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시인의 마을   세상이야기  
아이디 비밀번호 auto  
시낭송    시와음악     창작마을     앨 범    자료실       녹음의뢰    게시판    home admin  
올린이: 天竺 (pcsos@thrunet.com)
OS: all
구분: 도서
2004/3/2(화)
조회: 30140
추천: 1
음악의 숲에서 - 순수의 시절에 들어야 할 클래식 음악 55  
                                                                                                    지은이: 유혜자


사랑으로 산다

 사랑해, 어느 어스름한  저녁 무렵, 아이들의 농구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던
그날, 아름다웠던 그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입술을  안으로 말아 들이며 사 랑
해... 너무 조심스러워, 슬퍼 보이기까지 했던 ...그의 눈빛, 나도 사랑해

   첫사랑이 일렁이던 네카어 강

 지난 가을 하이델베르크에 찾아 들었을 때 현대화된 다른 도시들과 달리 차분
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머리 보이는  자작나무 숲은 반쯤이나 단풍으
로 물들어가는데 도시의 가로수는  먼지가 없어서인지 옅은 햇살아래 정갈한 풀
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대학 건물을  제외하곤 웅장하거나 유별난  건물이 눈에
안 띄고  아담한 주택의 창틀마다  싱그럽게 비치던 햇살,  그리고 담쟁이덩굴로
덮인 작은 집이  이어진 정감 있는 골목이 생각난다. 현란하지  않으면서 은은하
게 빛을 머금고 있는 도시, 도로 연변의  풋풋한 전나무 이파리와 상큼한 새소리
가 기억에 남아 있다. 보로딘(Alexander Porfiryevitch  Borodin, 1833~1887)도 하
이델베르크의 첫인상을 나처럼 상큼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하이델베르크 고성을
찾아가는 길에 시냇물처럼 맑은 네카어 강을 보면서 그의 현악 4중주곡 2번 3악
장 녹턴(Nocturne, 야상곡)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고
성에 올라서 내려다본 세카어  강, 그 양쪽에 있는 오렌지 빛  지붕의 집들이 맑
은 강에 비쳐 들어, 동화에 나오는 요정의 집이 저렇지 않을까 생각됐다. 보로딘
의 현악 4중주곡 녹턴의  템포처럼 나직한 첼로의 연주에 맞추듯이 천천히 물살
에 흔들리던 뾰죽집의 그림자들. 아름다운 선율이나, 아름다운 사랑도 주위의 절
경 때문에 오묘한  매력과 깊이를 더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다.  보로딘은 화
학연구로 하이델베르크에 유학 왔었고 피아니스트 에카테리나는 폐결핵 치료 차
공기가 좋은 도시 하이델베르크에 와 있었다.  그러나 보로딘은 에카테리나와 교
제하면서 전공인 화학보다도 음악에 관심을 더  기울이게 됐다. 쇼팽과 리스트에
심취했던 피아니스트 에카테리나는 청년 보로딘에게 쇼팽과 슈만의 음악을 피아
노로 많이  드려줬다. 그래서 보로딘의  전반기 음악이 서구  음악적 취향이라는
지적을 받기는  했지만 이는 음악재능을  한층 분발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우연히도 같은 건물에 하숙집을 두고 있었던 청춘남녀 보로딘
과 에카테리나, 그것도  같은 나라에서 떠나온 이방인이었으니  처음부터 연정은
아니더라도 특별한 관심을 느낄  수 있었겠다고 생각했던 내게 안내인이 하이델
베르크는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무대였음을 일깨워주었다.  아! 그렇다. 우
리가 찾았던 고성이  황태자가 자주 산책한 곳이었다는 생각이 났다.  영화 ‘황
태자의 첫사랑’에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유학 온 황태자 칼 하인리히와 케티
가 만난 것도 하숙집이었다. 보로딘과 에카테리나가  음악회에 함께 다니며 음악
에 대한 공감의 세계도  넓히며 애정이 깊어 졌다면, 칼과 케티의  경우는 그 장
소만 좀 다르다.  칼과 케티의 순박한 사랑은 고성에서의 산책에서  싹터서 저녁
이면 케티가 일하던 술집에서  무르익었다. ‘황태자의 첫사랑’에서 하이델베르
크 대학생들이 술집에 모여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진리를 논하며 젊음을 발산했
다면, 보로딘은 에카테리나와 음악회에 다니며 음악과  인생에 대해 얘기하고 사
랑을 두텁게 해  갔다. 보로딘에게 있어서 에카테리나는 음악의 심지에  불을 당
기는 역할을  했다. 서구적인 문명을  익히게 하려는 어머니의  배려로 보로딘은
피아노를 배우고 페테르부르크  의대 생 시절 몇 개의 실내악을  작곡했었다. 그
러나 하이델베르크에  유학 온 목적은  화학연구였다. 보로딘이 음악과  화학 두
분야에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젊은 날 만나 후일 결혼한 에카테리나의
영향이 컸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일행을 따라  고성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이델베
르크 고성 부근엔  관광객이 많았다. 그 이름은 나중에 알게  됐지만 프리드리히
관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황태자의 첫사랑’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부왕의 급서로 왕위를  계승하려고 귀국했던 칼 하인리
히가 2년 만에 다시 케티를  찾아와 고성 언덕의 고목 밑에서 이별할 수밖에 없
는 안타까운 대화를 나누었는데... ‘황태자의  첫사랑’의 비극적인 종말에 비하
여 보로딘과 에카테리나의 결말은 축복 받은  결혼이었다. 그러나 음악과 화학의
두 분야에서 활동하느라 분주했던 보로딘의 바람기로  속을 썩인 에카테리나, 새
로운 여인에게서  창작의 영감을 얻으려고 한다는  보로딘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 쓰라림을 견디느라 그녀의 몸이 더욱  약해지지 않았을까. 분방한 여성들과의
교제 속에서 영원한 사랑은 부인 에카테리나뿐이었다고 말했다는 보로딘의 심경
이 현악 4중주곡  노턴의 고운 선율에 잘 나타나 있다.  밤보다도 아침의 청신한
이미지가 더욱 떠올려지는 녹턴은  명쾌하고 맑은 하모니로 아름다운 서정을 불
러일으킨다. 보로딘의 나이 48세에 이 곡을 부인을 위해 썼다는데, 젊은 날 하이
델베르크에서 만났던 에카테리나의 청신한 이미지를 짐작케 한다. 제2바이올
린과 비올라의 싱코페이션 화음을 반주로 하고 높은 음의 첼로가 면면히 연주되
는 선율. 그 선율을  듣고 있으면 보로딘이 스승의 지도 없이  스스로 첼로를 익
혔다는 재능이 생각난다.  자신이 익히고 좋아한 악기인 만큼 표현하고  싶은 아
름다움을 마음껏 표현해본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창작능력도  떨어져가고 건강
도 나빠져 가던 보로딘은 기후가 덜 추운 모스크바를 떠난 부인을 페테르부르크
에서부터 만나러 다니느라  시간을 빼앗겨 작곡할 틈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나
부인을 위한 명곡  하나쯤 꼭 쓰고 싶은 절실한  기분이 들었음 인지 착수한 지
두 달만에 노턴이  들어있는 현악 4중주 2번을 완성했다. 작곡된  지 100년이 훨
씬 지난 지금껏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3악장 녹턴. 그 녹턴은 해외여행 때
공항이나 백화점에서 배경음악으로 자주  들을 수 있었고 방송 프로그램의 시그
널 뮤직으로도  오래 쓰였다. 많은  여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좋아했지만 영원한
반려자로 아낌없는 사랑을 쏟은 에카테리나에게 바친  명곡, 그러한 유래를 모르
더라도 권태롭거나 피곤한  시간에 이 곡이 조용히  울려 나오면 청신한 기분이
회복되는 음악이기에 나는 보로딘의 녹턴을 자주  찾는다. 젊은 시절 보로딘에게
‘음악의 요정’의 존재였던 에카테리나와의  사랑을 생각하며, 그리고 하이델베
르크의 상큼했던 첫인상을 그리워하며. 일상에서 청신함을 찾게 되는 힘, 그것은
예술에의 원동력이 아닌가.

   신록에 나부끼는 연가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Du  Pre)의 오래된 음반을 들으며, 첼로를 끼고 성
큼성큼 걸어가던 그녀의 활기찬 모습을 떠올린다.  바쁜 연주여행에도 맑고 푸른
눈매에 화사한 웃음이 떠나지 않던 인상과,  등뒤에서 출렁거리던 금발이 건강미
를 자랑하던 영상음반의 장면들. 소녀 티를 갓  벗은 열여섯 살의 처녀가 런던무
대에 데뷔했을  때, 연약하고 고운  여성연주를 짐작했던 음악인들은  진폭 넓게
휘두르는 그녀의 힘 있고 당당한 연주에 넋을  잃었다. 이런 데뷔 연주의 성공으
로 즉시 여기저기서 초청장이  날아들었다. 그 해에 유럽과 소련, 미국을 다니느
라 무려  6천5백 킬로미터나 되는  연주여행 기록을 세우면서  경탄을 자아냈다.
미국에서 처음 뒤 프레의 연주를 들은 주빈 메타도 “이 소녀는 남성 다섯 사람
이 연주하는 듯한  소리를 낸다. 한 소절이라도 오케스트라가 그녀의  첼로 소리
를 능가할 수가  없다. 나는 완전히 기절초풍했다.”고 했으니.  이렇게 솟구치는
힘과  뛰어난  기량의  뒤  프레도  천재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1942 ~ )과 둘이 연주한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3번 A장조는 상냥하
고 부드럽기 짝이 없다. 열정을 바탕으로 밝고  귀여움을 담고 있는 음악을 연인
끼리 연주했다는  선입견만으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뒤 프레와  바렌보임이
만나게 된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음악  때문이 아니라 병  때문이었다. 충분히
천재들에게 걸맞게 이색적인  만남이었던 것이다. 바렌보임은 한때  선열병을 앓
았다. 문병 온  친구들에게 통증을 호소하자 한결같이 “자넨 뒤  프레에 비하면
가벼운 증세”라고  일축해 버리는 것이었다.  여러 친구에게서 같은  말을 듣고
호기심이 생긴 그는 뒤 프레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로만 증세에 대한 얘기
를 나눴다. 여러 차례의 전화 통화로 친숙해진  그들은 어느 음악인의 집에서 처
음 상면하자마자 ‘안녕’이란 인사  대신 즉흥적으로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듀
오 연주를  해보였다. 품성 좋고  서글서글한 영국 미인과  나이브한 바렌보임은
첫눈에 호감을 가진  데다 음악적인 공감으로 급속히 친해졌다. 함께  연주할 만
한 악보 찾기에  급급했고 떨어지기 싫어서 6개월 뒤에는 결혼을  했다. 신부 뒤
프레는 음악보다도 인간적인 행복을  추구하여 악기의 노예가 되는 것이 싫다고
했다. 신랑도 그런 뒤 프레의 의도가 맘에 들어서  될 수 있는 대로 단독 연주여
행은 삼가고 장기  연주여행은 함께 가기로 했다. 첼로와 피아노에서  최고의 경
지에 다다른 이가  함께 만난다는 것도 어려운 일. 게다가  베토벤이 창작의욕이
불꽃처럼 타오르던 시기에 작곡한  첼로 소나타를 함께 연주했으니 그야말로 삶
의 절정에서 터뜨리는  생동감과 함께 윤기가 흐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첫
사랑의 풋풋한 축복과 꿈결 같은 기쁨, 그리고 생명의 향유가 넘친다. 첼로의 멋
스러움을 강조하는 듯한 늠름한  주제가 장대하게 시작되면 화려한 피아노가 융
합되고, 첼로와 피아노가  흔들리는 잎사귀와 햇빛의 만남처럼  진행되는 신비스
러움. 제3악장은 음악적으로도 “두 악기의  대위법을 이루면서 내놓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노래하는 듯한 선율을 가지고 있다”고 되어 있다. 이들 듀오 연주 디
스크는 별로 많지 않다. 결혼한 지 얼마  안되어 뒤 프레에게 다발성 경화증이라
는 불치병 증세가  나타나 결혼 6년 만에 은퇴 연주를  했기 때문이다. “놀라움
과 기쁨을 준  음악가”, “위대한 음악이 추구하고 있는 것을  유니크하게 성취
시킨 음악가”등 격찬을  뒤로 하고 무대를 떠나야 했다. 뒤  프레는 투병하면서
한사코 이혼을 고집했다.  남편의 음악활동에 지장을 줄까 봐서 그의  곁을 떠나
휠체어로나마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 첼로 교본을  쓰고 세미나를 열어 후배를
지도했다. 완전히 거동이 불가능해진 투병 말기엔  자신의 연주음반을 들으며 한
소절 한소절마다 얽힌  사랑의 기쁨을 되새겼다. 42살에 숨진 뒤  프레보다도 나
는 더욱 오래  이 음반을 듣는 기쁨을 누린다. 사랑했기에  상대방을 자유스럽게
놓아준 것이 참된 사랑의 모습이 아닌가 소중히 여기면서.

   환상의 아랍세계

 별을 보고 점을 치는 페르시아 왕자,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검은 그림자, 가슴
에다 불을 놓고  재를 뿌리는 아라비아 공주는 꿈 속의  공주... 이렇게 시작되는
가요를 들으며 페르시아는  얼마나 신비한 곳인가 궁금증을  가졌었다. 1960년대
우리네 중동  진출 이전까지만 해도  페르시아는 전설상의 먼  곳으로 여겼었다.
러시아의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Rimsky Korsakov, 1844~1908)가  해군사관
으로 항해 중 별빛의 흐름과 아름다움에  현혹되었다. 그리고 아라비아의 동양적
인 선율에  이끌려 환상적인 교향조곡‘셰에라자드(Scheherazade)’를  작곡해서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알다시피  셰에라자드는 설화문학 ‘아라비안 나이트
’의 주인공, 샤리아르왕은 사랑하는 왕비의 부정에  배신감을 느껴 모든 여성을
저주한다. 그래서  매일 새로운 여성을 만나  첫날밤만 지나면 죽이는데, 영리한
셰에라자드가 재미있는 얘기로 하루하루 살해를 미루게 만들어 1천 하루동안 계
속한 내용의 모음이다. 매번  얘기의 끝마다 “...이때 셰에라자드는 아침 햇살이
퍼지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입을 다물었다”로  끝난다. 밤새 흥미로운 내용을
계속하다가 새벽엔 얘기의 흐름을  조절하여 해가 뜰 때 클라이맥스에 다다르게
하곤 일부러 결말을  유보한 채 입을 다물었다. 궁금해하는 왕에게  “다음 얘기
는 저녁에 하겠어요”하고  단호하게 말하여 그날 하루의  목숨을 연장 받곤 했
다. 기상천외한  얘기로 자신과 온  나라 여성의 목숨을  구하려고 셰에라자드는
헌신적으로 노력한 것이다. 그  많은 얘기 중 네 가지 얘기를  택하여 표제를 붙
인 4악장의  교향모음곡이 ‘셰에라자드’이다. “나  자신의 공상과  거의 같은
방향으로, 듣는 이의  귀를 돌리기 위해서 곡의 내용을 암시하는  표제를 달아보
았다. 만약 청중이 이 곡을 교향곡으로서 즐기는  것이라면 네 개의 악장에 공통
된 주제를 바탕으로 한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에 접하는 듯한 인상을 가지면 된
다”는 작곡가의 말이다. 교향조곡 ‘셰에라자드’는 네  개의 악장에 공통된 주
제 선율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위엄 있고 거친 샤리아르  왕을 암시하는 것이
고 또 하나는 섬세하고  매혹적인 셰에라자드를 연상시키는 바이올린 독주의 주
제이다. 각 악장에 나오는 셰에라자드의 주제는  가냘프면서도 다정한 여인의 음
성으로 “임금님  제가 듣기로는...”하는 이야기의 머리말처럼  나타났다가 마지
막 부분에도 “햇살 퍼지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입을 다물었다”는 맺음말처
럼 나타난다. 신드바드의  항해를 그린 1악장의 ‘바다와 신드바드의  배’는 배
가 흔들거리는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하여 해군 사관이었던 작곡가의 모습이 떠
오른다. 2악장 ‘칼렌다 왕자의 이야기’는  고행스님으로 위장한 왕자의 이야기
가 유머러스하다. 그리고  3악장 ‘젊은 왕자와 공주’는 너무나  우아하고 감미
로운 선율로 왕자와 공주의 무도회 장면을  묘사했다. 4악장은 바다와 폭풍을 묘
사한 인상적인 음악인데,  샤리아르 왕이 잔인한 마음을 고쳐 먹고  총명한 셰에
라자드와 결합한 것을  나타낸 것으로 ‘바그다드 축제’라는  표제가 붙여졌다.
그러나 작곡가의 말대로 악장이 시작될 때 ‘매우 재미있는 이야기에 접하는 듯
한 인상’을 갖고서 표제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상상
해 볼 수 있다. 많은 음악 비평가들도  ‘빛나는 상상력과 색채음향’으로 이 음
악을 절찬하기도 했다. 한  악장은 한 해의 삶으로 혹은 한  달의 삶으로 연상해
도 좋으리라. 엉뚱한 이야기지만, 하루만 지나면 신기한 이야기를 꾸며내는 셰에
라자드처럼 전대통령들의 부정축재로 하룻밤을  자고 나면 짐작 못한 사실이 터
져 나오곤 했었다. 배신감과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씁쓸하기 그지없는 현실이었
다. 매일 매일  죽음의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면서 편견에 사로잡힌  왕을 현명하
게 이끌었던 셰에라자드의 창의력이  귀하게 여겨진다. 교향조곡 ‘셰에라자드’
나 들으며 오늘의 울적한 상황을 잊어야 할까.

   정화된 밤
 달빛이 싸늘하게 숲길을  식히는 밤. 거니는 연인들의 발 밑에서  뒤채는 가랑
잎 소리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가랑잎보다 더욱  떨며 흐느끼는 여인의 고백을
표현하는 낮은 멜로디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 1874~1951)의 6중주곡  ‘
정화된 밤’은  시작된다. “나는 임신을 했는데  당신의 아기가 아닙니다. 나는
이제 행복을 상대로  하지 않지만 그러나 나는 생활과 어머니로서의  행복, 그리
고 의무에 대한  염원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인의 느닷없는 불륜  고백에 당황
하지 않을 남성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잉태한  모성은 어떤
시련이나 고통도 용기로 맞서게 하나보다. ‘정화된 밤’보다  몇 십 년 앞서 완
성된 소설 ‘주홍글씨’의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도,  남편 부재시 임신한 처지로
온갖 수모와 괴로움을 감수한다.  죄악의 ‘A’자를 달고 멸시와 치욕을 감내하
며 끝내 아이를 낳아  기른다. 딸과 애인을 구원해 주는 승리의  결말이 되게 한
것은 모성과 사랑의 마력이었다.  모든 것을 용서하고 가능케 한다는 사랑, 그것
이 남녀 사이엔  영원히 추상적인 신앙일 뿐이라고 여기지 않았던가.  그런데 정
화된 밤은 그런 사랑이 추상이 아님을 보여준다.  고백을 들은 남성은 여인의 죄
를 탓하는 대신 “둘 사이의 따뜻한 사랑이 남의 아이를 깨끗이 씻어 줄 것이니
우리의 아기로 기르자”는  너그러운 화답을 한다. 스물 다섯 살의  청년 쇤베르
크는 데멜(Richard Dehmel,  1863~1920)의 이런 멋진 시에  매혹된 것이 아닐까.
20세기 말인 지금도 납득하고 포용하기 어려운 일인데 이미 20세기 초에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연인의 불륜도 포용하는 시가  있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성숙
한 인간성을 지닌  음악가는 숭고한 사랑의 내용을  대사 없이 음악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의욕을  불태웠다. 말 없는 판토마임이 때로는 절절한  대사가 오가는
연극보다 감동을 주기도  한다. 이 현악 6중주야 말로 몇  막짜리 오페라보다 감
동스럽다면 과장일까. 쇤베르크는  현대음악의 새 경지를 개척한  음악사상의 업
적을 인정 받는다.  그런데 ‘정화된 밤’에는 후기낭만파의  최고봉이라는 찬사
가 뒤따른다. 그가 이 작품을 완성한 것은 1899년, 스물 다섯 살 때로 아직 현대
음악 추구에 심취하기 전인 후기낭만파 시절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이
런 음악상의 평가보다 승화된  사랑의 시로 표제음악에 성공한 쇤베르크에게 더
욱 친근감이 간다.  따뜻한 사랑과 아름다운 자연이 온갖 인간의  죄를 씻어준다
니 얼마나 감동적인가. 인간 구제의 음악적 표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멋지다. 시
작 부분은 조용하게 숲 속을  거니는 두 사람의 발걸음과 서정시를 표현하는 낮
은 음역의 소리이다. 어두운 빛깔의 소리가  진행되면서 긴장시키는 분위기로 바
뀌는 부분은 앞  부분에 나온 죄를 고백하는 내용의 표현이다.  추상적인 기악으
로써 각종의 모티프로 변형시키는 음악, 이따금  숲 속의 웅성거림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지만  격렬하지 않고 나직하다. 그리고  해설조의 짧은 멜로디도 있다.
그녀는 쳐다보았네, 달은 그녀와  더불어 걷고 있고, 그녀의 어두운 눈빛은 달빛
속을 헤엄치네...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다음  부분이다. 남자 연인의 너그러운
대답. 당신의 아기는  당신의 영혼에 짐이 되지는 않을 거요,  보시오, 세상이 얼
마나 밝게 빛나고  있는가를, 모든 것에서 빛이  흐르고 있소, 당신은 나와 함께
차가운 호수 위를 걷고 있지만, 따사로움은  당신으로부터 내게로 그리고 내게서
당신에게로 불타고 있소...  죄지은 여인에게서 절망감을 몰아내고 두  사람의 사
랑은 아기를 정화시켜 두 사람의 아기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그리고 둘은 포옹
하고 달빛 아래서 깊은 밤까지 거닌다는  결말이다. ‘주홍글씨’의 보수적인 윤
리의식에 비해 얼마나 관용을 보인 사랑인가.  풍부한 빛깔로 뛰어나게 문학적인
묘사를 한 ‘정화된 밤’을 들으며, ‘주홍글씨’이상의  사랑에 대한 관용을 지
닐 수 있으면 좋겠다.

   오르페우스의 두 시선

 그리스의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테’의 비극은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  유리디체를 못 잊어 리라 연주로 슬픔을 달래자,
그 기막힌 연주솜씨에 반한  신이 오르페우스에게 저승으로 가서 아내를 데려오
라고 한다. 단  세상으로 나오기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내의  얼굴을 쳐다봐
서는 안된다는 조건으로. 온갖 역경 끝에  오르페우스는 그리운 아내를 만났는데
경고대로 아내의 얼굴에  시선을 안 준다. 속 모르는 우리디체의  불평을 무시하
고 걸어서 저승을 벗어나려는데, 아내가 바위에서 미끄러지는 것이 아닌가. 놀라
서 뒤돌아본 순간, 유리디체는 다시 저승으로 떨어지고 만다. 천신만고도 헛수고
로 돌아가서, 절망한 오르페우스가 따라서 자살해 버리는 비극이다. 인간의 마음
을 통제하는 능력을  시험받은 얘기로만 밀쳐두기엔 너무나  안타까운 결말이다.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돌아볼 수밖에 없는 절박한 순간인데  가혹한 결말이라
니. 끝까지 인내하지 못한 오르페우스에게서 인간의 한계를 볼 수 있고, 짧은 절
대절명의 사랑이 한스럽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여건에서 일어났던  비극을 약
한 의지 탓이라고 원망할까. 그런 한편으로는  세상일을 자유자재로 주재하는 신
이라면 금기를 범했을지라도 한번쯤  용서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
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 비극적인 신화의  결말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
려놓은 작품을 발견하고는 기쁨을 누를 수가  없었다. 오르페우스가 돌아보자 경
고대로 유리디체는 저승으로 떨어져  버린 후 오르페우스는 자신도 저승으로 따
라가려고 한다.  그때 사랑의 여신이  나타나 지극한 사랑에  감탄했다면서 아내
유리디체를 다시 데려온다. 그들이 사랑의 신전에서  감사와 사랑의 찬가를 부르
게 하는 결말로  고쳐 쓴 작품이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리라의  명인인데 여
기서는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로 바뀌고, 음악의 위대함과 함께 인간  정신이 도
달할 수  있는 용기와 노력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가
유리디체를 돌아본 시선이 소멸이고 절망이라면, 고쳐  쓴 작품에서의 시선 속엔
절망 뒤에  회생을 가능케 한 위대한  힘이 숨어 있었다. 18세기의  작곡가 글룩
(Christoph Willibald Gluck, 1714~1787)이 오르페우스에게 회새의 시선을 마련해
준 장본인이다. 오페라  작곡에 앞서 친구와 신화로 대본을 만들면서  해피 엔딩
으로 바꾼 것이다. 저승이라든가 악령 등  복잡하고도 방대한 무대장치가 요구되
고, 공연에  난관이 많아선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공연된 적이 없어서 아쉽다.
1989년, 글룩 탄생  275주년 기념으로 동독 방송과 오스트리아  방송협회가 공동
제작한 비디오  오페라를 본 일이  있다. 음침하고 무서운  악령들이 득실거리는
저승, 오르페우스가 아름다운 노래의 힘으로 저승의 왕을 감동시켜, 드디어 저승
문을 열라고 할  때는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그리워하던 유리디체를  만난 오르
페우스가 소름끼치는 저승을 빠져나와  장면이 바뀌었을 때는 너무나 눈이 부시
어 갑자기 다른 비디오 화면이 나오는가 의심을  했다. 투명한 날개옷을 걸친 예
쁜 정령들이 큰 물방울 같은  풍선을 들고 어깨에 투명한 숄을 늘어뜨린 남성들
과 평화롭게 춤추는데, 그 선율은 너무나 귀에 익은 감미로운 음악이 아닌가. ‘
정령의 춤’, 그 유명한  곡이 오페라에 나온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다. 글룩
은 오페라 역사상,  극의 진행과 음악을 밀착시켜서 재미와 박력을  겸비한 ‘오
르페우스와 유리디체’로 오페라의  수준을 높인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그런 음
악사적인 공적이 아니더라도 신화의 비극적인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만들어준 것
과, 감미로운 ‘정령의 춤’만으로도 얼마나 친금감이 드는지 모른다. 공연히 불
안감이 들 때면, 오르페우스가 어려운 한 고비를  넘기고 났을 때 축가처럼 들려
온 밝고 아름다운 선율 ‘정령의 춤’을 들으면 나도 안도의 숨을 내쉰다.

   그대 음성에 내 마음이 열리고

 불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장막 안에  잠입한 삼손은 비단과 장식품 등 좋아 보
이는 것을 골라 자루에 집어 넣는다. 얇은  휘장 뒤에서 지켜보던 데릴라는 계획
이 적중한 것 같아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호감을 보여도 거만하기 그지없던 삼
손에게 다가가는 데릴라의 하얗게 드러난 어깨 아래로 잠자리 날개 같은 드레스
자락이 끌린다. 치밀하게 계산된 데릴라의 고혹적인  유혹에 삼손이 서서히 말려
들어가던 영화의 장면들. 데릴라의 요부 연기가 인상에  남아 있던 어느 날 마리
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977)의 음성으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에  나
오는 아리아를 듣게 됐다. 데릴라가 삼손을 유혹할  때 부르는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였다. 영화에서는  야한 듯한 장면이었는데 오페라의  아리아는 그
윽하면서도 연연하다. 외국어 가사를 모르더라도 노래  전체의 흐름이 간절한 사
랑을 호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들을수록 거짓으로 꾸며서 연인을 유혹, 파멸
시켜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는 듯 애잔하기도 하다. 강한  철성인 마리아
칼라스의, 다른 노래보다도  낮은 발성인 메조소프라노 소리에  자력처럼 이끌린
다.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네, 아침의 키스에 눈뜨는  것처럼 넓게,저를 기
쁘게 하고 다시  눈물짓게 하지 않으시려면, 변하지  않는 사랑을 맹세하셔요(하
략)... 자력 같은 목소리와 이런 가사라면 신앙과 기도로 무장한 삼손이지만 어찌
마음을 열지 않았겠는가. 삼손의 기적 같은 힘의  비밀을 알아내는 일을 맡은 것
은 데릴라의 용기였고, 새로운 위치를 얻으려는 도전이었다. 큰 상금으로 당당한
삶을 얻게 될  수 있으니까. 마리아 칼라스가 불우한 가정과  뚱뚱하다는 열등감
에서 벗어나기 위해  뛰어난 오페라 가수가 되려고 작정했던 것처럼.  열정의 화
신 데릴라는 역동적인 여성이었다. 타락하지 않겠다고  신께 서약한 삼손에게 신
보다도 강한 것이 ‘사랑’이라고 다그쳐서 비밀을  캐내고 체포되게 한다. 그리
고 드디어 블레셋의 왕들과 함께 제사에서 잔을  올릴 만큼 지위가 높아졌다. 마
리아 칼라스는 천부적인 음성과  노력으로 15살에 고국 그리스의 아테네 극장에
서 오페라 가수로 데뷔했다. 그 후 극적인  힘과 총명한 지력으로 이탈리아와 뉴
욕에서 성공을 거뒀다. 한창 시절엔 신비하고도  매혹적인 노래로 청중을 도취시
키고 권위와 긍지로 주위를 무릎 꿇게 했다.  이렇듯이 두 여성은 야망은 달성했
지만 참사랑의 실패자이기도  하다. 데릴라는 사랑한 삼손을  파멸시켜 신분상승
에 성공했으나, 다시 기적의 힘을 얻은 삼손이  신전의 기둥을 쓰러뜨릴 때 블레
셋 사람들과 함께  깔려 죽는다. 마리아 칼라스도 오페라 가수로  자신을 성공시
켜준 남편, 매년  생일이면 ‘당신은 나의 삶 전부’라며 머리맡에  써놓고 행복
을 자랑하던 메네기니와의 12년  결혼 생활을 선박왕 오나시스와 만나자마자 미
련없이 끝내 버렸다.  그러나 오나시스와의 힘겨운 교제로 결국 42살의  젊은 나
이로 오페라 무대에서 은퇴하고,  12년 후엔 숨을 거둔다. 그러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진부한 말을 그녀의  음반을 들으며 확인하는  기쁨을 누린다.
오페라 작곡자인  생상스(Saint-Saens, 1835~1921)가 데릴라에게  특별한 애정을
부여한 것처럼, 진실한  사랑이 배어나오는 아리아를, 많은 성악가들이 취입했지
만 나는 마리아 칼라스의 것을 좋아한다.  그녀의 안하무인이며 악녀적인 이미지
가 데릴라와 어울리기 때문이다. 과장된 표현은  깨뜨리고 음악의 순수성과 내면
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노래를 부른다는 소신대로,  맡은 주인공의 진실에 다가
간 것에 새삼 감탄한다. ‘금빛소리를 가진  태풍’으로 헤밍웨이가 절찬할 정도
로 청중을  사로잡은 마성, 신화창조의 비밀은  헌신과 정열이었을 것이다. 무대
은퇴 후,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후배를 지도하며  “노래가 시작되기 전부터 청중
에게 맡은 인물의  가슴에 흐르는 정감을 전해야 합니다. 호흡하는  몸짓도 하나
의 감정입니다”라고 강조한 말도 그 비밀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의 양면 ‘두 개의 초상’

 현대 작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네 주인
공 중 프란츠는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은 그를 고독에서 해방시켜  주기 때문이
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운명’, 바르토크의 ‘두 개의 피아노와 타악기
를 위한 소나타’, 혹은 비틀즈의 노래에 우리는  쉽게 도취될 수 있다”는 구절
을 보며 이름만 알고 있던 바르토크의 음악이  궁금했다. 명성 높은 작가가 좋아
하는 음악은 과연 어떤 것일까.  맑고 큰 눈, 단정한 외모에 의지가 강한 인상의
바르토크(Bela Bartok, 1881~1945)는 헝가리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작곡과 피아니
스트로 활약한 천재였다. 헝가리의 민요의 수집과 탐구, 서구적 음악기법의 연마
로 민족적 정서를 융합시켜  세계성을 확보한 헝가리 국민음악을 정립했으며 음
악사 상 현대 민족음악의 최고봉이요,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추
앙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칭송은  사후의 일이고, 그의 생애는 불운했다.
정정이 불안정한 고국에서  화제작도 제대로 환영받지 못했고,  나치의 탄압으로
59세에 미국으로  망명해서도 가난과 실망  속에 백혈병으로 눈을  감았다. 이런
사전적인 생애를 떠올리며 문제의 음악 ‘두 개의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소나
타’를 들어봤다. 안정감 없는 리듬, 예측할 수 없는 강약과 연달아 등장하는 여
러 가지 타악기 소리, 다양한 변화와 기복이 넘치는 것이 특이해서, 잔잔하고 감
미로운 선율을 선호하는 처지에서는  젖어들기가 버거웠다. 고독에서 해방시켜준
다는 소설 속 프란츠의 말이 공허하게만 생각됐다.  이 음악은 요즘에도 보기 드
문 획기적인 발상과  작곡기법으로, 바르토크를 불멸의 위치에  올려놓은 걸작이
라는데, 자신의 역작에  호응하지 못하는 인구가 더 많은 사실에  예술가는 얼마
나 실망하고 외로울 것인가. 바로크는 일찍이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20대에 바
이올리니스트인 스테피 가이에르를  좋아하여 이상적인 여성으로 가꾸려고 애썼
다. 그래서 자기가 권하는 책을 읽게 하고 사고방식도 자기를 따르게 했다. 그러
나 완전무결과 정신적 순종을 그녀에게 요구했던 그는 결국 절교를 당했다고 한
다. 어떻게 보면 이런 고리타분한 의식을 가진  이라서 쉽고 감미로운 음악이 없
을 것 같아 관심없이 지내던  중 밀란 쿤데라로 인하여 바르토크의 자료를 찾다
가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사랑한 스테피  가이에르에게 바쳤던 ‘바이올린 협
주곡’ 그것이 그녀가  죽은 후 유품 속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연인이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온 정력을 기울였던 작품인데 연주는커녕 절교통고만
받았다. 자신의  진심이나 작품의 진가가 무시당한  외로움은 얼마나 컸을까. 이
사실은 바르토크만이  알고 있던 비밀이었다.  얼마 후 실연의  충격에서 벗어난
바르토크는 자기가 사랑한 것은 가이에르가 아니라 어떤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나
보다. 연인은 떠났지만  자신의 역작 바이올린 협주곡을 개작하여 빛을  보게 했
다. 이기적인 사랑의  환상에서 벗어나서 개작한 작품의 표제가 바로  ‘두 개의
초상’이다. 제1악장은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에 다소  손질을 해서 연인의 ‘이
상화된 초상’을 나타냈다. 이것은 우아하고 황홀한 느낌까지 준다. 누구나 꿈꾸
는 사랑의 이상을 음악적으로 표현했다.  2악장은 바이올린 협주곡과는 관계없이
그의 피아노곡 ‘14바가텔’ 중 ‘나의 연인은 춤춘다’의 끝 곡으로 어두운 충
격을 준다. 배신당한 아픔과 분노의 표현이라고나 할까. 바르토크의 초기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평가받는 ‘두개의 초상’은  사랑의 양면성을 음악으로
말하는 것 같다. 사랑의 밝음과 어둠,  행복과 미움이라고 해도 좋겠다. 음악적으
로 두 악장이 같은 주제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그렸다. “28세의 청
년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원숙하며  콘트라스트의 아름다움이나 정묘함이
훌륭하다”는 해설이다. 강한 자부심으로 일생 타협하지  않고 완벽을 추구한 이
상주의자 바르토크. 그러나 ‘두 개의 초상’은  낭만적이고 인간적인 내음이 담
겨서 바르토크 음악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미풍에 흔들리는 수선화

 “연주회는 대성공이었다... 나는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혼자서 연주하듯 쳤다.
글라도코프스카 양은 흰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장미꽃을 꽂고 있어 그것이 아
주 잘 어울렸다.”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이 파리로 진출
하기 전 바르샤바에서 고별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친구 티투스에게 보냈던
편지내용이다. 쇼팽은 바르샤바  음악원 재학중 성악 전공의  ‘콘스탄치아 글라
도코프스카’양을 흠모하면서도 고백을  못하고 고민하다가 빛나는 영감이 떠올
라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하기에 이른다. 절절한 사랑의  마음과 정열을
한 음절 한 음절 구슬처럼  엮어서 협주곡을 완성하고 드디어 사모하는 사람 앞
에 들려줄 때 그의 손가락 놀림 하나하나에도  뜨거운 혼이 담겼을 것이다. 말로
써 표현해 보지 못한 마음을 건반을 통해 혼신의 연주로 들려줬을 때 그 비밀을
알 리 없는 청중들은 커다란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쇼팽은 글라도코프스카
가 자신이 요청한 찬조 출연에  응해서 로시니의 ‘호수 위의 미녀’ 중 ‘카바
티나’를 불러준  사실이 감동스러웠던  것이다. “마음속에 이상적인  여성으로
자리잡고 매일밤  꿈에 보는데 불행으로 끝날까봐  고백을 못한다”고 작곡하기
전 티투스에게 보낸 편지로 심경을 밝혔던 쇼팽.  그런데 그 이상의 여성인 글라
도코프스카가 하얀 드레스에 머리엔  장미꽃을 꽂고 연주회에 나와서 무대를 밝
게 했고 쇼팽의 마음도 환하게 비춰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음속에 사랑을 심
어준 글라도코프스카는 화려한 장미꽃을 꽂았지만 나는 쇼팽을 생각하면 여리디
여린 수선화가 떠오른다. 남성을 꽃에 비유하는  것이 엉뚱할는지 모르지만 그의
사진이나 초상화에서 느낀 수려하면서 여린 풍모라든가 단편적으로 접한 여성관
계에 대한 일화 때문이리라. 글라도코프스카에 대한  짝사랑도 그렇고 훗날 ‘조
르주 상드’와의 사랑에서도  쇼팽은 능동적이 아니었다. 사랑  자체를 청순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고 사랑하는 여성을 적극적으로 소유하려 하지 않은 그의 마
음이 느껴진다. 몇  년 후에 이뤄진 ‘델피나’와의 사랑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
은 채 있지만.  어쨌든 연주가가 되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애태웠던 글라도코프
스카, 그 사랑하는 여인을 뒤에  두고 파리로 훌쩍 떠나야 했던 쇼팽, 협주곡 전
체에 깔린 기교나 화려한 멜로디를  보면 자라서 꽃이 피기까지 많은 물이 필요
한 수선화처럼,  그는 사랑에 대한 섬세한  감각이 뻗쳐 있어 많은  갈등을 느낀
듯하다. 연못에 비친 자기의  모습에 반해서 빠져죽은 나르시스, 그 자리에 피었
다는 수선화처럼  피아노로 그려낸 사랑의  호수에 자신을 비춰본  듯한 쇼팽은,
바로 그 협주곡의  초연을 끝으로 글라도코프스카 양이  있는 조국을 떠나서 한
번도 돌아가지  못했다. 20년 동안  이국에서 연주가로 작곡가로  활동하다 숨을
거둔 쇼팽.  말 대신에 사랑의  일기장이라도펼쳐보이려 한 것처럼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수선화의 다감한  느낌과 정서를 담고 있다. 쇼팽의 영감  중에서도 가
장 빛나는 것으로,  사랑받는 것으로 알려진 이 협주곡을 들으며  수선화를 떠올
리는 것이 나만의 편견일까. 청순하면서도 화사하고  연약한 듯하나 충실한 멜로
디는 꽃줄기 끝에 여섯 송이나 매달려서 피는  화사한 수선화를 연상케 한다. 여
러 개의 가지로 묶은  꽃다발처럼 한줄기만으로 아름다운 마음과 사랑의 묶음으
로 안겨온다. 한 소절  한 소절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마음을 멜로디
로 쓰면서 피아노로  짚어볼 때 야릇한 사랑의 속삭임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실
제로 이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니스트였던 쇼팽의 피아노 독주부분이 뛰어나 반
대로 관현악부의 빈약함이 흠이지만 오히려 빈약한 오케스트라가 피아노를 돋보
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화려한  장식음들이 즉흥적인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하지만 19살의 순수하고 가식이 없는 표현이어서 신선하기
만 하다. 그 성글지 않고  알찬 선율로 사랑의 꽃다발을 엮어서 풍기는 향기, 그
는 멜로디를 만들며 사랑의 속삭임도  환상 속에 즐겼고 보고 싶은 갈증도 해소
했을 것이다. 1악장(알레그로 마에스토소)은 2악장보다 나중에 작곡한 것으로 알
려져 있다.  관현악 전주에 이 곡의  중심 멜로디인 두 개의  주제가 나타나는데
주부에 나오는 아름다운  피아노 독주가 언제쯤 나올까  하는 기다림도 이 음악
감상에서 느낄  수 있는 묘미이다.  후반부에서 찬란한 기교를  발휘하는 피아노
소리가 ‘청춘의 환희에 불을 밝히면서 깊은 몽상에 젖어 있는 쇼팽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화려한 장식음, 그것은 사랑의 실제보다도 상상이기에 더 화려하지
않았을까. 2악장(라르게토)은 쇼팽  자신도 “로맨틱하고 우울한 것으로 하고 싶
다...생략...달빛에 비친 뜻깊은 봄의 환상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는데 조용
한 세레나데에 가깝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세레나데, 젊음의 강렬한 야망
이 느껴지지 않고  미풍에 흔들리는 수선화의 향기가 주변에 일렁이는  것 같다.
어쩌면 슬퍼하고 고통받느니 차라리 물에 비치는 자기 그림자나 들여다보겠다는
도피가 숨어 있는 것도 같다. 봄이 무르익으면 쇼팽의 연주회를 찾고 싶다. 연한
꽃잎의 수선화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무대 위를 바라보노라면 관현악 단원들이
음 고르기를 그치고, 연미복의 지휘자가 걸어나와  피아노 연주가가 나오도록 손
짓할 때  나는 연주가보다도 더욱  가슴이 두근거릴 것  같다. 글라도코프스카를
본 쇼팽의 가슴이 뛰었듯이.

