
거리며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푸웅...덩..."
 거친 물결은 너울을 그리면서 화중선의 몸을 삼켰습니다. 짧은 시간동안의 일이었습니다.
 "이화중선이 안보인다. 배에 안 탔나봐!"
 "어! 아까 갑판에 혼자 서 있던데?"
 "어서 화중선을 찾아봐라. 배 안 곳곳을 샅샅이 뒤져봐!"
 "어! 혹시? 화중선...화중선..."
 화중선을 부르는 소리가 배  안 이곳 저곳에서 울렸습니다.  바다위엔 갈매기 울음소리만이 대답해줄
뿐이었습니다.
 "이화중선... 화중선......"
 "끼룩 끼룩...끼이룩......"
 억새풀같이 한 많은 화중선의 예술 인생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때 화중선의 나이 46세. 극적인 소리인생을  살다간 화중선은 20여년간의 예술혼을 불태워 국악사
의 전설적인 여류 명창으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날아가는 기러기야. 이 편지를 우리 아버지께 전해다오.
  한 자를 쓰고 한숨 짓고 두 자 쓰고 눈물이 떨어지니
  글자가 모두 수묵이 되어 언어가 도착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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