   쓸쓸한 빈 자리

 영상음반의 매력이라면 연주회장에서는 뒷모습밖에 볼 수 없는 지휘자의 표정
과 몸짓을 볼 수 있는 점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표현되는 음악의 완성도에 관심
을 두어야겠지만 몸짓과 표정에도 호기심을 갖게  된다. 지휘봉의 방향과 왼손의
움직임에 따라 미묘한  조화를 이루는 그 긴장에 동참하고 싶어서이다.  오늘 낮
엔 다니엘 바렌보임이 1992년 베를린 필하모닉과 이착 펼만의 협연을 지휘한 음
반을 보았다. 몇 년 전 다른 음반에서 봤던, 재클린 뒤 프레와 처음 만났을 때의
20대 청년 바렌보임의  인상이 선명한데, 너무나 달라진 풍모에 내  눈을 의심했
다. 하얗게 센 머리가  서글프게 비쳐왔다. 나이가 실제보다 더 들어보이는데 젊
은 시절의 강렬한 눈빛마저 사라졌더라면 얼마나  섭섭했을까. 지휘봉을 쥔 손을
중후하게 옆으로 파도치듯 움직이다가  왼손으로 각 악기 파트의 순서를 짚어주
는데 나는 음악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멀거니 화면만 보고  있었다. 바렌보임이
두 팔을 높이 들어 춤추듯  휘저을 때마다 오케스트라는 강하게 큰 소리로 연주
하고 있었다. 화면에만 열중하던 나는 바렌보임의  시선이 독주석의 바이올린 주
자에게 멈추는 것을  봤다. 청년시절 피아니스트이던 바렌보임은  첼리스트인 재
클린을 만났다. “저희는 처음 만났을 때 좋아하는  것이 서로 닮았다는 것을 알
았습니다.” 재클린과 처음 만나서 즉흥연주를 한  소감을 바렌보임은 이렇게 말
했었다. 1966년 크리스마스  때 후쏭 씨 집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바렌보임과 역
시 천재 첼리스트인  재클린은 처음 상면을 했던 것이다. 처음  만나자마자 옛날
의 지기처럼 서로 끌려서 호흡을 맞추는 듀오  연주를 즉흥적으로 했다. 그때 연
주한 곡이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2번이었다. 피아노,  첼로 어느 악기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시작하는 연주가 싱싱한 출발의 예고처럼, 아니  도전처럼 들
리는 음악이다. 결혼 8개월  후 이 듀오곡은 음반으로 녹음, 출반되어 많은 사랑
을 받았다.  첼로라면 차분하고 어둡고,  무겁고... 이런 선입견을  이들의 연주를
들으면 버려야 할 것 같다. 에너지와 힘, 꿈꾸는 듯한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2
번’을 그지없이 밝고 생명이 약동하는 음악으로  표현한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이색적인  만남을 생각나게 한다.  순수하게 만나 음악의  호흡을 맞추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며 드디어는 사랑의 늪으로  빠져들었던 빛나는 시간들을. 이
음악은 이들 아름다운 커플의 사랑의 서곡이기도 했다.  후쏭 씨 집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미 사랑의 마법에 걸려 함께 있고  싶어했다. 그래서 만난 지 6개월 만
에 바렌보임의 부모가  계신 예루살렘에 가서 결혼식을 올렸다. 가만히  앉아 있
어도 친화력이 느껴지던  두 사람,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빛이  넘쳐나는 듯하던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브람스는  이 음악을 풍광이 아름다운  스위스에 머물면
서 썼다. 푸른 영봉으로 둘러싸인 넓고 푸른 호수, 산골짜기 사이로 피어나는 밤
안개와 청량한 새소리를  들으며 썼으리라. 브람스가 친구들과  따뜻하게 지내던
시간이 느껴지기도  한다.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려고  만든 작품인데, 처음 만난
두 젊은이에게 사랑이  피어날 마법의 보자기를 씌웠던 것이다. 두  사람이 오케
스트라와 협연할 때 바렌보임은 자신이  잘 볼 수 있는 근처에 재클린을 앉히고
싶어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아예  재클린을 피아노 속에  들어가서 연주하게
하지”하고 농담할 정도로  이 둘은 다정했다. 이들은 함께 갈  인생길에 영원한
사랑을 다짐했다. 창조적인 탄력이 넘치는 삶을  준비하고 열매맺을 가을까지 바
라지 않았을까.  결혼 후 5년 만에  재클린은 불치의 다발성경화증에  걸린 것을
알게되고 그 다음  해에 은퇴 연주를 한다. 그리고 바렌보임의  연주생활에 방해
가 될까봐 이혼을 고집한 재클린은 투병 끝에  명을 달리한다. 먼 옛날부터 정해
진 듯한 천재  음악가들의 만남을 반긴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긴  재클린. 독주
석에 앉은 바이올린 주자를 바라보는 바렌보임의  가슴에도, 아름다운 선율로 재
클린과 대화를  주고 받던 공간이  남아 있으리라.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환희를
주던 반려자였으니.  겨울나무는 이파리를  떨구어도 의연하게 바람을  견뎌내며
따스한 봄바람이 불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를  보는 마음
은 안쓰럽다. 피아니스트면서 정상을 차지한 지휘자로, 또 재혼으로 탄탄한 음악
인의 위치를  굳힌 바렌보임이 쓸쓸해 보이는  것은 공연한 센티멘털리즘인지도
모른다. 가을이어선지, 5월의 푸른 잎새와 햇빛처럼 싱그럽던 재클린과 바렌보임
이 추억되고, 세월따라  성글어진 바렌보임의 허전해진 뒷머리는  잎새를 떨궈버
린 나무의 빈 가지를  보는 것 같다. 힘있고 꿈꾸는 듯한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를 들어도 쓸쓸한 연가로 들리는 듯하다.

   사랑의 신비한 환상

 퇴근시간 후의 사무실은  썰물 뒤의 바닷가처럼 썰렁하지만,  높은 집중력으로
잔무를 끝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헤드폰을  끼고 조심스럽게 듣던 음악도 시
원스럽게 틀어놓을 수 있어서 맨발로 모래톱을 걷는 듯한 쾌적한 기분을 맛보게
도 한다. 오늘은 후배들 몇 명이 사무실  코너의 가리개 안쪽에서 레이저 디스크
를 시청하는 중이어서 이따금 영어대사만 조그맣게  들려온다. 음악의 볼륨을 후
배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높여 놓고 프로그램 속의 낭독 백그라운드 음
악을 고르는 중이다. 클래식 연주는 멜로디가  그윽하게 여겨지면 중간에서 템포
가 느려지고, 감각이  새로운 경음악은 길이가 너무 짧아서 적당한  것을 택하기
가 힘들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의 보조수단
으로 이용하기 위해  찾다보면, 고운 선율도 지루한 것들로 치부되고  밀쳐 버리
고만 싶다. 게다가  가리개 너머로 흘러나오는 영화의  다이알로그가 궁금하기만
하다. 지루한 김에 머리도 식힐 겸 레이져  디스크를 보는 코너로 발길을 옮기니
흑백영화가 한창 진행중. 오랜만에 보는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우수 어린 모습이
나를 화면 앞에 다가앉게 한다. 옆에 누가  나타나는 것도 모르고 화면에만 열중
해 있는 후배들에게  영화제목을 물을 수도 없다.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공장 동
료인 여공과 사랑을 나누다가  어느 파티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엘리자베스 테
일러를 만난다. 첫눈에  몽고메리 클리프트에게 끌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적극
적으로 다가온다. 극이 진행될수록 옛날에 봤던  기억대로 스토리가 전개되는 걸
확인하는데 갑자기 쇼팽의  ‘즉흥 환상곡’이 저쪽 턴테이블에서  울려온다. 몽
고메리 클리프트의 극중 이름인 ‘죠지’가 ‘안젤라’ 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와 만나는 장면이어서  화면을 떠날 수가 없다. 초목의 이슬처럼  청신한 안젤라
와 어두운 매력의 죠지가 이뤄가는 로맨스 장면이어서 내가 걸어놓은 음악이 울
리는 턴테이블을 멈출 수가 없다. 계속 돌아가는  음악은 빠른 기교의 서주가 경
쾌하게 이어지는데 젊은 미남미녀의  만남을 축하하는 듯 밝고도 자유롭게 계속
되어, 음악을 끌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빠른 템포로 가까워지는 두 남녀. 계속되
는 ‘즉흥환상곡’의 멜로디는 영화주인공들의 화려한 환상 뒤에 도사리고 있는
비애와 암시처럼 속도가 느려졌다. 가난한 여공보다  미모가 출중한 재벌의 딸과
결혼하여 상류사회로 나갈  수 있게 되는 죠지. 그에게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유
혹하지 않더라도 다가오는  안젤라가 양지라면, 여공 ‘알리스’는  그늘처럼 고
통스러운 존재로 여겨지는데  저쪽에서 들려오는 ‘즉흥환상곡’의 멜로디도 어
수선해지는 듯하다. 임신한  알리스가 죠지의 변심을 눈치채고 결혼을 독촉하자,
죠지는 무서운 결심  끝에 알리스를 호수로 불러내어 보트를 빌린다.  그러나 알
리스가 밤 하늘을  보며 사랑을 다시 찾게  해달라고 소원을 읊조리며 기뻐하는
모습에 마음이 착잡해진  죠지는 진땀을 흘리며 괴로워한다.  알리스가 괴로워하
는 죠지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보트는 균형을  잃고 뒤집혀버리고... 젊은 날에 초
조하게 결말을 지켜봤던 영화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의 후반을
또다시 보기가 애처로워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턴테이블 쪽으로 와서, 영화를 보
는 동안 울리다 끝나버린 ‘즉흥환상곡’의 시작 부분에 다시 바늘을 올려 놓는
다. 저음으로 무겁게 시작하는  기다란 첫 음. 일단 관심을 모아놓고는 부드럽고
예쁜터치로 재빠른 기교의 서주가 경쾌하게 이어진다.  그 밝고도 자유로운 멜로
디는 유려하게 진행되다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가요처럼  이어지는 칸타
빌레의 선율로 마치 위로해 주는 듯하다. 오랜  동안 익히 들어왔고 권태로운 시
간에 들으면 서정적이면서  화려하게 다가오던 음악이었는데 우연히 ‘젊은이의
양지’를 보며 들으니, 극적인 전개와 맞아떨어지고  처절한 폭풍우 같은 멜로디
가 자꾸 반복되는 것 같다. 물새들이 삐리삐리  영롱하게 울고 태고적 숲이 그윽
하게 둘러싼 호수,  행복한 새처럼 속삭이는 발랄한 안젤라와 음영이  짙은 죠지
의 우수는 대조적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호숫가 초목의  이슬처럼 환상적이었는
데 너무도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의 만남이야말로 음악기법상, 사전에
구상한 기록이 아니고 오선지에 떠오르는 대로 기입한 ‘즉흥환상곡’의 기법처
럼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을까. 도덕적으로 보자면  옛애인을 배신하고 배경 좋
은 미인에게 쏠려 출세하려는 남자, 더구나  살인까지 계획했던 뻔뻔스러움이 증
오스럽지만, 어렸을 때  처음 보았을 때는 비련의 애틋함만 오래오래  머리에 남
았었다. 알리스와 함께 탔던 보트가 뒤집힌 후  알리스를 구출하지 않은 채 헤엄
쳐 살아 남은 죠지가, 우연한 사고였음에도 살인혐의를 벗지 못하고 사형
장으로 가게 된다.  이 영화의 원작은 산업화 과정에서 허물어지는  인간들과 그
시대, 사회의 비극을  그린 데오드르 드라이저의 소설 ‘아메리카의 비극’이다.
이 영화는 소설보다 뭉클한 사랑의 멜로드라마로 20대의 젊은 시절에 느꼈던 외
로운 실존을 거듭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사랑의 고귀함이나 빛남도  어쩌면 ‘
즉흥환상곡’에 대한  나의 느낌과 같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  같은 호수이지만
죠지가 안젤라와  만날 때는 그윽하고 신비하여  환상적이었지만 알리스와 만날
때는 음산한 분위기로  느꼈듯이. 쇼팽의 ‘즉흥환상곡’이 예전엔  예쁘고 낭만
적으로 생각됐었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 폭풍우 같은  격정이 담겨져 있는 것 같
다. 저 후배들은  나이와 세월에 따라 감정이 복잡해지고 혼탁해지는  나의 처지
를 이해할 수 있을까.

   모차르트와 찰스 램

 모차르트는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  자작곡을 연주했다. 성장  후에도 당대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가장 좋아한 악기가 피아노였던만
큼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세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등  복수 피아노 작품과 ‘네손을 위한 소나타’까
지 남겼다. 그  중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E플랫장조’(K361)는 23세
때 작품인데, 화려하고 풍부한  앙상블로 정취 있는 협주곡이다. 연대를 보면 진
실하게 사랑한 연인에게서 실연당한 직후의 작품이다.  어린 시절엔 신동으로 반
짝이는 선율의 작곡,  연주로 유럽 일대의 왕실과 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모
차르트였다. 그러나 성년이 되자, 후원자의 별세로  취업문제, 이성 문제 등 어려
운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만하임 체재중  예술감각이 뛰어난 성악가 알로이지
아에게 매혹되어 수시로 아리아를 작곡해줬고, 그녀가  주연할 만한 오페라의 작
곡도 계획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아들의 큰 도시 진출과  성공을 바
라고, 간절한 편지로 아들의 이성교제를 만류했다. 아버지의 뜻대로 어머니와 함
께 파리로 간 모차르트.  그러나 어릴 때처럼 박수갈채도 없었고, 취직도 뜻대로
안된 데다 알로이지아 생각에 일손이 잘 안  잡혔다. 결국 피아노 레슨이나 하다
가 어머니가  병사하자, 쓸쓸히 고향으로 향한다.  그래도 마음 한편엔 만하임에
들러 그리운 연인을 만날 기대로 한줄기  빛줄기가 비쳐들었다. 그러나 알로이지
아의 약혼 사실을 몰랐던 모차르트의 낙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고향 잘츠부
르크에 돌아와 두문불출, 고통  속에서 작곡에만 전념한다. 그때 처음 작곡한 작
품이 이 협주곡이다. 불행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밝고 황홀한 음악으로, 실연
직후 작곡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모차르트보다  19년 뒤에 태어난 영국
의 수필가 찰스 램에게도  그런 예를 보게 된다. 램은 광기를  부리는 누나 메어
리를 돌보려고  결혼도 하지 않고  살았다. 그는 발작하는  누나에게 정신병자용
구속복을 입히고, 자신의  팔에 묶어 병원을 드나드는 처절한 생활  속에서도 심
성이 쾌활하고 장난기나  유머가 풍부해서 남들을 잘 웃겼다. 그의  ‘엘리아 수
필집’을 보면, 자신의  현실 생활과 밀접한 것들을 다루고 있는데도  인간적 고
뇌나 슬픔 대신 묘한 공상,  멋있는 상상과 해학,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가 담긴
글이 대부분이다.  누나도 병은 지녔으나  평소엔 우아한 품격에  풍부한 문학적
감수성의 소유자여서  찰스와 함께 동화 형식의  ‘셰익스피어 이야기’와 다른
책들도 펴냈다. 모차르트의 복수 피아노 협주곡이나  ‘네 손을 위한 소나타’등
은 대부분  누나 난넬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쓴 곡들이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도 마찬가지. 누나와  함께 연주할 만한 것을 썼다. 어머니를 여읜
슬픔과 실연의 아픔, 불편한 관계의 대주교를 다시  대해야 하는 고통 속에서 의
외의 것이 탄생된  것이다. 환멸과 고통 속에서 기쁨을 노래하듯  행복감이 전체
에 풍긴다. 이러한 곡들은 당시 빈에서 누나와  연주했을 때 크게 호평을 받았다
고 한다. 몇  년 전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는 천박하고  경솔한 성격
으로 비쳤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찰스  램처럼 재치와 유머가  넘치는 풍요로운
품성의 소유자로 전해  온다. 참 행복과 기쁨이란  희망이 성취될 때 가능한 것,
알로이지아와 함께 이상과 영원으로  치닫고 싶던 모차르트는 그녀에 대해 타오
르는 마음을 악보에  옮기고 사랑의 편지도 부지런히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모
차르트의 뜨거움과 달리 그저  스승처럼 친하게 여겼기 때문에 모차르트가 파리
에 간 후 다른 사람과 혼약을 했다.  모차르트는 3년 후 알로이지아의 동생 콘스
탄체와 결혼해 버린다.  알로이지아에게 가졌던 환상이나 꿈이  현실로 불가능해
지자, 동생에게서나마 이루려 했는지  모르겠다. 찰스 램도 현실에서 못 이룬 연
인 시몬스와의 결혼,  결혼했으면 태어났을 아이들과 단란함을  수필집 ‘꿈속의
아이들’에서 그리고 있다.  작자는 꿈속에서, 체념했던 애인과의 사이에서 태어
났을 법한 존과  앨리스에게 할머니 얘기를 들려주고 쓸쓸히 깨어난다.  이 글은
유서 깊은 큰 저택에서의  할머니의 멋진 삶과 자신의 유년 시절,  형과 지낸 일
화들을 흥미진진하게 듣는 아이들의 반응까지 담고  있다. 꿈이란 깨어나면 끝나
는 허무한  것일지라도 아름답다. 사랑의  꿈은 행복했겠지만 그  사랑의 한계를
알게 되면 현실은  괴로움으로 남는다. 모차르트의 알로이지아에  대한 사랑이나
찰스 램의  시몬스에 대한 사랑,  두사람은 진실되고 순수한  사랑을 추구했기에
실연과 체념의 고통과 비애에서 벗어나 이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스화시켰다. 외
부의 소음에 귀를 막고 아픔이 여과된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 음악과 문학으로

아하게 표현한 것이다.  혹독한 시련을 통해 풍요한 영혼의 넓이를  확장하고 삶
의 환상과  신비를 포착했다.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관현악이 먼저 빠르게  울린 뒤에 피아노 선율이 맑고 섬세하게  파고든다. 이어
서 목가적인 2악장, 흥겨운 3악장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흐른다. 더욱이 피아노
가 두 대로,  제1피아노가 앞서 연주한 부분을 뒤의 사람이  제2피아노로 반복하
기에, 그대로 솜씨가 비교되면서  아기자기한 즐거움을 준다. 수필 ‘꿈 속의 아
이들’ 역시 읽으면서 풍부한  감수성과 아기자기한 상상에 젖어 깃털처럼 부드
럽고 가벼운 즐거움에  빠진다. 어떤 현실의 처참함도 이들의 고결한  영혼을 파
멸시킬 수는 없었다.  그들에겐 자신들이 겪은 유년 시절이 풍성해서  마음의 여
유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서도 도움받은  어떤 힘
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화려한 유년 시절이 아닐지라도 어떤  시기에 겪었던
완전한 시간이 섬광처럼 스쳐서 원동력이 되었던 것일까.

   사랑의 허상을 안고

창 밖에는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북악산  바위 밑에 응달에서도 풀꽃들이 켜는
기지개에 밀려서인지 골짜기의  안개가 주춤주춤 밀려나고 있었다.  인사동에 있
던 MBC라디오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풋내기 시절, 만원버스에서 시달
린 출근길의  어수선한 매무새를 가다듬으려고 넓은  창이 있는 5층 스튜디오로
올라가곤 했다. 북창에는 푸른 북악이 우뚝하고, 남창으로는 멀리 남산의 펑퍼짐
한 능선 위로 솟은  안테나가 선뜻 눈에 들어오던 곳. 길목에서  사온 노란 튤립
의 셀로판지를 벗겨내며 북악산을 바라보던 귓가로  홀연히 흘러오던 멜로디. 청
신하고 부드러운 바이올린합주에 이어 맑은 물방울이 통통 튀기는 듯한 하프 소
리가 곱게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반복되는  일상업무 속
에서 천상의 소리처럼 울려오는  선율은 미로에서 출구의 빛줄기를 발견한 것처
럼 짜릿한 전율마저 느끼게 했다. 창 밖을  내려다 보니 우중충하게 보이던 아랫
동네의 기와집 사이사이로 연분홍꽃 무더기가 화사하고,  저편 담벼락 옆에선 살
구나무꽃이 환하게 피어 둘레를 비추는 듯했다. 코  앞의 일에 쫓겨서 주변의 변
화에도 둔했던 자신,  빙산처럼 보이는 부분만 인정하고 물 밑에  잠겨있는 부분
이 더 크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근시안의 나날을,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
으면서야 뉘우치게  되었다. 주변에서 피어난  꽃들도 지난 겨울  동안 은밀하게
준비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나자 갑자기 너른 세계 안에서 홀로 서 있는 듯 외로
움이 엄습해 왔다. 잠자던  정서에 파문을 일으키게 한 멜로디, 그것은 베를리오
즈(L. Hector Berlioz,  1803~1869)의 ‘환상교향곡’ 2악장으로, 1960년대  말 오
전 9시부터  방송되던 ‘가정음악실’의 시그널 뮤직이었다.  베를리오즈가 ‘환
상교향곡’을 작곡하게 된  동기는 여배우 하리에트에 대한  열정이었다. ‘햄릿
’에서 ‘오필리아’로 분장했던  하리에트는 청년 베를리오즈의 가슴에 잠자고
있던 봄을  일깨웠다. 잠자던 대지  위에서 만물이 수런거리며  깨어나고 회초리
같은 줄기에 꽃눈이  돋아나는 봄처럼 그의 가슴에 지폈졌던 봄.  우리네 ‘춘향
전’에서는 5월 단오날,  짙푸른 녹음 가운데에서 꽃처럼 새처럼  오락가락 그네
를 뛰던 춘향이가 이몽룡의 가슴에  봄을 피어나게 했고 이 도령은 방자를 통하
여 익살의 말로 옥신각신한 끝에 사랑의 줄을  잇는다. 그러나 무명 작곡가 청년
베를리오즈는 인기  절정이던 하리에트의 냉담으로 실망과  고통을 잊기 위하여
가슴 깊이 흐르던 격정과 영감을 살려서 극적이고도 독창적인 ‘환상교향곡’을
만든다. 특히 ‘무도회’로  표제가 붙은 2악장은 5월 단오에 그네  뛰는 춘향을
연상할 만큼  화려하게 펼쳐진다. “무도회의  혼잡과 흥분 속에서  흘낏 애인의
모습을 본다”는 작곡가 자신의  해설이 있지만 나는 2악장을 들으며 여인을 한
마리의 예쁜 새처럼 비상시키는 것을 느낀다. 구름  위로 높이 치솟게 하고는 너
른 바다 위로  쉬임없이 날개를 펄럭이게도 한다. 그러다가 가까운  섬에서 살포
시 나래를  쉬고, 잔물결치는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폭풍이 올까봐  급히 서둘러
비상하게 하는 듯한 왈츠, 알레그로 논 트로포(너무 빠르지 않게) 리듬으로 이어
진다. 특히  서주 부분의 하프가  연주하는 아르페지오는 물방울이  튕기는 듯한
매력적인 소리로  맑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한 예술가의
생활 에피소드’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심리적 표제음악인 ‘환상교향곡’은 전
부 5악장, 젊은 예술가가 실연으로 아편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으나 치사량이 아
니어서 혼수상태에서 꿈을 꾸는 내용으로 엮어져  있다. 사랑하는 여인의 영상은
고정된 선율로 5악장  전부에서 극의 여주인공처럼 자주 등장한다.  작곡자 베를
리오즈의 자전적인 얘기를 교향곡에 담은 극적인 아름다움으로 19세기 음악계의
담대한 개혁자이며 창조자라는  격찬을 그에게 안겨줬다. 이런  어마어마한 음악
사적인 평가를 모르더라도 ‘환상교향곡’ 2악장을 듣고 있으면 사랑은 신이 인
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랑은 성공했을 때  몇 사람에게
환희를 안겨주지만, 실패했을 때 오히려 빛나는 예술을  창조하게 할 수 있는 가
능성을 갖고 있음을  느끼게도 한다. 자신의 행복과 사랑을 추구하고  이름을 날
리고자 함은 모든 사람들의 이상이며 소망일  것이다. 베를리오즈도 명곡을 만들
어 사랑의 좌절에서,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나보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작곡에 착
수했는데, 그 주제는  역시 사랑이었다. 1악장은 ‘꿈과  정열’, 2악장은 ‘무도
회’,‘들녘의 풍경’이라는  표제를 붙인 3악장,  4악장 ‘형장으로의 행진’과
‘마녀들의 축제일과 꿈’이라는  제목을 붙인 5악장, 그 전체에서  밤하늘의 북
극성처럼 빛나게 등장하는 것은 연인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선율이다. 사랑이 인
생의
구심점인 것처럼 ‘환상교향곡’의 구심점은  역시 하리에트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소유가 사랑의 승리이고 완성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낳게 한다. 연인
을 가까이서 보고 만나고 싶어서 하숙집을 하리에트의 건너편 집으로 옮기고 연
인의 방을 지켜볼 때의 베를리오즈의 기대는  화려한 봄의 뜨락이었으리라. 그러
나 자신의 사랑이 하리에트에  대한 허상이었음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
지 않았다. ‘환상교향곡’으로  유명해지고 로마음악상을 타고난 후  드디어 하
리에트와 결혼할 수 있었던  베를리오즈는 눈에 보이는 빙산보다 물밑에 감춰져
서 보이지 않았던  예상치 않은 하리에트의 면모에  실망하여 별거한 끝에 그녀
혼자 쓸쓸히 죽어가게  했다. 이런 씁쓸한 후일담이 어찌  ‘환상교향곡’ 2악장
의 매력을 덜어낼  수 있으랴. 25년 전  5층 스튜디오에서 쉽게 눈에  띄던 남산
위의 안테나, 그 안테나처럼 이 봄에도 사랑을  보내고 수신할 수 있는 마음들이
여기저기서 피어날 것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빈의 중앙 묘지에 있는 브람스의 묘비 앞에 섰을 때 계속 내리는 눈으로 나의
발목도 곧 묻혀버렸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빨간 장미 한송이를 눈덮
인 묘 앞에 놓는  내 손이 떨렸다. 브람스는 일생 동안  좋아했던 스승의 미망인
클라라 슈만의 부고를  받고는 너무도 당황하여 기차를 잘못 탔다고  한다. 기차
를 다시 바꿔타고 클라라가 숨진 프랑크푸르트로 갔을 때는 이미 유해가 묘지로
떠난 뒤였다. 다시 허둥지둥 장지인 본으로 달려가서야  겨우 유해에 흙 한 줌을
뿌릴 수 있었다니 얼마나 허탈했을까. 지금은 브람스의  유해가 묻힌 묘 위로 흙
대신 눈송이가  풀풀 뿌려지고 있다. 하얀  눈송이가 덮이는 묘지 위에서  갓 핀
싱그러운 장미가 물기를 머금고 숨결을 고르고  있는 듯하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꽃 이파리지만 가장  강인하게 선명한 빛깔을 드러낸 꽃송이. 눈이  쌓여 조용히
안식을 더해 가는 묘지 위에서 영롱하고 지순한 영혼의 무게로 지탱하려는 듯하
다. 이슬처럼 맑고 순수한 모습으로만 브람스에게  다가가려 한 클라라의 소망처
럼 신선한 영감을 불러일으킬 듯하다. 몇 년  전 프랑수와 사강의 소설을 영화화
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본 일이  있다. 연상의 연인을  사랑하는 순진한
청년이 겪는 사랑과  고독의 갈등을 그렸는데 그  영화의 배면에 흐르던 음악이
브람스의 ‘교향곡 제3번’  3악장이었다. 지극히 통속적인 스토리에  브람스 교
향곡의 주제를 살린 음악을  사용한 것이 의아스러워서 브람스의 생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연상의 여인을  음악회에 초대하면서 “브람스를 좋아하십니까”라고
묻는 대목이 있었는데, 브람스가 연상의 여인인  클라라를 사랑했던 것에서 힌트
를 얻은 듯했다. 역사  속의 음악가의 생애를 읽을 때 연상의  여인을 사랑한 경
우를 많이 본다.  연인에게 바쳤다는 작품을 듣거나 사랑 얘기를  지면에서 읽으
며, 그런 금기의 사랑을 막연하게 선망하고 아름답게  채색할 수 있는 것은 독자
들의 편견  탓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작 얘기의 주인공들이  생존시에는 관념의
벽이나 도덕적인 제한 때문에  자유롭지도 못했고 후세 사람들의 상상처럼 로맨
틱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후세의 독자들이  그 변칙적인 사랑에 관대하
고 아름답게 채색까지  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같은 시대가 아니라는  것도, 그리
고 예술가니까 하는 이해도 있지만 지면에서 접한 한정된 얘기가 상상을 풍부하
게 하기 때문이리라.  특히 전기나 잡지의 특집기사 어느 것을  보더라도 한결같
이 음악가(남성)들은 어린 시절의 사진으로부터  머리가 벗겨지거나 백발이 성성
한 노년의 사진까지 실려 있는데 비해, 상대  여성은 젊은 시절의 매혹적인 사진
만 나오기 일쑤여서 활자로 밝힌 그들의 나이차쯤을 문제삼지 않게 되는지도 모
른다. 의도적인지 한정된 자료  탓인지 모르지만, 그런 편집이 단순한 사고의 독
자인 내게 그런 편견을 갖게 한다. 바로 브람스의 경우도 그렇지 않았던가. 스승
의 부인이고 선배음악가이며 나이도  열네 살이나 많았던 클라라 슈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의 음악작품들이 탄생될 수 있었을까? 많은 음악사 연구가들은 그
들의 교제가 우정을 넘지 않은 것이라느니, 혹은  둘이서 주고 받은 편지를 불태
운 것으로 보아 영원히 수수께끼라느니 하지만,  클라라가 브람스의 음악적 영감
의 원천이 되었다는  얘기에는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클라라에 대한  사랑 때
문에 브람스가 일생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냈다는 얘기에는 반론도 많이
나오고 있다. 바로 브람스가 ‘교향곡 제3번’을  작곡할 당시만 해도 앨토 가수
헬미네 시피스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비스바덴에  오래 머물렀던 것도 재능이
있고 매력적인 헬미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헬미네  역시 평소에 브람스의 가곡
을 좋아해서 친근함과 애정을 담아 그의 가곡을 불렀고 브람스의 고결한 인품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나이가  쉰이나 됐던 브람스는 명랑하고  지성적인 헬미네를
만나 행복감에 젖었었기 때문에 그때 작곡한 ‘교향곡 제3번’이 신선한 악상에
주제도 분방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브람스는  막상 결혼이라는 문턱에 다다라
서는 누구에게 속박되는 것이 싫어서 망설였지만 사랑의 열기는 늘 가슴에 지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사랑의 마음이 넘치면서도 연인에게 집착하지 않았고, 연인
의 존재로해서 빛나고  신선한 영감을 얻어 예술  작품을 낳고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사랑이야말로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신앙을  가졌던 브람스의 가슴속에 스
무 살 때부터 예순네 살로  숨을 거두기까지 사랑의 지주처럼 버티고 있던 클라
라. 거기에서  생겨나는 모든 힘, 모든  열정이 창작에 쏟아졌다.  절절한 사랑이
작품 속에서 승화되어  아름다운 멜로디로 나타났고, 자신에게  혹은 클라라에게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의 순수한 고백이 작품 속에 녹아들어
듣는 이들을 감화시키고 있다. 클라라의 남편  슈만은 무명의 젊은 브람스를 처
음 만났을 때부터  그에게 찬사를 보냈고, 음악의 새 지평을  열어가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때 이미 슈만의 부인인  클라라에게도 존경과 친밀감, 매력을
느꼈던 브람스였다. 그런데 슈만이 돌연 정신병으로 입원하게 되자, 시련받는 클
라라를 위로하며 도와주던 브람스는  우정을 넘는 사랑의 감정으로 치닫게 되었
다. 은인인  슈만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과 한쪽에선 스승이  사라지면 사랑하는
클라라를 소유할 수  있으리라는 두 마음이 어느 때는 치열하게  일지 않았을까.
2년 동안  병으로 시달리던 슈만이 죽자,  브람스는 오히려 이성을  찾고 열렬한
감정에서 벗어나 절제의 현명한 삶을 구축하고,  많은 자녀들과 힘들게 살아가는
클라라를 인간적으로 도왔다는  높은 품격이 생각난다. 영화  ‘브람스를 좋아하
세요(Goodbye again)’에서 들었던 브람스의  ‘교향곡 제3번’ 3악장을 차분하
게 들어봤던 기억이 새롭다. 첼로의 아름다운  선율로 감미롭게 시작되다가 뒤에
서는 바이올린이 반복되고  첼로와 바이올린 2중주가 계속되다가 목관악기로 이
어지는 감미롭고 서정적인  우수, 회상적이어서 허전하나 낭만을  맘껏 느끼게도
하는 3악장. 사랑하면서도 그 어떤 언약도 맺지도 못하고, 사랑하면서 떠나야 했
고 동경과 이상으로 가슴에 품고 또 미지수인  채 일생을 지냈던 브람스. 죽고나
서야 허둥지둥 달려가서  연인의 유해에 흙 한  줌을 뿌리며 슬퍼했던 브람스는
그때부터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이듬해에 뒤를  따랐다고 한다. 그토록 서글픈
브람스의 일생에  가슴이 저릿하다가 묘지 입구에서  장미꽃을 사느라 뒤처져서
일행을 놓친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러면서도 일행을  찾아야겠다는 생각
보다도 묘지 위에 얹힌 눈 속에 파묻혀가는  빨간 장미를 안쓰럽게 바라본다. 너
무도 강렬하면서도 선명한 빛깔이 오히려 서글프다.  브람스의 묘지 위에서 눈에
덮여가는 장미가 마치 브람스에게 신선한 영감을 주던 클라라의 무덤 같다고 느
끼며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데,  “그렇게도 브람스를 좋아하십니까”라는 소리
가 들려온다. 뒤돌아보니 일행들이 아까부터 여기저기  나를 찾고 있었다고 수선
들이다. 나도 빙그레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출구 쪽으로 가는 일행의 뒤
를 쫓아가다가 돌아보니  눈 위에 찍힌 우리의  발자국을 덮어버릴 만큼 굵어진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사랑의 승리 ‘백조의 호수’

 TV에서 쇼핑하기  위해 입국하는 러시아  상인들을 비춰준다. 그들의  뚱뚱한
모습을 보다가 문득 몇 년 전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본 장면이 생각났다. 이른 아
침, 문도 열지 않은 상점 앞에 우두커니 줄 서 있던 시민과 초라한 포스터. 제목
은 러시아 문자여서 해독을  못했지만 사진으로 보아 ‘백조의 호수’임에 틀림
없었다. 바로 그 전해(1991년)에 키로프 발레단의  서울공연이 있었다. 고액 입장
료라 표는 못  사고 포스터만 눈여겨 봤기에 낯익은 장면이었다.  그런데 막일꾼
차림의 서민들이 초라한 가게 앞에서  그 멋진 발레 관람권을 사려고 멀거니 기
다리는 것이 너무  의아스러웠다. 안내인에게 우리도 꼭 보고 싶다고  했더니 손
을 내저으며 안된다고 했다. 외국인은 국내인보다  10배나 입장료가 비싸고 일정
이 바쁘다며 다음 행선지로 서둘러 향했다.  아무리 싼 관람료라도 구멍가게에서
초대권을 파는 것도 이상하고, 발레 관람이  보편화된 문화수준이 부러워서 발길
이 선뜻 돌려지지  않았다. ‘백조의 호수’라면 나는 고작 영화로  제작된 것만
봤을 뿐이다. 멋진 왕자가 백조로 변하는 공주를 사랑하고, 곡절 끝에 사랑을 이
루는 알듯 말듯한  내용이었으나 그 환상적이고 시적인  분위기에 빨려들었었다.
지금은 발레라면 제일  먼저 ‘백조의 호수’를 떠올릴 만큼 사랑받고  있다. 그
러나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가 작곡하여 초연했을
때는 형편없는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당시의 발레라면 우아한 동작과  그에 맞
는 단순한 반주음악으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차이코프스키는  극본과 음
악에 크게  비중을 두었다. 로맨틱한 전설에서  따온 감동적인 얘기를 바탕으로,
음악과 발레로 환상적인  세계를 펼치려고 했다. 음악으로  등장인물의 심리묘사
와 성격을 살리려 했고 또 교향악적 수법의  심도 있는 음악을 군데군데 넣었다.
이런 총체적인  예술이었기 때문에 종래의 단순한  연출방식으로는 미처 소화를
못해냈다. 결국은 난해한 작품으로  무시된 채 외면당하게 된 것이다. 대본 내용
도 초연 때는 사랑하던 왕자와  공주가 마지막 장면에서 호수에 빠져 죽고 하늘
에서나 맺어지는  결말이었다. 차이코프스키가  죽어서라도 꼭 맺어지는  사랑의
승리를 대본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속단이지만 자신이  겪은 첫사랑의
실패를 아프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차이코프스키는 20대에  이탈리아 출신
의 오페라 가수를  열렬히 좋아했다. 모스크바 극장의  ‘오델로’에서 데스데모
나 역을 했던  데지레 아르토에게 마음을 빼았겼다. 꿈꾸는 듯한  눈과 아름다운
음성, 배역에 혼신을 다하는  자세에 도취됐었다. 공연 때마다 찾아간 그는 마침
내 뜨거운 마음을  고백하고 데지레도 받아들이는 듯했다. 둘의 밀회  사실이 모
스크바의 음악인들에게 알려지자 차이코프스키는  청혼까지 했다. 그런데 데지레
는 공연 일정이 끝나자  모스크바를 떠나 버렸고, 몇 달 후에  들려온 소식은 데
지레가 스페인의  어느 가수와 결혼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첫사랑의  실패 후
차이코프스키는 여성에게는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고  교제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만 작품에서는 장애를 물리치고 사랑을 성취하는 주제를 즐겨 다뤘다.
‘백조의 호수’ 외에 ‘잠자는 숲속의 미녀’나 교향적 환상곡 ‘템페스트’등
도 사랑의 승리가 내용이다. 최근 공연되는  ‘백조의 호수’ 내용은 차이코프스
키의 동생인 모데스키가 형의 별세  후 대본의 끝부분을 해피 엔딩으로 바꾼 것
이다. 처음 대본은  왕자와 공주가 호수에 빠져 죽고 하늘에서나  사랑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런데 작품에서라도  사랑의 실패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형의 진심
을 안 것처럼, 현세에서  공주와 왕자가 맺어지게 했다. 그리하여 공주와 왕자가
마녀의 저주에서 풀려  행복하게 결합하는 것으로 바꿨다.  차이코프스키는 사랑
을 잃고 나서 새로운 사람에게서  사랑의 기쁨을 찾으려 하기보다 사랑의 빈 자
리를 창작의욕으로 채웠다.  어떤 시련이라도 극복하고 사랑을  이룩하는 숙명적
인 사랑을 작품에서 다룬 것이다.  이 또한 사랑의 승리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존시에는 실패로 끝난 백조의  호수를 대본 수정과 안무로 보완해서 사랑받게
만든 발레단. 그 주인공은 오늘날의 키로프  발레단의 전신인 페테르부르크 발레
단이었다. 당시의 연출가 마리우스 프티파도 백조의  호수를 사랑받게 만든 공로
자이다. 혹평으로 매장된  작품을 부활시켜 사랑받게한 것은  페테르부르크 발레
단이 이룬 또 하나의 승리였다. 원작 백고의  호수가 지닌 매력을 꿰뚫어보고 개
정, 보완해서 오늘날  고전발레의 대표로 올려놓았고 따라서  발레예술의 지위를
향상시켜 놓았다. 요즈음엔  영상음반으로 제작된 백조의 호수를  보면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다듬고 고쳐온 노력의 발자취를 짐작해본다. 오늘날은 경제적으로
뒤져 있지만 문화대국이었던 러시아의  바탕에는 각 방면에서 이런 노력이 있었
으리라. 한낮엔 막노동으로  땀흘린 이들도 밤중엔 예술무대를  지켜보는 문화생
활의 보편화, 그런 것도 큰 힘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음악을 위한 음악

 다른 모든 것들 필요없다고,  부옇게 동트는 희미한 햇살 속에,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골목 안에서, 아주 괴로웠다, 세상을 떠도는 너의 목소리, 너뿐이야, 정말이


   시원한 냉면과 파가니니

 해마다 여름이면 붉은  깃발을 걸고 신장개업한 냉면집을  찾아본다. 기대하며
달려가서 먹어보면 번번이  실망하면서도. 면이나 국물맛이 20년  동안 단골집에
미치지 못하는 걸 확인하는 결과밖엔 안된다. 얼마  전엔 먼 거리에 있는 단골집
에 근무시간에 택시를 타고 달려가기도 했다. 그  집에 들어서니 식탁 위에 놓인
냉면 대접만 봐도 땀이 식고 군침이 돌았다. 대접  바깥에 찬 김이 서려 있고 굵
은 모시올처럼 가뿐하게  틀어올린 면이 솟아 있었다. 그 위에  길쭉한 무김치와
수육, 아슬아슬하게 얹혀  있는 달걀이 서걱서걱한 얼음 육수에 굴러  떨어질 듯
했다. 식초와 겨자를 넣고 면을 풀어 휘휘  저을 때 코끝으로 산뜻하게 다가오던
내음. 면을 한 젓가락  입에 넣었을 때 매끄럽고 쫄깃한 맛에  미처 육수의 맛이
아쉽지가 않았다. 국수를 몇 젓가락 삼킨 다음  국물을 후루룩 들이켰을 때 사이
다처럼 짜릿하던 맛, 입  안엔 구수한 뒷맛이 남고 가슴은 서늘했다.  아! 그때서
야 냉면을 무척 좋아하는 친구들이 몇몇이 떠올랐다.  그 친구들과 함께 이 별미
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난한 슈베르트는 친구를 무척 좋아했다. 그
래서  초인적인  재주를  가진  바이올린  연주자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에 매혹되어 친구들에게 입장권을 사주고 자신도 연주회에  매일 다니
느라 호주머니에선 먼지만  날렸다. 같은 시대의 바이올리니스트는  물론 슈베르
트까지 현혹시킨 파가니니의 연주가  음반 제조기술이 없던 때여서 전해오지 않
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그가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카프리스의 악보를
후세 명인의 연주음반으로 들어보면서  다른 작곡가의 작품과는 다르게 잘 뽑은
냉면발처럼 쫄깃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마치  나의 단골 냉면집이 지금은 아들
이 경영해서 돌아가신 아버지때만은 못해도 다른 집의 것보다 훨씬 맛있는 것처
럼. 음식 솜씨와 예술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어느 경지에 이르르면 가능하
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의  귀신’으로 불릴 만큼 독특한
마술적 기교를 지녔었다고 한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기막힌 연주 솜씨 때문
에 신비화된 얘기가  나돌았다. 연습하는 소리나 모습을 본 일이  없는데 무대에
서면 청중을 도취시키는 것에 사람들은 의심을  품었다. 그래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 탁월한 연주기술을  얻어냈다는 루머가 퍼졌었다. 그만큼  숭고한 소리로
사람들의 넋을 흔들어놨다는 것이다. 내가 다니던  냉면집의 짜릿한 국물맛과 쫄
깃한 국수맛은 서울  장안의 어느 집도 따르지 못했다. 국물은  양지머리를 고아
끓인, 뒷맛이 담백한 육수와 동치미 국물의 배합이며, 메밀가루와 녹말가루를 섞
은 반죽으로 국수를 뽑는다는 둥 방법은 대충  알려졌다. 그러나 그 맛은 아무도
따를 수  없어서 나쁜 소문이 돌기도  했다. 남들이 잠든 사이에  국물을 만드니
무엇을 섞는지 알 수 없고  국수가 쫄깃한 이유는 양잿물을 약간 넣기 때문이라
는 것이었다. 그 부친의  생존시만 해도, 밤새워 육수를 공들여 끓이고 정성으로
국수를 뽑는 법  등 뒷얘기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육수를 고아내는  가마솥 곁에
서 수시로 기름을  걷어내고 불을 조절하며 지켜보다가, 깜빡 졸아서  맛이 덜한
날엔 자신도 굶고 장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파가니니가 받은 어린 시절의 맹
훈련이 최근 음악사가들의 연구로  밝혀졌듯이 냉면집 부친의 비법이 아닌 비밀
이 아들과의  인터뷰기사로 밝혀진 걸  읽었다. 어린시절 파가니니는  하루 10여
시간이나 맹훈련을 받았고,  지키지 않은 날 그 아버지는 밥도  먹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훈련 덕분에 연주중 현을 반음 올리거나 G선만을 반음 높게 하는 동
작을 청중 모르게 재빨리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줄을 왼손으로 튕기는 피치카
토, 피리소리처럼 감미로운 소리를  내는 플래절렛, 여러 음을 한꺼번에 내는 자
기만의 연주법을 창안해냈던  것이다. 이 어려운 기술을 이미 어렸을  때 터득했
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는 많은 연습이 불필요했다.  연주 여행 때 그의 비법을
엿보려고 옆방에 투숙했던  사람들은 헛수고였다. 음식을 만들기나  연주에는 천
부의 재능과 함께  숙련된 손맛이 어우러져야 한다는 진실을 잊기가  쉽다. 그래
서 명연주가나 장인이  그 비법을 전수해주지 않았다는 누명을 쓴다.  단골 냉면
집도 아들이 방법을 전수받아 현대  시설까지 갖췄으나 그 맛은 부친 때만 못하
다. 파가니니도 유일한 제자 시보리(Sivori)에게만 비법의 일부를 전해줬다. 분주
한 연주여행 때문에 지속적인  교육은 못 시켰지만 자신이 창안한 연습방법으로
시보리의 테크닉을 1년도 안된 기간에 빨리  향상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파가니니만큼 훌륭한 연주를 하지  못했으며 오늘날 그의 악보를 비슷하게만 소
화해 내는 몇몇 연주가가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만한
많은 작품을 썼으나 오늘날 전해오는 악보는 바이올린 협주곡 6곡과 전 24곡의
카프리스뿐이다. 그 중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베토벤이나 브람스와 같은
정서적 깊이는 없으나  듣고 난 뒤에 일종의  시원함이 남는다”는 평가를 받았
다. 쫄깃한 면과 육수의  조화로 이뤄지는 시원한 평양식 냉면. 오케스트라의 명
쾌한 연주에  이어서, 비단 찢는  소리처럼 선명한 바이올린의  다채로운 독주를
받쳐주는 오케스트라 연주가  20분이나 되는 1악장. 마치 국수와  육수가 어우러
지는 냉면처럼 맛있고  시원하다. 풍부한 서정으로 겨자처럼 쌉쌀하고  달콤한 2
악장, 경쾌한 스타카토 기법으로 활기차며 화음이 뛰어난 마지막 악장. 후덥지근
하고 불쾌지수  높은 계절에 밝고 현란한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나
들어볼까?

   끝없는 동경과 서정

 고교시절, 교실 뒷벽에는 음악가 초상화 복사본이 붙어 있었다. 실타래같은 가
발을 쓴  근엄한 바흐, 숙인 얼굴에  눈을 치켜뜨고 입은 굳게  다물어 날카롭기
그지없는 베토벤, 그에 비해  안경 쓴 슈베르트는 소박하고 온순해 보였다. 고개
를 옆으로 돌린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교실 창 밑 화단에선 짙푸른 붓꽃 이
파리가 너울거리고  있었다. 어렸을 때  슈베르트는 작은 얼굴에  두터운 안경을
쓰고도 동무들과의 힘든 놀이에 절대로 빠지지  않았다. 넘어지고 다치기 일쑤여
서 ‘안경 쓴 오리새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사진을 보면,
더욱 친근감이 들었다.  그때 음악 교과서에는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와 ‘보
리수’가 실렸었다. 때론 그가 사진에서 걸어나와  음악 선생님처럼 피아노를 치
며 지도해줄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성장하여  ‘미완성교향곡’을
처음 들으면서 쉽고 밝은 가곡에서 느낀 것과는 다른 차원의 영혼을 짐작해보게
됐다. 그의  뛰어난 직감력과 무궁무진한 창작력은  길을 가다가도, 혹은 친구와
대화중에도 악상이 떠올라 즉시 오선지에 옮기면  아름다운 가곡이 이뤄졌다. 그
래서 만든 가곡이  무려 6백여 곡. 밝고  쉬운 것들만 쉽게 따라  부르면서 붓꽃
이파리처럼 소박한 영혼의  소유자로 여꼈던 것을 수정해야  했다. 마이어호프라
는 시인이 슈베르트의  재능을 아껴서 “교향곡이야말로 음악가의 생명”이라며
교향곡 작곡을 독려했다. 친구의 충고대로 영원히  사랑받을 교향곡을 쓰기로 결
심한 슈베르트는 직전에 쓴 제7교향곡 악보를  태워 버리고, 새로운 각오로 두문
불출하며 제8교향곡 쓰기에 몰두했다. 2악장까지 썼을  때 친구 시마운과 쇼버가
찾아왔는데, 새로운 악보를 본 친구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전의 슈베르트
작품에서 듣지 못한 인간의  애환과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신비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친구들의 극찬에 용기를  얻은 슈베르트는 3악장을 시작했다. 자신에게 “
생명을 바쳐 불후의 교향곡을 쓰라”고 한 마이어호프에게도 보일 욕심으로 3악
장을 시작한 것이다. 화려하고 경쾌한 선율로  처음은 잘 써내려갔는데 중도에서
악상이 끊겨 버렸다.  초조하고 절망감에 빠져 있는 그에게 들려온  소식은 뜻밖
에도 마이어호프가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창작의욕을 북돋워줬기에 열정
적으로 제8교향곡을 쓰고 있던 그는 “너의 죽음으로 인해 이 곡은 영원히 미완
성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라고 울부짖었다. 그래서 이 교향곡의  이름이 자
연히 ‘미완성교향곡’으로 불리게 됐다. 당시의  양식으로 4악장이어야 할 교향
곡이 2악장뿐이었기 때문이다. 왜  2악장까지만 썼는가에 대해서는 마이어호프의
자살이외에도 여러 가지로  이유를 추측하고 있다. 원래 대작을 쓰는  데 익숙지
않았던 슈베르트는  부분적으로는 아름다워도 전체적으로 곡을  끌고 가는 힘이
약했다고 한다. 악상이  막혀서 중단했던 것을 다른 작품 쓰기에  몰두해서 잊어
버렸으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1935년, 그의 조국 오스트리아에서 제작한 영화
‘미완성교향곡’에서는, 어느  귀족의 딸을 열렬히 사랑하면서  2악장까지 썼는
데 3악장을 쓸 때 그녀가 부잣집으로 시집가버린 소식을 접하고는 붓을 꺾은 것
으로 그려놓았었다. 그러나 그것은 픽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음악기법상 1,
2악장이 모두 3박자인데,  이어질 3악장의 스케르초가 또한  3박자이므로 악상이
막혀 중단해 버릴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추측이 가장 설득력이 높다.  어떻든 슈
베르트는 두 개의 악장에 이미  할 말을 다했기 때문에 천재다운 직감으로 절필
했으리라는 설도 무시할 수 없다. 경위야 어떻든  이 곡은 정장에 다소 엄숙하게
경청해야 할 것  같은 다른 교향곡들에 비해, 소박하면서 다정하게  다가오는 것
이 특색이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으로 안개  속처럼 은밀한 서두 부분.
나무가 빽빽한 산길에서 숨을  들이마셨을 때 스미던 풋풋한 산내음처럼 쏴아하
면서 부드러운 선율이 1악장 내내 계속된다.  2악장의 첫머리가 시작되면 여명의
어둠이 조금씩  걷히는 그윽한 공간에  놓이게 될 것이다.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지금껏 잘못 살아오지 않았는가 성찰해야 할  맑은 공간. 그러면서 ‘만약에’라
는 어떤 가정법도 가능한 희망의 시간을  누리게 해준다. 슈베르트는 내성적이어
서 자신의 운명을 활달하게 개척할  힘은 없었지만 항상 샘 솟는 악상으로 자신
의 존재를 굳히고,  자신의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잠들어 있던  서정을 되살려주
었다. ‘미완성교향곡’도 강한  멜로디로 충격을 주거나 선동하지 않으면서, 온
화하고 다정하게 어떤  세계로 향하게 하는 부추김이 있다. 싱싱하기도  하고 때
로는 격렬한 부분도 있지만 끝없는 동경과 절묘한 서정이 가슴에 절절이 파고든
다. 슈베르트는 사설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부친을 도와 보조교사로 3년간
일하다가 음악의 매력에  사로잡혀 퇴직해 버렸다. 직장도 없이  음악애호가 친
구들과 어울리는 떠돌이  생활에 작곡만 했으니 빵  한 조각, 5선지 한  장 없던
때가 많았다. 그래도 요절할 것을 예감했던지 작곡에는 열성이었다. 섬세한 감성
의 소유자로서 말재주도 없고  비사교적이어서 출판에도 소극적이었다. 가난하고
이성교제에도 실패하여 31세까지 사는 동안 결혼도  못했다. 그러나 좌절과 고통
을 겪은 상처자국을  드러내지 않는 고운 심성이 많은 작품에서  느껴진다. 로맨
틱하고 시정 넘치는  ‘미완성교향곡’이 특히 그렇다. 2악장까지 다  듣고 나면
내밀한 안개 속을 벗어나서 청신한 나무들의 호흡과 풀잎새의 이슬이 영롱한 대
지 앞에 서는 기분이다. 짙은 안개 속에 잠겼다가 드러난, 새로운 풍경을 대하는
듯한 교향곡. 이 음악을  듣고 나면 가린 것 없는 생명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겨난다. “모든 사람의  영혼을 끝없는 사랑으로 휘어잡기 때문에, 그 어
떤 사람도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온화하고  친근한 사랑의 말로 다정히 속삭인
다. 이처럼 대중적 매력을 지닌 교향곡을 나는 일찍이 들은 적이 없다.” 브람스
의 이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친숙한 슈베르트의 체취를 ‘미완성교향
곡’에서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미완성교향곡’이 슈베르트의 생전에는 한
번도 연주되지 못했다.  작곡 직후 음악협회 임원 휘텐브레너에게  우송했으나 2
악장뿐이라 미완성품인  줄 알았던지 발표가 되지  않았다. 슈베르트가 죽은 후,
요절한 것을 아쉬워한 후배가  유작을 찾던 중에 휘텐브레너의 집에서 ‘미완성
교향곡’악보를 찾아냈다. 그 해가 1865년으로 슈베르트가  사망한 지 37년 만의
일이었다. 악보가 발견되고도 6년 만에야  연주되어 환호를 받았다니 ‘미완성교
향곡’이야말로 짙은 안개 속에 43년이나 묻혔던 셈이다.

   카르멘의 불꽃을 다스리는 연주

 무대 위에서 오케스트라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연주 부분을 기다리는 정경화
는 다소곳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 활을 들어올리면서 보는  이의 가슴
을 철렁하게 만든다. 눈을  지긋이 감은 평화로운 표정도 잠시뿐, 눈꺼풀을 파르
르 떨며 깨어날 듯  여러 차례 반복 끝에 실눈을 뜨고서  연주에 몰입해 버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 잘못된  것을 떨쳐버리듯 사정없이 활
을 그어댈 때  나도 정신이 번쩍든다. 음악보다 눈으로만 감상한  자신을 반성하
며. 강한 도리질 끝에 무릎을 사뿐히 굽히면서  치켜든 얼굴은 어느 손짓을 따라
올라가는 듯하고 몸도 조금씩 일어설 때는 보는  이의 다리도 저린 듯하다. 감정
의 과다노출을 조절하려고 꽉 다문 입술로 순식간에 활을 수직으로 확 내려긋는
다. 1악장이 끝난 것이다.  다음 악장에선 고고하게 명상하듯 출발하더니 오케스
트라의 연주가 빠르게 고조되자 몸이 활과 함께  휙 돌아간다. 활의 각도가 변화
될 때마다 자유분방하고 극적인 몸짓이 계속되며  까만 긴머리가 출렁인다. 오래
전엔  정경화의  다양한   제스처에  매료됐었다.  그래서  랄로(Edouard  Lalo,
1820~1892)의 ‘스페인 교향곡’을  컴팩트 디스크로 들으면서도 정경화의  폭발
적인 연소력과  영화에서 본 카르멘의  정열적인 춤이 오버랩되곤  했다. 고도의
테크닉으로 숨가쁜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  정경화와, 몸으로 감정을  말하는 듯
플라멩코를 추던 카르멘의  춤 장면. 내가 듣는 음반은 샤를르  뒤투아가 지휘하
는 몬트리올 교향악단과 정경화의 협연이다. 지휘자는  동양 태생의 정경화가 갖
고 있는 숨은  마성을 찾아내어 마음껏 발휘하도록 지휘한 듯했다.  정경화의 연
주는 영화 ‘카르멘’처럼 색채감이나  요란한 율동은 없어도 긴장 속으로 신비
하게 몰아넣는 것은 똑같다.  마치 영화 속에서 화려하고 매혹적이며 사랑, 고뇌
그리고 자유를 쫓던 카르멘을 보는 것 같은 매력으로 ‘스페인 교향곡’을 듣는
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카르멘의  정열처럼 현 위에서 작열하는
뜨거운 음악에 빨려들어간다.  프랑스의 작가 메리메는 스페인을  답사하여 그곳
을 무대로  소설 ‘카르멘’을 썼다.  오늘날 카르멘이 스페인  여성의 상징으로
여기게끔 만든  장본인이다. 랄로도  프랑스의 작곡가이면서 스페인을  좋아해서
‘스페인 교향곡’을 작곡했다.  나이 쉰에 이르기까지 무명  작곡가에 불과했던
랄로는 50세에 작곡한 이 음악으로 마침내 확고한 작곡가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
다. 타이틀은  ‘스페인 교향곡’이지만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의  조화와
협연으로 이뤄가는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랄로는 당시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친구 사라사테에게 이 곡을 바쳤다. 스페인  태생인 사라사테는 스페인의 색채와
명쾌한 정서를 매혹적으로 연주하여  친구 랄로에게 작곡가의 명성을 얻게 해줬
다. 경쾌함, 격렬함과  차분한 서정, 환상적인 분위기까지  갖춘 ‘스페인 교향곡
’은 사라사테의 연주로  진가를 발휘했던만큼 특별한 기교가  요구되는 곡이다.
그 까다론운 음악을 우리나라의  젊은 연주가였던 정경화가 연주하여 취입한 사
실만으로도 1981년 당시엔 놀라웠다. 스페인의 춤  플라멩코는 인간이 품은 열정
의 에너지를 승화된 동작으로 폭발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젊은 시절의 정경화의
연주도 열정의 에너지를 폭발  직전에 가다듬고 승화시켜서 듣는 이에게 전율을
느끼게 했다. 스페인은  화산 같은 예술혼의 나라로 일컬어질 만큼  특별한 예술
가들인 고야, 피카소, 달리 등의 고향이기도  하다. 스페인 남쪽에는 아직도 화산
의 열기가 남았다고 한다.  지형적으로 아랍풍이 많고 동양에 가까운 나라, 정경
화는 눈도 가늘고  체구도 작은 동양인이지만 활만  들면 폭발하는 것은 화산의
열기가 남은 스페인적 정열이라고 해야 할까.  콜럼버스나 돈키호테의 나라 스페
인, 그 나라  사람들을 미지의 세계로 내몰아 도전하고 탐구하게  한 이상주의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스페인 교향곡’을 들으면 스페인에 가보고 싶어진다.

   그리그의 환생

 천둥 같은 팀파니의 연타에 이어서 높은  음으로부터 빠르게 떨어지는 피아노,
오보에가 주제를 연주하면 화면에 두툼한 손길이  여유롭게 나타난다. 날렵한 손
놀림이  아닌데도 정교하고  투명한  울림에  귀가 밝아진다.  루빈슈타인(Artur
Rubinstein, 1886~1982)은 처진 눈꺼풀  아래로 두어 번 좌우로 시선을 옮기더니
이내 반가사유상처럼 묵묵히 건반만 두드린다. 그의  손가락은 새의 뾰족한 부리
로 쪼아내듯  예리하면서도 찰랑찰랑해서 탄력 있게  퉁겨주는 소리가 상쾌하기
그지없다.  루빈슈타인이  89살 때(1975년)  런던  필하모니아와  협연한 그리그
(Edvard Hagerup Grieg, 1843~1907)의 피아노 협주곡의 영상음반을 회사 레코드
실에서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그것은 런던의  페어필드 홀에서 앙드레 프레빈
(Andre Previn, 1929~) 지휘의  연주 실황을 담은 것이다. 그리그가 젊은 시절에
작곡한 이 협주곡은 발랄하고  청순한 선율인데 노대가가 어떻게 연주할까 의구
심을 가지고 듣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1악장 도입에서부터 싱싱한  생명감과 우
아한 분위기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1악장의 후반, 이미 노대가는 희
미한 시력이나 청력으로 연주한다기보다 신선한 영감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젊
은 작곡가의 감정의 기복을 따라 풍부한 정감을  다 표현하려고. 같은 곡을 젊은
연주가의 음반으로 들으면서 기교에 비해 속이 빈 듯한 허전함을 느꼈었는데 노
대가의 연주는 호화롭고  당당한가 하면 평화롭기까지 하다. 2악장  앞부분의 명
상적인 주제가 관현악  연주로 진행되는 동안, 노대가는 비스듬히 높은  곳을 보
며 명상하듯 기다리는데  그 모습이 숭고해 보인다. 명상 후의  연주는 물방울이
깊은 호수에  또랑또랑 떨어지는 듯해서  정신마저 초롱초롱해질 것  같다. 젊은
시절의 루빈슈타인은 음악을 자기  식으로 소화하여 화려하고 강한 표현을 하기
도 했다. 그러나  89살의 노대가의 연주는 그리그의 의도를 깊이  이해하고 여유
롭게 표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나긴 인생의 무게를 한 음, 한 소절마다 실
으려는 듯 진지하다. 신동으로 피아노의 신화를 창조했다는 그도 20대, 30대까지
는 자신의 천재성에 자만해서 인기를 끈 반면  진지하지는 않았다. 45세에 한 지
각결혼 후  자녀에게서 ‘뛰어난 쇼맨’이라는 비판  대신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겠다고 결심, 악보들을 싸  들고 산에 들어가 하루 6~8시간씩 연습을 했다. 진
정한 예술가로 다시 태어나려고. 진정한 예술가로서  노르웨이의 짙은 환상의 색
채를, 때로는 몽롱하게 때로는 어둡게 그려내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연
주, 이따금 관현악 단원들도 노대가를 존경스러운 듯 바라본다. 예술가의 일생은
새로운 발견과 창조를  위한 탐구의 과정이다. 삶과 정신의 집중력  위에서 촛불
을 켜 든다. 예술가들이 켜 드는 촛불, 그 빛이 모여 평범한 사람들의 길도 밝히
리라. 루빈슈타인은 아흔이  다 되어서도 “나의 연주를 평할 때  나이를 고려하
지 말라”고 했다는데  이 음반의 연주가 자신에 찬 그  말을 증명해준다. 3악장
의 흥겨운 행진곡풍 연주는 자신의 신동  시절이 생각나는지 우쭐대며 연주한다.
그의 연주는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거운 울림으로 평범하고 무능한 사람의 아
픔까지 감싸줄 것  같다. 그리그는 쇼팽을 좋아하여 닮으려고 애썼고  결국 ‘북
극의 쇼팽’으로 불렸다. 쇼팽 해석의 대가인  루빈슈타인이 그리그 ‘피아노 협
주곡’을 말년의 연주곡으로 선택한  것은 쇼팽의 애수와 향기로운 시정을 닮은
작품이어서 였을까. 목숨이  거의 다한 것을 예감한 시간에 작곡자의  의도를 정
확한 해석으로 재연한  이 연주는 어쩌면 그리그가 환생하여 후원한  듯하다. 시
간이 갈수록 무능만 확인하고 불투명한 미래도  염려될 때, 루빈슈타인의 영상음
반을 보며 열리는  미래의 촛불을 발견하고 싶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고 젊은
신인들에게 기가 죽어 일찍이  포기해 버리는 조로 현상의 현대인에게 산뜻하게
토닥여주는 선율.

   섬세한 붓놀림의 수채화

 보조장구를 짚고  무대로 나오는 이착 펄만(Itzhak  Perlman, 1945~)의 모습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의자에  좌정하고 악장에게서 바이올린을  건네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느껴졌다. 무대 입장 때는 청중에게  예의로 웃어보였
지만 연주할 때는 얼마나 찡그리고 우울하고 고뇌에 찬 모습일까 은근히 걱정스
러웠다. 그런데  연주가 시작되자 긴장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익살에 가까운
표정이 많다. 그리곤 느긋하고  행복한 웃음까지 짓는 것이 아닌가. 나도 드디어
긴장을 풀고 미려한 선율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바이올린 연주라면 장애인
이 아니더라도 심각한 표정에 전율하는 듯한  연주모습만 보아왔었다. 그래서 몇
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펄만의 연주회에 가면서는 눈을 감고 감상하리라
고 작정했었다. 그런데 나의 선입견을 깨뜨린 행복한 연주모습이 의아스럽던 중,
후일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됐다. 펄만은 명실공히 금세기  정상의 연주가이
다. 그가 실력을  뽐내는 듯 행복한 연주모습을 보이기까지는 남다른  각고의 세
월이 있었다. 라디오  방송의 바이올린 소리가 좋아서 부모를 졸라  배우기 시작
한 것이 네  살 때, 그러나 몇 달 만에  소아마비의 마수가 뻗쳤다. 부모는 어린
아들이 불구의 심각성을  못 느끼고 바이올린에만 전념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자라면서 부모의 충정을  알게 된 펄만도 불운을  음악으로 이기려고 하루 너댓
시간씩 연습하여 빠르게  진전했다. 그의 천재성과 집요한  노력으로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음악원 재학중인 10살 때 이미 방송과  연주로 인기를 얻게 됐다. 마침
미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에드 설리반 쇼’의  출연인물을 찾아 이스라엘에
들른 설리반이 펄만을  발견했다. 설리반은 그의 재능을 알아 보고  미국에 데려
가서 그의 앞날을  활짝 열어 주었다. 펄만은 13살에 줄리어드에  입학하여 재학
중에도 수업과 연주여행으로  바빴다. 그의 연주 모습을 본 지는  오래지만 컴팩
트 디스크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자주 듣는다.  멘델스존의 대표
작으로 낭만적인 정서와  형식미가 조화를 이뤘다고 정평이 나 있는  곡이다. 그
래서 연주가도 멘델스존처럼 굴곡 없이 순탄하게 성장한 사람이 어울릴 것 같다
고 생각을 해왔었다. 그러나  이것도 나의 편견임을 절감한다. 펄만의 연주는 지
순하면서도 예리하여 빨려들어 가게 한다. 부유하고  행복했던 멘델스존은 그 음
악이 밝고 서정적인 반면 생명력과 깊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착 펄
만도 행복한 표정으로 여유있게  연주하여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것으로 오해받
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펄만의 남다른  비애와 설움이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에서는  그 깊이를 더한다.  금세기 펄만과 함께  정상으로 꼽히는
핑커스 쥬커만(Pinchas  Zukerman)과 정경화의 연주는 각각  불타는 듯한 톤과,
리듬이 있어 마력적 감성의 소유자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펄만은 고도의 테크닉
과 깊이로  따사로움과 활기가 넘치는  연주가이다. 앞의 두  사람이 전율하듯이
연주하는 것에 비하면 펄만은 소박한 아저씨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는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음미하는 연주가이다. “제가 사랑하는  음악에 몰입
하다보면 황홀한 표정이  저절로 나오죠. 그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행복감이기도
합니다.” 둥글넓적한 인상과는 달리  “소프라노의 선율처럼 순수하고 견고하고
예리하다”는 솜씨답게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는 명반으로 꼽힌
다. 이 곡은 섬세하고 결이 고우면서도 완숙의  경지에 이르러서 “더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곡”이라고 극찬한  슈만의 말을 증명해 보인다.  멘델스존은 그림솜씨
도 뛰어나 높이 평가받는  그림이 몇 점 전해온다. 보이지 않는  것을 꿈꾸는 사
람들의 그리움과 우수가 깔린 파스텔톤의 수채화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
곡’에서 연상되는 것은  이착 펄만의 미려한 연주 때문일까. 이착  펄만의 연주
를 “단정한 양식미와 견고한 조형력, 예민한  현대감각이 단연 돋보인다”고 칭
찬한 평론가의  말을 생각하면 멘델스존의 협주곡이  액자에 끼워진 수채화처럼
더욱 단아해진다.

   사랑의 에스컬레이터

 어느날 레코드실 구석에  밀쳐둔 LP판을 들춰보다가 반가운 음반을 발견했다.
20여 년 전에 출반된 정경화 연주의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
세련되지는 않았으나 소녀티를 갓 벗은 정경화의 다부진 입매와 가는 눈매가 인
상 깊었는데 이제  다시 보니 귀엽기 그지없다  중년 여성의 원숙함이 느껴지는
최근의 모습에 비해 금석감을 느끼며 음반을 턴테이블에 얹는 손길이 가볍게 떨
렸다. 레코드 재킷의 정경화  모습처럼 풋풋했던 시절, 바로 정경화 연주의 ‘바
이올린 협주곡’ 레코드를 소포로 받았었다. 산뜻한  잉크 냄새가 풍기는 재킷에
서 꺼낸 레코드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늘을 갖다  놓던 때, 그때 가슴에 조용
히 물결쳐오던 설레임이 생각난다.  바늘이 가장자리에서부터 가운데로 회전하며
드디어 조용한 선율이 시작되자, 먼 곳으로부터  반짝이는 은 물결처럼 다가오던
찬란한 1악장,  친근하게 다가오는 정감어린 노래  같은 멜로디의 2악장 안단테,
아! 이런 음악을 함께 좋아할 수 있는 숨은  감성의 소유자라는 사실도 감탄스러
운데 선물로  보내다니. 레코드 바늘이  가장자리로부터 중심을 향해  도는 것을
보며 그의 마음이 내게로 점점 다가올 것  같은 기대로 설레이기도 했다. 가난한
예술가였던 차이코프스키가 만나본 적도 없이 원조를 받았던 폰 메크 부인의 편
지를 읽을 때도  이런 기분이지 않았을까. 폰 메크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많은
차이코프스키의 많은 음악  속에서 예술의 고귀함과 매력을  느꼈고, 차이코프스
키 역시 찾아가 보지 않은 채 사랑의 편지로 떠오르는 환상 속에서만 그녀를 아
끼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나는 정경화의 레코드와 함께  그 해
후반을 어둡고 답답함 속에서도 한 톨 사랑의 불씨를 간직하며 안타까운 낭만을
맛보기도 했다. 또한  내 나름대로 아름다운 음악을 보내준 이의  순수한 영혼과
인품에 감탄했다.  중간음보다 높은 듯하게 시작되는  바이올린 독주, 주 테마가
화려하게 반복되고 나면 다시 서정적인  제2주제가 연주되는데, 중간중간의 독주
가 느린 부분에서는 청초한 난 잎새가 흔들려서  향이 풍기는 듯했다. 만나면 만
날수록 정이 드는 사람처럼 안 듣고는 못 배기던  선율, 나의 혼과 마음은 그 음
악을 맴돌고 있었다. 내가 그 음악에 길들여졌는지  아니면 내가 그 음악을 길들
였던 것인지. 늦가을 비에  쫓겨 눅눅한 기분일 때는 그네 타고  높이 오르듯 사
뿐함을 얻을 수  있었고, 각박한 세태를 원망하고 쓸쓸한 마음으로  귀가했을 때
는 따뜻하게 덥혀주는 위안을  얻기도 했다. 어느 날, 어린이 놀이터를 지나다가
계단오르기 놀이기구에 매달려 애쓰는 아이를 보게  됐다. 동작이 둔하고 답답하
여 가까이  가보니 다리가 불편한 아이였다.  며칠 후 다시 그곳을  지나가다 그
아이가 몇 번을 실패하다가 끝까지  오르는 데 성공하는 것을 보고 나는 조용히
박수를 보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들은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은 특별히 찬탄할  만한 감동을 주는 것이었다. 바이올린의 기교가  더욱 현란
하게 다가오고, 1악장에서 주제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반복되는 듯한 선율, 그 고
뇌하는 듯한  반복이,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연상하게 했다. 그리고  언젠가 본 프랑스의  시인 쉬페르비엘의
‘나는 혼자 바다  위에서’라는 제목의 시구가 떠올랐다. 나는 혼자  바다 위에
서, 파도 위에 직립한  사닥다리를 기어올라가고 있다, 올라가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자기인데 때때로 불안해져서 손으로 얼굴을  만져본다, 연하여 새로운 계단
이, 인간으로서 힘 자라는  하늘 가까이까지 나를 올려보낸다, 끊임없이 딴 사람
으로 태어나는 이  사닥다리 위에서, 다시는 더  태어날 수 없는 나인데, 어찌하
랴! 아아, 나는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다, 나는 추락할 것인가, 쥐는 데 도움이 됐
다기보다도, 이해하는 데 더 많이 도움이 된 이 두 손을 가지고 있는데도? ... 이
시의 이미지와 사상성을  떠나서, 또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의 음
악성을 떠나서 이번에는  연주가의 외로운 고뇌를 생각해보았다.  이토록 정열적
이면서도 알맞게 절제, 응축시킨 터치로 섬세하게  변화를 주며 현란하고 감미롭
게 연주할 수  있기까지 연주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더욱이 레코
드를 제작하기 위한 연주는  직립한 사닥다리를 기어오르는 듯한 심정으로 했을
것이라 짐작됐다. 연주는 레코드로 제작되고 나면 이미 수정할 수 없는 것, 그러
므로 그 연주가  최후라는 각오로 심혼을 기울여 연주를 했으리라.  마치 사닥다
리 위에서 손을 놓으면 깊은 바다로 빠져버릴 거라는 위기의식에서 절박하게 연
주하지 않았을까. 손을 놓으면  위험하지만, 높은 사닥다리 위에서 내려다 본 세
상이 허허롭고 위대하여 끝까지 연주의 기교를 계속할 수 있었으리라
. 이 작품을 듣고 있으면 1악장에서는  연주상의 어려움과는 달리 밝고 산뜻하면
서 여유로움까지  맛볼 수 있다. 그것은  서정적이거나 감미로움, 혹은 비탄조로
특징지을 수 있는 차이코프스키의  다른 작품들과 구별되는 참신함을 느끼게 되
는데, 그 작품의 산실이 제네바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스위스의 클라
렌스 산장이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된다. 겨우 석  달밖에 지속
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 차이코프스키의 결혼 생활. 정신병 증상이  있는 신
부와 계속 살 수 없어 도피해 버린 곳이 풍광이 수려하고 전망이 빼어난 스위스
의 제네바 호숫가였다.  결혼 실패의 도피가 그처럼 상큼한 작품을  낳게 했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그의  말년의 작품‘비창교향곡’처럼 슬프고  우울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씻어  버릴 만큼 밝고도 상큼한  D장조의 곡을 만든 것이다.
이 음악을 작곡할 때는  바이올리니스트인 제자 ‘요셉 코데크’가 찾아왔을 때
여서 바이올린 독주의 기교에 대해 테스트해 보면서  곡을 쓸 수 있었고, 무엇보
다도 폰 메크 부인이 위로와 용기를 주는 사랑의 편지를 많이 보냈던 것에 힘을
얻은 때문은 아닐는지...  제네바 호수의 파란 물이 잘 보이는  전망 좋은 클라렌
스 산장에서의 작곡은 매우 능률적이어서 1878년 3월에 착수하여 4월 20일에 완
성했다고 한다.  고독과 슬픔을 이겨내고 세상을  바라보는 높은 위치, 이를테면
호반이 보이는 산장에서  바라보듯이 여유롭지 않을까. 그런  경지까지는 아니더
라도 한강변 친구네 고층아파트의  넓은 통유리창을 통해서 보이던 한강의 유려
한 물결이 마음의 규모를 넓혀줄 듯했다. 막힌 것 없이 툭 터진 시계, 그 앞에선
잡다한 일들을 버리고 강폭에 가득한 도도한 강물의 흐름에 실릴 수 있을 것 같
았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는 파란 물결을  보며 창작에 몰입하여  참신한 곡을
이뤄냈지만 그 음악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았다. 그가 작곡하면서  바라보던 제
네바 호수처럼  맑고 시원한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을 받아본 폰  메크 부인의
반응도  좋지  않았고,  대   바이올리니스트  레오폴드  아우어(Leopold  Auer,
1845~1930)에게 헌정하려 했으나 그도 연주가 불가능한 작품이라며  되돌려 보냈
다고 한다. 후배인 아돌프 브로즈키란 연주가가 이  악보에 호감을 갖고 빈 필하
모닉 관현악단과  협연으로 초연했을 때도 지휘자와  악단원의 비협조로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에 좌절하지  않고 연주여행 때마다  독주로나마 들려준
브로즈키, 그  브로즈키의 노력으로 완성된 지  4년 만에 다시  빈 필하모닉과의
협연으로 연주불가능한 음악이  최고의 명곡으로 인정받게 됐다.  또한 뒤늦게나
마 곡을 돌려보냈던 아우어  자신도 좋은 작품이라고 인정하고 제자들에게 가르
치게 되었다. 오늘날 베에토벤, 멘델스존,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함께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꼽히고 있다. 작품발표 후  뒤늦게야 사랑을
받았던 차이코프스키. 그의 생애에는 고독한 시절이 많았다. 결혼에 실패한 외로
운 가정생활이 그랬고,  예술생활에서도 같은 음악인들과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에는 이른바  국민음악파 5인조라고 하여 무소르그스키와 림스키 코
르사코프, 보로딘, 큐이,  발라키레프 등에 의해 민족음악이  주창되던 거센 열풍
의 시기였는데 차이코프스키만이 외롭게  인간적인 낭만성을 지켜나갔다. 독창적
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고집했으나 발표하는 작품들이  번번이 즉각적인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창작생활 30년 동안의 작품이 누구보다 많은  것으로 평가
되는 것을 보면, 오로지 음악으로 삶을 진정시켰다고 여겨진다. 좌절을 거듭하면
서 내면세계의 충만을 다지고  작품의 완성을 향하여 의지를 불태웠던 차이코프
스키의 위치, 그는 외롭고  높은 고매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의
정신세계는 전망 좋은 높은 곳에서 삶을 내려다  볼 수 있어 미래를 내다보았고,
현실의 작은 것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긴  안목의 예술가가 아니었던가 추측된
다. 정신적인 사랑과 위안, 그리고 경제적으로 도와 준 폰 메크 부인에게서 “파
산으로 연금도  끊고 편지도 그만”이라는  일방적인 통보가 왔을  때의 실망감,
일설에 의하면 부인의 장남이 불치병에 걸린 데다 자신의 병이 악화된 탓이었다
는데, 내막을 모르는  그는 이후 3년 동안 배신당한 미움과  슬픔으로 세월 보내
다가 끝내 숨졌다고 한다. 오래  전, 레코드판 한 장의 우송으로 많은 사연을 담
아 보낸 듯 했던  그때 이후로, 폰 메크 부인처럼 절교  통보는 없었으나 오래지
않아 연락이 끊겼다.  가장자리에서 안으로 돌아가는 레코드판의  바늘처럼 중심
으로 들어가기도 두려웠고, 음악을 들으며 불씨를  피우려는 것이 부질없는 안타
까움이었음을 알았던 시절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프랑소와 모리악의  소설 ‘사
랑의 사막
’에는 “우리는  누구나 사랑해주는 사람들에 의하여  다시 만들어지고 또다시
만들어진다. 그래서 그들이  조금만 끈기있게 다뤄준다면 우리는  그들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차이코프스키도 음악애호가들이 생전에  그의 진
가를 알아줬더라면, 아니 조금만 더 좋은  반응을 보여줬더라면 그토록 고독하지
않았을 것이다. 몇 년 전 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 교외에 있는 ‘알렉산드로 넵
스키’ 대수도원의  문화예술인 묘지  한쪽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묘를  발견했다.
그의 흉상이 새겨진  묘비 뒤에는 십자가를 든 수호천사가 지키고  있고, 옆에는
악보를 들여다보는 천사조각이 있는 것이 다른  이의 묘와는 달랐다. 생존시에는
불행한 일생을 보낸 것으로 알았는데 영원한 안식처에서나마 천사들이 수호하고
있는 걸 보고 안심이 되었다. 생존시의 고독을  죽은 후에라도 보상해 주려는 마
음이 담겨 있는 듯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의  영혼은 돌아간 후에도 역시 높
은 곳에 있어서 땅바닥에 그  조각을 세워놓은 이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까
하고 돌아보던 생각이  난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나를 높은
곳, 비현실적인  세계로 떠받들어 주기도  하고 때로는 건강한  생명력을 주는가
하면, 꿀벌이 잉잉대는 숲 속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삶의 핵심으로, 둘레를 맴돌
다가도 잊지 않고 중심을 향해 빙글빙글 돌아오는 사랑의 표정처럼.

   불을 지피는 거인

 “오늘밤, 뉴욕 필하모닉의  대선배 ‘아이작 스턴’의 탄생  축하연주회를 갖
게 되어 영광입니다... 중략...  오늘은 특히 이착 펄만과 핑커스 주커만을 게스트
로 맞아 세 명인의 경연을 즐기게 됐습니다.  세계적인 젊은 연주가 육성에 힘쓴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섭니다. 그는 카네기 홀 임원회에도 나가지  않고 여
기에 왔습니다.  이스라엘 문제도 다루지 않습니다.  세계 곳곳에 건축중인 음악
홀의 음향설계 때문도 아닙니다. 오케스트라의 현  파트를 지도하기 위해서도 아
닙니다. 오로지  그 본래의 최고 목적인  바이올린 연주를 위해섭니다.” 지휘자
주빈 메타(Zubin Mehta, 1936~)의 조크 섞인 소개에 관중들은 폭소와 함께 박수
를 보낸다. 소개가 끝나자마자 무대 왼쪽에서  나오는 스턴의 양손에 바이올린과
활이 각각 한 벌씩 들려 있다. 뒤따라서  양손에 보조장구를 짚고 나오는 펄만을
보고 까닭을 알아차렸다. 펄만이 지휘대만큼 높은 단 위의 의자에 앉고 나자, 스
턴은 바이올린을 건네줬다. 포켓의 손수건을 빼서  턱받침하고 바이올린을 턱 밑
에 댄 펼만이 빈  오른손을 몇 번 펴보이자, 뒤늦게 알아챈  스턴이 활을 재빨리
주어 관중들은  또한번 폭소를  터뜨린다. 나는  지금 아이작  스턴(Isaac Stern,
1920~)의 회갑 축하연주 영상음반을 보고 있다. 화기애애한 준비과정을 지켜보던
지휘자가 단호하게 지휘봉을  치켜들자 현의 합주가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1980
년 가을 뉴욕 필은 개막연주로 ‘금세기 바이올린의 왕자’로 불리는 스턴의 회
갑 축하연주회를 링컨센터의 에버리피셔 홀에서 열었다.  그것은 스승 스턴과 아
들격인 제자  펄만, 쥬커만을 같은 무대에서  경연시키는 뜨거운 자리였다. 주빈
메타가 소개하던 중  “카네기 홀 임원회, 이스라엘 문제,  음악 홀의 음향설계...
” 부분에서 관중들이  웃은 것은 스턴의 분주한  행적을 시시콜콜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링컨센터에 필하모닉 홀이 완성된 1960년도에  낡은 카네기 홀은 헐릴
계획이었다. 그때  스턴은 자신의 연주회를 제쳐두고,  개수비 5천만불 모금운동
등으로 동분서주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음악제와  문화사절 역할 등으로 온
정력을 쏟았다. 관중들은 스턴이 에너지를 연주에만  쏟지 않고 분산했기 때문에
부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가 후원해온 제자들과 실력
을 겨룬다는  사실로 야릇한 흥분을  느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만하다. 선배와
후배, 스승과 제자가 뿜어내는 불 같은 선율에 숨도 크게 내쉬지 못했으리라. 나
는 첫 레퍼토리인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을 보는 것만으로
도 손에 땀이 쥐어진다.  15명의 현과 스턴이 일제히 합주로 시작되는 1악장, 한
소절 지난 뒤에  다소곳이 뒤따라 연주하는 펄만은  입 부근의 근육이 쉴새없이
움직이며 열성인데 비해, 스턴은 여유로워 보인다. 2악장은 스턴이 한 소절 들려
주고 나면 펄만이  고음으로 받는다. 서로 활의 방향이 엇갈리며  열연하는 동안
스턴의 하얀 백발과  펄만의 까만 머리가 대비된다. 어쩌면 스승과  제자의 무언
의 대화가 오가는 듯도 하다. “자네  괜찮은가?” “이만하면 됐습니까?” 인상
적인 2악장이 교묘하게 씨줄,  날줄이 되어 우아한 무늬를 짜고 있다. 양지와 음
지의 교차, 강하고 부드러움의 화합이 이뤄내는 아름다운 서정이다. 흐느끼듯 호
소하는 선율에서 천대와 박해를 이겨내고 뿌리깊은 민족애로 결속해온 유태인들
의 깊은 속내가 느껴진다. 기억 속의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주제가 ‘
선라이즈 선셋(Sunrise Sunset)’이 생각난다.  지붕 위의 악사처럼 위태로운 유
태인의 삶을 그린 영화에서 스턴은 주제가를 비롯, 영화음악들을 연주했었다. 쫓
겨가는 유태인들이 슬픈 바이올린  선율 때문에 더욱 애달파 보이던 영화장면을
떠올리는 사이, 무대 위에선 연주를 마치고 스턴이  활을 쥔 손으로 펄만을 힘차
게 끌어안는다.  그 팔은 왕년의 ‘뛰어난  테크닉, 무한한 음색의  변화, 끝없는
다이내믹스, 그 모든 것을 갖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찬사를 받은 스턴의 초능
력의 팔이다. 무한한  재능과 정력을 다른 활동에 쏟는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받
고 있는 주인공. 그러나  새로 치고 올라오는 무서운 후배들과 한  무대에 설 수
있는 노대가의 관용과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것은  작달막한 키의 아이작 스턴에
게서 느껴지는 거인의  풍모이다. 한 핏줄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불을  지피는 거
인.

   새벽 공원의 안개에 묻혔던 음악

 누구든 학교에 들어가기 전 어린 나이에, 한두  살 위의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서 배운 멋진 노래를  부를 때 부러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한 소절의 곡조나
낱말 몇 개라도 알면 모르는  구절은 어물어물하고 아는 부분만 크게 따라 불렀
던 노래가 있다. ‘아가야 나오너라 달마중  가자’로 시작되는 동요 ‘달마중’
이었다. 시작  부분만 자신있게 부르고  나서 우물우물 하다가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의 1절 끝소절과 2절의 마지막인 ‘달밤에 소금장이 맴을 돈
단다’는 누구보다도 목청을 돋궈 크게 불렀었다.  같은 또래들이 모르는 노래를
아주 조금 아는  것을 스스로 우쭐하게 여기던 시절, 깜깜한  밤길을 걸으면서도
무섭지 않은 척  ‘달밤에 소금쟁이 맴을 돈단다’를 부르며 무장을  했었다. 대
학시절, 재능있고 영리해 보이는 학우들에 위축되어 있을 때, 음악감상실 ‘돌체
’에 친구의 손에 이끌려 갔다. 실내는  어두웠지만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의 찬란하고 힘찬 악상, 비단 같은 울림으로  마음이 밝게 흔들려서 자리를 떠나
기가 아쉬웠었다. 음악감상실을  나오니까 전체적인 감동은 남아 있는데, 이따금
목관악기가 울리는 힘있고 친근한  멜로디만 외워지고 다른 부분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따금 그 짤막한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위안이  됐고 어
릴 때 ‘달마중’ 노래를 따라부를 때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마치 애지중지하던
거울이 깨진 뒤 손바닥만큼  남은 조각거울을 꺼내 보듯이 토막멜로디를 소중히
간직했다. 그러면서도 전곡에 흠뻑  취할 엄두를 못 냈다. 작곡의 유래를 알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하기가  송구스러웠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생애  동안 교향곡
9곡, 32곡의 피아노 소나타, 현악 4중주곡 17곡 외에도 많은 곡을 썼는데 바이올
린 협주곡은 단 한  곡을 썼다. 이 대작을 쓰기 위해 바이올린  소나타를 무려 9
곡이나 작곡하면서  바이올린의 기능과 특성을 치밀하게  연구한 뒤에야 작곡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길고 웅대한 음악의 진가는  1806년 초연 이후 인정받지 못
하고 50여 년이나 묻혀 있었다. 새벽 공원의  안개처럼 이 걸작의 정체를 가리고
있었던 것은 가벼운 음악을 즐기던 ‘빈’  시민들의 취향이었다. 그러나 베토벤
서거 17년 후, 명 바이올리니스트  요셉 요아힘(Joseph Joachin, 1831~1907)이 멘
델스존의 지휘로 연주하여  빛을 보기 시작했다. 이 곡이 바이올린  협주곡의 왕
좌를 차지한 데는 명인 요하임이 자주 연주했던  공도 크다. 인상이 좋은 사람을
처음 만났는데도 어디서  많이 본 듯 여겨지는  속성이 명곡에서도 적용되는 걸
까. 오랜만에 두번째  들어본 이 음악은 고고하게 아름다우면서도 자주  들은 듯
익숙한 느낌이었다.  많이 그리워해서였을까. 특히 내가  기억한 제2주제 부분은
친근하게 다가와 구원의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짙은  새벽 안개가 걷힌 후의 공
원처럼 반겨주는 음악이었다. 베토벤이 이 음악을 쓴 것은 36살 때로, 교향곡 ‘
운명’, ‘전원’을 쓰기  2년 전, 절정에 이르기 직전이었다.  이런 음악사적 이
유 외에도 은밀한 로맨스가  무르익었을 무렵으로 요세피나 백작 미망인과의 사
랑이 불타고 있었다. 하늘로 치솟는 듯한  기백이나 생기롭고 격렬한 다이너미즘
을 담고 있는 것이 로맨스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풍부한 서정이 흐르고 힘이
있어 꿈과 용기를  주는 음악. 베토벤이 이 곡을  쓰기 4년 전, 친구에게 혼자서
고민하던 귓병을 처음  고백하고 죽음을 각오했다. 그러나 유서를 쓰는  중에 마
음을 돌려 “죽을 때까지 신이  준 사명을 따라 인류를 위해 창작하겠다”고 눈
물겨운 맹세를 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아 곧잘 허무감
에 빠진다. 이럴  땐 내면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느껴지고 친밀하게  표현하는 정
경화의 연주를 듣는다.  열기와 번뜩이는 메시지가 느껴지는  것이 유폐되어있던
굳은 씨앗이 껍질을  터뜨려 싹을 피워낼 것같기 때문이다. 여유  있고 평화로우
며 화사한 음색에  빠지려면 펄만의 연주로 감상한다. 어떤 닫힌  문도 열리라는
신호처럼 팀파니의 연주로 시작되는 힘있고 풍요로운  관현악 연주, 그리고 튀어
오르듯 탄력 있는  바이올린 연주의 흡인력이 1악장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한다.
진지하게 듣고 있으면 “감동시킬 수 있는 작품을 쓰게 해달라”는 작곡자의 비
원이 담긴 것 같아 더욱 소중해진다. 위기를  넘어서 새로운 작품으로 일어선 베
토벤의 의지를 닮고 싶다. 첫 소절과 낱말 몇  개만 아는 것으로 노래를 따라 부
르던 어린 날의 사기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이국의 풍경화

 골안개가 자욱한 산허리.  그 어디쯤에선가 은은하게 울려오는  목탁소리와 염
불소리. 이것이 보통사람들이 사찰에 대해 연상하는 소리이리라. 좀 더 근접하면
추녀끝 풍경이 은밀하게 바람에 스칠  때 나는 소리와 중생 구제의 목적으로 사
람이 치는 법고와 범종의 울림도  있지만 어느 것이나 명상과 종교적 신비를 함
축하고 있어서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경건해지는 소리이다. 어느날 레코드실에
서 ‘중국 사원의 뜰에서(In a Chinese Garden)’이란 곡목을 대했을 때도 나는
이런 소리와 맑은  물소리에 젖은 듯 마음이 상쾌하고 차분해졌다.  작곡자는 케
텔비(Albert Willian Ketelbey,  1875~1959)로 영국출신. 뽀족탑과 종소리가  특징
인 성당만 봐온 영국인으로서  동양의 사찰이 얼마나 이색적이었기에 작곡의 모
티브가 되었을까. 적요하고  경건한 사찰의 풍경을 서양악기로  어떻게 표현했는
지 궁금해서  플레이 버튼을 조급한  마음으로 눌렀다. 여느  관현악처럼 서주가
시작되는가 했더니 곧  아라비아풍의 징소리에 이어 남성합창이  이어진다. 카톨
릭의 그레고리안 식인가. 합창이 끝난 후  첼로, 비올라, 오보에로 상냥한 멜로디
도 잠깐 흐른다.  그런데 중국풍의 빠른 행진곡과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
려오더니 다시 남성 합창. 그리고는 새소리처럼  상쾌한 멜로디와 함께 중국풍의
달랑거리는 악기소리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닌가.  경건하고 엄숙한 사찰의 이미지
와는 동떨어진 음악이었다.  합창을 제외하면 경쾌하기는 하나  소란스럽고 재미
있는 이국풍경 같은데 굳이  ‘중국 사원의 뜰에서’란 제목을 붙였는지 의아했
다. 13세기에 ‘마르코  폴로’가 중국과 동방의 문물을  소개하는 ‘동방견문록
’을 출간했을 때  유럽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케텔비의  이 음악도
작은 놀라움을 주지 않았을까. ‘동방견문록’에 소개된  동양의 모습이 당시 유
럽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 많아서 꾸며낸  거라고 지탄받았다는 얘기를
생각하며 이 음악을 들었었다.  절이라면 동양인에겐 풍경소리, 목탁, 법고, 범종
등 소리는 있되 정적인 이미지다. 그런데  서양사람이 보기엔 그것이 부산스럽고
동적으로 느껴지나 보다. 그런 의문을 잊고 있다가 대만에 갈 기회가 있었다. 마
침 대북 시내에서  저녁식사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예정에 없던 사찰 방문을
하게 됐다.  숙소 근처에  ‘용산사’라는 곳이었는데 입구에서부터  수선스러운
인파 때문에 당황했다.  평지에 지붕을 맞대다시피 나지막한 집 몇  채가 있는데
연기가 자욱했다. 회초리만큼  길다란 향을 한 주먹씩이나 불을 붙여서  쥐고 법
당 안의 불상 앞에서가 아니고 바깥에서 절을  하는 사람들. 대웅전을 찾아 보려
해도 매캐한 연기와 소란스러움 때문에 찾고  싶지가 않았다. 퇴근하는 샐러리맨
들이 몰리는 시간이라고 안내인이 설명했으나 전각마다 낯보를 신불들이 수두룩
하고 도무지 경건한  분위기는 아무 데도 없었다. 그때 문득  이상했던 케텔비의
음악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귀국해서 이  음악을 찾아보니 작곡자  자신이 붙인
해석이 있었다.  남성합창은 승려들의 기도소리이고,  중간에 상냥스러운 연주는
연인들의 노래, 그리고  행진곡풍의 연주는 결혼행렬이 흥겹게  통과하는 소리였
다. 소음부분은  시민들의 소리와 도망치는 도둑을  쫓아가는 경찰의 소리, 다시
평정을 찾은 승려들의 노래와 새소리, 이런 순서로 엮은 것이었다. 나는 잠깐 들
려봤기 때문에 젊은  연인들이 향불을 들고 사랑을 기원하는 듯한  표정만 봤다.
그러나 케텔비는 해설에 있는  이색적인 것들을 호기심있게 보고나서 그 생동감
까지 음악에  담으려 했나 보다. 11세  때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할  만큼 재능이
있던 케텔비는 실내악과  규모가 큰 관현악도 많이 썼다. 음악사상  별로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대중의 관심은 많이 끌었다.  이 소품음악처럼 독창적인 아이디
어와 뛰어난  묘사력으로 이색풍경을 그린  참신함, 이 매력으로  인기를 얻었을
것이다. 19세기 초반 동,  서양이 폐쇄적이었을 때 낭만적인 케텔비는 여행을 좋
아했나 보다.  ‘페르시아 시장에서’, ‘이집트의 비경에서’,  ‘목장을 건너는
종’ 외에 이국취미의 관현악소품이 많다. ‘중국  사원의 뜰에서’를 들으며 소
란한 중국 사원을 떠올려 보는 것도 여행 못지 않게 재미있는 일이다.


   손끝에 묻어나는 푸르름

 널 데려갈 수  있다면, 고집센 송아지처럼, 버티고 서 움직이지  않는, 널 데려
갈 수만 있다면, 내가 알고 있는 세상, 그곳으로, 풍덩풍덩 푸른물 튕기며, 난 젖
는 것쯤이야, 그쯤이야

   봄빛 수놓아 주는 빗방울 소리

 남편의 뚱한 성격  때문에 외로움을 탔던 친구가 있다. 라디오를  듣다가도 남
편이 돌아오면 금세  꺼버리고 진공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그야말로 적막강산에
서 오로지 남편이 신문 들추는 소리나 듣는 처지였다.  음악 한 곡 듣는 일이 없
고, 문학서적 한 권 읽지 않는 무드 없는 사람을 만난 것을 개탄까지 했다. 그런
데 어느 비오는 날  남편의 새 모습을 발견했다고 자랑을 했다.  비를 흠뻑 맞고
온 남편은 젖은 옷을  벗기 전에 베란다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궁금한 채 보고
있었더니 이내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빗방울 소리가 그 쪽에서 울려오더라는 것
이다.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봄비소리를 좋아하는 친구는  그 소리를 오랜만에 다
시 들으며 감동했다. 항아리에  옹기뚜껑 대신 스테인레스 쟁반을 덮고, 그 위에
서 울리는  빗방울 소리를 남편은 감상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자신과 같은 기호를  가진 섬세한 감각을 발견하니  봄비 같은 감미로운 기분이
스며오더라는 것이었다. 같은 빗방울일지라도 연 잎  위에서는 도르르 굴러 영롱
한 구슬이 되고,  호수 위에서는 물무늬를 지으며,  마른 땅 위엔 달게 스며드는
비. 빗소리도 듣는 이에 따라 가슴을 훑는 눈물 같고, 혹은 부드러운 속삭임같이
들리는 등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어찌 다  열거할 수 있을까. 생활의 부대낌으
로 빗소리가 추적추적 들릴 나이인데도, 스테인레스  쟁반을 받쳐 놓고 방울방울
맑은 울림으로 듣는 친구네의 산뜻한 감각이  부럽다. 똑같은 빗방울도 예술가가
들으면 이렇게 승화된다.  쇼팽이 세번째 연인 조르주 상드를 만났을  때는 마리
아와의 실연 직후로  폐결핵이 악화 됐을 때였다. 쇼팽은 요양지인  마조르카 섬
에서 상드의 간호로 작곡에만  전념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날 밤, 상드는
외출중이었고 쇼팽은 하염없이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여섯 살이나 연상인 상드
에게 의지하면서도 고독했던 쇼팽은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에 침울
해지는 것이었다. 상드는 자신의 창작생활도 팽개친 채 쇼팽을 극진히 간호했다.
그러나 낙숫물 소리에  지나간 실연의 아픔, 잃어버린 조국 폴란드에  대한 그리
움, 그보다도 인간  본연의 고독에 빠졌었나 보다.  그 밤 낙숫물 소리에 악상을
얻어 전주곡 ‘빗방울’을 작곡하게 된다. 이  곡의 빗방울 소리가 찰랑찰랑하게
울리는 희열보다는  낙숫물이 떨어져서 부숴지고 흩어지는  아픔을 달래는 음악
같다. 어떤  절박함이나 우수가 깔려  있어도 아름다운 음악으로  형상화되면 그
진실은 땅에 스미는  빗물처럼 흔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자연과  인간의 내
적인 연관관계에서 빗소리처럼 우리  삶에 변함없는 리듬과 시정을 풍부하게 해
주는 것도 없으리다. 의재 허백련  화백은 비오는 날, 광주 무등산 속 화실을 찾
은 이국인을 방에  앉히고 문을 열어 댓닢에  부딪치는 빗소리를 들려줬다고 한
다. 숲속  맑은 소리를 들으며 조촐하게  산 예술가의 혼을 알기엔  나는 너무나
속물스러운 처지이다. 빗방울이 제소리가 나려면 알맞은 곳에 떨어져야 한다. 그
좋은 울림을 가려 들으며 그  소리가 나도록 마땅한 것을 받쳐놓는 슬기를 마련
해야 하리라. 전주곡  ‘빗방울’뿐만 아니라 쇼팽이 피아노의 시인이라면, 친구
와 그 남편은  생활 속의 시인들이다. 이방인에게 댓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
게 한 화백은 시심을 지펴주고 자연과의 교감을  열어준 것이 아닐까. 봄비 소리
는 온갖 빛깔을 내려주는  소리이기도 하다. 기다림, 그리움, 설레임, 기대감으로
가슴에 수를 놓게도 한다. 초조하고, 절망하고, 원망하고, 불안하며 긴 날을 방황
해 온  현실에서 환상을 품게 할  따스한 빗소리가 아쉽다. 작은  빗방울 소리는
우리 곁에서 이내 사라진다.  그 소리가 그치더라도 삶의 소멸이 아니라, 그들이
지나온 짙푸른 숲속, 향기로운  꽃 이파리, 아름다운 그들의 신화로 마련되는 계
절의 잔치를 누린다. 빗방울 소리가 생활에  여운을 주는 전령사의 방울소리처럼
정겹게 다가오기를.

   한낮의 청량제 같은 새소리

 강물에 치렁한 버들가지가 초록빛을  풀어낼 것 같은 강가를 내다보면서 출근
을 한다. 이런 화창한  날엔 소풍가듯 걸어나가서 점심을 먹으리라 작정하며. 납
작지붕 또순이네 집 앞엔 신문을 보며 느긋하게 기다리는 사람들과 초조해서 유
리창 안을 기웃거리다가 돌아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리는 걸어온 길이 아
까워서 긴 줄  끝에 서서 출입문 쪽만 야속하게 바라보았다.  멸치토장국에 푸르
게 데친 연한 배추와 빨간 고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은 시원하고 구수한 국물 생
각에 오랫동안 군침을 삼켜야 했다. 기다린  억울함을 과식으로 메우고 허겁지겁
사무실에 돌아왔으니 잠이 쏟아질  수밖에. 얼마쯤 눈을 붙였을까. 꿈결인 듯 진
동하는 새 소리에 눈을 떠보니 예쁜 새는 흔적없고 안경 쓴 후배가 오디오 옆에
서 싱글거리고 있다. 잠든  선배들을 깨우려고 음악 볼륨을 높였던 모양이다. 다
시 볼륨을 낮춰서 들려주는 플루트 곡이 예쁘고 경쾌해서 잠 깨운 것쯤 화도 나
지 않는다. 곡목을 물으니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플루트 협주곡
이라며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는데 문득 여학교 때  있었던 일이 생각난다. 창 밖
엔 녹음이 한창이고 바람결에 작약꽃  향기가 묻어오는 교실 안엔 졸음을 못 이
겨 끄덕거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를 쓰는 ‘사각사각’ 소
리만 들려올 뿐  조용했는데 교실 뒤편에서 ‘어마!’하는  외마디 소리가 났다.
“새, 새가 들어왔어”하며  급우가 가리키는 교실 벽 액자 위엔  새가 ‘쭈이쭈
이’ 지저귀며 앉아 있었다. 쫓아내 버리라는  선생님의 명령으로 날려보낸 새를
아쉬워하며 졸음도 멀리 달아났던 여학교 때 새  소동 생각이 난다. 모양새도 잘
못봐서 무슨 새인지 모르지만 영롱하던 지저귐만은  잊혀지지 않았다. 이 음반의
곡이 그 때 들었던 것처럼 영롱한 새  소리여서 처음부터 다시 들어보았다. 관현
악 반주로 박자를  맞추듯이 새가 지저귄다. 상쾌하고 활기찬 소절에  주위가 다
눈부신 것 같다.  이어서 조용한 쳄발로 연주로 우아하며 애상적인  멜로디가 흐
른다. 새 소리가 이제나 나올까 저제나 나올까  기다리게 하더니 다시 빠른 템포
의 새 소리와 함께 새 악장이 시작된다. 드디어  입 예쁜 여러 마리의 새들이 고
혹적으로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홍방울새로구나.” 비발디의  플루트
협주곡 중에 ‘홍방울새’란 표제가 붙은 곡명이  생각이 난다. 비발디가 학생들
에게 가르치려고 쓴  ‘홍방울새’. 비발디는 베네치아의 ‘피에타’  구빈원 음
악학교에서 40년간 음악을 가르쳤다. 낭만의 도시  베네치아에는 쾌락을 쫓는 무
분별한 생활 때문에 태어난  기아, 사생아를 수용하는 시설이 많았다. 피에타 구
빈원도 그 중의 하나. 그 부설 음악원은 높은 담, 엄격한 규율에 매인 금남의 집
으로, 학교라기보다 수도원 같았다. 특별한 면회를 제외하고 창문 너머로 음악소
리만 울려나올 뿐이어서  신비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기도  했다. 비발디
는 이런 호기심과는 달리 가족의 사랑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미래를 꿈꾸는 밝은
길을 열어주려고 열심히  가르쳤다. 아이들이 반복되는 연습을  지루하지 않도록
연습용 음악과 대외 연주용 창작곡도 써서 지도했으며,  그 결과 이 젊은 여성들
의 음악회는 천사들의 소리로 칭송을 받았다.  ‘리듬이 쉽고 자연스러운 것’이
특징인 비발디의 음악답게  이 ‘홍방울새’도 쉬운 곡이다.  쉬운 리듬이면서도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곡의 중간중간에  플루트로 홍방울새가 지저귀는  가락을
연주해 신나는 역동감이 있다. 여학교 때 예쁜  새의 침입으로 잠이 달아났던 것
처럼 이 곡은 우리 사무실의  잠 깨우는 음악으로 삼으면 작곡가에게 실례가 될
까. 음악적으로  “비발디가 쓴 것  가운데 가장 순수하고  가장 매혹적”이라고
평가받는 ‘홍방울새’. 식곤증을  털어내고 생기 있게 일한다면  비발디 자신의
의도가 적중한 것 같아 오히려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바다는 바다를 낳고

 친구에게 ‘메트로폴리탄 미술박물관’  발행의 모네 그림 주소록을 선물받았
다. 초록빛  바다에 흰 돛단배들이  떠 있는 ‘생타드레서의  보트대회’ 그림의
표지를 넘기면, 알파벳  순서로 ‘수련’, ‘몽소 공원’,  ‘사과와 포도’등 명
화가 한 장씩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다. 책상머리에 놓고 가끔  들춰보고 있어서
표지그림 ‘생타드레서의 보트대회’는 아주 눈에 익어  버렸다. 엷은 청색과 연
녹색 바탕에  진초록빛 물감으로 듬성듬성  붓자국을 내어 물결을  묘사한 바다.
바다 뒷편에 하얀  돛을 활짝 편 보트들이 떠  있고 왼쪽 해안에는 작은 마을이
한가로운데 모래톱엔  보트대회를 구경나온  사람들이 서성거리고 있다.  간결한
터치가 첫눈에도 긴장감  없이 시원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좋은  그림을 보
면 한번 가보고 싶은 욕구와 미적 감흥만 조금 일어날 뿐인데 천재는 천재를 알
아보는지 모네의 그림들에서  영감을 얻은 음악가가 있다. 인상파 화가의  한 사
람인 모네는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애매모호한 인상만을 그렸기 때
문에 일반인들은 비웃고  화단에서도 무의미한 화풍이라고 무시를  당했었다. 그
러나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  1862~1918)는 인상파 화가들과 친하게 지
냈고 그 그림들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고 한다.  드뷔시 작품 중 최대의 관현
악곡인 ‘바다’도 그  중의 하나여서 그림만 보면  생각나서 자주 들으려고 한
다. 드뷔시는 파리  근교의 도시 생 제르맹  앙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칸의
고모댁에 가서 바다를 본  뒤로 열정적으로 바다를 좋아했고 성장하여 ‘바다’
라는 제목의 교향시를 작곡했다. 바닷가에서 태어났거나  바다에 가보지 않은 사
람이거나 저마다 떠올려보는  환상으로 바다는 변화무쌍한 존재이다.  몽상에 잠
기기 좋아하는  이에게 바다는 한없이  넓은 창조의 공간이기도  하다. 드뷔시는
기존의 것을 부수면서 새로이 태어나는 파도를 보며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창의
력을 키웠을까. 그래서  개혁적인 인상파 그림을 인정하고, 음악에도 전통양식에
서 벗어나 인상파  회화의 수법을 음악에 도입하여 현대음악의 문을  열었다. 그
리고 새로운 음계를 창안해서 대담한 화성으로 색채와 빛을 중시하는 음악을 환
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반응은  어땠을까. 리드미컬한 템포와 감미로운
멜로디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난해한 음악을 외면을 했을 것 같다.  현대인의 입
장에서도 처음 들었을  때는 당황하여 해설을 찾아 봤었다. “음악에  의한 심상
화”, “바다의  단순한 묘사가 아니고  마음에 투영된 바다의  움직임을 풍부한
표현력으로 묘사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지금은 얼마만큼 익숙해져서 ‘
바다’를 들을  때면, 드뷔시가 ‘바다’를  작곡하는 동안 겪은  사랑의 열병을
떠올리기도 한다. 유부녀 엠마와 사랑에 빠져서  아내는 자살소동을 일으켰고 주
변의 공격과 비난으로  드뷔시는 사면초가였다. 그럴수록 음악  속으로 도피하여
몰두했었던 그. 마법에  걸린 듯 신비로운 바다가 깨어나서 생기  넘치는 한낮의
밝은 바다로 변하기까지를 그린 1악장  ‘새벽에서 한낮까지’, 다채로운 빛깔의
파도가 움직이는  환상의 세계인 2악장  ‘파도의 유희’, 3악장은  거친 돌풍과
파도가 눈에 선한 ‘바람과 바다의 대화’이다.  전체적으로 바다의 힘과 아름다
움이 연상되고 하프와  관악기가 인상적으로 구성된 매력도 놓칠 수  없다. 파도
가 또 다른 파도를 부르듯 인상파 미술이 인상파 음악을 부른 것 같아 범인으로
서 확산되는  예술세계를 보며 뿌듯한 감회를  갖는다. 영원한 바다, 태고적부터
오늘날까지, 또 반대편  끝에서 이쪽 끝에 이르기까지 영겁의 시간과  공간을 하
나로 이어주는 것도 알고  보면 파도가 또 다른 파도를 부르는  힘이 아닐까. 드
뷔시의 바다를 들으면서 어느 이름없는 예술가는 또 어떤 작품을 낳을지도 모르
겠다. 그래서 예술은 영원한  것이다. 어제의 파도가 오늘의 파도가 아니듯이 파
도가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바다는 또 새로운 바다를 낳고...

   노래하지 않는 새에게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어,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이수익  시인의 ‘우울한 샹송’ 마지막 연을 읽으면  지금 우
리는 사랑뿐만 아니라  자연도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시인처럼
‘우체국’이 아닌 어느 곳에서 서성거리며 잃어버린 실체를 회복하고 상실감을
위안받고 싶어진다.  나는 이따금 하이든의  현악 4중주곡  ‘종달새’를 들으며
어쩌면 그런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정 많고 자연을 사랑하고 낚시,
사냥을 즐긴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은 자연의 소리를 작품에 모사하
는 시도를 자주  했다. ‘러시아 4중주곡’에서의 새 소리와  피날레에서 개구리
소리를 내는 ‘개구리  4중주곡’, 그리고 1악장과 4악장에서 종달새  노래를 모
사한 ‘종달새’도 그 중의 하나이다.  1악장의 앞부분에서 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경쾌한 울림을 시작하면 살며시 날아오른 듯이 제1바이올린의 높은 가락
이 종달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계속된다.  서두에서부터 그 맑고  투명한 울림에
어깨가 들썩거려지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집안이 너무 가난했던  하이든이 헝
가리 귀족 ‘에스테르하찌’가의  부악장으로 정착했던 것은 서른살  때로, 풍광
이 아름다운 도시 아이젠슈타트에  자리잡고 있던 에스테르하찌 궁에서 생활 걱
정없이 보낼 수 있었다. 더욱이 에스테르하찌궁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을 본따
서 지은 호화로운 곳이었다.  그런 별천지 같은 성벽 바깥에 정원을  잘 꾸민 작
은 집을 지어  여름엔 그곳에서 작품을 썼다니 궁전 안이나  작업실, 어디에서고
새 소리와 자연이 빚어내는 소리와 벗했을 하이든이  쉽게 연상된다. 이 곡은 악
단원 토스티가 독주자로 독립해서  떠날 때 선배인 하이든에게 작곡을 부탁했던
작품이다. 종달새를 닮은  바이올린 연주부분이 들어있어 일명  ‘종달새’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하이든이 이 작품에서  종달새 소리를 모사한 것을 다
른 음악작품에서 자연의 소리를 모사한 것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나의
편견일까. ‘종달새’의  1악당 첫머리는 마치  토스티가 악단을  떠나 자유로운
무대로 떠나는 것을 축하하듯이 신선한 감흥을  주며 시작되어, 꿈꾸듯 노래하듯
가슴을 출렁이게 하는 멜로디로 꾸며져 있다.  어쩌면 하이든 자신도 궁정악장의
부자유스러운 처지에서 벗어나 종달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은 심정을 가졌음직
하다. 이어지는 2악장은 감미롭고 많은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상냥하고 아름다운
악장이 면면히 계속되는데 다소 애상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A장도와 a단조의 변
화 때문인가, 아니면 작곡자인 예술가의 고독이 배어나오는 것일까. 실패한 결혼
으로 인한 하이든의  결혼생활을 떠올리는 것은 공연한  선입견이리라. 궁정음악
가로서 생계수단으로 귀족들을 위해 작곡, 반주하며  살아야 했던 예술가의 고독
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하이든은  생계수단이었던 음악과 함께 개인예술
가로서의 변신을 시도하여 부단한 노력 끝에 오늘에도 기쁨을 주는 음악가로 성
공했으니 그런 기분에 오래 잠기지 않아도  된다. 즐거움에 깡충거리는 듯한 3악
장 미뉴엣, 4악장 비바체도 네 악기의  아름다운 조화와 기교의 변화가 이어져서
하늘 높이 나는 종달새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악단원들이 신뢰하고 존경하여
‘파파 하이든’으로 불린  하이든이었다. 토스티가 장애없이 훨훨  날으라는 기
원이 담긴 것처럼 느껴져서 상쾌하기도 하다.  하이든은 지휘자로서 이따금은 바
이올린이나 쳄발로를 연주하면서  지휘했는데 그때마다 무아의 경지에 빠지거나
미소를 머금어 보기에도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 ‘종달새’야말로  연주자의 입
장인 후배 토스티에게 무아의 경지에 빠져서 연주하는  즐거움을 준 것 같다. 신
선한 감흥을 잃고 사는 지금의 우리에게 현악4중주곡 ‘종달새’를 들려 준다면
본래의 순수한 감성이  되살아나 진정한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자
연을 잃어버린 도시인들에게는 청량한 새 소리의  기억을 되찾아주고, 인정이 메
마른 이에게는 하이든처럼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해줄 수  있지 않을까.
단순, 소박한 자연의 생활을 멀리하고 쓸데없는  탐욕과 이기심에 젖어있는 우리
에게 아우성 대신  소박한 새의 노래가 아쉽다. 피천득 님의  수필 ‘종달새’를
보면 “중국 고궁  담 밖에 조롱을 들고 섰는  노인들이 있는데 궁 안에서 우는
새 소리를 들려주느라고 서  있는 것이다. 울지 않던 새도 같은  종류의 새 소리
를 들으면 제 울음을 운다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조롱 속의 종달새는 궁
궐 안 숲 속에서  우는 종달새 소리를 들으면 제 울음소리를  되찾을 수 있지만,
노래를 잃어버린 새 아닌 지금의 우리는 어떤 소리로 잃어버린 것
을 되찾을 수 있을까. 고통에 찬 비명과  아우성이 아니라 즐거운 삶에서 울려나
올 노래, 그 소리를 그리워하며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
까”하며 서성이는 시인처럼 나는  오늘도 현악 4중주곡 “종달새” 1악장의 맑
고 투명한 울음을 가슴으로 듣는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문이 확 열리면 준마들이 뚜벅뚜벅, 금슬장식의  기마병을 태우고 당당하게 들
어온다. 이렇게 시작되는 비엔나 신년음악회는 세계인에게  힘찬 새해를 맞게 해
준다. 30년 전만 해도 유럽지역에만 생중계되던  신년음악회, 이젠 동, 서양 오지
에도 위성중계되어, 멋진 멜로디로  동시에 들썩거리게 한다. 50여 년 동안 신년
음악회가 열린 뮤직페라인 홀의  천장과 벽, 기둥의 수려한 장식, 조명도 현란해
보인다. 어제와 다른 오늘,  아니 작년과 다른 새해가 왔음을 지구인들에게 일깨
우고 신비와 감탄으로 설레게 한다. 해마다  레퍼토리는 왈츠인데 그중에서도 꼭
빼놓지 않는 곡을 발견했다. 힘찬 ‘라데츠키  행진곡’과 ‘아름다운 푸른 도나
우’왈츠로 이  두 곡은 마지막이거나  아니면 끝에서 두번째로  연주된다. 연주
홀 청중과 함께 신나게 환호하고 ‘라데츠키 행진곡’에서는 박수치며 어깨까지
들썩거리게 된다. 그러나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가 시작되면  으레 숙연해져
서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잔 물결 같은  바이올린 서주와 물결이 넘실대는 듯한
관현악 연주로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리듬은 가슴을 울렁거리게 한다. 지휘
자에 따라 다른 강도로.  1980년대에 일곱 차례, 1990년대에도 두 차례나 지휘했
던 로린 마젤은  이지적인 지휘로 연주자와 청중이 하나 되게  이끌었다. 그러나
인상적인 두 거목이 잊혀지지 않는다. 1987년도의  지휘자였던 헤르베르트 폰 카
라얀은 여든 살의 완만한 듯한 제스처였으나  싱싱한 선율을 끌어내었고, 1990년
도의 레너드 번스타인은 관중석에선 보이지 않는 받침대에 의지하고 지휘했으나
우미한 선율을 창출해  냈다. 젊은 날의 불꽃과 날카로움 대신  부드럽고 진지하
여 과연  거목의 의연함이 느껴졌다.  특히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를 지휘할
때는 감정을 누르고 승화시키려는 의지가 감지되었다. 두 분 다 이제는 고인. ‘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는  여느 왈츠와는 다른 유래가 있다.  오스트리아 제2의
국가 격으로 신년음악회라든다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는 꼭 연주되는 음악이
라는 사실을 몇 년 전에야 알았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와 함께 오랜 동안 유럽
의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1866년, 이웃 나라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국
민들의 의기가 소침해져 있을 때였다. 당시  남성합창협회의 지휘자 헬베크가 국
민들의 기분을 일신시키고  용기를 주려고 요한 슈트라우스2세에게 합창곡 작곡
을 의뢰했다. 슈트라우스2세는 이미 작곡가로서  ‘왈츠의 왕’으로 인정받고 궁
정무도회의 지휘자로 활동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흥취를 불러일으키는
유려한 왈츠는 많이 썼지만, 합창곡과 같은  성악곡은 자신이 없어서 거절하다가
할 수 없이 승낙을 했다. 그리고는 구상을 하려고 비엔나 교외를 거닐었다. 비엔
나 사람들에게 있어서 도나우강은 우리 한강처럼  유구한 역사를 자켜본 강이다.
알프스에서 시작되어 북쪽  비엔나를 지나는 긴 강. 슈트라우스2세는  비엔나 교
외에서, 사람들의 고통과 불안과는 관계없이 봄을  맞아 생동하며 변화하는 산과
강을 보았다. 나라의 흥망과는 관계없이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거
기서 비엔나의 마음을 발견했다. 아름다운 여인이여 세상 번뇌를 견뎌내리, 기품
이 있고 젊음이  넘치는 그대와 만나리, 우리들 마음 의지할  곳, 도나우강 기슭,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기슭... 이렇게 시작되는  칼 베크의 시가 생각나서 제목
을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로 했다. 곡은 자신이  쓰고 가사는 칼 베크의 시를
바탕으로 게르네르트가 다시  썼다. 그런데 남성합창곡으로는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몇 달 후 편곡된 관현악  연주로 대성공을 거두고 단기간에 세계
적인 인기를 얻게 됐다. 오랜 동안 유럽동란에  시달리면서 위안을 얻기 위해 왈
츠가 성행했던 오스트리아,  1월과 2월의 무도회 계절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말할 것도 없이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왈츠이다. 힘찬  합창곡으로는 왈츠다
운 맛이 덜해서 유연한  관현악 연주로만 무도회장이나 신년음악회 등 축하행사
장에서 연주된다. 현대의 빈  사람들은 비록 가사 없는 연주에 맞춰 춤추면서도,
조상들이 패전으로 침체했다가  활력을 되찾은 사실을 상기할까. 19세기, 덴마크
국민들이 프랑스, 영국, 독일의 침공으로 피폐해진 땅에서 국민들이 허탈한 상황
에 빠졌을 때 활기를 회복시켜준 것도  그루빈트라는 애국자의 노래였다. 방방곡
곡 다니며  그동안 보여줬던 국민들의  용기와 애국심을 찬양하고,  용사 ‘필터
윌모스’를 칭송하는 노래 ‘소녀여 이리 오라’를  써서 합창하게 했다. 덴마크
는 그 결과 국민들이 단결,  노력하여 잘 살게 됐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의 힘
차고 늠름한  연주를 들으면서 희망을  품고, ‘소녀여 이리  오라’를 부르면서
용기를 가졌던 것처럼 우리도 성실하게 제2의 한강의 기
적을 꿈꾸어야 할  때다. 올해는 제2의 도약을 꿈꾸는 물결이  우리 모두의 가슴
에서 출렁거리기를.

   아는가 그대는 저 남쪽 나라를

 강심으로부터 지펴온 안개가  남이섬을 뒤덮고 있다. 해가  떠오르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할 새벽인 데다가 안개라니, 깜깜하기 이를 데 없다. 1박2
일의 직장야유회로 이 섬에 왔다가  근무 때문에 몇 사람만 새벽에 서울로 떠나
기로 했는데, 우리 방갈로에선  나 혼자만 해당자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숙소를
나와보니 동서남북도 짐작이 안되고 얼떨떨하여 발길이  선뜻 떼이지 않는다. 그
런데도 온갖 새들은 벌써 깨어나 축제라도 연  듯 요란하게 지저귄다. 뾰족한 부
리로 안개를 헤치려는지 다투어  지저귀는 소리가 출발을 주저하는 나를 떠다미
는 듯하다. 선착장으로  가려면 포플러나무 사이의 오솔길을 지나고 조금  더 가
면 넓은 잔디밭, 그리고  식당이 있었고... 어제 낮에 익혀둔 대로 가보려고 발길
을 옮긴다.. 조심스럽게  내딛는 발목으로 이슬이 튀어오르고 상쾌한 풀꽃내음도
묻어오는데 기억해둔  반반한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마침  포플러인 듯한
나무둥치가 보여서 그  곁에 서서 시야를 넓혀본다. 오던 길에서  왼쪽이 선착장
으로 가는 길 같다. 조금 지나면 작은  꽃밭이 있었고 관목울타리가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 옆으로 농구대가 있는 잔디밭이었고, 그 길을 가로질러서도 선착장
은 갈  수 있었다. 나는 아는  길이라고 자신있게 여기고 한참  동안을 걸었는데
상큼한 풀냄새 대신  쿰쿰한 동물냄새가 풍겨오는 것이다. 시계를 보니  배가 떠
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마음이 초조해진다. 온갖 새 소리는 발길 닿는 곳,
어디에서도 울려 가깝게 들리고, 손만 내밀면 파르르  날아오를 것 같은데 한 마
리도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안개는 비단자락처럼 끌리며 계속  내 뒤를
따라오고, 어느 길이  맞는다는 확신도 없어 몇 발자국 내어딛다가  다시 멈춰섰
다. 방향도 모르고 헛디디는 것이 무슨 마술에라도  걸린 것인가 왈칵 겁도 나지
만 휘휘 둘러봐도  안개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주위를 감싸고만 있다.  안다고 생
각했던 길을 잃고  나니 행복이니 사랑의 실체도 우리곁, 아니  마음속에 있는데
못 찾는  것이란 말이 떠오른다. 지금  내 앞에는 작은 물방울로  이뤄진 안개가
훼방꾼이지만, 더러운 욕심에 가려 반만 뜬 눈으로  추구하기에 못 찾는 것일 게
다. 때로는 함정에 빠져서 지금 내 경우처럼  새들이 빠른 입놀림으로 바로 여기
라고 일러주는 소리를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
키며 풀밭에 앉으니,  모든 사물과 일상의 일이 차단된 공간에서  아늑함이 느껴
진다. 나도 모르게 읊조려지는 노래. “아는가 그대는 저 남쪽 나라를 귤이 무르
익고  장미꽃  향기나며  바람은  고요한데  새는  노래하고...”  토마(Ambrois
Thomas, 1811~1896) 작곡의 오페라 ‘미뇽’에서 이  아리아를 부른 ‘미뇽’도
인생의 여러 함정을 거친다. 미뇽은 원래 이탈리아  귀족의 딸로 어렸을 때 집시
에게 유괴되어 천한 집시 댄서가 된 후  두목에게 학대받는다. 그 함정에서 빌헬
름이라는 청년이 구출해주는데, 그와 함께 흥행극단에  가담한 미뇽은 여배우 필
리느를 사랑하는 빌헬름을 짝사랑하는 함정에 다시  빠지게 된다. 하나의 함정에
서 벗어나면 기쁨일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절망에서 괴로워하게 되는 미뇽을 생
각하다가 언뜻 새  소리 사이로 사람들 소리가 들린 듯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옛날 어렸을 때 길을  잃으면 강둑에서 들려오는 버들피리 소리로 방향을 잡
았던 기억도 새로운데, 어느덧 안개가 엷어져서 저만치까지 틔어진 길이 보인다.
물큰한 밤꽃 냄새가 풍기는  밤나무들을 지나 얼마쯤 가니 저만치서부터 안개가
열리고 나타난 세계,  강물에 촉촉히 머리를 적신 버드나무가 초록빛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착장엔 함께 떠나기로 한 동료들의  모습이 아
직 보이지 않는다. 나처럼  어디서 길을 더듬고 있거나 늦잠을 자는가보다. 강변
에서 흔들리는 풀잎들을 보고 서 있노라니 어느덧 해가 건너편 산에서 솟아오르
고 있었다. 발 밑엔 이슬에 젖은 풀꽃과  그 위로 나뭇가지에 투명하게 매어달린
이슬방울. 이  찬란한 풍경 앞에서  가슴이 아릿해오는데 강물  쪽에서 물새떼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아! 조금 전까지 보이지 않던 귀한 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찬탄의 소리가 새어나온다.  오페라 ‘미뇽’에서 빌헬름이 미뇽의  옛날을 물었
을 때 “아는가 그대는 저 남쪽나라를. 귤이 무르익고...”하는 노래로 자신이 태
어나 자란 고향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는데, 남이섬의 해맑은  아침풍경을 보니
바로 여기가 그  남쪽나라가 아닌가 여겨진다. 미뇽은 청년 빌헬름이  여배우 필
리느 때문에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자 연못에 뛰어들어 죽으려고 한다.  그때 한
늙은 악사가 구출해주는데 미뇽을 자살의 함정에서 구해준 늙은 악사는 바로 미
뇽의 아버지이다. 어린 딸이 유괴된 후 정신이상이 되어 서로 알아보지 못
하는 부녀지간. 그뿐인가. 늙은 악사는 성에 불을 질러 미뇽이 화염에 갇히게 되
고 다시 빌헬름에게  구출된다. 미뇽은 이탈리아의 풍광 좋은 성  안에서 휴양을
하며 늙은 악사의 도움을 받던  중 악사가 기억을 회복하고 미뇽이 자신의 잃어
버린 딸임을 알아낸다.  안개 걷힌 남이섬을 뒤돌아보며 우리의 삶도  사랑도 함
정여행의 계속이라는 생각이 뼈저리게 든다. 행복이나  사랑을 찾는 도전에 무수
한 함정이  도사리고 있고. 어떠한  곤경이나 슬픔에 처해  있을지라도 헤어나올
수 있었던  것은 사랑과 희망의  힘에 의해서였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아는가
그대는 저 남쪽  나라를...” 다시금 가사를 기억하려고 노래를  읊조리노라니 동
료들 셋이 뛰어와서  어서 배에 오른다. 남이섬을 떠나며 배  위에서 뒤돌아보니
버드나무 사이로 섬이 흔들리고 머리를 들어보니 북한강의 우뚝한 산봉우리들이
주욱 이어져서 강물까지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베토벤의 숲에서

 냇물 위에 뜬 꽃  이파리가 바위에 부딪칠 듯 부딪칠 듯  떠내려가고, 냇둑 위
의 삐삐꽃이 흔들리며  배웅하자 돌 밑에 몰려  있던 송사리떼가 놀라서 흩어진
다. 그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 키 큰  나무 위에 얹힌 까치 집.  조용하게 일던
바람이 자는 듯하더니  ‘뻐국 뻐뻐국 뻐꾹’ 은은하게 들려오는 새  소리. 관광
버스 안에서 내다보이는  창 밖엔 하얀 눈발이 흩날리는데, 차내  스피커에선 새
들이 지저귀는 시냇가의  아카시아 향내라도 풍겨올 듯한 ‘전원교향곡’의 2악
장이 흐르고 있다.  베토벤이 ‘전원교향곡’을 작곡했다는 비엔나  숲으로 향하
는 길. 버스 안의  일행은 저마다 음악에 취하여 어떤 상상의  나래를 펴는지 모
든 이의 표정이 흐믓해  보인다. 숲 입구에 이르니 가늘게 뻗친  잎 떨군 나무가
지 위로 나풀나풀  눈발이 얹혀 여행자의 들뜬  기분으로는 오선지 위에 음표가
얹힌 것 같다. 그런가하면,  멀리 숲의 나무들은 파스텔화처럼 부옇고 희미한 윤
곽으로 나그네들의 몽상  속에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지금 차 안에  흐르고 있는
‘전원교향곡’ 2악장의 행복한 리듬 속에는 언젠가  카드에서 본, 찌를 듯한 전
나무숲과 빨간 지붕의  별장 같은 집이 기대되어  환성이라도 미리 터져나올 것
같다. 어렸을 적  ‘전원교향곡’을 들으면 비엔나 숲은 온갖 신비와  기쁨이 서
려 있을 것 같았다.  깊은 골짜기와 맑은 시냇물, 싸리며 찔레, 튤립, 산딸기덩굴
등 향그러운 식물이 들어찬 산속을  연상했는데 오늘 드디어 이 길을 가게 되니
자동차 속도가 무척이나 더디게 여겨진다. 아직도  입구 부근이어서 눈발 사이로
산의 완만한 능선만이 드러나고 산비둘기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기암괴석과
푸르른 소나무가 간간이 보이는 동양적인 산의  정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적도 없는 태고의  침묵과, 보이지 않는 비밀을  감춘 듯한 숲에 서리는 눈발.
차에서 내려서 ‘야아’하고 소리를  지르면 숲을 돌아 아름다운 멜로디로 화답
해 올 것처럼 고즈넉하다. 시골 외가에서 새벽에  뒷간에 가고 싶지만 대숲을 스
치는 바람소리만 들려올  뿐 무서워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마침 부엌언니가
일어나는 기척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도  부시시 일어나  따라나가서 나무로
얼기설기 가린 임시  뒷간으로 갈 수 있었다. 뒷간에서는 언니가  움직이는 모습
이 어렴풋이 보였다. 언니는 마당에 쌓인 눈  덮인 생솔가지를 아궁이 앞으로 끌
어다가 군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처음엔 불이 잘 안 붙는지  성냥불과 쏘시개로
실갱이를 하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 화닥닥 소리와  함께 불꽃이 활짝 일었다. 그
때 어둠으로 막혔던  주위가 투명하게 열리던 새벽. 매캐한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흠뻑 흘리며 군불을 다시 피우고 방안으로 들어온 언니의 몸엔 매캐하면서도 상
큼한 청솔냄새가 배어 있었다.  지금 샛푸른 전나무에 얹히는 눈발을 보니, 눈물
을 펑펑 흘리며 불을 때서  방에까지 생솔가지 연기가 들어오던 그 새벽의 냄새
가 여기서도 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스물두 살에  고향인 본을 떠나 빈으로 와서
쉰일곱 살로 숨질 때까지 살았던 베토벤은 서른한 살때 귓병을 고쳐보려고 비엔
나 근교의 숲속, 온천이 있었던 하일리겐슈타트에 찾아왔었고, 치유의 가망이 없
어진 다음에도 3년이나  머물면서 ‘전원교향곡’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썼다는
얘기를 상기하는데 음악은 ‘3악장’으로 이어져서 마을처녀들이 빠른 발놀림으
로 추수를 축하하며 춤을 추는  장면이다. 이 감미롭고 흥겨운 선율. 귀가 안 들
려서 자살을 결심하고  절망과 고뇌 속에서 신음하던 베토벤에 비하여,  정작 잘
들을 수 있고 추위와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환경에서 우리는 온실 안의 화초처럼
너무 안이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자책이 인다. ‘주위의 생기와  감동만을 요구
하며 정작 나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으로 차창을 닦
으며 내다보니  눈발이 더욱 굵어진다.  청력이 마비된 베토벤은  창작의 영감을
찾아 이 숲을  헤매다가 어느 날엔 큰  소리로 멜로디를 흥얼거렸다는데 여기서
얼마나 들어가는 골짜기에서였을까. 앞자리에서  누군가 음악의 볼륨을 조정하는
듯하더니 음악이 다시 1악장의  중간쯤 부분부터 시작된다. 아무려면 어떠랴. ‘
전원교향곡’은 어느  부분을 들어도 화평과  기쁨이 넘치는데.  더욱이 1악장은
베토벤이 밝힌 표제에서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한 기분”이라고 했다는데
나는 그 상쾌함이  새벽의 것으로 짐작된다. 아침해가 상큼하게 바다  위로 솟는
듯한 시작에 이어서, 새들이 깃털에 묻은  아침이슬을 털어내며 날아오르는 것을
연상시키는 도입부분.  조용히 평원에서 나래를  접었다가 다시 발  빠르게 뛰고
높이 떠서 행진하는  느낌 등, 들을 적마다 다른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음악을 끊고 찌직찌직 마이크 잡음이 들리더니 투박한
안내인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오늘은 눈  때문에 베토벤의 산책로와 기념관이
있는 ‘하일리겐슈타트’관광을 단념하셔야겠습니다.  저 눈 내리는 것  좀 보십
시오. 미끄러워서  차를 여기서 돌려야겠습니다.”  아니, 이게 웬 청천벽력인가.
길에 눈이 많이 쌓이지도 않았는데 관광을  포기하라니. 일행들도 여기서 내려서
기념사진이나 찍자거니 그냥  가보자거니 하고 술렁거린다. 나는  버스에서 성큼
내려서 버스 근처에서 일행들이 사진을  찍는 동안 숲 쪽으로 재빨리 발길을 돌
렸다. 눈발은 머리 위로  뺨으로 떨어지지만 손길이 닿으면 이내 녹아버린다. 차
갑게 볼에 스치는 눈은 이내  녹아서 형체를 소멸해 버리지만 나무 밑에 스며서
봄에 이파리를 피워낼  열기가 되리라. 베토벤에게는 과연 어떤 것이  저 눈처럼
소롯이 내려앉아 오묘하게 스며서  영혼의 깊은 바닥을 자극했기에 아름다운 멜
로디를 자아내게 했을까.  혼탁한 인간세계에서 순수함을 찾아  오롯하게 명곡을
엮어내게 한 힘이 무엇이었을까.  장애물 없는 인생이란 기대할 수 없고, 장애를
극복하고 목표에 도달하려는 의지가  귀하다는 것이 언제나 낡은 얘기라고 일축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계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상황에서  속세의 소리를
단념하고 오로지  자연의 느낌을 들으며  창조의 불꽃을 태웠던  베토벤의 의지.
나는 어렸을 때 생솔가지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이유를 어른들에게 물었었다.
눈가루가 얹힌 꽁꽁  언 것이 어떻게 타느냐고 물으니까, 어설프게  건조시킨 것
보다는 오히려 얼어버린 청솔가지가 일단  불이 붙기만 하면 훨씬 잘 탄다는 대
답에 의아했었다. 청각을 생명으로 하는 작곡가인  베토벤도 청각이 완전히 마비
됐을 때, 오히려  치유의 가망이 있을까 기대하며 초조하던 때보다  작곡에 전념
했다지 않은가. 베토벤은 청각이 절벽이 된  상태에서 예술가로서의 사명을 완수
하겠다는 결심으로 왕성한  창조력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숲을  거닐며 “
신이여 나는 숲  속에서 행복합니다. 나무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지 않습니
까”하고 신에게 감사했고 청각에 의지하지  않고 곡을 쓸 수 있는 영감을 찾았
던 것이다. 조금의 가능성도 없을 때 운명에  도전해 보겠다는 그의 결심은 자연
과 교감하기에 이르러서 자연의 소리를 사실적으로 그린 ‘전원교향곡’을 이뤄
냈다. 그것도 자연에  대한 관념의 음악이 아니라 묘사를 너무나  잘하여 음화라
는 달갑지 않은 평가까지 받았다. 손에 닿는  나무의 둥치에 악수를 청하듯 다가
가 만져보려는데 멀리서부터 일행들이 부르는 소리와 자동차의 클랙슨이 빵빵거
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내가 너무 멀리 와 있구나’ 생각하고 버스가 있는
쪽으로 뛰어 가는데  눈발이 사정없이 내 얼굴을 때렸다. 머리와  뺨으로 얹히는
눈발을 털어내며 버스로  향해 가노라니, 어느새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자동차
안에서 차창 밖만 빼꼼히 털어내고 모두 나를  내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내
가 살아온 길도 저렇게 안온한  버스 안에서 보호받고 살아온 온실의 화초에 지
나지 않는다. 서둘러  버스에 풀쩍 뛰어오르니 버스의 자동문이 탁  닫히면서 벼
락치는 듯한 음악이 쏟아진다. 아! ‘전원교향곡’에는 이처럼 벼락이 치면서 바
람이 몰아치고 번개치는 4악장이  있었던 사실을 베토벤의 숲을 뒤로 두고 가며
깨닫는다. 폭풍우 뒤의 기쁨과  감사의 5악장을 기대하노라니 너른 비엔나 숲과,
그리고 베토벤이 2층 창문을  통해서 비엔나 숲과 대화했던 집에 가보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억울함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하다. 시기와 노여움과  욕심은 잊으라
는 따뜻한 멜로디가 가슴에 스미는데 아직도 눈발은 베토벤의 숲가를 아쉬운 듯
맴돌고 있다.

   너무나 친근한 전원의 향수

 한때는 경복궁 안에 있던 민속박물관을 자주  찾았다. 입구에서 올려다본 하늘
은 거칠 것이 없어서 후련하고, 경회루  연못에서는 연이파리에 얹힌 물방울에서
인왕산 자락을 찾으려다가 벌떡 일어나서 뛰어가던  민속박물관. 작은 대문을 거
쳐 들어가면 아늑한  내 집에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안방, 문설주, 부엌
모퉁이 등에 얽혔던  인정의 보푸라기를 되살려 볼 수 있는  그리움의 자리이다.
실제로 고향은 이제 찾아간다 해도 친지는 별세했거나 타지로 떠나 버려서 쓸쓸
한 향수만 안겨준다. 그러나 꾸며놓은 민속박물관에서는  서글픔 대신 무대에 선
듯한 야릇한 설레임까지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즐겨 듣는 음악  중에도 그런 것
이 있다면 아마 ‘도플러(Franz Doppler, 1821~1883)’의 ‘전원환상곡’일 것이
다. 실제로 전원에 가서 느껴야 하는 땀과  고달픔 대신 아름다운 전원의 환상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리라. 헝가리 음악이라면 ‘리스트’를  생각하고 ‘헝가리
안 랩소디’나 ‘헝가리안 댄스’ 등 격렬하거나 춤에 맞는 음악일 거라는 선입
견을 갖고 있다가 플루트 연주의 ‘전원환상곡’을  들었을 때 참으로 반가웠다.
우리네 단소나 대금 등  피리소리가 먼 산자락에서 건너오거나 바람결에 실려오
는 게 제격이라면,  금물 입힌 플루트는 샹들리에 조명이 영롱한  실내에서 울려
야 제멋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전원환상곡’을 듣고는 그런  선입견을 버려야
했다. ‘전원환상곡’은  그야말로 적막을 안고  부는 피리소리같이 시작되었다.
그런 도입부가 지나면  명상적인 선율이 이어지고, 특히 애상적인  d단조의 느린
곡조가 우리 가곡 봉선화를 연상케도 했다.  그러나 2부는 D장조여서 밝다. 집시
특유의 풍부한 기교로 전원의  아늑함과 함께 흥겨운 선율로 현대문명에서 소외
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약동을  안겨줄만했다. 그리고 처음  들었을 때
웬일인지 다른  서양음악처럼 거리가 느껴지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었
다. 작곡가  도플러는 어떤 사람일까. 음악  전문가에게 물어도 사전적인 간단한
내용 뿐이었다. 헝가리  태생인데 오스트리아에서 활동을 했고, 리스트의 제자로
서 스승을 도와 ‘헝가리 광시곡’을 함께 만들고 많은 오페라와 발레곡을 썼는
데 지금까지 전해오는 것은  ‘전원환상곡’뿐이라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헝가리
와는 교류가 없어서 헝가리라면 리스트의 음악만 생각하고 있던 내게 동양의 피
리로 연주되는 것  같은 착각이 일게 하는 ‘전원환상곡’. 그것이  리스트의 음
악과는 이질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 내게 헝가리 여행은 다소 의문을 풀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양쪽 길섶에는 안개에서 갓 벗어난 듯  삐삐꽃이 함초롬
하고 하얀  클로버 무더기도 보였다. 차창을  열면 풀쑥 냄새가 확  끼쳐 들어올
것 같은데 길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엔 논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면 벼포기 사
이에 숨은 하얀 두루미라도 있겠지만 멀리서 보기엔 온통 진초록의 벼포기만 빽
빽하다. 한적한 시골, 소풍 가던 고향길  같다고 여기는데, 앞좌석에서 사탕을 건
네주는 후배의 빨간 헝가리  자수 블라우스가 여기는 헝가리라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전날  밤 부다페스트에서 자고  난 후 민속촌이  있는 ‘센텐드레’마을로
가는 중이다. 그곳  들판을 보며 ‘전원환상곡’이 귀에 설지 않은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닷새 동안의 러시아 여행 때 받았던 엄청난 문화유산에서의 충격,
그보다도 공산주의의 빈약한 허상을  시민들의 초췌한 모습에서 절감한 뒤 두번
째 행선지인  헝가리에 도착한 우리는 비행장에서  부다페스트로 들어오는 버스
안에서 주위에 보이는 들판과  곧이어 들어선 부다페스트의 인상에 안도하는 모
습들이었다. 겔레르트 언덕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부다페스트의 모습은 도나
우강을 가운데 두고 아기자기한 소규모여서 넓고 엄청난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
크를 거쳐 온  우리에게 정감있게 다가왔다. 도나우강을 경계로 서쪽의  부다 지
역과 동쪽의 페스트 지역이  조화를 이뤄서 ‘유럽의 진주’라고 불린다는 말도
실감했다. 그리고 우리  서울이 강북, 강남이 조화없이 이뤄진  것이 안타까웠다.
겔레르트 언덕을 내려오다가  민예품 상점으로 다가가던 우리는  눈을 의심했다.
굵은 통마늘을 주렁주렁 엮은  타래와 빨간 고추타래가 문설주에 길게 걸려있는
것이 아닌가. 그 옆집에도 다른 집에도, 마치 초등학교 때 교실에 장식하던 오색
테이프처럼 걸어놓고 있었다.  정교하고 아름답게 가꾼 다리며  왕궁, 성당, 국회
의사당 등  정취있는 건물이 많은 부다페스트  시가지에서는 농경국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마늘과 고추가 귀신을  쫓는다고 믿는 속신이 우리네 정
서와 닮아 있어서 더욱 친금감이 들었다.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받도 낮처럼 훤한
백야여서 잠을 설쳐야 했는데 부다페스트에서는 고향처럼 느껴지는 일들
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다페스트의 도시가 아름답고 아기자기해서
‘전원환상곡’의 무대였을  전원이 궁금했던  터에, 관광일정에 민속촌  관람이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고향의 신작로  같은 길을 얼마 동안  달린 후
농촌박물관에 도착했다는  안내인의 말에 차에서  내렸을 때, 앞서  내린 친구가
좌판상인에게서 산 보리똥  비슷한 열매를 쥐어준다. 새콤한 것에 며칠  동안 고
기와 빵으로 느끼했던  입안이 개운해졌다. 농촌박물관에서 농기구  관람을 마치
고 다섯 등급으로 나눠진 민속촌  중 가장 가난한 마을을 택했다는 안내인의 뒤
를 따랐다. 평평하고 너른  마당을 지나니 처마가 높은 초가집에 다다랐다. 마당
가에 있는 너른 헛간, 그 옆의 따로 떨어진 작은 건물이 화장실. 반대편 마당 끝
자락 채마밭엔 키작은  채소잎이 너울너울하고 야트막한 우물까지  있었다. 부엌
문을 밀치고 들여다보니  어두운 가운데, 앉아서 불 때는 아궁이가  드러나고 부
뚜막엔 주전자,  냄비 등 무쇠로 만든  그릇이 올망졸망 놓인 것을  보고 “우리
시골같네”하고 탄성을 지르는 친구도 있었다. 문지방을  넘어 안방에는 길이 든
가구와 침대가 놓여있는데 침대만  아니라면 우리 농촌의 친척댁 같이 정겨워서
쉽사리 떠나고 싶지가 않았다. 집을 떠난 아들의  빈 방을 언제나 정갈하게 치워
놓고 있던 친척댁, 객지에서 방황하던 아들이  돌아오면 반겨줄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한 줄기 피리소리가 울려왔다. 어디서 나는 걸까! 나
는 재빨리 마당으로  나가 사람들이 둘러선 헛간 쪽으로 향했다.  즉석에서 나무
토막에 구멍을 내어 만드는 토속악기를 일행 중 한 사람이 사서 부는데 우리 피
리소리와 흡사하지 않은가.  우리 선비들이 한가로울 때나 타향살이 때  고향 생
각하며 불던 피리소리를  헝가리에서 들을 줄은 몰랐다.  ‘전원환상곡’의 작곡
연대나 동기가  알려지지 않아 모르겠지만 시공이  떨어지는데도 우리 정서처럼
친근감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헝가리  민속촌에 가보니 농촌도 악기도 비슷한 걸
알았다. “유니크한 동양적인 성격에서  유래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전원환상
곡’의 해설 부분도 있는 것  보면 우리네 특징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
기도 하고. 도플러는  스승 리스트를 도와 헝가리의 토속적인 것을  채집하고 다
녔다고 한다. 그때 본 조국 헝가리 전원의 아름다움을, 자신이 플루트 주자로 이
름 높았던만큼 플루트곡으로 마음껏 표현해보고 싶지  않았을까. 향기 높은 음악
으로 만들고 싶어했을  도플러의 ‘전원환상곡’. 농촌 출신이  아니었기에 농촌
의 힘든 부분을 외면한  채 표피적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 연주한 환상곡이라고
누가 비웃을  수 있을 것인지. 나  또한 농촌의 땀과 눈물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근원적으로 아름다움을 그린 음악으로서  ‘전원환상곡’을 즐겨 듣는다. 끈끈하
고 애달픈 실제 고향보다 인공으로 조성한 민속박물관이 부담 없듯이 우리네 애
환이 서린 타령보다 산뜻하게 들으려는 취지에서라고 해야 솔직한 고백이 될 것
이다.

   멘델스존의 음악편지

 옛날에 글을 모르던  며느리가 있었는데 편지를 보내야 할 일이  생겼다. 장을
담글 때가 지나도록  시댁에서 부쳐준다던 메주가 오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종
이를 펼쳐놓고 글씨 대신 메주덩이를 그려놓고 그  옆에 가위표를 그린 다음, 붉
은색, 푸른색 물감으로 점을 찍어서 보냈다는 얘기가 있다. 메주가 안 와서 얼굴
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는 뜻으로.  유복한 음악가 멘델스존은 경제적  걱정 없이
여행을 자주 하면서 여행지에서 받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의 인상을 글로 쓰
는 편지대신 악보로 스케치해서 친구와 가족에게  보냈다고 한다. 글씨를 모르는
그림편지와는 다르게 멘델스존의  악보스케치 편지는 늘 신선하게  생각됐다. 지
금은 울릉도 근해를  한 바퀴 돌며 관광하는  일주여객선의 승객으로 바다 위에
떠 있다.  출발점을 조금 지나서부터  우뚝하고 기묘한 바위곁을  지나치니 낮게
나는 갈매기의 하얀 나래를 파랗게 물들일 듯한  비취빛 물결이 보인다. 이 아름
다운 풍경을 보자 멘델스존이  여행한 헤브리디즈 군도와 핑갈의 동굴이 연상된
다. 음악가라면 이쯤으로도 ‘서곡  핑갈의 동굴’처럼 악보스케치를 시작하겠고
화가라면 데생 연필이라도  꺼냈을 텐데, 수필을 공부하는 처지의 둔필로  이 감
흥을 어떻게  표현할까. 멘델스존은 스무 살(1829년)  때 영국에서의 초대연주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했다. 고향도 아닌  영국에서 청중들이
열광적인 환호와 찬사를  들은 후의 여행이었으니 의기양양,  개선장군의 기분이
었으리라. 헤브리디즈 군도를 돌아볼 때 바다 특유의  신선한 햇빛과 그 아래 꿈
처럼 떠있는 섬들,  그리고 절묘한 바위와 전설이 서려 있는  ‘핑갈의 동굴’을
돌아볼 때 어린이 같은  모험심과 경이로움에 취하여 음악으로 아름답게 묘사하
고 싶었을 것이다.  평소에 동경하던 영국에서의 초대연주를  성공적으로 끝냈으
니 큰 과제를 마쳤다는 기분에 마음과 몸이  홀가분해져서 바라본 풍광, 고향 함
부르크에선 볼 수  없었던 다사로운 바다, 더욱이 바다 가운데  스타파섬에 있는
불가사의한 동굴,  핑갈 왕의 신화가 깃든  그 거대한 동굴을 대했을  때는 크게
감동해서 그때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음악인생을 꿈꾸지 않았을까.  놀라운 신의
피조물에 감탄하고 함께 감상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멘델스존은 편지대신 스케
치한 악보를 보냈다.  그 스케치를 바탕으로 작곡된 음악 ‘서곡  핑갈의 동굴’
의 멜로디를  떠올려 본다. 해안으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져오는 파도가
연상되는 제1주제에 이어서 거센 바람과 거친  바위, 그리고 격렬한 파도를 느끼
게하는 제2주제, 그  다음엔 거센 파도 뒤의 조용한 연주와  커다란 음량이 절정
에 다다랐다가 다시  반복되고 힘차게 끝나는 연주. 생활이 메마르고  즐거운 일
이 없을 때 아라비안 나이트나 신화를 읽으며 허황되나 환상적인 세계를 꿈꿔본
일이 있다. 특히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대해서는 그런 환상 속의 구체적인
장소로 여겨졌었다. 해적들이 침몰하고 보물이나 귀인이 숨겨져 있는 동굴, 심한
풍랑을 견디고 간신히 그 동굴이  있는 섬에 다가가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솟아
있는 깃발, 작은 보트에  몸을 숨기고 다가가면 고성이 우뚝 솟아있는... 그런 만
화적인 상상이 고작이었는데.  이젠 그 대신에 ‘서곡 핑갈의 동굴’을  처음 들
으면서 느꼈던 감회가  되살아나고 그 곳 정경이 연상된다. 아름다운  섬과 암벽
에 부딪치는 거친 파도, 바람과 파도에 깎여서 이뤄진 바위와 동굴, 그리고 부산
하게 날아다니는 갈매기떼를 묘사했다는  ‘서곡 핑갈의 동굴’처럼 지금 내 앞
에 펼쳐지는 울릉도의 바위와 파도도 아름다운 음악의 영감을 떠올릴 만하지 않
은가. 멘델스존이 여행한 헤브리디즈 군도는 이보다  규모가 더 크리라고 상상하
는데 마이크 시험중이라는 소리에 이어 배 안에  울리는 소리에 귀를 모은다. “
저기 보이는 삼선암에는 기막힌 전설이 전해옵니다.  선녀 세 자매가 언제까지만
놀다오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지키지 못해서 하늘에  돌아가지 못하고 바다에서
바위가 되었죠.  섬 가까이에 있는 점잖게  생긴 것이 큰언니이고 그  옆에 있는
아담한 것이  둘째언니, 막내는 바람이 센  바다 가운데 서 있는데  저 모양새를
좀 보십시오. 얼마나  연애를 좋아했던지 저렇게 거칠게 되어버렸습니다.” 안내
인의 신명나게 떠드는 설명대로 윗부분이 패여서  ‘V’자로 갈라진 울툭불툭한
바위를 보며 멘델스존이 저런  바위를 보았더라면 어떤 악보를 그렸을까 궁금해
진다. 이뤄지지 못한 숱한  염문을 뿌리며 불운했던 다른 음악가들에 비해, 지적
이며 포용력  있고 아름다운 아내와  행복했던 멘델스존. 핑갈의  동굴을 여행할
당시는 결혼도  연애도 하지 않았던 멘델스존이어선지  음악 ‘핑갈의 동굴’을
들으면 마음이 평안해져 마음속에 맑은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바위 자체로 보면
내면의 표현이라기보다는 파도나 화산폭발로 인한 형상일텐데 의미를 붙이는 사
람들의 편견이 가혹한 것은 아닐까. 저  삼선암을 접했더라면 멘델스존같이 온건
한 신사는  이렇게 지적할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스무 살  때 희망과
경이로움에 차서 만든 음악이 ‘서곡 핑갈의 동굴’인데 그 움악의 배경이나 표
제와는 관계도 없는 울릉도에서  웬일인지 기쁨보다도 이름모를 슬픔이 순간 느
껴진다. 기나긴 세월, 파도와  바람에 깎여서 평평한 바위가 절묘하게 되고 신비
로운 동굴까지 이뤄진  것이 신기하면서도, 한편 우리 삶의 무상함과  시간의 덧
없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일까. 시간은 유한한데 우여곡절로  뜻한 일을 제대로 이
루지 못하는 사람들의  섭리가 절간된다. 경제적인 풍요로움과  창작생활의 순탄
함, 그리고 단란한 가정과 긴밀한 형제애를  누린 멘델스존이지만 겨우 마흔이라
는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것도 함께 연주를 다니던 누나  ‘화니’의 갑작스
러운 죽음에 충격받아  병이 났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막내선녀만 버
려두고 갈 수 없어 함께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바위가 된 삼선암의 전설이나
누나의 죽음으로 충격받아 죽은 멘델스존의 우애가 눈물겨워서 지나쳐온 삼선암
을 뒤돌아본다. 막내바위가  사랑을 갈망하다가 바다 한 가운데서 센  바람을 맞
는 모습이 애처롭다.  사랑의 적극적인 자세를 지닌 이 막내바위에게  어떤 가치
를 부여할 수 있을까.  헤브리디즈 섬들, 핑갈의 동굴을 돌아보며 멘델스존은 스
케치한 ‘서곡 핑갈의  동굴’의 악보를 편지 대신 보냈고, 글을  모르는 며느리
는 그림과 물감을  찍어서 뜻을 전했다는데 내가  지금 울릉도에서 느낀 인상은
어떤 표현의 편지를 띄울 수 있을까.

   서울 나그네

 허둥지둥 지나치는 귓가에  들려오는 슈베르트의 ‘숭어’. 나는  오늘도 궁금
한 마음을 안은 채 음악이 흘러나오는  양옥 2층을 올려다보며 출근을 서두른다.
지난 겨울부터  매일 ‘숭어’를 듣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통근버스에
오르기까지 궁금증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반포대고 밑의 한강은 가장자리에까지
물이 제법 채워진 후부터 그  물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듯 얼고 녹으며 천둥오리
를 키워내고 있다. 오늘같이  옅은 안개가 낀 날은 눈을 감고  삭막한 강변을 풍
요롭게 치장해 본다. 한쪽  강변엔 갈대를 심어 서걱거리게 하고 한  편엔 키 큰
미루나무를 심는다. 낮 동안 미루나무에서 반짝거리던  햇빛이 노을이 되어 강물
에 잠기면 삐그덕거리며 배를  저어올 남정네를 기다리는 아낙의 초당이라도 지
어볼까. 따뜻하고 푸근한 안식이  초당의 불빛에서 피어오르게 해야지... 시한 폭
탄이 장치된 다리를 바삐 건너야 하는  비상시의 도강작전처럼, 치열하게 끼여드
는 자동차의 행렬 속에서 목가적인 상상을 더듬는 나를 일깨우듯 버스가 급정거
해 버린다. 안개가  걷히는 한남대교 밑의 물줄기가 해방의 기지개를  켜며 반짝
거리지만 고향의 강처럼 마음까지 찰랑거리게 하지는  못한다. 땅 위에선 차들이
밀려 꼼짝을 못하는데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
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그려”의 소월시나 읊듯이  여유롭기만 하다. 아직 안
개가 덜 거둬진 남산은 버들강아지의  솜털 속에서 연두빛 숨을 쉬고 있는지 기
척도 없다. 가슴속에서  생생하게 들리는 생명의 출렁임도 없이 정체  모를 안개
의 성을 향하듯 서두르는  출근길. 다리 이쪽의 삶과 저쪽의 삶이  다를 수 없는
같은 도회  속에서, 이웃의 일에 강  건너 불을 보듯 냉담해진  사람들이 이상의
세계, 피안이라도 찾아가듯  절실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통근차  안의 동료
들. 맑은 시냇물 속에 즐겁게 뛰노는 숭어가  잘 잡히지 않으니까 낚시꾼이 휘저
어 흐리게 한 다음 숭어를  속여서 낚아 올렸다는 가곡 ‘숭어’의 가사는 현대
인에게 교훈을 주기도  한다. 흐린 세파에 우리를 휩쓸어 넣고  혼미하게 만드는
낚시꾼은 누구인가. 어쩌면 낚시꾼이 속임수를 쓰기  전에 우리 자신끼리 부딪쳐
서 물을 흐리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산 입구에 거무스레하게 늘어선 나무
숲에서 햇살이 둘러싸는 것을 본다. 햇빛의 긴장과  탄력이 봄을 키우는 등 뒤에
서, 고독과 우수를  새끼처럼 거느린 도회의 고민을 굽어보는 듯한  남산의 초췌
한 모습. 슈베르트에게는  경쾌하고 발랄한 ‘숭어’나 ‘들장미’  같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암담하고 심각한  인간고를 느끼게 하는 ‘겨울나그네’ 같은 작품
도 있다. 그가 어떤 전환점에서 삶의 깊이와  폭을 넓혀 예술 세계를 다져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남산순환도로는 우리에게 전환점을 시사하듯, 이리 돌고 저리 돌
아서 시내로 들어서게 한다.

   지나온 자리, 나아갈 자리

 빙빙 돌아왔는지, 지름길로 왔는지, 제일 빨리 왔는지, 제일 꼴찌로 왔는지, 나,
이제 떠나도 되는  건지, 준비는 끝난 건지, 얼마나 헤매야  하는 건지, 도착하긴
하는 건지, 누구 손들어 봐

   콜럼버스의 바다, 드보르작의 바다

 쿨럼버스의 바다를  생각한다.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수평선으로부터  서서히
부두로 다가오는 기선을 보면서 콜롬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래서 바다는  계속 나아가면 나타날  새로운 세계를 동경했다.  결국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의 바닷가에서 4백 년 후,  뉴욕 내셔널 음악원 원장 드보르
작(Antonin Dvorak,  1841~1904)이 기선을 구경한다.  그가 미국  체재중 작곡한
‘현악 4중주곡 F장조’, 일명‘아메리칸’은 망향서정이 물씬하고 보헤미아  요
소가 담겨 있다. 2년 전  체코의 수도 ‘프라하’ 시내 관광을 잠깐 했다. 구 시
청건물의 신비한 천문시계를 비롯, 많은 문화재가  중세의 향취를 풍겼고 첨탑들
이 곳곳에 솟아 모래밭의 운모처럼 반짝였다.  민예품과 미술품이 즐비한 골목길
을 지날 때 어느 집에서 흘러나오던 드보르작의  선율, 순간 드보르작도 이런 길
을 산책했으리라고  짐작하며 관광객이  몰려가는 ‘캬를 브리지’로  향했었다.
블타바 강물의  도도한 흐름을 내려다보며 ‘뉴욕에서  물결을 보던 드보르작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피압박 민족인 동포들의 서럼움과  이방인의 고독이었을까
’헤아려 봤었다. 강의  잔물결 같은 바이올린 연주로 현악  4중주곡 ‘아메리칸
’은 시작된다. 이국적인 주제가 1악장에서부터 향수에 젖게 한다. 2악장은 처음
들었을 때는 절절히 슬픔을 깔고 있어서  ‘봉선화’같은 처량함을 느꼈었다. 드
보르작은 뉴욕 음악원의 섭외를 처음 받았을 때에 좋은 조건임에도 선뜻 승낙하
지 않았다. 그런데 재직중이던 프라하 음악원에서  휴가가 결정되자 미국 체류를
결정하게 되었다. 향토와  민족을 사랑한 드보르작은 미국에 도착한 뒤  체코 이
민들과 흑인들이 박해받는 것에 연민을 느낀다.  향수병에 걸린 드보르작은 미국
의 체코 이민촌인 ‘스필빌’에 가서 묵으며 비로소 향수를 달래고 그들과 함께
슬픔을 나눌  만큼 여유를 갖게 된다.  풍부한 정서가 담긴  ‘현악 4중주곡’의
스케치를 사흘 만에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절절한 아픔이 가슴에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영가에 담긴  비애를 공감하고 체코적인 것과  융화시켜 아름다운
작품을 낳았다. 특히  2악장은 흑인영가풍의 애수가 슬프면서도  화려해서 2악장
만 독립해서 연주되기도 하는데  바이올린의 면면한 선율이 눈시울을 적시게 한
다. 이러한  드보르작의 연민을 모르는  친구들은 계속 미국적인  작품을 쓰도록
권했다. 미국을 찬양한 롱펠로우의 시로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았을 때 수락했더
라면 미국 오페라의  아버지로 존경받고 평생 안락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드
보르작은 이민 와서 고생하는 동포들을 보면서 자신만의 영달을 위한 작품을 쓰
는 일에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3악장의 빠른  선율은 자연과 호흡
하며 느끼는 기쁨을  담고 있다. 3,4악장이 아니라면 이 음악은  망향과 애수, 이
런 힘없는  것으로 인상지어질 것이다. 그러나  경쾌하고 즐거운 3,4악장 때문에
기백과 생명감이 약동하는 힘을 느끼게 된다.  나아가 범세계적인 광활한 민족의
식을 볼 수  있는 ‘신세계교항곡’과도 같은 매력이 있다. 스케일이  큰 민족주
의자였던 드보르작, 그는 애국자이면서 자신의 음악을  체코 국민들과는 물론 세
계의 사람들과 나누기를  원했다. 콜럼버스가 어딘가 미지의  세계가 있으리라고
동경하다가 발견한 아메리카,  그 아메리카에서 바다를 바라본  드보르작은 넓은
인간애와 잔물결 같은 인정이  넘쳐 있어서 세계인에게 잔잔한 파도처럼 기쁨을
안겨준다. 바다를 바라보며 망향의 마음을 달래려  했다기보다 체코 민족도 홀로
가 아닌 세계와의 연대가 가능하다고 바다처럼  마음을 넓혔을 것이다. 콜럼버스
가 바라보던 기선이나  드보르작이 보던 기선, 모두가 사람과 화물을  싣고 목적
지로 흘러가고 또 정박하는 것이 아닌가. 기선의  항해는 바다가 있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고,  콜럼버스와 드보르작의 신세계는  그 영원을 향하여  계속 열려
있어서 현대를 사는 우리도 ‘현악 4중주곡’의 선율 속에서 출렁이며 흔들리며
항해를 계속한다.

   청춘의 가벼움, 노년의 무거움

 피아노 5중주곡이라면 흔히  ‘숭어’라고 알려진 슈베르트 작품만 알던 때가
있었다. 피아노의 상쾌한 울림과 우미한 첼로의  조화로 찰랑찰랑한 기쁨을 안겨
주기에 자주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숭어’와 느낌이 매우 다른  포레(Gabriel
Faure, 1845~1924)의 ‘피아노  5중주곡’을 듣게 됐다. 달빛이 그윽하게 비치는
숲의 정적이랄까, 물안개를  자욱하게 머금고 있는 호수처럼 안겨왔다. 그러면서
도 외로운  밤길에 불빛을 내비치는  집안처럼 정겹고 아늑했다.  그때부터 밝고
경쾌한 것이 피아노  5중주의 특징이라는 무모한 상식을 수정해야만  했다. 슈베
르트의 것은 시냇물에서 뛰노는 숭어처럼 발랄하고 생동감있는 A장조인데, 포레
의 것은 음영이 짙고 깊은 정취가 배어 있는 C단조이다. 로맨틱하면서도 명랑한
슈베르트의 작품이 널리  알려진 데 비해, 깊이있고 고아한 시정의  포레 작품은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상적인 포레의  작품을 들은 후엔 피아노 5중주
라면 으레 대조적인 이 두 작품이 함께  떠오른다. 동일인의 작품에도 애수의 가
락과 경쾌한 선율이  있는데, 국적도 다르고 시대도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비교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두 작품이  함께 떠오르는 것을  어쩌랴. 1797년,
빈에서 태어난  슈베르트, 그보다 48년이나 늦게  파리에서 태어난 포레.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슈베르트와 일흔아홉의 생애를 누린 포레의
삶은 내용부터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시인의 작품을 가사로  해서 많은
가곡을 남긴 공통점이  있다. 슈베르트가 괴테, 뮐러, 하이네 등의  시를 읽고 악
상이 떠올라 가곡집을 만들었듯이, 포레도 위고, 베를렌의 시들에 감명받아 시와
음악이 최고로 조화를 이룬 가곡집들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빛나는 영감으로 기
쁨과 슬픔의 감정을 담아 유려한 멜로디를 이룬 슈베르트에 비해 포레의 작품은
인생의 쓴맛, 단맛을 거친 후  깊은 관조가 투영된 것이 다르다고나 할까. 각 악
장마다 느낌이 조금씩 다르지만 제4악장의 주제에 의한 화려한 변주곡으로 유명
한 ‘숭어’는 봄을  구가한 듯하다. 포레의 ‘피아노 5중주곡  2번’은 2악장을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가을의 우수가 느껴진다. 그  까닭을 슈베르트는 스물세 살
에 ‘숭어’를  작곡했고, 포레는 일흔여섯이라는 노년에  ‘피아노 5중주곡’을
작곡한 사실에 둘 수 있을까. 슈베르트는 짧은 생을 보냈다. 그러나 풍부한 악상
과 직감력으로 작곡에만 전념하고, 인생의 고뇌  대신 친구들과 즐겁게 지냈기에
그의 작품에서는 낙천적인  기분을 읽을 수 있다. 포레는 방황과  굴곡의 생애를
지냈다. 그리고 노년엔 청각장애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그 공통 속에서 ‘피아노
5중주곡’을 처절하게 이뤄냈기에  삶의 엄숙한 교훈을 준다. 작곡  직후 파리의
음악원 강당에서  초연했던 당시의 일화는 베토벤  ‘제9번 교향곡’ 초연 때의
일화와 같다.  연주가 끝난 후  청중들이 기립하여 열광적인  갈채를 보냈는데도
포레는 듣지를  못했다. 머리만 설레설레  흔들면서 앞줄까지 걸어  나가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는  것이다. 젊음의 기쁨과 순수한  정열, 그리고 건강하고 밝은
생명을 찬양하는 듯한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곡’도, 혼미한 청각장애의 고
통 속에서 오히려 고담한 지경에 도달한 포레의 ‘피아노 5중주곡’도 독창적인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준다.  온갖 낙엽들이 뒤섞인 숲길을 걸으며 이  두 실내악
을 연상했다. 가는  핏줄 속에 흐르던 환상의 빛깔이 응집되었다가  시한이 다하
여 떨어진 잎새들.  불꽃을 튕기듯 타오르다가 결정체를 남긴 듯한  선홍의 잎새
와, 메마른 마음이나 어두운 환상에서 신음한 흔적의 노란 잎새, 음영이 짙은 삶
의 갈색  잎새들. 무성한 숲이  이파리 하나하나로부터 이뤄졌던  사실처럼 낙엽
한 이파리도  소중하다. 치열한 삶이었더라도 낙엽처럼  떨어지는 것. 그 잎새가
묻히고 다시 피어나는  삶의 운행에 우리 마음도  흔들리는 잎새인 것을 느끼게
된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곡’은 친구 포글과 여행하며, 알프스의 아름다
운 풍경을 구경하고  기쁜 나날을 보낸 청춘의 즐거움을 스케치한  것이다. 그리
고 빈에 돌아와 작곡을 완성했다는 일화를 생각하며 알프스의 영봉과 푸른 숲을
연상해본다. 그리고 가을하늘처럼  투명하면서 순수한 감동을 주는  포레의 ‘피
아노 5중주곡’을 듣는다. 세찬 풍우를 견디면서  얼룩이나 반점 없이 골고루 물
들인 잎새, 청각장애의  심각한 신체적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 극적인  효과를 노
리는 대신,  깊이 있고 차분한 정감을  고이게 한 포레의 선율에서  감상에 젖지
않고 오히려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아주  작은 낙엽들까지도 나무 주위에 쌓였다
가 부엽토가 되면 내년 봄 나무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사실이 생각난다. 포레의
‘피아노 5중주곡’은 작은 낙엽들을 모아 태운 것으로 잘 빚어낸
증류수의 술 같은 묘한 향기로 온몸에 스밀 것 같다. 가벼운 청춘의 배낭, 흥겹
게 출발하여 산도 넘고 물을 건너며 쳐다보는  구름은 얼마나 가뿐해 보일까. 지
평선 너머로 어둠을  남기고 떨어지는 낙엽, 그러나 허무가 아니라  고뇌와 감명
으로 온 영혼을 그 속으로 빨아들이는 무거움의  의미를 그 속에서 터득해 본다.
청춘의 가벼움과 노년의  무거움으로 압도하는 ‘피아노 5중주곡’들을 곁에 울
리게 하면서.

   베토벤의 창

 눈보라가 흩날리는 겨울에,  빈의 중앙묘지 특별구역에 있는  베토벤의 묘지를
찾은 일이 있다. 묘지  앞에서 문득, 유복했던 멘델스존이 봄날같이 화사한 생애
를 보낸 것에 비해 베토벤은  북풍 한설 속에서 시련의 겨울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춥고 외로운  겨울 인생을 살면서 베토벤은 어떻게 이렇듯  화사하고 아
름다우며 가슴을 흔드는  음악을 작곡해 냈을까. 베토벤이 생애 동안  가장 오래
머물렀던 집은  빈의 높은 지대에  있는 ‘파스콸라티 하우스’였다.  그 집에서
교향곡의 대표격인 ‘운명’을  비롯하여 여러 명곡을 썼던  것이다. 파스콸라티
남작은 고집불통이고 괴팍한 베토벤에 대해 이해가 깊었기에 그 집에서 오래 머
물 수 있게 배려했다. 그러나 베토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창 밖으로 보이는
전망이었다. 기분이 안  좋아지면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도  몇 번이나
다시 찾아와 오래 머문 것은 5층 창문으로  빈의 교외 풍경과 성지, 그리고 울창
한 빈 숲을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귀가 들리지 않게  되자 사람과의 대화
보다도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강한 영감을 떠올렸던 베토벤에게 전망 좋은 창은
봄처럼 악상의 싹을  키우게 했다. 작곡가에겐 생명과도 같은 청력을  잃자 그는
운명에 대한  원망과 좌절감으로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다. 그러나  마음을 돌려
죽음이 닥쳐오기까지  최선을 다해 명곡을  쓰자고 작정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정신적인 위기를 넘어서 오히려 정열적으로 작품  창작에 임했고, 형식에 얽매이
지 않고 감정을  표현, 강렬하고 건장한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는 좌절의 암흑
속에서 벗어나 창 밖을 내다보는 동안 생명들 속에 숨어 있는 위대한 힘을 발견
하는 눈이 트인 것이다. 그리고 소리가 완전히  들리지 않는 전율과도 같은 침묵
속에서 오히려 어떤  묵시를 감지해 냈다. “마치 전원에 있는  나무 하나하나가
내게 얘기하는 것 같다. 성스러운 맑은 숲의 황혼, 어느 누가 이 모두를 말로 표
현할 수 있겠는가. 숲의 달콤한 고요!” 청력을 잃은 그에게 조물주는 이처럼 시
정신을 열어 주기도  했다. 고뇌와 슬픔에서 자기를 해방시키고 시  정신과 철학
으로 빚어 낸 음악이기에 감동과 함께 용기도  얻게 하는 베토벤의 ‘운명’. 주
변의 무기력해 보이는 것들에게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는 것이 예술인의 사명이
아닐까. 헐벗은  겨울나무는 혈맥이 막혀 피가  흐르지 않은 채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건너편의 시계를 열어주는 걸 느낀다. 여름 내내 초록 잎새로 가지 사
이를 채워 가려서 그 너머의 존재를 짐작 못하고 안주하는 어리석음을 일깨워준
다. 겨울나무는 사방이 가로막힌 가운데 주저앉아  미래를 꿈꾸지도 발전을 모색
하지도 않는 이에게, 건너편  무한대의 시계를 열어주는 창이기도 하다. 창을 통
해서 들리지 않는  소리를 감지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터득한  베토벤. 그에게
원동력을 준 창 같은 구원의 빌미가 암담하고 고뇌에 찬 현실에 갇혀 있는 이에
게 필요하지  않을까. 음악사에서  ‘암흑에서 광명으로 이끌어주는  음악’으로
절찬받는 ‘운명  교향곡’. 그것은 베토벤의  창으로 보인 겨울  나무들 사이로
펼쳐진 무한대의 세계, 그것의  구현이 아닐까. 운명의 높고 두꺼운 벽을 하나씩
하나씩 넘어서면 다가올 듯한 세계.

   카잘스의 ‘새들의 노래’

 울 안에 나무가 많던 어린 시절, 새 소리에 곧잘 잠이 깨곤 했다. 상쾌한 소리
에 가뿐하게 일어나서 마당에서 딱! 손뼉을 치면 이내  날아가 버리는 새떼의 꼬
리가 아침 하늘을 열었다. 그 아침의 새 소리는 청량하기 그지없었다. 파블로 카
잘스 편곡 ‘새들의 노래’의 빠른 전주를 처음 들었을 때 그 아침에 새들이 후
루룩! 날아가던 장면이 연상됐다. 그런데 한 호흡 뒤에 이어진 어둡고 느린 연주
가 의아하기만 했다. 새의 노래라면 으레 밝고  경쾌한 것으로 속단한 기대가 어
긋나서  어떤 특별한  유래가  있을  것 같았다.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라면 ‘현악기의 왕자’로 칭송받은  첼로 연주자였다. 고향을 사랑하
면서도 프랑코 독재정권에 반대하여 망명 생활을 했고, 독재자가 통치하던 독일,
이탈리아의 연주 요청엔  응하지 않을 만큼 소신을 지켰다. 그가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존중하고 독재자에 항거한 음악가로 높이 평가받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다. 그러나 그가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쓴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카잘스
평소의 신조대로, 작곡한 악보의 출판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전
해오는 것은 출판된  단 두 곡 ‘사르다나’와 ‘새들의 노래’뿐이다.  양이 적
어 아쉽지만 민족적 특징이 듬뿍 녹아 있는  의미 있는 것들이다. 특히 ‘새들의
노래’는 고향 카탈루니아의 민요를 첼로에 맞게  편곡한 것으로, 카잘스가 연주
회 때마다 마지막  순서에 빼놓지 않던 곡이다. 고국을 떠났어도  한순간도 조국
을 잊지 않고  있다는 그의 마음의 표시였으리라. 일찍이  UN총회 회의장에서도
‘새들의 노래’를 연주하여 많은 참석자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다른 작품
들은 출판되는 것조차 꺼린 카잘스가 ‘새들의 노래’는 왜 그토록 아끼고 세계
인에게 알리려고  했을까. 원래 민요  ‘새들의 노래’는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카탈루니아 지방의 캐럴이다. 생명의 경건함을 우아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한 것
으로, 아기 예수를 향기와 기쁨을 주는 꽃으로  비유해서 온갖 새들이 반기는 내
용이 담겨 있다. 카잘스의  어머니가 매우 좋아하고 아꼈다고 한다. 이런 기쁨이
가득 담긴 새들의 노래인데 연주곡 ‘새들의 노래’ 멜로디가 왜 처량하게 들릴
까. 아름다우나 침통하고 우울함이 깔려 있다. 원래 카탈루니아는 스페인 북부지
방의 높은 산악지대로  수준 높은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남부
스페인과 독립하려는 운동이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박해받고  억압당하는 수많
은 동족들이 피를  흘리고 신음해야 했다. 두려움과 불안을 걷어내  주고 미래를
밝혀줄 것은 무엇일까. 카잘스는 새의 노래를  들으며 자유로운 새를 부러워했을
까. 아니면 예수  탄생처럼 조국에도 평화가 오리라는 메시아적 기대로  이 노래
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카잘스는 실제로 “카탈루니아 새들은  ‘피스(Peace),
피스(Peace)’하고 운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고향의 평화와 자유를
갈구했는지 짐작케 한다. 어머니가 좋아한  음악이어서 1차적으로 자신의 악기로
들려드리려고, 자신은  타국에 있어도  음악가로서의 애국심으로 새들의  노래를
연주하여 세계인의 음악으로  만들고 싶었으리라고 추측된다. 애수의  멜로디 속
에 카잘스의 따뜻한 피와 절절한 기도가 흐르는 듯하여 숙연해지는 ‘새들의 노
래’. 카잘스는 96세나 살았지만 줄곧 연주생활로 일관하지는 않았다. 오랜 스페
인 내란 때문에  생긴 난민들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영국과 프랑스에서 가진 뒤
프랑코 독재정권에 반대하여 연주가 생활을 청산하고 프랑스의 소도시 프라드에
서 오랜 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소박한 교사  생활로 나날을 보내면서 평화를 기
대하며 저 산너머 어딘가 존재할 영원히 자유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동경했을 카
잘스. 카잘스는 일찍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던 바흐의  ‘무반주 첼로조곡’의
악보를 발견해서 10년 동안 심혈을 기울인 연습 끝에 세상에 부활시킨 공조자였
다. 그래서 ‘바흐의  2백주년 축제 음악회’ 준비 모임에서  카잘스를 모시려고
간청하여, 오랜만에 연주가 생활을 재개하게 되었다. 이렇게 신조 있는 음악가의
‘새들의 노래’를 언뜻  들은 인상으로, 단순히 애수 어린 곡으로만  여겼던 것
이 부끄럽다. 9.28 수복 후,  폭격 맞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생각이 난다. 유리창
도 없는 방에서 자고  난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지저귀던 새  소리가 없어진 것
에 새삼 전쟁의 공포가 느껴졌다.  폭격 때 새들은 강 건너로 피했을까. 불에 그
을려 빈 가지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나무가지 위에 막막하게 펼쳐 있던 뿌연 하
늘. 총탄이 날고  피흘리며 쓰러지는 참상은 못 봤어도 전쟁의  참혹함을 실감했
다. 요즈음 새삼스럽게 카잘스한테 새들의 의미가 평화였고, 그가 영원한 평화를
염원했던 것이 소중하게 여겨진다. 음악을 들으며 총칼이 난무하
는 전쟁은 아니더라도 불안한 소용돌이 속에서 평화와 자유를 갈구하게 된다.

   인생의 찬란한 서곡

 어린 시절, 읍내에 서커스단이 들어오면 안절부절 못했다. 저녁 어스름에 나팔
소리가 바람에 실려오면 울긋불긋한  피에로 복장으로 낮동안 거리를 돌던 서커
스단원들의 우스꽝스런  모습이 생각났다. 그리곤  불 켜진 장막  안에서 벌어질
아슬아슬한 묘기를 상상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대학  신입생 때는 이웃 동네의
여자대학 스피커에서 울려오는 소리가  내용은 모르지만 내심 흥겨운 충동을 일
으켰었다. 5월 어느날 아카시아 향기가 밀려오는 쪽, 소리나는 곳으로 바람에 실
린 듯 걸어가니  학교 길목엔 이미 삼삼오오  떼지어 가는 사람들로 왁자지껄했
다.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상기된 남자  대학생의 빠른 걸음에 보조를 맞추느라
고 잰 걸음으로 따라가는  여학생도 있었다. 여자대학의 쌍쌍파티, 그 시절엔 드
물었던 축제 프로그램이었다.  솜사탕 장사가 연분홍빛 사탕을  구름처럼 피워내
던 대학  입구를 지나니, 어두컴컴한  나무 사이로 성장한  여대생들이 행사장을
향해 우아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문득 내 옷차림을 내려다보니 후줄근한  흰 블
라우스에 검정스커트, 너무나  초라했다. 환한 불빛과 스피커에서 나오는 밴드음
악이 흥겨워도 아쉬운 채 돌아서려니, 스피커의 음악이 우아한 것으로 바뀌었다.
좀전엔 어릴 때  들은 서커스단 음악처럼 서툰  것이었는데 바뀐 음악은 세련된
연주였다. 몇  소절 들어보니 클래식 음반이었다.  밝고 경쾌한 연주인데 간간이
외국민요 멜로디도 나왔다. 세련되고 유쾌한 멜로디를  두고 떠나는 것이 아쉬워
계속 머뭇거렸다. 서커스는  자주 봤으면서도 나팔소리에 가슴 두근거렸는데, 한
번도 못 본 대학축제를 옷차림 때문에 구경도 못하고 돌아나오던 씁쓸한 기분은
오래 계속 됐다. 얼마 후, 라디오 방송에서 귀에 익은 듯한 그 멜로디와 다시 만
날 줄이야. 대학축제의   문턱에서 나를 들뜨게 했던 음악은  브람스의 ‘대학축
전 서곡’이었다.  낮고 빠른 바이올린  연주로 시작해서 혼과  클라리넷의 낮은
울림 뒤에, 개막을 알리듯 팀파니가 두 번 울렸다. 뒤따라서 “어여쁜 장미야 참
아름답다”로 번안되어 부르던 노래의 멜로디를 트럼펫과 혼이 연주하더니 이내
그 멜로디는  사라지고 쾌활한 멜로디가  이어졌다. 빠른 박자와  타악기 연주가
많아 신이 나는 걸까. 어깨가  들먹거려지더니 마지막에선 “기쁘고도 기쁘다..”
의 노래 멜로디가 나오면서  웅장하게 끝이 났다. 후일, 브람스의 교향곡과 다른
작품을 들으면서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받았고 사진으로 본 인상도 무뚝뚝
해 보여서 밝고 재미있는 ‘대학축전 서곡’은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
느 잡지에 실린 수염이  더부룩하고 소탈한 브람스의 사진에서 문득 페스탈로찌
가 연상되는 것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맨발로  노는 아이들이 다칠까봐 사금파
리를 주워서 주머니에 넣는 페스탈로찌가. 그런데  우연히 브람스도 어린이를 좋
아했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의 놀라움이란. 브람스는  평소에 외모를 꾸미는 것이
나 격식을 싫어해서,  긴 턱수염으로 넥타이 없는 앞가슴을 가리고  다녔다고 한
다. 독신이면서 슈만의 아이들을 도왔고, 평소에 아이들을 귀여워해서 함께 놀기
를 좋아했는가 하면, 호주머니에는 아이들에게 줄  사탕을 불룩하게 넣고 다녔다
고 한다. 격식을 싫어한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준다고 했을
때 거절했다. 영국을 싫어했고 엄숙한 의식에  정장하고 참가하는 것이 싫어서였
다. 그러나 2년 후  독일의 브레슬라우 대학의 같은 제의엔 수락했다. 그리고 그
답례로 다음 해에 ‘대학축전 서곡’을 작곡해  보냈다. 처음엔 웅장하고 화려한
곡상을 담으려다가 풋풋하고 꿈  많은 학생들과 어울리는 쉬운 곡으로 바꿨다고
한다. 자신도  어려서 즐겨 부른 ‘학생가’와  ‘신입생의 노래’, ‘국부’ 등
인기 있던 곡으로 음악의 기둥을 삼았다. 이들  중 두어 곡은 우리나라에서도 번
안되어 애창된  곡들이다. 젊고 발랄한 대학생들,  인생을 값지게 설계하기 위해
들떠 있는 학생들을  마음껏 축하해주기 위한 ‘대학축전 서곡’, 그  음악 자체
도 본론이 아닌 서곡이다.  딱딱한 가지에 싹을 틔우고 꽃피우는 봄바람처럼, 생
명을 불어넣는 축하의  멜로디이다. 대학은 내일의 주인공들이  보내는 과정이어
서였을까. 사회에 예속돼 있지 않고 대기중인  대학생들을 인생의 서곡단계로 여
겼나 보다.  재미있고 힘찬 이 음악을  들으며 신입생 시절의 시고  떫은 기억을
되살린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빛나게 여겨진다. 나이든 남자들이
모이면 학창시절의  응원가를 합창하듯이, 이  음악을 크게 울리며  젊은 내일의
주인공들의 빛나는 앞날을 축원해야 할 5월이다.

   울적한 겨울에 듣는 ‘나의 생애에서’

 어렸을 때, 시골  친척댁에 가면 보이는 것 모두가 신기하고  경이로워서 말썽
을 자주 일으켰다.  어느 날엔 어른들이 나들이를 간 사이  마당에서 종종거리는
병아리를 목욕시킨다고 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방에서  바느질에 골몰
하던 친척언니가 칭찬  대신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병아리는 물에  젖으면 죽는
다면서 “뒤꼍에서 꼼짝  말고 서 있으라”는 것이었다. 뒤꼍에서 숨도  크게 못
쉬고 있으려니 으스스하고 추워졌다.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르는 토담 굴뚝 곁
에 기대 앉으니 처마 밑으로  찾아드는 참새 소리도 정겹고 방울 소리를 절렁거
리며 돌아오는 이웃집의 소방울 소리, 건너마을  산속에서 울려오는 산사의 종소
리도 아련히 들려왔다. 출타했던 어른들이 돌아와서  나를 찾다가 발견할 때까지
아늑하고 따뜻한  굴뚝 곁에서 잠들어 있었다.  겨울, 세모가 다가오면 버릇처럼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로  우울해져서 어린 날의 굴뚝 곁에 가서 서
보고 싶다. 이럴  때면 눈앞에 보이는 조락의 쓸쓸한 정경보다  지난날의 즐거웠
던 일을 생생하게 되살리고 싶어서 즐겁고 밝은  실내악을 듣게 된다. 그러나 감
미로운 것보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음악, 그것은 스메타나(Bedrich Smetana,
1824~1884)의 현악4중주곡  ‘나의 생애에서(From My  Life)’이다. 실내악이기
때문에 충격적인  흔들림이나 열광적인 기쁨을  줄 리 없지만,  다른 실내악처럼
차분한 안정감을 주는  대신 지난 일들을 애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우선 ‘나
의 생애에서’라는 표제만으로도 얼마나  엄숙하고 심오하게 다가오는가. 그러나
어느 심각하고 고뇌에 찬  철학자의 자서전처럼 어렵고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
은 금물이다. 자신이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바이올린, 첼로, 비올라, 피아노라는
네 악기를 통해서 대화형식으로 풀어나간 실내악곡이기 때문에 차분하면서도 힘
이 느껴진다.  스메타나는 어려서부터  음악재능이 뛰어나서 연주자와  작곡가로
활동했고 체코  국민음악의 창시자로서 분망하게  지냈다. 그러던 중  나이 쉰에
귓병이 악화되어 지휘자로서의 활동을 포기할 때의  심경은 어땠을까. 주위를 돌
아보면 활기차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젊은 날의 정열과 노력의 보
람도 없었다. 현기증과  환청 현상이 심해져서 의사에게서 활동 중지  지시를 받
았을 때 누구에게라도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회오와 절망감으로
무척이나 고독했으리라. 그는 꿈을 키웠던 수도  프라하를 떠나 60킬로미터나 떨
어진 야브케니체에 있는 딸네 집으로 갔다.  거기서 10월부터 이 현악 4중주곡에
착수하여 세밑에 완성했다는 피상적인  사실만으로도 겨울에 어울리는 음악이다.
친구도 없이 질환에 시달리면서 절대 고독 속에 빠졌던 스메타나가 주위의 무관
심과 냉대 속에서 비로소  만난 진실, 그것은 오히려 절망과 체념  후에 가질 수
있었던 작곡에의 희망이었다. 후세의  연구가들은 매독증상이라고 판단했는데 스
메타나는 부분적인 귀의  치료로 돈과 시간을 허비하여  귀머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완전히 귀가 들리지 않게 되던 날,  그의 마음속에 전설적인 기사성 ‘뷔
세후라드’의 모티브가 떠올랐다고  한다. 곧이어 6편으로 된 ‘나의  조국’ 중
두번째인 ‘몰다우’를 완성했고 다시, ‘나의 생애에서’를 탄생시켰다. “질병
이 예기치  않았던 창작적 요소를 성숙시켰다”는  음악이론가들의 평이 있지만
나는 “신이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문은 열어놓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실의
와 좌절을 뛰어넘어 여러 명곡들을 완성했고,  음악으로 자서전을 써보려고 착상
해서 ‘나의 생애에서’를 작곡한 아이디어도 감탄할  만하다. 친구인 저술가 스
트프 데브르노프에게 “나의 인생의 추억과 완전한 청각상실이라는 비극적 결말
을 그렸다”는 편지 내용이 ‘나의 생애에서’의  내용을 짐작케도 한다. 사랑의
불꽃으로 출발하던 청년시절의 예술 애호를 1악장의 시작으로 잡은 것은 당연하
게 여겨진다. 알레그로  비보 아파시오나토(빠르고 생기있고 열정적으로)의 빠른
선율이 발랄한 젊음, 정열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하는가 하면 귀가 안 들리
는 침묵의 세계에서 외치고 싶은 고독한 절규를  품고 있는 듯하다. 마치 뻗어오
르는 나무줄기의  싱싱함이라든가 생생한  이파리들의 파닥거림, 창조나  성장이
무한정 가능한데 갑자기 된서리가  내려서 맺혔다가 똑 떨어지듯 끝나 버리는 1
악장. 자신이 지나온  값진 순간이 절실하게 떠올라 울컥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참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비약일까. “나의 청년시절의 강렬한 예술 애호, 로
맨틱한 분위기,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무엇인가에 대한 형언키 어려운 동경, 거기
에다가 다가올 불행에 대한  예견까지도 묘사하고 있다”고 스메타나 자신이 악
보 뒤에 적어넣었다고 한다. 각 악장마다 즐거웠던 청춘의 나날, 또 아
내와의 행복한 추억,  불안과 좌절이 연상되는 말년의 심경을 담고  있는 ‘나의
생애에서’. 그러나 이따금 따뜻하고 아늑한 방안에서  이 음악을 들으며 불행했
던 예술가의 생애를 잊어버릴 때도 있다.  말년에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울부짖다
가 참혹하게 숨졌다는  사실까지도. 어쩌면 예술가의 처절한 생애는  1세기 전에
있었던 일이기에 작품  뒤에서 잊혀지기 쉽다. 다만 사소한 일에  실망하고 좌절
하는 나이기에, 고통을  이겨내고 재능인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하려고  노력한 예
술가의 의지만은 잊지 않으려고 ‘나의 생애에서’를  자주 듣는다. 다른 사람의
고통 끝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역설, 그것은 예술가의 역작만이 가능하다. ‘
나의 생애에서’는 작곡가의  추억을 고백한 음악이지만, 과거에만  매달려 있지
말고 앞으로 전진하라는 교훈을  던져주기도 한다. 백년 후, 아니 천년 후에라도
영원을 향하여 가는 자세를  지향하라는 듯이 아름답게 변함없이 울려댈 명곡이
기에. ‘나의 생애에서’는 어린 날 춥고 외로울  때 의지하던 토담 굴뚝처럼 이
겨울, 암울한 내게  초저녁별의 반짝임과 새소리를 보고 듣던 청신한  눈과 귀를
틔워줄 것으로 기대하며 자주 듣게 될 것이다.  병마에 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 예술임을 일깨워주는  ‘나의 생애에서’를
어찌 싫증낼 것인가.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

 해질 무렵, ‘빅토리아 드 로스 앙헬레스’가  그윽하게 부르는 ‘어머니가 가
르쳐주신 노래’를  듣노라면 내 마음은 냇물따라  지향없이 흘러가는 종이배가
된다. 어렸을  때 이 노래의 제목만  들었을 때는 즐겁고 단란한  가정의 모습을
연상했었다. 정원에 오색꽃이  만발한 양옥집에서 어머니의 풍금소리에  맞춰 아
이들이 낭랑하게 노래하는  정경이 상상됐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르쳐주는 노
래는 얼마나 행복한 내용일까. “반짝 반짝 작은 별...”이라든가 “종이 운다 종
이 운다 땡땡땡”처럼 즐겁고 경쾌한 것이려니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네  가정은 유교식 전통으로 부모와  자녀 사이가 엄격한 관계였
다. 부모와  자녀가 대등하게 의견을  펼치며 대화를 나눈다거나  노래를 가르쳐
줄 분위기가  아니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집안일에 몹시 바빴고  아이들과 함께
부를 만한 노래도  없었다. 그래서 서양영화에서 가족끼리의  자유토론이나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면 무척 부러웠었다. 어느  날 드보르작의 ‘어머니가 가르
쳐주신 노래’를 정작 들어보니 천천히 시작되는  전주부터 숙연하게 들렸다. 폐
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듯  그윽하면서도 우수어린 짧은 노래가 가슴을 뭉클하
게 하고 끝난 후에도  여운이 길게 깔렸다. 제목만 듣고 왜  막연하게 즐겁고 경
쾌한 노래로 짐작했었을까. 애절한 멜로디를 들으면  문득 우리 어머니가 부르던
노래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동생을 재우면서  흥얼거리던 자장가라든가, 배가
아프다면 문지르며  불러주던 “까치야 까치야...”등 노래라기보다  한탄조에 가
까운 토막노래들. 인간세사의 애환을 애써 겉으로  표시하지 않고 속으로 삭이며
살던 어머니들이 푸념으로,  넋두리로 토해내던 노래였다. 툇마루에서 아이를 재
우며 “자장자장 우리  아기 새근새근 잘도 잔다  검둥개야 짖지 마라 꼬꼬닭아
울지 마라”하고 노래할 때 조용히 등 뒤에서  물드는 저녁놀. 그런데 우리 어머
니의 나직한 자장노래는 어둠이 깔리는  마루 밑으로 잦아들 듯 힘이 없던 것으
로 기억한다. 그때  나도 웬지 서글퍼져서 먼 산을 바라보면  어미품을 찾아가는
새의 날개가 희끗희끗  보였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의 슬픈
가사를 보니 더욱 서글퍼지는  것이었다. ‘늙으신 어머니 나에게, 그 노래 가르
치시던 때, 그의 눈엔  눈물이 곱게 맺혔었네, 이제 내 어린 딸에게,  그 노래 들
려주노라니, 검은 두 뺨 위로 아 한없이, 눈물 흘러내리네’ 어머니가 어떤 노래
를 가르쳐주면서 눈물을  흘렸는지 많은 사연이 함축되어 있는 듯했다.  노래 내
용이 슬픈 것이  아니었다면 당시 처한 상황이 슬펐었는지도 모른다.  옛날 일제
치하에서 서럽게 살던 우리네 조상들이 만주와 간도로 가서 살면서 망향의 노래
를 설움 속에서  가족들에게 가르쳤다는 얘기도 생각났다.  드보르작의 서정적인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는 가곡집 ‘집시의 노래’  7곡 중 네번째 곡이
다. 가사는 체코의 시인  아돌프 헤이둑의 시이다. 드보르작의 조국 체코는 우리
나라가 일제 36년 동안 말과 글을 빼앗기고 살았던 것처럼 오스트리아의 압제하
에 오랫동안 자기네  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했다. 체코말 사용이  금지되던 시절
의 절실한 애국심과 이 노랫말이 어떤 연관이 있었으리라는 상상이 가능하지 않
을까. 헤이둑의  시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를 읽었을 때  시인의 효성에
공감하고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정감이 절절해서 곡을 붙였을 것이다.  원래 가
곡집 ‘집시의  노래’에 담긴 6개의 가곡들은  대개 활력이 넘치고 자유정신과
강한 기질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는 예외이다.
드보르작은 열여섯  살에 고향을 떠나 프라하에서  음악공부를 했고 작곡생활을
했다. 이 노래는 그가 서른아홉 살에 작곡을 한 것이다. 나이가 들었지만 어렸을
때 그리워하던 어머니의 정이 이 노랫말을 만나서  불붙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
편 슬픈 듯하고 아름다운 정감을  자아내는 이 노래를 듣노라면 이 노래를 작곡
하기 전 2, 3년 동안 첫째딸, 둘째딸,  장남을 한두 살에 잃어버린 아버지 드보르
작의 참척의 슬픔이 배어  있는 것도 같다. 그 옛날 저무는  놀을 등지고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새근새근 잘도 잔다...”하시던  우리 어머니의 노래는 낮고 슬퍼
서 땅 속으로 잦아  들었었다. 그 어머니의 애수도 어릴 적에  잃었던 세 자녀에
대한 참척의 슬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어머니 가신 지  오래지만 새삼
스럽게 아픈 기억으로  되살아난다. 아기를 서글프게 재우실 때 멀리  산 아래로
날던 새들처럼, 찾아가 안길  어머니 품이 없으니 이 거대한 대지  위에 홀로 선
나는 지향없이 흘러가는 종이배처럼 하느적거릴 수밖에.

   커피 칸타타

 ‘아버지, 제가 만일  작은 잔으로 하루 세 번,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면, 저는
구운 염소고기처럼  말라버릴 거예요.’딸에게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타이르는
아버지와 딸의 애원하는 익살조 가사가 담겨있는  ‘커피 칸타타’. 예나 지금이
나 젊은 자녀에게  커피를 금기시키는 것이 아버지의 상정인가 보다.  나는 커피
에는 자극 성분이 있어서 잠시 정신을 맑게 할 뿐 채식 위주의 식생활엔 해롭다
는 충고에 익숙하면서  악명 높은 커피를 끊임없이 마셔온 사람  중의 하나이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라면, 근엄하고 곱슬곱슬
한 가발과 정장 등 격식을  차린 외모뿐만 아니라 음악도 사람을 긴장시키는 듯
하다. 감미로운 선율보다  무거운 종교음악과 하프시코드 음악만이  연상되어 친
근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커피  칸타타’는 가사도 세속적이고 희극
적이어서 유쾌하게  들을 수 있다.  바흐가 활동하던 18세기에도  독일에선 커피
마시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그가  살던 라이프찌히엔 커피점이  여러 군데
있어서 사교장으로도 쓰였다.  특히 ‘찐만’이란 커피점은 때로  음악회를 열기
도 했는데 바흐가 대학생 대상의 음악회를 자주  열어줬다. 그때 쓴 곡이 ‘커피
칸타타’이다. 가사는 당시  유행시인이던 피칸더의 것. 20대이던 내게도 커피를
금기시키던 아버지와 다방에  가던 때가 생각난다. 서울 명동의 이름  높던 ‘커
피 하우스’와 ‘카페 떼아뜨르’의 커피향에 젖어,  몇 잔씩이나 마시는 겉멋든
딸의 속셈도 모른 채,  아버지는 으레 여름이면 칼피스, 겨울에는 홍차나 시켜주
셨었다. ‘수천 번의 키스보다 사랑스럽고,  머스컷 포도주보다 달콤하다네. 커피
가 아니고는 세상의 어떤 방법으로도 나를 기쁘게  할 수 없어요.’ 세상의 어느
것도 커피보다 기쁘게  할 것이 없다는 딸의  애교스러운 노래와 아버지의 타이
름, 탄식 등 10곡의  노래로 ‘커피 칸타타’는 이루어져 있다. 부자간의 갈등이
깔린 영화로 바흐의 음악이 인상적으로 쓰인  영화가 생각난다. 신세대들은 제목
만 들었음직한 1960년대 후반의 영화 ‘죽어도 좋아’(Phedra)에서, 계모를 사랑
한 안소니 퍼킨스가 부친에게 구타당하고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F장조’를 틀
어 논 자동차를 타고 질주한다. 흥얼거리고  울부짖다가 끝내는 벼랑으로 추락해
버린 슬픈 영화였다. 또 1970년대 초  순애영화 ‘러브스토리’에서 예쁘고 명석
한 하버드 대학생  알리 맥그로우가 바흐를 좋아했다. 그리고 라이언  오닐이 스
케이트 탈 때  흐르던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G장조  알레그로’가 인상
적이었다. 두 영화가  다 비극으로 끝난다. 한  편은 불륜의 사랑 끝에 부친에게
구타당한 좌절감이 파멸을 부르고, 한 편은  순수한 청춘의 사랑이었으나 아버지
의 반대로 자신들끼리 결혼해서 행복을 쌓으려다가 여주인공의 백혈병이 밝혀진
다. ‘러브스토리’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청춘의  처절한 사랑이 가슴을 저미는
영화였다. ‘커피 칸타타’의  클라이맥스 부분인 일곱번째 노래는  어떤 설득에
도 커피를  고집하는 딸에게, 아버지가  최후 수단으로 결혼을  시키지 않겠다고
위협하자 그 말에 굴복하는 딸의 노래가 그  내용이다. 결국 아버지는 딸이 원할
때 커피 마실 것을 약속할  수 있는 남자를 사윗감으로 허락한다는 해설자의 노
래가 아홉번째 노래로 이어지는 ‘커피 칸타타’.  커피의 품질이 개발되어 새로
운 커피가 많이 등장하고 갖가지  향을 가미한 것까지 나와 기호대로 선택할 수
있게 된 지 오래이다. 커피가 다양한 시대에  살면서 이젠 마시지 말라는 부모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아 씁쓸한 맛이 들 때도 종종 있다.

   시간의 춤을 그리며

 시간의 춤이라니?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져지지도 않는 시간,  그 시간의 춤이
라니. 삶의 매순간을  값지게 보냈거나 그렇지 못했을지라도  퐁키엘리의 ‘시간
의 춤’이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끄는 것이었다. 처음 이 음악을  들어보니 과연
제목처럼 모호하기는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무언가  많은 걸 함축한 듯 경
묘한 리듬과 숨죽이듯 조용한 소절로부터 폭발하는 듯한 큰 울림 등으로 변화무
쌍한 춤곡이었다.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1908~1989)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반은 나처럼  제목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애호가들을 위
해 특별히  연출한 느낌을 받았다. 밋밋한  전나무에 은방울, 금방울과 반짝이는
별을 매달고 장식전구로 현란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 듯이 화려하게 연출을
해서 재미있는 상상을 펼치게  한다. 바이올린의 그윽한 선율, 간간히 하프와 트
라이앵글의 영롱함이 가세되고 종이 울리며 풍부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교묘하게
이어진다. 카라얀 지휘의 연주는 제목에 걸었던  기대와 환상을 넉넉하게 채워주
었다. 대개 유명한 오페라에는  발레 장면이 있는 것이 많다. ‘라 트라비아타’
의 집시 무희들의  춤을 비롯하여 ‘파우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호프만
의 이야기’의 발레 장면 등  극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긴장을 풀게 하는 양념구
실을 한다. 그래서 때로는 경쾌하고 때로는 환상적이고  화려하 이를 데 없는 춤
이다. 오페라 ‘라  지오콘다’에 나온다는 ‘시간의 춤’은  얼마나 화려할까를
기대하면서 ‘빈 스테이트 오페라’ 공연을 담은 레이저 디스크(Pioneer Artists,
1986)를 볼 수 있었다. 엘비제  공작의 저택에서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에게 보여
주는 춤이었다. 하얀 나래의 무희가 스텝을 밟으며  천천히 나오면 다시 하프 반
주를 신호로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나와서 셋이 춤을 춘다. 바이올린과 트라이
앵글 반주에 미끄러지듯 등장한 프리마돈나의 우아한 동작 뒤에 나온 남성 귀공
자와 매혹적이고  극적인 발레가 계속된다.  그때 검은 복장의  남성이 등장하여
두 주인공을 방해하고 음악은 빨라진다. 두 사람은  끝내 살해되고 춤 장면은 허
무하게 끝나버린다.  아름다운 두 남녀의  사랑에 방해자가 나타나고  결국은 그
손에 주인공이 죽게  되는 내용인 듯하다. 원래 오페라의 내용이  여가수 ‘지오
콘다’의 비련을 다룬  것이라고 하다. ‘시간의 춤’은 3막에서  배신한 아내에
게 독약을 마시게  한 엘비제 공작이 연회를  배푼 자리에서 무용수들로 하여금
손님들에게 보여준 춤이다. 그래선지 음악만 듣고  상상하고 기대하던 것과는 너
무 달라 허탈했다. 어쩌면  음악만 듣고 그 음악의 흐름 속에  환상과 낭만을 간
직할 걸 그랬나. 현란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며  산타 할아버지가 갖다 줄 좋은
선물을 예측해보던 어릴 때처럼. 이탈리아  작곡가 퐁키엘리(Amilcare Ponchielli,
1834~1866)의 오페라 ‘라 지오콘다’는  오페라 공연작품으로선 인기가 없지만,
3막의 발레음악 ‘시간의  춤’은 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온  음악이다. 나처
럼 음악에 끌려서였을까.  시간과 속도의 차이와 슬픔을 모를 때  인간은 행복했
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네  발로 걷다가 그후 두 발로 걷고  최후에 세발로 걷
게 되는 동물이 무엇인가”라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해 죽어간 사람
들, 그것은  그리스 시대의 비극이다. 새벽에서부터  낮을 거쳐 저녁과 한밤중을
묘사했다는 ‘시간의 춤’. 사람의 일생을 아침,  낮, 저녁으로 상징한 것은 아닐
까. 색채감을 주고 변화가 다양해서 신나는 이  음악처럼만 지낼 수 있다면 세월
의 흐름을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지금은 시간의 수수께끼를 풀지 못
한 채 삶의  일부분을 낭비해버린 사람들이 가버리는 해를 아쉬워하고  있다. ‘
시간의 춤’을 들으면서 시간의 춤에 동참할 수 있을까.

   산골짝의 등불

 어둑한 강변대로를 달리는 퇴근길, 멀리 강물에  잠긴 다리의 불빛들이 차창으
로 잡힐  듯이 스치는 버들가지를  보며 영국의  민요 ‘산골짝의 등불’(When
it's lamp lighting time in the valley)를 읊조린다. 아득한 산골짝 작은 집에, 아
련히 등잔불 흐를 때,  그리운 내 아들 돌아올 날, 늙으신 어머니  기도해, 그 산
골짝에 황혼 질 때, 꿈마다 그리는 나의  집, 희미한 불빛은 정다웁게, 외로운 내
발길 비추네...  옆자리의 사람에게 들릴까봐  창쪽으로 얼굴을  돌리노라니 퍼뜩
강가에 스쳐가는 하얀 날개가 있다. 한강에 몇  마리가 살고 있다는 강 갈매기일
까. 그렇다면 오염된 강에서  무얼 먹고 사는가 궁금하다가, 낮에 사무실에서 본
어느 엽서  사연을 떠올린다. “저희들은  소외 직종에서 외롭고  고달프게 험한
세파를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임 이름이 ‘갈매기클럽’이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어려움을  얘기하고 우정을 나누는 저희에게 용기를 주세요”라
고 적힌 엽서였다. 갈매기가 많이 나는 바다  속에는 물고기가 많아 어부들은 뱃
머리를 그곳으로 돌리고 갈매기도  역시 그 고깃배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
를 먹는다고 한다. 갈매기와 어선이 공생관계를  유지하듯이 몇몇 방송 프로그램
은 청취자의 엽서와  긴밀한 관계이다. 그러나 엽서가 너무 많아  프로그램 제작
용으로 선택된 것 외에는 소홀히 대하게  마련이다. 개중에는 프로그램의 의도와
는 달리 절박한  사정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절실하게
호소한 눈물 어린  내용을 외면하고 지내는 것이, 때론 가슴속에  쌓여서 소금을
먹은 듯이 가슴이  무겁고 쓰라리기도 하다. 나의 이런 심정보다  ‘사랑의 전화
상담’을 맡았던 친구는  이런 일로 나보다 더욱 괴로워했다. 방송  사연보다 ‘
사랑의 전화’는 더욱  불우하고 절박한 경우들이 많았다.  기구한 운명으로부터
생활고, 마음의 상처  등등 세상의 어둠과 고통을 듣다보니 가슴에  무겁게 쌓인
다고 했다. 바다 갈매기는 짠 바닷물을 맘껏  먹어도 걸러내는 능력이 있어서 멀
리 힘차게 난다는데 사람도 마음에 플리지 않는 일이 차 있을 때 쉽게 걸러내는
자정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친구와 푸념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한동안 연락
이 끊겼던 친구의  근황을 동창에게서 전해듣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불치의 병
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청천벽력의 소식이었다.  어렸을 때 전학 간 학
교에서 그 친구와  친하게 된 것은 ‘산골짝의 등불’이란 민요  때문이었다. 오
락시간에 내가 부른  그 노래를 친구도 오빠에게서 배워서 좋아한다고  했고, 나
는 6.25때  폭격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고향의 극장에서 저녁  때면 들려오는
그 노래가 암울한  가슴을 등불처럼 환하게 비춰줬었노라고 말했었다. 몇  년 후
나는 서울로 와서 변두리의 친지댁을 찾다가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있었다. 이
골목이 아닐까  생각하고 한 골목을  따라가면 산등성이가 나오고,  엉뚱한 곳에
들어선 것은 분명한데 전화를 걸 만한 가게도 없고, 행인도 없었다. 날은 저물고
대문들도 굳게 잠긴 집들, 아득한 사막을 헤매듯  멍하게 걷다가 나도 모르게 ‘
산골짝의 등불’을 읊조렸다.  어디선가 멀리까지 빛이 퍼지도록  등불을 밝히고
나를 그리워할  사람은 없을까. 막연하게  세상에 혼자 내던져진  기분이어서 그
노래가 읊조려진 것 같다. 퇴근길, 집으로 돌아가는 지금의 내 마음도 그때 길을
잃었을 때처럼  쓸쓸한가 하고 마음속으로 묻는다.  고향을 떠나 방황하는 아들,
집을 그리워하면서도 돌아가지 못하는 애틋한 사연이 담긴 노래를 친구는 왜 좋
아했을까. 작년 겨울, 길어야 서너 달밖에 못 살거라는 진단이 내린 친구를 집으
로 찾아갔을 때 너무도 앙상하게 여윈 모습에 나는 슬픔을 억제할 수 없어서 친
구의 방에서 나와  버렸었다. 진통제로 고통을 가라앉히면서도  정신력이 평소와
같이 분명한 친구인지라,  어느새 거실로 나와 베란다를 내다보고 있는  나의 등
뒤에 서서 나직이 한 얘기.  “직장에서 피곤할 텐데 뭐하러 왔어. 곧 나을 병도
아니니까 자주 오지마. 두 달쯤  뒤면 저 동백이 곱게 필 테니까 그때나 보자.”
황량한 겨울바람 속에서  눈물을 주체 못하고 돌아오며,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
에서도 친구를 위로하려  하고 희망을 갖게 하려는  배려가 가슴을 에이는 듯했
다. 평소에도 누구에게나 의논 대상이 되고  현명하게 해결책을 찾아주던 친구였
으니, 그 산골짝에 황혼질  때, 꿈마다 그리는 나의 집, 희미한 불빛은 정다웁게,
외로운 내 발길 비추네... 목숨이 다하면  원점으로 돌아가는 이치라면 그 친구가
간 곳은 어디일까.  그가 염원한 ‘꿈마다 그리는 나의 집’은  어디였을까 하고
강물쪽을 바라본다. 살아있는  나는 퇴근길의 차 안에서 한낮 동안  메마르고 왜
소해진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줄 사랑의 불빛을 아쉬워하며 ‘산골
짝의 등불’을 구원의 표징으로 삼으려 하나  보다. 요르단강에서 이어지는 갈릴
리 바다와 죽음의  바다, 같은 강에서 이어지면서도 갈릴리는 물이  맑아 물고기
도 많이 살고 강가의  나무도 잘 자라지만, 죽음의 바다는 물이  더럽고 짜서 생
물이 살지 못한다는  얘기가 생각난다. 갈릴리는 상류에서 받은 물을  다시 요르
단강으로 흘려보내서 늘  맑은 물을 담고 있지만, 죽음의 바다는  요르단강의 물
을 받기만 하고 아래로 흘려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죽은 물이 된다고 들었다. 언
제나 받는 사랑에만  익숙한 내가 많이 베풀던  친구의 죽음으로 공허한 마음만
든다면 어떻게 하나.  강물의 흐름도 새로운 물이 들고 나면서  맑아지듯이 사랑
의 나눔으로  인성을 회복하고 소외된 삶도  구원해야 할 텐데. 나의  빈 가슴도
사랑으로 채워서 받을 줄만 알고  줄 줄을 모르는 죽음의 바다처럼 되지 않아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솔냄새 짙은 산골짜기에 묻힌 친구는 사랑의  등불을 내
걸기를 소망하고 있을 거라고 여기며 창 밖을  내다보니, 강물 위로 등불이 길게
길게 흐르고 있다.

   볼가강의 물결 너머

 동대문 근처에  있는 러시아촌을 지나노라면,  눈에 익지 않은  러시아 문자의
간판들과, 몸집만한  보따리를 든  러시아인들이 이국인처럼 머뭇거리지도  않고
두어 명씩 담소하며  활보하는 것을 보면 금석지감이 든다. 6년  전만 해도 모스
크바 국립합창단의 내한공연은  획기적인 사건이었었다. 공연이 있던  예술의 전
당 콘서트홀에 앉아서도  철의 장막 안에 있던  세계적인 합창단의 공연을 우리
무대에서 본다는 것이 실감이 안났었다. 공연  직전의 연주자들보다 구경꾼인 내
가 더욱 초조하고 긴장했었다. 지휘자의 손  끝을 구심점으로 파트마다 울려나오
는 소리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뤄낼 때 긴장되던  마음이 다소 풀렸다. 더욱이 머
리가 희끗한  남성단원들과 뚱뚱한 중년부인 단원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발랄한
노래를 부를  때는 흥겨워져서 박수가  절로 나왔었다. 단원들을  향한 지휘자의
어떤 표정과 손짓이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게 하고 강약의 대비를  이뤄낼까. 과
연 세계적인 모스크바합창단 특유의 하모니에 젖어든다는 사실이 너무나 행복했
었다. 더욱이 러시아  민요 ‘볼가강의 뱃노래’ 순서가 다가올 때는  가슴이 두
근거리기까지 했다. 초등학교 때 상급반 남학생들의  합창으로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얼마나 구수하고 활기에 넘쳤던지, “어기여차, 어기여차 배를 저어라 어기
여차 흰구름 피어오르는 수평선 저  너머로 바다의 보배 낚으러 가자 키를 바로
잡아라...” 이런 가사의  노래였는데 학예회 준비로 연습하는 소리가  좋아서 나
혼자 따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모스크바합창단의 이 노래는 서두부터 달랐다.
“예이 우흐넴 예이 우흐넴” 가슴속 깊은 데서 끌어올리는 소리로 시작해서 느
린 템포로 진행되는  어둡고도 진지한 노래였다. 어렸을 때 들은  경쾌한 노래와
멜로디만 비슷한 것이었다. 낮게 시작해서 점점 커졌다가 다시 잦아드는 끝부분.
조금은 신음에 가까운 소리여서 노래가 끝이 났는데도 쓰라린 기분은 오래 깔렸
었다. 모스크바합창단 관람  후 알아보니 ‘볼가강의 뱃노래’는  애초의 노동요
가 세월이 지나면서 몇 가지로 변형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인들에게 번
안되어 불린 노래는  너무 변형된 것으로, 그것도 동서 양대  진영이 갈라지면서
슬며시 꼬리를 감추었었다. 기선이 발명되기 전  볼가강가의 배를 끌어올리는 인
부들의 입에서  비롯된 것이 ‘볼가강의  뱃노래’라고 한다. 배를  잡아맨 밧줄
끝에 가죽띠로 만든  올가미를 가슴에 걸고 상류로  배를 끌어올릴 때 인부들이
“예이 우흐넴”구호를 불렀고 거기에  발을 맞춰 힘든 발길을 옮겼다는 피땀어
린 유래가 있다. “예이  우흐넴 예이 우흐넴 다시 한번 예이  우흐넴 힘을 합해
서 당겨라 소리를  모아 끌어라...” 이런 가사의 노동요  ‘볼가강의 뱃노래’이
다. 러시아의 찬란한  문화와 번영은 과거사가 되었지만 배 끄는  인부들의 힘을
바탕으로 이뤄지지 않았을까. 6년전,  모스크바에 잠깐 들렀을 때 안내인이 가리
키는 볼가강은 일부분이어서 실감이 안 났지만, 원래  그 강은 넓은 러시아 중앙
의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긴 강이다. 많은  문물과 유행을 실어나르던 배를 끌어
올린 인부들이 러시아의  문화도 끌어올렸으리라. 러시아라면 광대한  벌판이 떠
오르고 볼가강 물결  너머 실려온 유구한 역사가 연상된다. 숱한  설화와 전설이
서려 있는  볼가강의 애환. 특히 어렸을  때 들은 의적 ‘스텐카  라진’의 동화
같은 얘기가 인상적이다. 볼가강을 무대로 귀족의  재산을 털어서 가난한 사람들
을 도와주었다는 스텐카 라진의  배와, 그가 납치했다는 페르시아 공주의 얘기...
개방 이후 감춰졌던 러시아의 피폐한 실상이 드러나면서 실망도 했지만 역사 속
의 높은 문화예술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그  관심이 놀라웠다. 서민들도 저녁이
면 성장하고 오페라를  관람할 정도로 일반화됐다는 것이었다.  볼가강에서 힘겹
게 배를 끌던 힘. 그런 힘으로 언젠가는 무엇이든 이뤄내리라 느껴진다.

   청출어람을 기대한 아버지

 초등학생 때 읍내  공설운동장에서의 국경일 기념식 참가는  즐거운 일이었다.
각급 학교에서 학년별로 대표격만 참가하는 데다가 단상에서 단체장으로 좌정한
아버지가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기관장의 길고 지루한 기념사가  끝나고 남자
고등학생들의 밴드에 맞춰 기념일 노래를 부르노라면 마음은 국기게양대의 높은
깃발처럼 퍼럭거렸다. 사관생도  같은 유니폼의 지휘자가 금실로  장식한 어깨를
들썩거리면 쿵쾅쿵쾅  북이 울리고 금관악기는 햇빛에  번쩍거리며 눈길을 끌었
다. 볼을 불룩거리며 힘을  모아 불어대는 트럼펫, 곡선으로 구부러진 몸체를 가
슴에 대소 다소곳이  블면 우리 가슴까지 따뜻해지던 혼의 부드러운  울림. 식을
마친 후 밴드의 행진곡에 맞춰 퇴장할 때는  연주가 한결 흥겨웠다. 그러나 유지
들과 악수하는 아버지와  눈맞추고 싶어 단상 쳐다보랴,  쿵쾅쿵쾅! 북소리에 발
맞추랴, 허둥거리다가 새  운동화가 옆사람한테 밟혀도 높이높이  무등타듯 흥겹
던 내 기분을 누가 알았으랴. 교향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작곡
가로 알려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54~1949)의 아버지  프란츠
요셉 슈트라우스는 뮌헨의  궁정오케스트라에서 혼의 주자로 활동했다.  어린 슈
트라우스는 멋진 아버지의  솜씨가 부러워 혼 악기에 특별한 애착을  가졌다. 자
신도 어린이 악대원이면서 언젠가 아버지처럼 멋지게  불 날을 고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천재인 아들이 연주자로만 끝나는 걸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어
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 악기 연주 재능이 뛰어났지만 전시대 음악가의
아버지들처럼 연주여행으로  박수갈채를 받게  하지 않았다. 학교도  일반과정을
거치며 음악이로, 화성  및 관현악법을 공부시키고 대작곡가로  대성시키려고 체
계 있게 넓은 안목을  기르는 수련을 시켰던 것이다. 뮌헨대학에서 철학, 미술사
를 듣게 한 것도 지휘자로서의 훈련과 작곡가의 토대를 다지려던 독자적인 방법
이었다. 아들의 재능을  확신했기에 리하르트의 아버지는 심오한  애정을 쏟으면
서 큰 기대를  했었나 보다. 그러나 평범한 자녀의 아버지들도  자녀에게 기대를
거는 게 상정 아닐까. 내 경우도 당시로선  드물게 유치원 과정을 거치게 해주셨
고 초등학교 입학 후  받아쓰기라든가 친척들에게 편지쓰기를 권한 아버지의 배
려가 있었다. 딸의 작은 가능성을 느끼셨던지 칭찬  대신 동화책을 사주고 그 내
용을 설명하게 하셨다.  다른 애들과 자주 어울리는 것을 금하고  매사에 엄격한
아버지가 불만이었지만 서울 출장 때면 월간지 ‘소학생’등을 사주셔서 친구들
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중학 진학 때  타도시의 유명 사범학교에 가고 싶었지
만 아버지는 단호하게 반대하셨다.  대학진학에는 사범학교가 불리했기 때문이라
는 것을 후에야  알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곡을 작
곡했고 정식 데뷔작으로 인정받은 음악은 열여덟 살 때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
곡’,‘세레나데’등이다. 그러나  같은 해에 아버지의  환갑기념으로 혼 협주곡
작곡에 착수한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자랑스러운 아버지를 상징하듯이 팡파르
풍의 혼 연주로  시작해서 시정 넘치는 2악장, 웅장한 관현악  서주와 혼의 독주
솜씨를 발휘하는 3악장의 사랑스러운 곡을  이듬해에 아버지에게 바쳤다. 그런데
천재의 아버지는 이 곡을 한번도 대중 앞에서  연주한 일이 없었다고 한다. 넘치
는 기개와 참신한 악상으로  재기발랄하고 후일 대가로서의 재기가 엿보인 작품
인데도. 아들의  대성을 바란 아버지에게 그  작품이 미흡했던가. 아니면 아들의
자만과 방심을 우려했는지 모른다. 리하르트는 후일 관현악의 대가로 가곡, 오페
라의 걸작들을  쓰고 음악박사, 평론가,  명예철학박사, 법학박사의  영예를 얻어
아버지의 바람에 어긋나지 않았다. 그리고 ‘혼  협주곡 1번’을 내놓은 60년 만
에 1번의 미흡한  점을 보완해서 균형잡히고 명랑한 선율의 2번을  썼다. 그런데
도 나는 1번에 더욱 호감이 간다. ‘혼  협주곡 1번’을 들으며 평화롭고 따뜻하
던 날,  도약하려던 신선한 순간을 떠올린다.  특출하지 않은 딸이기에 아버지의
기대에 못 미쳤지만 아버지의 기대가 있었기에 전문직업인으로 한 길을 가고 있
는 게 아닌가하며.

   빛 속으로

 네게 가고 싶다, 나를 위하여 네게 가고  싶다, 언젠가는 찾아갈, 꿈꿀 수 있는
그곳, 이제 네게 간다.

   지팡이를 움직인 기도

 가도가도 파릇한 풀포기 하나  눈에 띄지 않는 땅, 발 딛고  뿌리내려야 할 곳
은 어디인가. 자신을 태양신의 아들로 믿고  방자하게 구는 파라오에게서 이스라
엘 사람들을 탈출시킨 모세의 책임은 막중한 것이었다. 하나님에게서, 가나안 땅
으로 그들을 인도할 사명을 받은 모세가 바닷가에  장막을 치고 있을 때였다. 파
라오가 이끄는 군대가  수많은 병거와 말을 타고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뜻밖의
사태에 당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의 울부짖음으로 모세에게  항의한다. 도
망가려니 앞에는 시퍼런  물이 넘실거리는 홍해요, 뒤돌아보면  파라오의 군대가
일으키는  먼지가  자욱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로시니(Gioachino  Rossini,
1792~1868)는 바로 이런 극적인 상황을 오페라로 형상화해 냈다. 흔히 오페라 대
본이라면 신화나 고대의 영웅을  소재로 한던 때에 로시니는 구약성서의 모세를
주인공으로 작가 ‘토틀라’에게 대본을  의뢰했었다. 오페라 ‘이집트의 모세’
가 공연되던 날  밤, 로시니와 친하던 발자크가 찾아와 “이  오페라는 음악으로
엮어진 아름다운 시”라고 절찬을 했다. 그러자  토틀라가 “3막을 더 빛나게 하
려고 홍해 장면에  기도하는 대사를 썼다”고 했다. 그 대사를  받아든 로시니는
“당신은 한 시간에 이 대사를  썼지만 나는 30분 만에 곡을 쓰겠소”하며 즉석
에서 불과 20분 만에  거뜬히 작곡을 했다. 순발력을 발휘한 이  기도 장면이 오
페라 ‘이집트의 모세’를 더욱 빛나는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로시니의 많
은 오페라 중에서  오늘날엔 ‘세빌리아의 이발사’,‘오델로’,‘윌리암 텔’만
공연되고, 그 밖의 작품들은 서곡과 아리아만 연주되는데, 아리아 ‘모세의 기도
’도 그 중의  하나이다. ‘여호와여, 당신의 빛나는  권좌에서, 저희를 돌아보소
서, 당신의 어린 아이들을 어여삐  여기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모
세의 기도’는 굵은 바리톤의 모세 음성으로  나직히 시작된다. 읍소하듯 어려움
을 호소하는데  물방울 튕기는 듯한  하프 반주가 정갈하게  받쳐준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당신  뜻을 따르겠사오니, 방황하는 저희의  불확실한 발걸음에도, 길
을 열어주소서...’ 모세가  기도한 내용을 서넛이 제창한  후, 모세의 형 아론이
명쾌한 테너 음성으로 간구하는 소리. ‘자비로운 여호와여 우리를 도와 주소서,
당신 안에서만 우리는 살아가노니...’ 이렇게 제창이 이어진다. ‘자비로운 여호
와여 근심을 잠재우시고  제 마음에 평화로운 안식을 주소서...’  엘시아의 소프
라노 기도는 더욱  애절하다. 지극히 단조로운 선율이면서  모세, 아론, 엘시아가
차례로 부르는 B플랫장조인데 듣는  이도 동참하여 간구하고 싶어진다. 세 사람
의 간절한 독창과 제창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승전고 같은 북소리와 함께 군중의
합창이 크게 울린다. 이 부분이야말로 가슴을  진동시키는 힘찬 아름다움으로 이
음악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게 만든다. 가사의  내용을 모르더라도 아름답고 힘
찬 화음에 어찌  여호와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겠는다. 여호와의 권능을  믿는 모
세는 여호와의 지시대로  지팡이를 바다쪽으로 내뻗는다. 서서히  물결을 양쪽으
로 밀어내던 바람, 바다 가운데로 길이 열리고  새로운 세계로 치달리게 하던 영
화 장면이 떠오른다.  칼과 창끝으로 세계를 지배한 시대에 지팡이로  위기를 극
복한 모세를  오페라 주인공으로 삼은  로시니, 그가 지팡이를  주재한 여호와를
믿는 기독교인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가 신앙의  핵심을 높은 예술로 승화
시켰으니 신자의  여부를 묻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절망적인  일들이 자주
다가오는 오늘,  우리는 두려움에 떨지  않고 고통을 이겨내고  고통을 뛰어넘을
때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담대하게 하늘을 새로이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은 내일을 위한 준비기간에 불과하다는  평범한 말의 의미를 되새기
며 자비를 호소하는 ‘모세의 기도’ 아리아를 자주 듣고 싶다.

   낙원을 꿈꾸게 하는 멜로디

 프로그램 개편으로 새벽 두시에 방송될 신설  프로그램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시그널 음악을 고르기 위해, 그 시간에도 포근히  잠들 수 없는 사람들이 누구일
까 하고 생각해 봤었다.  갖가지 시험과 진학 준비로 초조한 사람들과, 대낮처럼
불 밝힌 실내에서 생산품 제조에 골몰하는 사람들의 초롱한 눈빛이 먼저 다가왔
다. 그리고 밤길을  달리면서 졸음을 쫓느라고 눈을 크게 뜬  운전사들이 떠오르
고. 몸과 마음이 아파서 잠 못 드는 사람들이나, 이들을 돌보다가 써늘한 복도를
지나 대기실에서 라디오를  켜며 지친 어깨를 쉴 간호사, 정적속에서  낙엽 지는
소리에도 귀를 세우며 긴장할 불침번의 고독을  생각하자 가슴이 찡해졌다. 이런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줄 만한 음악은 어떤 것일까. 문득  내가 외로웠
던 순간에 위안을 받았던 소리를 떠올렸다. 어렸을 때 시골 외가에 가서였다. 한
낮엔 동네  친구들과 들과 산에서  즐겁게 보냈지만, 해질녘엔  공연히 쓸쓸하고
서러웠다. 넘어가는 햇살이 걸려있던 툇마루에 앉아  옆집 감나무 꼭대기에 남아
있던 감을 올려다보며  흐르는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런데 어느  집에선가 들려
오던 서툰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이느라 서글픔이 조금씩  달아났었다. 한밤에
듣던 피리소리처럼 청승스럽지 않고, 서양의 목동들이  부는 목가처럼 정감 있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이야말로 프로그램의 인상을 좌우하
고 내용을 짐작케  하는 얼굴인데, 그런 목가적인 곡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면서도 긴장감을 줘서 작업이나 공부의 능률을 올려주는 음악, 정
신을 맑고 상쾌하게  해줄 수 있는 악기라면 플루트인데, 차가운  느낌이 앞서지
만 우선 들어보기로 했다. 장  피에르 랑팔(Jean-Pierre Rampal, 1922~ ),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 1939~ ) 등 명  연주가의 여러 음악을 들어봐도 전문적인
클래식 음악으로 대중적인  시그널 감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한 장  남은 제임
스 골웨이의 디스크는 들어보나마나일 것 같았다.  그냥 집어치우려던 나는 곡목
끝부분 14번째에서 뜻밖의  곡목을 발견했다. ‘아일렌드 메들리-이니스프리  호
도’(Irish Medley ‘The Isle of Innisfree’)라니, 이건 나의 애송시인 예이츠의
시 제목인데, 같은 제목의  음악도 있다는 사실이 우선 반가웠다. 아일랜드 음악
이면 명곡 ‘대니  보이’처럼 서정적일까. ‘이니스프리 호도’도  그만큼 흡인
력 있는 멜로디이기를  바라면서도 선뜻 들어보기가 겁이 났다. 음악을  듣기 전
에 우선 시구부터 읊조리며 가다듬기로 했다. ‘일어나 지금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가지 얽고 진흙 발라  조그만 초가 지어, 아홉이랑 콩밭 일구어 꿀벌 치면
서, 벌들 잉잉 우는 숲에  나 홀로 살리...’ 이런 첫 연뿐만 아니라 “거기 평화
는 깃들어 고요히 날개 펴고 귀뚜라미 우는  아침 놀 타고...”의 둘째 연 내용으
로 미뤄볼 때  ‘이니스프리 섬’은 정녕 꿈에라도 가고 싶은  아늑한 곳이리라.
더욱이 연주자 제임스 골웨이는 아일랜드 태생이니 그가 뛰어놀고 자란 곳의 음
악을 정확한 해석으로 연주했을 것이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연주가는 음악
을 해석하는 사람”이라  했고 “다른 악기를 위해  작곡된 음악을 연주할 때는
플루트에 맞는 조로 바꿔서  음색을 유감없이 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기대를
해도 될까. 그러나 민족적인 아픔을 지닌  아일랜드여서 예이츠도 조국애와 그리
움의 시를 많이 쓴  것처럼 ‘이니스프리 호도’의 멜로디도 애상적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한편으론 드는 것이었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연주가 위치에 선 제
임스 골웨이가 슬픔을 이기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연주했기를 간절히 바랐다. 제
임스 골웨이는 고향에서 어릴  때 고적대원으로 활약하면서 플루트에 관심을 갖
고 성장했으며 런던의  왕립음악원과 파리음악원에서 기량을 닦았다.  거장 마르
셀 모아즈에게서는 “인격을 음악에  불어넣는 연주”를, 랑팔에게서는 “기쁨에
찬 연주법”을 배웠다. 그후  런던 교향악단, 로열 필하모닉의 수석 주자로 활약
하던 중  카라얀에게 발탁되어 베를린  필에서 8년이나  머물렀다. 1975년부터는
독주가로 명성을 날리며 세계 순회연주와 녹음에  쫓기고 있다. “화려한 음색보
다 농부의 투박스러움이 깔린  굵은 톤과 명료한 선율미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는 평이 다단한  생각에 빠진 나를 안심시켰었다. 더욱이 고향  멜로디의 연주이
기에 아늑한 서정의 울림으로 편안하고 생명감에 찬 소리로 안겨들 것으로 짐작
됐다. 새벽 두시에도  생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이니스프
리 호도’라는 제목만으로도  이상향을 꿈꿔 보게 할 것 아닌가.  누구의 가슴에
서라도 꿈꿔 볼  수 있는 낙원, 동경의  장소로서 이니스프리는 존재할 수 있다.
꿈꾸어 만들어내는 창조의 세계, 그리움을 형상화하면 이니스프
리 호도가 될  수 있을 텐데. 나는  본래 목적인 시그널 음악 고르는  것은 잊은
채 제임스 골웨이와 시의 내용에 젖어 있었다.  서둘러 음반의 커트를 맞추어 들
어봤을 때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르르  음악 속에 녹아들 것 같다”
느니 “먹구름을 몰아가는 상쾌함으로 다가온다”는 청취자의 엽서가 그때 기분
의 일부를 대변한다. 그리고 나의 목적과 의도가  그대로 녹아 들어 있는 전원의
목가적인 음악이어서 얼마나  기뻤던지. 시그널 음악이 좋다는  전화와 엽서에서
또 다른 무게를 느낀다. 청취자에게 아늑한  기쁨의 섬으로 안내하지는 못할지라
도, 길을 밝혀 주는 등대라도 되고 싶다.

   밤바다를 함께 비추는 달빛과 별빛

 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이나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면 라디오  PD들은 음
악선곡에 한층 신경을  쓰게 된다. 여름에는 이른바 ‘납량용’이 될  만한 시원
한 것을 찾고,  가을에는  차분하면서도 따뜻한 위안이 될 만한 것을 구한다. 여
름엔 파도소리나 바람소리, 빗소리 음향효과를 곁들인  음악을 쓰기도 하는데 너
무 도식적인 것 같아 자주 쓰지는 못한다.  그래서 같은 곡목의 노래라도 경쾌한
리듬으로 편곡된 것이라든가, 처지지 않고 산뜻하게  부른 가수의 노래를 여름용
으로 택하게 된다.  가을이 되면 밤 프로그램의 담당자는 무드있는  연주와 현악
기 반주의  노래, 그윽한 것이 연상되는  서정적인 음악을 찾게 된다.  PD들마다
대개 이런 것을 감안하여  취향대로 ‘단골 납량곡’이나 ‘가을 명상곡’을 몇
곡씩 정해두고 있는데, 내 경우 두 계절용으로 좀 엉뚱한 노래가 한 곡 있다. 경
쾌한 팝송도,  청량한 연주곡도 아닌데다  신곡도 아니다. 20여  년 전에 출반된
LP판의 클래식 ‘호프만의 뱃노래’가 그것이다.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
코프(Elisabeth Schwarzkopf)와 메조 소프라노  쟈닌 콜라르(Jeannine Collard)의
화음이 오묘한 ‘호프만의 뱃노래’, 이것은 느린  템포로 경쾌한 여름용도 아니
고, 차분하기는 하나 제목이 뱃노래여서 가을에  듣기엔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앞
설 것이다. 이 노래는 바이올린 튜닝으로 아주 작게 전주가 시작된다. 전주가 먼
수평선으로부터 점점 다가오는 듯한데  첼로의 무게 있는 소리가 화답하여 울리
면 이어서 하프의 독주가  찰랑찰랑 뱃전을 치는 물 소리를 낸다.  그 뒤로 조용
한 소프라노의 노래가 퍼지면서 어느새 자연스럽게 끼어든 메조 소프라노가 2중
창을 이룬다. 두 사람의 소리가 서로 받쳐주는  듯 조화를 이뤄가는 그윽한 화음
이 노래가  끝난 후에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구태여 영어 가사가  어떤 뜻인지
모르더라도 느껴지는 게 있고, 부르는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고 원하는지 진지하
게 정성을 모으는 노래이다. 높은 경지에 이른  개성 있는 음색으로 서로서로 조
심스럽게 상대방의 소리를 받쳐주고  있는 완벽한 조화가 정다운 친구끼리의 무
르익은 우정에서  빚어내는 음률 같다.  의기 화합하여 이뤄내는  화음의 여운이
가슴에 머무른다. 농익은  포도주처럼 물씬한 화음으로 부르는  이중창 ‘호프만
의 뱃노래’를 듣고 있으면 사랑으로 뒷받침된  우정이 생각난다. 옛날 중국에서
음악으로 맺었던  우정의 친구 백아와  종자기의 일화가 있다.  거문고의 명인인
백아가 산 속의 풍경을 묘사하는 연주를 들려주면 종자기는 알아채고 푸른 산을
바라보는 기분이라고 했고, 강물을 상상하며 연주하면  그때는 흐르는 강물의 느
낌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줬다고 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손에 만져
지거나 눈으로 보이는 것, 그리고 귀에 들리는  것에만 가치를 두고 속단해 버리
기 일쑤이다.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친구끼리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가슴을
읽어내는 경지의 우정이  소중하다고 일깨워주고 싶다. 방송에  쇄도하는 엽서에
는 친구의 생일축하 음악을 신청해 오는 것이  제일 많다. 대개는 어린 학생들로
친구의 생일축하 음악을 선물하는  것으로 단순하게 우정의 표현을 하기가 일쑤
이다. 나는 때로  엽서에 지정해온 희망곡이 아닌 2중창  ‘호프만의 뱃노래’를
틀어 주며 그들의 우정이나 사랑이 깊어지기를  바란다. 신청해온 사람이야 나의
숨은 뜻을 모르겠지만. 변화가 많고 속도감 있는 것, 기능적인 것에 비중을 두는
젊은이들에게 오래 묵은  정, 돈독한 정의 소중함을 말로 들려준다면  얼마나 지
루하게 생각할까.  그래서 때로는 음악이  수많은 단어의 얘기보다  설득력 있는
언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나대로 설정한 우정의 노래 2중창  ‘호프만의 뱃노
래’를 들려주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의도하는  귀중한 우정까지야 느끼지 못해
도 좋다는 심정으로  이 노래를 틀기도 한다. 심야에 홀로  공부하거나 작업중인
직업인이 2중창을 들으며, 거친 세상에 혼자가  아니고 둘이라는 것에 여유와 위
안만 느껴도 좋다.  그러나 어두운 밤바다를 함께 비춰주는 달빛과  별빛처럼 인
생길에 사랑과 우정을 함께  할 친구를 갖기 바라는 마음은 늘  잊지 않는다. 고
도의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우위와  이익을 위해 인간관계를 냉혹하게 단절해 버
리는 세태이기에  화목한 가족, 돈독한 우정을  값지게 여기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랑과 이해의 바탕 위에서 친구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와 이상에 동조할 수 있
는 친구, 뜻이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믿음직하게  바라보는 친구가 있다면 개인과
사회의 발전은 보장되리라.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그 꿈을 통해서 현재의 위치
에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  ‘호프만의 뱃노래’를 들으며 우정의 소
중함까지는 느끼지 못하더라도 꿈으로 가는 뱃길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
이다. 그래서 나의  단골곡 2중창 ‘호프만의 뱃노래’는 여름엔  납량곡으로 틀
었지만 가을에도 따뜻한 우정용으로 자주 방송할 것이다.

   환희의 바다, 베를린 장벽 개방 콘서트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죠.  28년이나 기다렸는걸요.” “동베를린에서는 며칠
밤을 꼬박 새웠어요.”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8시 반에 왔어요.” 베를린 장벽
개방 기념 콘서트를 보려고 달려온 수천 명의 동독 사람들로 연주홀은 대만원이
다. 정장한 리포터가 몇몇  입장객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입장권을 구하려고 기
다리기가 지루하지 않았는가,  어떻게 앞자리를 차지했느냐는 물음이  채 끝나기
도 전에 봇물 터지듯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대답이 쏟아졌다. 화면에 보이는 입
장객들의 흥분된 표정만으로도 이 날을 열망했음이  짐작된다. “이 콘서트 지휘
는 대단히 명예로운 것입니다.” 이것은 지휘와  피아노 연주를 맡은 바렌보임의
간결한 대답. 베를린 장벽이 1989년 11월 9일 예상보다 빨리 무너졌었다. 28년이
나 막혀 있던 장벽이 개방된 것을  축하해서, 서베를린에서는 동독시민 환영행사
를 여러 가지 마련했는데,  베를린 필도 서둘러서 개방 사흘 만인  12일 11시 필
하모니아 홀에서 무료  콘서트를 연 것이다. 음반 녹음차 서  베를린에 체류중이
던 바렌보임이 선선히 지휘를 맡았고  베를린 필 단원 모두가 자발적으로 이 연
주회를 결정한 것이었다. 1층부터 4층까지 들어찬  청중의 열광이 영상 음반에서
도 가슴 벅차게  느껴졌다. 무대 위의 연주자들과 기립한 청중의  감개무량한 표
정이 먼저 비치고,  이어서 무대에 나온 바렌보임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
다. 바렌보임 역시 감회 어린 눈으로 청중을  바라보다가 덮개를 떼어 낸 피아노
앞에 앉는다.  잠깐 기도한 바렌보임은 이내  두 손을 높이 올려  피아노 너머로
단원들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현 파트의 부드럽고도  경쾌한 도입부 연주를 관현
악의 연주가 이어받고,  다시 현악기와 금관악기 목관악기가  차례로 진행되다가
오케스트라 전체가 힘차게  발전되며 신나는 몸짓으로 연주하는  단원들. 베를린
필의 다른 음반에서는 볼 수 없던 기쁨과  흥분이 넘치는 표정들이다. 평소의 연
주 때의  근엄한 연주 모습이 아니다.  당시 이 콘서트  실황을 라디오와 TV로,
동, 서독은 물론 유럽 전역에 동시 중계했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는 TV 뉴스로
나 접했던  콘서트 소식이었는데, 몇 년  후 당시의 감격이 생생히  수록된 영상
음반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화면은 드디어  지휘를 멈춘
바렌보임의 피아노 독주 장면으로 이어진다. 날렵한  터치마다 화려한 음색을 튕
기면서 간간히 왼손을  들어 단원들에게 지휘의 손짓을 보낸다. 1960년  로마 올
림픽 때, 분단 동,  서독이 단일팀으로 출전해서 어느쪽의 국가도 아닌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주제를 연주했었다. 체제와 이념을  초월해서 내세울 수 있었던
독일 민족의 긍지, 이  콘서트의 레퍼토리도 물론 베토벤이다. 이 음반의 자켓에
는 지금 연주하는 ‘피아노  협주곡 1번’ 다음에 앙코르 곡인 모차르트의 ‘피
아노 소나타 10번’ 중  2악장, 그리고 후반부의 베토벤 ‘교향곡 제7번’, 역시
앙코르 곡인 모차르트의 가극  ‘코지 판 투테’(Cosi fan tutte)서곡이 있다. 그
리고 도입부와 중간 부분에 각각  베를린 장벽 개방 당시의 장면과 베를린 장벽
의 개략적인 역사 다큐멘터리가 들어있다. 다시  화면으로 질풍노도 같은 바렌보
임의 연주장면을 보는데  냉정하게 연주에만 몰입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1
악장이 끝난 후 손가락의 긴장을 푸는 듯, 한  손으로 다른 손을 주무른 후 평화
롭고 부드러운 2악장을 계속한다. 이어서 ‘축제  행진곡’보다 빠른 3악장의 열
띤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이  너도나도 일어나 환호를 보낸다. 단원들도 기립, 지
휘자에게 꽃다발 증정이 줄을 잇는다. 끊일 줄 모르는 박수와 환성, 저들의 환호
는 수준 높은 음악을  들려준 것에 대한 감사의 환호이다. 그러나  그 열광은 자
유 세계가 열린 자축의 박수 같기도 하다. 그칠 것 같지 않던 박수도, 앙코르 곡
인 바렌보임의 독주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가 시작되자 금을 긋듯 사라
져 버렸다. 평화로운 선율이 마음에 스며드는데  카메라에 비친 청중들의 모습에
숙연해진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인,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거나 자기 얼굴을
감싸쥔 이도 있다. 팔걸이에 엎드려서 빛나는 눈만 치켜 뜬 청년이 있는가 하면,
깊은 사색에 잠긴 중년 남성과, 머리가 허연  노인은 만감이 교차하여 눈물이 흘
러내린 채로 부동의 자세로 앉아 있다. 바렌보임도  앞서 베토벤 연주 때의 냉정
한 모습이 아니고 가슴에 고인 기쁨을 억누르려고  자제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
의 기본 권리인 자유를 빼앗겼던  과거의 고통을 부드러운 멜로디가 녹여 낸 것
일까. 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으로 동구의 사회주의  국가에 자유의 물결이 일기
시작하면서 동독에도 언젠가는 그런 파장이 일어날  거라는 예감이 있었다. 그러
나 예상보다 빨리 온 것이었다. 동독이 1989년 건국 4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른 뒤 얼마 안된 11월 9일  목요일 밤이었다. 그 주말에는 장벽 가까
운 서독의 도시에  동독 시민들로 거리가 넘쳤다고 한다. 분단  1949년 이래 260
만 명의  노동자가 서독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1961년엔 8개월 동안  무려 35만
명이나 서쪽으로 탈출하자 동독에서는 서쪽으로 통하는  문을 차단해 버렸다. 도
망병과 도망하는  시민들을 사살하는 장면이  TV로 세계에 방송되기도  했었다.
영상 음반의 화면에선 베를린 장벽의 역사  다큐멘터리가 계속되어, 잊었던 당시
의 비극을 되새겨주고 있다. 공산국가들의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았었지만, 동베
를린 시민들의 차림새와 이 콘서트에서 환희에 찬 표정들만 봐도 얼마만큼 빈곤
했고 자유를 갈망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화면은 단원들과의  인터뷰 장
면이다. 역사적인 연주회를 추진하기까지의 경위와 감회  등에 대해 눈물을 훌쩍
이며 대답하는 단원의 모습에 나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인터뷰 장면이 지나
고 다시 무대에  등장한 바렌보임의 지휘로 ‘교향곡 제7번’이  시작됐다. 단원
들은 전반부의 즐겁고 흥분된  몸짓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진지함을 추구하는 것
같다. 예술성을 높여 숭고한  음악을 연주하려는 자세였다. 1악장을 끝낸 바렌보
임은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2악장을 연주한  단원 중에서 현악기 주자들은 줄
을 고른 뒤 다시 3악장을 시작했다. 호쾌한 3악장, 광풍노도 같은 리듬과 열기에
찬 대 클라이맥스가  끝나자 이번에도 꽃다발 증정, 박수와 환호성을  울리는 청
중. 바렌보임이 다시 무대에 올라 “협주곡을  연주한 연주가가 앙코르에 응하는
것은 형소엔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보통 날과 다릅니다. 여러분에게도
나에게도 그러니까  허락하겠습니다. 우리는 또  한 곡 ‘코지  판 투테’서곡을
연주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더  큰 환성이 청중에게서 쏟아졌다.  단원들의 보
면대엔 청중에게서 받은  꽃송이들이 훈장처럼 꽂혀 있다. 음악이 끝난  뒤 다시
울리는 박수. 저토록 한마음 되어 치는 박수를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공산체제
에서 큰 대회 때마다 의무적으로 쳤던 박수와는 달리 진심어린 박수를 오랜만에
쳐보는 감회도 솟구쳤으리라. 노인들은 과거의 피비린내  나는 혁명과 암흑 같은
사회에서의 부자유가 생각나서 아름다운 선율이 모두  자유에의 서곡, 희망과 용
기의 힘찬 음류로 가슴을 울렸는지도 모른다.

   위풍당당하게 나는 연처럼

 태극마크가 선명한 방패연이 푸른 공간에 길을  내면서 간다. 승승장구 무적의
장군처럼 기세좋게 올라가더니,  이번엔 물결이 넘실거리는 한강물과  둔치에 서
있는 고운 한복차림의  부자를 비춘다. 똑같이 차려 입은 진홍빛  저고리와 회색
바지가 정겨워 보인다. 그러나 손에 든 연 모양은 따로따로다. 하얀 바탕의 방패
연을 든 아빠는  얼레까지 쥐고 있는데, 얼굴이 빨개진 꼬마는  노오란 가오리연
이 땅에 끌릴까봐 추켜든  손을 호호 불고 있다. 앞서 장군처럼  치솟던 연이 한
자리에서 가락에 맞추듯 너울너울  춤추는 장면과 6각 얼레로 실을 퇴겼다 당겼
다 하며 조종하는  손을 번갈아 클로즈업시켜준다. 하늘 높이 몸체를  흔들며 춤
추는 연. 정월에 연날리기는 새해의 찬미요, 신바람의 시작이 아닌가. 어렸을 때,
정월이면 바람이 차가운 벌판으로 연날리기 구경을  자주갔다. 바람에 맞춰 얼레
의 실을 풀어주면 하늘  높이 치솟던 연. 우러러 보던 나도  덩달아 날개가 돋는
듯 했다. 어떤  땐 맞바람에 치솟았던 연머리가 곤두박질쳐서 땅바닥  가까이 내
려올 때 조마조마했고,  다시 재빨리 연머리를 들어 하늘로 올리던  솜씨에 박수
를 보내기도 했다. 텔레비전에서 신정특집 연날리기를  보니 볼이 시리고 추워도
가슴이 탁 트이던 생각이 떠오르는데, 화면에  갑자기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10여 명이 일렬로 서서 띄운  연이 푸른 바다
를 헤엄치는 물고기들처럼  유연하게 움직인다. 여럿이서 하는  연싸움 놀이에서
는 실이 튼튼해야  상대편의 연줄을 끊어 멀리  사라지게 하고 자신은 공중에서
오래 견딜 수  있다. 실에다 아교풀로 유리가루를 바르고 우람한  크기의 연으로
동네아이들 틈에서 혼자만  높이 띄우던 친구 오빠의  연처럼 높이 치솟은 연이
있다. 좀전에 물고기처럼 헤엄치던 연 무리 중에서 한 개가 떠오른다. 점점 땅에
서 멀어지더니 햇빛이 반사되면서 현란한 빛을 내는  것 같다. 함께 뜨기 시작한
연들 중에서 우뚝 솟아 저 밑에서 다른 연들이 강풍에 떨어지고 다른 연줄과 얽
히는 것쯤 아랑곳하지  않고 높이높이 떠 있다. 바람쯤 개의치  않고 위풍당당한
것을 보니 아무 연관도 없는 모차르트의  ‘쥬피터 교향곡’이 떠오른다. 세밑의
묵은 피로가 덜  풀린 채 새해를 맞았을  때, 건강한 힘을 줄것 같아  자주 듣는
음악이다. 추위로 언  손을 녹일 만한 온기도 없이 고생하면서도  화려하고 힘찬
곡을 써낸 모차르트. 초기의 작품들이야 신동으로  가는 곳마다 찬사를 받았기에
쓰는 작품들도 상승효과로 밝은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실연의 아픔과 어머니의
죽음 등 인간의 고뇌를 겪기  시작한 시기의 작품들도 우수의 그림자가 없이 화
려하다. 만년인 32살, ‘쥬피터 교향곡’을 쓸  때는 특히 어렵던 시기였다. 자유
로운 예술가의 길을  걸으려고 찾은 빈에서의 생활  10년은 줄이 끊어진 연처럼
불안정했고, 평온을 되찾기 위한 비극적인 고투로 보냈다는 사실이 생각난다. 그
의 오페라 작품 공연은 대만원이었지만, 저작권법이  없던 때여서 작곡가에겐 경
제적인 도움이 안되었다. 화면을 보니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연이 여유롭
게 시를  쓰고 있다. ‘쥬피터  교향곡’도 아름다운 시정이  풍부하고 조형적인
구성미와 함께 다이내미즘의  기복이 심한 음악이다. 환경과는  관계없이 선천적
으로 타고난 밝은  성격의 작곡가와 화려한 음악, 사람도 허허로운  공간에 놓인
연처럼 어느  단계에 이르면 해탈의  경지처럼 여유가 생길까.  돈벌이엔 관심이
없고 창작에만 몰두하여 밝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한 모차르트의 교향곡을 플
레이어에 걸었다. 높이높이 뜬 연도 여러 신  중의 왕인 쥬피터처럼 승리의 찬가
를 울리고 있는 듯하다. 안단테 칸타빌레의  가락에 맞추듯이 몸체를 한자리에서
흔들고만 있다. 새해  연휴에 신나는 연날리기도 감상하고  활기로운 쥬피터까지
듣고 있으니 올해는 ‘뜻한 대로  주욱죽 잘 풀리라’는 덕담을 들은 것같이 모
든 일이 순조로울 것만 같다.

   언 땅에서 피어난 은방울 꽃

 레코드실에서 선곡중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 3대 이름
이 나란히 찍힌  음반을 발견했다. 이름 밑에는 철학자 같은  1세의 프로필 캐리
커쳐와 2세 막심,  3세 드미트리가 같이 찍은 프로필 사진이  실렸는데 부자간의
닮은 주걱턱이 눈길을 끈다. 웃음을 참으며  곡목을 보니 쇼스타코비치가 아들에
게 작곡해준 ‘피아노  협주곡 2번’도 실려 있다. 3대의 사진과  곡목만으로 가
족애를 짐작해보는 것은 속단일까.  쇼스타코비치가 전국작곡가동맹 서기로 임명
되어 취임인사 때 낭독문  뒤에 ‘공산당과 소비에트의 은혜’라는 의례적인 말
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뜻밖에도 ‘부모님의 은혜’라는 말에  의아했었다. 워낙
체제와 예술 사이의 갈등으로  이따금 어릿광대의 가면을 썼던 그였기에 좌중은
엉뚱한 행동이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의  은혜는 그의 심중에 자리
잡은 진실이었다. 아버지가 음악애호가였고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워 음악가
로 성공했던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부모의 사랑과 정성으로  음악가가 되었던
만큼, 자신의 대외적인 활동  못지않게 아들에게 마음쓴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음반에는 없지만,  아들 막심이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을 때  데뷔 연주곡
으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협주곡’을  써줬고, 재학중에는 ‘피아노 협주
곡 2번’을 작곡해줬다.  쇼스타코비치는 1957년 아들이 19살 때  ‘교향곡 제11
번’과 병행하여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썼다. 엄숙하고 무거운  ‘교향곡 제
11번’을 쓰면서 동시에 즐겁고 귀여운  곡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따뜻한 아버지
의 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음악에는 대부분  처참하거나 무거운
시대상이 담겨 있다.  러시아 혁명기에 성장했고 공산체제에서  정치적인 역할도
맡았었기에 체제 순응과 예술가로서 고민한 흔적이  작품에도 드러난다. 그런 작
품들 사이에  사랑스러운 이 협주곡이  있어서 귀하게 여겨진다.  대표작만 해도
13개의 교향곡, 현악 4중주곡 10작품과 2개의  피아노 협주곡, 그리고 오페라, 영
화음악 등이  있지만 어둡고 난해하리라는 선입견  때문에 평소 쇼스타코비치의
음반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이 협주곡은 밝고 즐겁다. 굴곡 있는 삶
의 주인공인 자신과  달리 아들만은 순탄하고 밝은  세계를 누리게 해주고 싶은
아버지의 의도가 담겨있는 듯하다. 새순이 잘  뻗어나가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아
버지의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이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작곡가이며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그가  기교적으로 쉬우면서 역량이 잘  드러나도록 배려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실. 이렇듯 간결한  형식이지만 본질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다.
즐거운 운동회가 연상될  만큼 신나게 시작되는 1악장, 그윽하고  시적인 분위기
의 2악장, 그리고 3악장은 빠르고 힘찬 도약을 느끼게 한다. 초연은 모스크바 음
악원 큰 회장에서 아들과 모스크바 필하모니  협연으로 이뤄졌다. 아들을 바라보
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 음반에는 아들 막심이 몬트리올  심포니 오
케스트라의 지휘를 맡고  손자 드미트리의 재롱 같은 피아노 연조가  실려 있다.
마치 가느다란 새순에  매달린 은방울꽃같이 아기자기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지만 ‘철의 장막’ 안에서  파란곡절 인생을 산 쇼스타코비치를 뿌리로 피어났
기에 더욱 값지다.  2세와 3세는 서방세계로 망명하여 1981년 이후  미국에 살고
있다. 2세  막심은 모스크바 라디오  심포니와 모스크바  필하모니에서 지휘자로
활동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세계 저명악단의 객원지휘로 출장을  자주 다닌다.
1961년생인 드미트리는  17살 때 모스크바 주립  오케스트라의 피아노 독주가로
데뷔했다.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망명한 후 줄리어드에 입학, 재학중에도 연주활
동을 활발하게 했고, 1986년엔 카네기 홀에서  할아버지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
곡 1번’을 연주하여 음악가족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제 그들 부자의 연
주는 철의 장막, 언 땅에서 가냘프게 피어난  꽃이 아니어서 금석지감을 누를 수
가 없다.

   묵묵히 대화를 나누는 산처럼

 “자, 여기서부터는 경치가  좋으니까 자동차 속도를 늦추겠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니스’해변보다 더 푸르른 남한강이 되겠습니다.”  운전대를 잡은 이 작
가가 갑자기 관광안내원 어투로 말을 해서 차  안이 웃음바다가 된다. 언제나 계
절을 앞질러서 꽃구경이며 별미 음식점을 안내해 주는  이 작가와 나, 그리고 친
구와 함께 풍치  좋은 곳에 신축된 OO화랑을 찾아가는 길이다.  차창 밖 산에는
연록색 잎새가 뭉게구름처럼 피어나 푸르른 안개발이  뿜어나오는 듯하고, 그 밑
으로 강물에 비친 산그림자는 더욱 짙어서 보는  이의 마음까지 푸르게 한다. 머
리를 들어 멀리 내다보니  강의 양쪽에 자리잡은 먼 산은 눈짓,  몸짓 없이도 산
끼리 통하는 어떤 암호로 묵묵히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가는 내가
마음의 갈피를  못 잡아 흔들릴 때나  업무로 고달플 때 쯤이면,  용케도 연락을
해서 명소로 드라이브를 시켜준다. 자신의 전문적인  일에 끊임없이 정진하며 친
구에게도 섬세한 배려로  감싸주는 친구.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변화에는 흔들림
없이 깊은 골짜기에서 나무와 열매를 가꾸는 저 싱그러운 산의 마음과 닮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신나는  음악 들을까? 애들이 녹음해준 X세대 가요라는데”
하며 이  작가가 카세트를 꽂는다. 차  안에 흐르는 음악은 방송에서  자주 들은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이다. 몇 소절이 흐르고  나니 친구가 “나는 이 노래
를 여러 번  들었는데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더라”하고 나선다.  “이 가사
를 알아들으면 X세대고  못 알아들으면 쉰세대라던데...”라는 나의 응수에 “이
래저래 나는  푸욱 쉰 세대구나”하고  한숨을 내쉬는 친구.  “가만히 집중해서
들어보면 대충 뜻을 알 수  있으니까 지레 포기하지마”하고 내가 위로 아닌 위
로를 하는 사이에  노래는 이미 끝나버린다. 이 작가가 “지금부터  노래를 반복
해서 틀 테니까 자세히 듣고  제일 많이 맞추는 사람이 가까운 휴게소에서 커피
를 사기로 하자”는 제안을 했다. 제일 많이  맞추는 사람이 돈을 부담한다는 것
이 틀린 말 같지만 귀를 쫑긋 세우고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멜로디도
생소하고 시끄럽게 여겼었는데 싱그러운 풍경 속에서 들으니 흥미롭고 경쾌하기
만 하다. 굵은 남성가성으로 “나 이제  알아”라든가, “천사를 찾아 사사”. “
사랑의 시작은 외로움의 끝인걸” 이런 소절은 듣기 쉬워서 오랜 장마끝의 햇빛
처럼 반갑기도 하다. 우선 손쉬운 가사를  적으려고 핸드백을 뒤지는데 볼펜보다
먼저 잡히는 것이 있다. 아! 카세트테이프. 이것은  실내악을 좋아하는 이 작가에
게 주려고 사온  슈만의 ‘피아노 5중주곡’인데, 미처 건네기도  전에 랩가요에
기선을 빼앗긴 것이다. 나는 테이프를 슬며시 백  속으로 다시 밀어넣으며 창 밖
으로 시선을 옮기니 강의 양쪽에 커다란  산봉우리가 나타난다. 올망졸망한 봉우
리를 부하처럼 거느리고 우뚝 솟은 삼각의 봉우리.  저 봉우리를 보니 슈만이 멘
델스존을 “높은 산의  경계처럼 우러러본다”고 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낭만파
음악가인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과   멘델스존(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  1809~1847)은 두터운 우정을 나눈 사이로  내가 사
온 ‘피아노 5중주곡’ 이야말로 그 우정이  담긴 음악이다. 원래 피아노 연주가
를 꿈꾸던 슈만은 손가락  부상 때문에 작곡가로 방향 전환을 했고,  또 음악 평
론을 많이 써서 자신이 창간한 ‘음악신보’에  발표했다. 음악을 평하면서도 장
점을 북돋워주고 성장시키는 역할을 맡아 독창적이고 수려한 필력을 나타냈다고
한다. 슈만은 그  중에서도 멘델스존을 당시의 음악가 가운데  ‘제1인자’로 꼽
고 놀라운 작품성에 감탄하여 이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여겼
다고 한다. 멘델스존  또한 슈만의 최초의 두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을 자신이
악장인 라이프찌히에서 초연하고 슈만의 발전과 명성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한다.
나는 두  사람의 우정을 듣고 이  테이프를 서둘러 샀던 것이다.  가곡과 교향곡
작곡에만 힘쓰던 슈만이 1842년에야  실내악에 관심을 갖고 현악 4중주곡 세 작
품을 끝내자마자 멘델스존에게  바쳤다고 한다. 그리고 부리나케 이  ‘피아노 5
중주곡’을 작곡해서 우선  멘델스존에게 보여줬는데 멘델스존은 그것을 시연해
보고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2악장은 거의  멘델스존의 의견대로
고쳤다지 않은가. 슈만과 멘델스존의 우정 어린  일화만 더듬으며 차안에 흐르는
가요를 건성으로 듣는 줄 모르는  친구가 “얘, 적당히 듣고 맞춰. 그만 틀을 테
니까”하고는 카세트를 꺼버린다.  나는 내심으로 “이런 산자수명한  풍경을 지
나면서는 슈만의 ‘피아노  5중주곡’을 듣는 것이 좋은데...”하고  아쉬움을 금
치 못한다. 누가 듣더라도 1악장은 화려한 알레그로의 표제만큼이나 힘차면서도
빛나는 선율이다.  힘차게 출발하다가 금세  부드러운 현이  이어지고 피아노가
매끄러운 선율을 들려주고 나면 각각 다른 악기들이 차례로 같은 멜로디로 반복
되는 1악장. 이  작가가 교통체증으로 정체해 있을 때,  아니 글을 쓸 때 가슴에
차오르는 것이 있어도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없을  때, 이 곡이 가슴을 후련하게
해줄 것 같기에  이 음악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런데 2악장  때문에 조금은 망설
이면서 이 테이프를  샀다. 1악장에서는 슈만과 멘델스존의 우정을  연상하지 않
더라도 신나고 명쾌하면서도 넘치는 시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2악장에서는 기대
가 어긋났었다. 이 작가에게는 그런 설명  없이 테이프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핸드백을 여는데 “야, 저기  한 구비만 돌면 휴게소야. 빨리 가사를 적어봐”하
고 재촉한다. 나는 가사 맞추기는 포기했는데 독촉이라니. ‘피아노 5중주곡’ 2
악장이 멜로디는 유려하지만 우울한 장송곡풍이어서  아쉬워했던 적이 있었다. 1
악장의 삶의 보람, 약동이 느껴진다. 이런 것이 우리가 바라는 삶의 주체라면 소
멸, 시듦 등도 우리가 껴안아야 할 부수적인 것이 아닐까. 사실 작곡자의 생애나
누구와의 우정이 담긴 작품이라고 해서  가슴에 더욱 울릴 것은 아니지만 이 작
가에게 이 슈만의 ‘피아노  5중주곡’을 주고 싶었다고 다짐하며 창 밖으로 강
물을 내려다본다. 친구 멘델스존이  젊은 나이(38세)로 뜻밖에 숨을 거두자 충격
을 받고, 잠재해 있던 정신병 증세가 되살아난  슈만이 저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
는 라인강에 투신했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곧 구출은 됐으나 강물  속에 고독
이나 슬픔은 묻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병원에 갇혔다가 숨을 거뒀다니. ‘우리의
고달픈 영혼을 모른  채 강물은 영원히 흘러가겠지, 이루지 못한  애틋함이나 영
원한 슬픔을 밑바닥에 묻고는  의연하게 흐르겠지’하는 짐작으로 창문을 확 내
려버렸다. 음악적인  영감을 서로 나눴던  슈만과 멘델스존이 저  눈앞에 나타난
두 봉우리처럼 수려한 존재였으리라는  생각으로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뒤에 앉
은 친구가 “자, 노래 가사 정리해봐. 볼펜은 있어?”하면서 종이를 앞으로 넘겨
준다. 한참  동안이나 마음속에서 나들이를  했던 나의 속셈을  모르는 친구에게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천재들끼리의 우정,  아니 평범한 우리끼리의 우정의
깊이를 저 강물은 알까. 슈만의 ‘피아노  5중주곡’감상도 저 푸른 산의 보이는
면의 아름다움만 느끼듯이 명쾌한 선율에는 단순하게  즐거워하고, 또 느린 선율
에는 차분하게 사색하면 되는 것을.

   어둠에서 빛으로

 벨기에 브뤼셀 미술관 1886년 겨울, 깜깜한 암흑 속에서 연주회는 계속되었다.
실내는 옆사람의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워졌는데 무대 쪽에서 활로
탁탁! 보면대를 치는 소리와 함께 “계속 합시다. 계속해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신들린 듯한 바이올린과 미풍처럼  부드러운 피아노 연주가 이
어졌다. 깜깜한 데서도 완벽하게 연주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는
청중을 꼼짝도 못하게 사로잡았다. 몸은 어둠 속에  있어도 마음은 빛이 있는 곳
으로 열어줬음에 틀림없다. 이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명필 한석봉의 일화
가 떠오른다. 오랜 수련  끝에 귀향한 한석봉과 그 어머니가 불을  끄고 각각 글
씨쓰기와 떡썰기를 시험한 얘기.  불을 켜고 보니 한 획도 빗나가지  않은 힘 있
고 아름다운 글씨와 고르게 썬 떡으로 듣는 이를 감탄시킨, 익히 아는 내용이다.
일평생 떡을 썰고, 오랜 공부 끝에 놀라운  솜씨를 보였듯이 어느 분야에서나 높
은  경지에 이르면  감동을  자아내는가 보다.  프랑크(Csear  Auguste Franck,
1822~1890)의 제자 댕디가  이 바이올린 소나타의 초연 실황을 “실로  기적같은
시간이었다”고 회고한 말이  억지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
스승의 작품 초연 장소가  깜깜해져서 조마조마하던 댕디는 긴장으로 손에 땀을
쥐었다. 그러나 신비스러운 광기의 연주를 듣고 가슴  속에 빛나는 별이 솟는 것
을 느꼈으리라. 프랑크는 벨기에 태생으로 젊은  시절 프랑스에 진출하여 활동한
작곡가이다. 그가  64세라는 늦은 나이에 쓴  유일한 바이올린 소나타를, 벨기에
태생의 동향  후배 바이올리니스트 이자이(Eugene Ysaye,  1858~1931)에게 줬을
때 이자이는 너무도 감격했다. 아름답고 고고한  향훈이 담긴 음악이어서 “이렇
게 놀라운 결혼선물을 받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면서 석달 동안 쉬
지 않고 연습을 했다. 이 기막힌 결혼선물의  초연은 벨기에 미술관에서 오후 세
시부터 시작되는 연주회의 후반 순서에 있었다.  그런데 앞의 연주자들이 시간을
지연시켜서 프랑크의 작품 연주 차례에는 악보를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둑어둑해
졌었다.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에서는  불을 켜면 안되는 규칙이 있어서, 2악장을
마쳤을 때 실내는 지척도 분간이 안될 만큼  어두워졌다. 그때 노련한 연주자 이
자이는 망설이는 피아니스트를  격려해서 빈틈없는 연주를 해냈던 것이다. 미흡,
절망, 불신, 이런 부정적인 어휘마저 완벽하게 흡수한 어둠은 오히려 신비스러운
빛을 낳았다. 작품은 어둠 속에서 연주됐지만  프랑크의 어두운 시절은 이것으로
마감됐으니. 우수가 깔린 고고함과  환상적인 아름다움이 담긴 1악장, 정열과 명
상적인 시정의 2악장, 3악장의 감미로운 서정과 맑고 아름다운 4악장까지. 이 ‘
바이올린 소나타’는 높은 예술성으로 손 닿을 수 없는 꼭두에서 멀리까지 비치
는 등불  같은 존재이다. 어둠 속에  묻힌 진주의 진가를 알리기  위해 이자이는
초연의 성공 이래 각지에서 연주하여 절찬을  받았다. 프랑크는 청년시절엔 인정
받지 못한 작곡가로서 꾸준히 노력한 대기만성형으로  전해진다. 어릴 때부터 뛰
어난 연주가로 출발, 20세 무렵부터 작곡도 했으나 호응을 못 얻고, 교회의 오르
가니스트로 주목을  받다가 7년 후 이  ‘바이올린 소나타’로 탄탄한 작곡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크는 자신의 ‘바이올린 소나타’가  베토벤의 걸
작과 함께 좋은 평가를  받게 된 사실은 모른 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프랑크
의 생존 당시는 호화판 오페라나 살롱 위주의 음악을 선호하는 경향이어서 내면
의 성실한 결정체를 승화시킨 순수 음악예술이  외면당했다고 한다. 탄생과 성장
그리고 고독, 죽음  등 온갖 의미가 응결되어  있는 어둠, 안일한 성공과 달콤한
기쁨보다는 좌절의 어둠 속에서 이룩한 위대한  창조물에 우리는 더욱 감동하다.
환희와 비애가 교차되는  어둠과 빛. 롤랑 마뉘엘은 “격조 높은  품격에서 빚어
진 그 비창의  정감을 초월해서 맑고 높은 봉우리로  치솟아 오를 때 감히 누가
그를 따를 수 있을까”라고 하며  이 작품은 “바로 그 맑고 드높은 봉우리에서
승화된 절품”이라고 극찬했다. 이런 찬사를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 작품을 들으
며 저마다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살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왕의 속삭임

 저는 18세의 여고 2년생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과일장수로, 외동딸인 저의 성
공만을 바라고 겨울에도  길목에서 떨고 계십니다. 그런데 저는 학과  성적은 겨
우 중간쯤이고, 남들이 탤런트 OOO를 닮았다고 해서 어머니 몰래 TV 연기학원
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꼭 대학에  가야 한다며 공부를 강요해서 죽
고만 싶답니다. 저는  성적도 중간 이하거든요... 방송사  내 대학 합격자 명단을
알려 주는 사무실에 들르게 되면  머뭇거리며 합격 여부를 묻는 전화를 받게 된
다. 불합격임을 알려준 그  번호를, 다음번엔 부모인 듯한 어른이 다시 확인하고
힘없이 끊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앞의 내용의 엽서를 보낸  주인공들과 비슷한
경우인지도 모르겠다. ‘성적이 떨어져서  비관자살’이니 ‘낙방 끝에 가출’이
니 하는 서글픈 보도를 보면서, 그냥 예사로  스쳐 버렸던 입시생의 고민 사연들
이 떠오른다. 구구절절이 자신의 불투명한 장래를 걱정하고 호소하는 내용들, 부
모의 강압적인 권유와  기대를 따르는 척하면서, 일찍이 다른 길로  빠져 버려서
이젠 구제받기도 늦어  버렸다는 암담한 사연엔 가슴이 무거울 때가  많았다. 그
러면서도 시원한 해답 대신 단순하게 음악이나 선물하는 것으로 해결 아닌 위로
를 대신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나는 그런 위로 음악으로  슈베르트의 ‘마왕
’을 몇 번이나 들려  준 기억이 난다. 슈베르트는 18세 때  66세의 대시인 괴테
의 시 ‘마왕’을 보고 그  달콤한 속삭임에 끌려서 몇 번씩이나 소리내어 읽고
또 읽은 끝에 악상이 떠올라 훌륭한  가곡으로 완성시켰다. ‘마왕’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어느 아버지가 아들을 앞가슴에 꼭 껴안고 말을 달려가는데 아들
은 그 어둠 속에서 달콤한  말로 좋은 곳으로 데려가겠다는 마왕의 유혹 소리를
계속 듣게 된다.  그래서 계속 무서움을 호소하지만 아버지는 그저  안개와 바람
소리겠거니 하며 가볍게 넘겨 버리고  말을 달려 집에 와 보니 아이는 아버지의
품 안에서 이미  죽어 있었다는 안타까운 내용이다. 피아노 반주가  빠르게 혹은
경쾌하게 분위기를 조성하는 가운데  등장인물 네 사람의 노래로 이어지는 ‘마
왕’을 방송하면서, 폭풍우라는  커다란 가시적인 어려움만 막아  주려는 단순한
보호만이 부모의 역할이  아님을 또 한번 느끼게 되었다. 어른들은  거친 세상을
헤쳐가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이미 굵고 성긴 그물눈을 가진 그물로
세상을 훑어 가고  있지만, 아이들은 촘촘한 그물로 세상을 훑어서  온갖 잡동사
니까지 끌어안고 감당을  못 하기가 쉽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은  그들의 무게를
섬세하게 헤아려서 덜어 주기 보다는 묵살하는 경우가  더 많게 된다. 30년 전의
일이지만 나의 대학  진학의 경우에도 아버지와의 갈등이 있었다.  2년제 대학교
육만 시켜서 평탄한 여성의 길을 걷게 하려는  것이 아버지의 의도였다. 지금 생
각해 보면 재주가 출중하지  못한 딸에게 맞는 배려였는데도 그때는 섭섭하기만
했다. 차라리 친척  댁에 가서 가정교사를 하며 원하는 4년제  대학에 갈까 아니
면 영화배우 심부름이라도 해볼까 했었고, 그땐 그런  일이 별로 어려울 것 같지
도 않았으니 얼마나 한심스러운 망상이었는지. 최근에  방송사로 보내 오는 사연
을 보면 어린 시절의 내 착각이 생각난다.  자기들의 테두리 안에서 기본적인 소
양이나 어려운 수련 과정을 모르는 채 ‘저 높은 곳’을 향한 욕심에 빠지는 경
우가 많다. 인기 가수가 되고  탤런트가 되는 것이 쉬운 줄로만 아는 것이다. 학
원에 몇 달 동안만 다녀 보거나 탤런트의 며칠 동안의 일과만 알아 보아도 대충
어려움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오랫동안 인기  직업 선망에 골몰해서 학업성적
도 떨어지고 만회할  만한 능력도 없든 터에 고민을 털어놓거나,  의논할 대상도
없으니 그것이 문제이다. 좌절할  경우에 다른 적성을 찾을 용기를 주고, 따뜻한
사랑의 손길로 일으켜세워  줄 이는 누구인가. 아이들의 소망과 고민을  함께 하
고 폭풍 속에서 날개를 달고 헤어 나올 힘은  누가 준단 말인가. 그런 날개 대신
자살이란 유혹이 ‘마왕’처럼 다가와  속삭일지도 모른다. 슈베르트의 ‘마왕’
은 극적인 피아노 반주로서  시작되는데 아버지, 해설자, 아들, 마왕, 이 네 역할
중에서 유독 마왕이 속삭이는 장면이 가장 설득력 있어서 외국어라 뜻도 모르는
독일어 가창인데도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러면서도  실제 청소년들에게 이런 마왕
의 속삭임이 들리면 안되리라는 기분으로 음악을 꺼  버린다. ‘TV 탤런트는 화
려해 보이기만 하는데, 왜 성적도 안 올라서  고민인 내게 경쟁률을 뚫기도 어려
운 대학엘 꼭 가라고  명령인가. 대학을 다녀야만 인생인가’. 이런 모순을 알면
서 그 모순이 개선되기만을 기다리기보다 ‘차라리 내가 없어지자’는 순간적인
마왕의 속삭임이 청소년들을 싸고 도는 것은 아닐는지. 시대 배경이
다르고 천부의 재능이 주어진 슈베르트였기에 18세의 고민을 오히려 예술 창작
으로 승화시킬 수가  있었다. 꿈 많은 18세의 슈베르트는 교원양성소  조교사 생
활이 단순한  내용의 반복이어서 지루하고  권태로웠다. 그때 발견한  괴테의 시
‘마왕’은 그의 귓전에서 감미롭게 유혹하는 것이었다,  노래와 춤의 도시인 빈
에 가서  향락 생활을 계속할 것인가.  그러나 빈으로 뛰쳐가는 대신  그 열정이
내면에서 용솟음쳐 음악적인 창작 의욕으로 분출되었으니 얼마나 부러운 일인지
모른다. 환락에의 유혹과 맞서서 자신의 흔들림에  대한 의지의 외침처럼 힘차게
써내려간 ‘마왕’. 18세의  매서운 의지가 바탕이 되어 희망의 지평을  열게 했
던 ‘마왕’, 그 시의  내용은 회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이지만, 슈베르트에
게는 도입부의 말 달리는 소리처럼 힘찬 출발을  하게 했던 것이다. 그 ‘마왕’
을 필두로 그 해에  백 편 가까운 가곡을 썼다니 말이다.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우리네 18세 소년, 소녀들도 괴테의 시 ‘마왕’  같은 좋은 만남으로 오히려 인
생의 좋은 전환점을 맞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는 그저 ‘마왕’이나 듣고 있어
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환희의 송가

 ‘내가 하루,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만 들을  수 있다면 찬송가와 목사님의 설
교를 듣고 싶다.  그리고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어렸을 때부터 청각장애자였던  운보 김기창 씨가  어느 대학의
방송프로그램에서 들려 준 말이다. 베토벤이 귀가 어두워진 말년에 작곡했고, 가
장 완전한 교향곡이라고 칭송받는 음악에 대한 운보 선생의 갈망을 우리는 얼마
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 베토벤의  교향곡을 모르던 어린  시절에 육아원을
하는 고모댁에 간  일이 있었다. 6.25 직후 가난과  병고를 질경이처럼 이겨내고,
얼룩덜룩한 서양옷을 입었지만 표정은 밝은 아이들이 마당가에서 생소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찬양하라, 노래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햇빛 따라 새싹들은 쉬
지 않고 자란다. 봄비  내려 새싹들과 나무숲을 보려마.” 예닐곱 살짜리 꼬마들
이 양지바른 곳에서 영롱한 눈을 빛내며 부르는  힘찬 노래. 그런데 한쪽에서 우
둔한 발음으로 아이들 입만 바라보며 서툴게  흉내내는 아이가 있었다. 서울에서
피난 온 대학생이 가르쳐준 ‘환희의 송가’를 반벙어리라서 잘 못 부르지만 열
심히 부르려고 애쓰고 있었다. 발음이 힘든 그 소년의 당혹감, 좌절감을 나는 잊
어버리고 그후 아름다운 자연과 만날 때, 혹은  기쁨의 순간에 그 노래를 신나게
불렀다. 보리 이삭이 풀렁거리는  들판에서도, 소나기 지난 후 마당에 피어난 분
꽃을 보면서도 그  노래가 나왔고, 우수한 성적표를 받았을 때도  우쭐거리며 불
렀다. 교회나 학교  친구 중에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나만의  노래처럼 숨겨두고
아껴서 불렀다. 여고시절  수학여행을 가서였다. 싱그러운 새벽바람 사이로 송진
냄새가 끼치는 토함산. 은은한 새벽 별빛 사이로  전설이 묻혀져 가는 것을 아쉬
워 하며 해돋이  구경을 서둘렀다. 붉은 해의 속살을 가려주듯  구름이 너울너울
띠를 두른 사이로 해는 일렁이며 솟아올랐다. 온갖 것을 머금은 숭고함, 깊은 바
다에서 새로운 희망을 휘어잡으려고 올라온  위용 앞에서 어찌 “찬양하라...”하
고 환희의 송가를 안 외칠 수 있겠는가. 그후로  몇 년 동안은 느낌의 깊이도 없
이, 가난하고 옹색한 마음에 쫓겨 그 노래를 잊고 살았다. 그보다도 살아 있다는
감격을 뿌듯이 안아본 적이 없어서인지  거부하고 산 것 같다. 그러던 중, 몇 년
전에 등산을 가서였다. 깜깜절벽인 자정, 지척도 안 보이는 B산의 계곡에서 회중
전등이 비치는 외줄기  길을 따라 걸었다. 나는 한사코 걷는데도  앞의 선발대들
의 소리는 멀어져 가고 있었다. 들리는 것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뿐, 일행의 소
리가 사라지자 왈칵  무서움이 몰려 왔다. 시커먼 숲 속에서  무중력상태로 떠나
버렸으면 하는 순간에 입속으로 뇌어지는 것이 있었다. “찬양하라 노래하라, 하
나님의 영광을...” 그것이  비록 소리되어 나오진 않았으나 분명 나는  그 한 구
절을 불렀던 것이다. 그때  나는 어릴 때 고아원에서 노래를 잘  못 하던 반벙어
리 소년의 당혹감을  생각했고, 그 소년이 속으로는 간절히 그  노래를 유창하게
불렀으리라 짐작됐다. 기쁨과 평화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절망에서 벗어 나오려
는 절규, 아프고도 소중한  모든 것에 대한 눈뜸의 시작이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위대한 자연에  대한 나의 겸허였을까. 오래  전 인천에 사는 구필  화가 김준호
씨를 찾아간 일이 있다.  그 청년의 온몸은 바위에 눌린 듯  마비되고 오래 누워
서 상처투성이지만,  맑고 고운 눈동자의 준수한  용모를 지녔었다. 창가에 한번
앉거나 서 보지 못하고 누운  채 고정된 얼굴로 하늘을 호흡하면서 영혼을 씻어
가고 있었다. 주위의 권고로 몇 달의 수련 끝에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을 때 기쁨은 차라리 아픔이었으리라. 육신  중에서 살아 있는 부분은 오
로지 얼굴만이어서 한 시간만 계속 그림을 그리면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 쌓인단
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할 수 없는가’하고  좌절하는 대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 했다. 생명을 이어주심과 조그만 일을 해낼  수 있음을 감사하는 그의 귀중한
믿음 앞에 나의  어줍잖은 위로의 말은 커다란 과오를  범하는 것 같아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어둔  껍질을 벗은 벌레가 높은 하늘을 기어오르려는  듯한 망막하
고, 미약한 힘이지만 감사하면서  지속하던 빛나는 삶. 나는 무척 오랜만에 “찬
양하라 노래하라 하나님의 영광을...”을 읊조릴 수 있었다. 그 순간에서야 그 노
래가 단순한  자연을 찬양하기보다는 신에  대한 감사와 겸허의  노래요, 신념과
의지의 사람에  대한 찬양임을 절감했었다.   화려하고 무성한  나무들 사이에서
여리고 가냘프게 피어난 들꽃들의 생명력 같은  사람들. 나는 활발하게 노래부르
던 빛나는 아이들의 노래보다 더듬거리던 아이의  노래가 얼마나 절실했고, 전신
이 마비된 김준호 씨의 감사하던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인
지 표현할 능력이 없다.  최고의 절망 속에서 얻어낸 감사와 송가가  값진 데 비
해, 나는 그토록 절실하게 ‘환희의 송가’를 불러 본 일이 없어 송구하다. 저마
다 특색 있는 모습을  지닌 삼라만상, 그보다도 더 다양한 사람들  제 각기의 마
음, 그 마음도 순간마다 다르듯이 무궁한 것을  표현할 능력을 받고 있음을 감사
해야 한다. 로맹롤랑은 ‘교향곡 제9번’에 대해 “제9번은 합류점이다. 아주 먼
곳에서 그리고 또 아주 다른 지방에서 모여든 많은 분류-모든 시대의 인간의 갖
가지 공상이나 의욕  같은 것이 이 속에  담겨 있다. 또 이 곡은  산 꼭대기에서
과거의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회고라고 해도 좋다. 베토벤 생애의  전서를 내려
다보면서 비상할 수가 있다”고 회고하고 있다.  고뇌에서 벗어나 환희에 다다르
는 곡 전체의 크나큰 감동은  나의 서투른 말씨로 감히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
다. 베토벤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생각하고, 교향곡에 사람의 소리인 합창을
넣었다는 ‘교향곡 제9번’ 끝악장의 ‘환희의  송가’는 베토벤의 불운한 생애,
그의 처절한 고통과 번민을 들으려는 내적인  귀를 열게 했다. 그리고 1차적으로
보이는 조그만 기교나  몸짓에 감탄한 얄팍한 속셈을 부끄럽게 여기게  했다. 가
을에 헐벗었던 숲이 싱그러운 여름숲을 마련하기까지의 인고의 세월을 짐작해봐
야겠고 초록빛 바다의 잔잔한  모습이 노여운 폭풍의 시련을 견뎌왔음을 기억해
야겠다.



김대현: 음악    으      사랑  -[08/16-11:09]-

전현희: 읽어봤더니..좋네요.....^^  -[08/22-11:40]-

전현희: 저도,.,,음악가되고싶어요....청각장애인이라서....슬프네요///  -[08/22-11:40]-

이민성: 양지쪽에서  -[11/01-21:17]-
  이름   메일   회원권한임
  내용 입력창 크게
                    폼메일 발송 수정/삭제     이전글 다음글    
      회원권한임
파 일 설 명추천OS구분조회
  김광석에 관한 글   all  문서   23148
  초보자를 위한 국악음반 걸작선   all  문서   12327
  초기 공자 철학에 있어서의 음악   all  문서   8983
  70년대와 80년대의 대중음악과 민중음악에 대한 심도있는.. 보고서   all  문서   19652
  음악의 숲에서 - 순수의 시절에 들어야 할 클래식 음악 55  1 all  도서   30140
  음악감상입문   all  도서   3661
  명곡명연해설집   all  도서   25625
  <국악인물이야기 >시골 아낙네에서 명창이 된 억척 여인 이화중선   all  도서   6245
  <국악인물이야기>폭포에 피뿌린 소리꾼 송홍록 이야기   all  문서   5277
  <국악인물이야기>꺼지지 않는 소리 불꽃 박동진   all  문서   4656

 
처음 이전       목록 쓰기


......Copyright(c) 2004 My DHK0401. All rights reserved......>